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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낙엽이 곱게 물드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들이나 산 가까이에 억새풀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차가 왕산마을 지나 무장산 암곡주차장에 도착하자 일행들은 내려서 장비를 챙기고서는 간단히 체조도 하고 산행준비를 갖춘다. 오늘 산행지인 무장봉은 해발 높이가 624m로 그리 높지 않고 등산로도 잘 정비돼 있어 등산이라기보다는 트레킹 코스처럼 느껴졌다. 공원지킴터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삼삼오오 산행을 시작했다. 가는 길가엔 가을의 대표 꽃인 코스모스가 피어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얼마쯤 걸어가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해 무장사지(계곡)코스로 오르면 바로 무장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 쪽 무장봉 능선코스로 가면 밤나무 숲을 지나 무장봉에 오르는 길인데 결국 만나게 되는 길이다. 오른 쪽을 코스를 선택해서 언덕배기를 올라가니 밤나무 숲 단지가 나온다. 출발지에서 1.4km 지점이고 여기서 1.7m정도 올라가면 무장봉 정상인데 등산로 라기 보다는 산책로 같이 이어지고 있어 동행하는 회원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무장봉 봉우리가 보이면서 갈대밭이 펼쳐지고 있다. 좁다란 길에 올라가는 사람 내려서는 사람이 마주치면서 길을 걸었다. 드디어 일행들은 억새평원에 도착했다. 정상 주변에서 억새 군락지가 멋진 모습을 연출해낸다. 흔히 억새가 유명한 곳으로 경기도 포천 명성산 억새,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억새나 울산 신불산 억새 군락지 등을 꼽지만 경주 무장산 억새풀 단지도 경관이 빼어나기는 마찬가지다. 억새풀의 흔들림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정상에 섰다. 일행들이 사진을 찍는데 다른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억새풀 더미 사이에서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무장산은 포항 오어사를 품은 운제산과 경주 토함산을 잇는 운토종주길상의 그냥 스쳐가는 624봉인데 이 산이 유명하게 된 것은 억새풀로 인해서다. 1970년 동양그룹 오리온목장이 조성된 산으로 1980년에 매각되고 나서 관리 부재로 억새풀이 무성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148만 ㎢나 되는 광활한 면적에 억새풀 천지가 됐다. 정상에서 잠시 경관을 살피는데, 정상석 밑에 새겨진 글이 눈에 띈다. `남기는 것은 발자국, 가져가는 것은 추억 뿐`이라는 말이 상당한 의미를 준다. 우리 일행들은 정상에서 내려서서 다시 무장골로 내려와 무장사지에 도착했다. 무장사지는 무장사가 있었던 절터로 현재는 보물 126호인 무장사지 삼층석탑 등 비석만 남아 있다. 무장사란 명칭은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전쟁에 지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며 투구와 장비를 이곳 골짜기에 묻고 절을 지었다 해서 무장사라 불렀다고 한다. 무장사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서는 억새풀이 펼쳐진 자리에서 잠시간 휴식시간을 가졌다. 휴식을 하고 있자니 다시 분위기는 화합 모드로 변했다. 누가 권할 것도 없이 회원들이 삼삼오오 자연스럽게 모여 앉아 산행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필자는 독도사랑산악회의 결성 취지에 맞게 우리 회원들이 쓰레기 가져가기. 술판 벌리지 않기 등 자연사랑 캠페인과 산행문화 바꾸기 솔선수범을 당부했고, 회원들은 박수로 응답했다. 이어서 공연이 이어졌는데, 성악가 김주권 회원이 노래를 불렀다. 회원들과 산행온 사람들의 앙콜 요청에 3곡이나 연달아 불렀다. 산에서 그것도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해서 명곡을 들으니 가슴에 미어지는 듯 찌릿함을 느낀다. 계속 이어지는 권정경 회원의 하모니카 연주를 들은 다음에 독도사랑산악회 회원들은 무장산 억새풀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제는 하산할 차례다. 억새군락지를 지나 계곡을 타고 내려서서 얇게 흐르는 물에 발도 담가보고 마지막 산행의 즐거움을 맛본다. 다시 걸음을 재촉해 무장사지 계곡을 지나 아침에 도착했던 왕산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행장비 등을 정리하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등 컨디션을 조절한 뒤에 우리 일행들은 차에 올라 경주에 있는 토담한식집에 들렀다.
산행은 일상생활의 복잡함을 잠시 잊고서 자연의 지혜를 배우는 좋은 기회다. 등산 자체도 좋지만 동행하는 일행들의 마음까지 맞아 분위기가 좋으면 금상첨화다. 산에 오르내리면서 자연에게서 얻는 기쁨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이왕이면 산행인 스스로가 건전한 등산문화를 정착시키는 일도 소중한 일이다. 그 속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대해 즐기는 것이 멋진 등산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억새가 서걱이는 경치가 장관을 이루는 억새 평원에 올라 깊어가는 가을날의 서정을 바라본 순간들은 아마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다.
“갈대가 나부끼는 풍경/ 가을의 한 복판에 서면/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산등성이 전체가 온통/ 억새풀로 뒤덮인 곳이/ 경주 무장산 억새 동산으로/ 요즘 들어 인기 있는 산이다.// 옛적 신라시대 때/ 무열왕이 삼국통일 후/ 투구를 묻었다 하여/ `무장산`이라 이름 붙은 이곳엔/ 억새만큼이나 찾는 이들도 많다./ 바람에 한없이 서걱이는/ 억새풀 소리조차 고운 날이다.”(자작시`무장산의 억새 동산`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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