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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피노키오>
“야야 너 그거 들었어?”
“아니, 아니 뭔데??”
“넌 기사도 안보냐? 이거 봐봐 대박이지.”
이른 아침. 움직이는 사람들 손에는 당연하다는 듯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종이로 된 신문을 보지 않았다.
‘덜컹덜컹..덜컹덜컹,,’
아침 7시 30분.
지하철 역 안은 이미 사람들로 붐비었다.
동석도 시간에 맞춰 출근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꽉 막힌 지하철 안,
아까부터 소곤거리며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말소리가 동석의 귀를 간질였다.
“와,,,이거 진짜야?”
“어, 아마 너만 모르고 있을 듯,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이 사람들은 이런 걸 다 어떻게 아는 걸까?”
“그니까. 매번 제일 먼저 기사 터뜨리지 않냐?”
“그럴걸? 가끔 보면 진짜 소름 돋을 정도임.”
두 학생이 속삭이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끝에는 A회사 로고가 찍힌 기사가 있었다.
동석은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곤 아무도 모르게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에 은근한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도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네,네 맞습니다.”
“보도된 내용 확인 한번만 부탁드릴께요!”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회사 안의 분위기를 장악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매일 다르게 전해져 오는 소식을 전하는 일은 현재 사람들에게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이었다.
그 중심에 있는 A회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 언론사였다.
‘정확한 보도와 날카로운 기사.’, ‘대중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언론계열 회사 중 최고의 위치에 있는 A회사를 대표하는 수식어였다.
어렸을 적부터 기자를 꿈꿔왔던 동석에게도 A회사는 꿈에만 그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기자를 되기 위한 일은 쉽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아침에 해를 보며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오직 기자가 되는 날만 꿈꿨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2년 후, 동석은 꿈에만 그리던 A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입사한지 7년차.
더 이상 그에게는 그때의 패기나 열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짙은 다크 서클과 말라붙은 입술. 표정을 잊은 채 기계처럼 움직이는 그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았다.
이상보다는 현실을 쫒았다.
명예와 승진을 위해서라면 신념 따위는 아무 상관없는 듯 살아갔다.
‘후..’
출근 시간에 맞춰 등장한 동석은 빠르게 노트북 전원을 눌렀다.
그때였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한 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옷과 구두.
깔끔한 회사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차림의 남자가 문을 열며 들어왔다.
동석의 입사 선배인 지혁이었다.
지혁의 등장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회사 내에서 지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융통성 없이 일하는 사람.’
그의 이미지는 이게 전부였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인지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은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동석 역시 다르지 않았다.
지혁의 등장에 동석은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불편한 듯, 옆자리인 지혁을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일찍 출근했네요?”
동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혁은 웃으며 동석에게 말을 건넸다.
“..네”
지혁의 질문에 돌아온 건 동석의 짧은 대답 뿐 이었다.
동석의 차가운 대답에 지혁은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
“...”
동석이 처음부터 지혁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 처음 발을 들였던 동석에게 지혁은 닮고 싶은 선배였고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석은 현실 앞에서 변해갔다.
변한 동석에게 더 이상 신념 같은 건 자신의 미래를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지혁 역시 더 이상 동석에게 닮고 싶은 존재가 아닌 그저 답답하고 꽉 막힌.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렇게 동석에게 지혁은 불편한 선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고 키보드 소리만이 가득한 사무실 안.
정적을 깨는 건 다름 아닌 팀장이었다.
“동석씨 오늘 회의자료 정리한 거 가지고 10분 후에 잠깐 내 방으로 와요.”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팀장의 요구에 동석은 빠르게 자료를 챙겼다.
“큼큼”
빠르게 도착한 문 앞에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크를 하자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선 동석의 발걸음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부탁하신 자료 여기 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미안해요. 따로 부탁해야할 일이 생겨서 급하게 불렀어요. 일단 앉아서 차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네 그럼요.”
동석의 대답에 팀장은 앞에 놓인 차를 한입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전보다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정확히 3일 후에 회사 관련한 비리기사가 터질 것 같아요.
그런데 동석씨도 알겠지만 비리 관련 기사가 터지게 된다면 언론사인 우리 회사 이미지에는 치명적이에요.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성은 말할 것도 없고요.”
부드럽지만 강압적인 팀장의 말에 동석은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덮을 만한 큰 기사가 필요해요. 힘든 부탁인거 알지만 가능할까요?”
“그럼요.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겠습니다.”
동석에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번 일만 잘해낸다면 그에 따른 보상도 주어질 테니까.
방을 나온 동석은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이번이 기회였다.
그 흔한 인맥도 없고, 잘난 뒷배경도 없는 동석에게는 이번은 놓치고 싶지 않은 신이 주신 기회같이 느껴졌다.
‘잘해내야 한다....잘해내야 한다....’
계속 되뇌었다.
자리에 돌아온 동석은 빠르게 글을 적어 내려갔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유명 연예인의 SNS에 들어가 논란을 끌 수 있는 몇 장의 사진과 자극적인 제목을 함께 올리면 그 뿐이었다.
하얀 창은 어느 새 동석이 써내려간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후....”
동석은 습관처럼 한숨을 내뱉었다.
너무 집중했던 탓일까. 동석은 피곤한 듯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너무 무리했나..”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살짝 찡그린 동석은 팔을 들어 눈 위에 살짝 올렸다.
몸이 점점 나른하게 가라앉았다.
감은 눈은 더욱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동석씨!”
“네.”
아무도 없는 회의실.
어리숙한 차림을 한 신입시절의 동석이 상사로 보이는 남자 앞에 서있었다.
“김동석씨, 기사 수정 마무리 다했어요?”
“그게...아직 못했습니다..”
“내가 수정해서 가져오라고 한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뭐했어요?”
상사의 다그침에 동석은 우물쭈물하며 입만 달싹였다.
“내 말 안들립니까?”
“그게 그러니까.. 하면 안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뭐라구요?”
상사로 보이는 남자가 동석에게 소리쳤다.
“..기자는 사실 있는 그대로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지금 시키신 일은 저희 회사 이미지를 위해 거짓 정보를 전하라는 것이잖습니까. 아무리 저희 회사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그때 동석의 말을 끊으며 상사가 답했다,
“이봐요, 김동석씨 미안한데, 여기선 동석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한번 봐요, 여기서 누가 동석씨처럼 하나하나 신념에 맞춰가며 기사 써요 안그래요? 하기 싫음 하지 마세요. 동석씨 아니더라도 할 사람은 많으니까.”
할 말을 마친 상사는 동석이 건넨 기사를 툭 던진 채 지나쳤다.
‘툭’
기사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석은 허리를 굽혀 흩어진 기사를 모았다.
흩어진 기사를 정리한 후에도 동석은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던 동석은 구겨진 기사를 챙겨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그때 사무실 주변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일제히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며 수근거렸다.
의아했진 동석은 근처에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생겼어요?”
“네? 아뇨 그게 아니라 이거 기사 못 봤어요?”
“기사요? 무슨...”
눈을 돌려 기사를 확인한 동석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기사는 다름 아닌 오늘 오전 상사가 동석에게 수정해 오라던 그 기사였다.
“이게 왜..?”
동석은 몇 번이고 기사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번엔 이 사람이겠네.”
“그쵸.”
“나는 이런 기회 언제 오려나,,”
“저도요.”
믿을 수 없다는 듯 모니터만 바라보던 동석은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 할 뿐 기사 자체에 관한 말은 전혀 오가지 않았다.
동석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 공기 모든 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상사의 마지막 말이 귓속에 웅웅 울리며 맴돌았다.
‘여기서 누가 동석씨처럼 하나하나 신념에 맞춰가며 기사 써요 안그래요? 하기 싫음 하지 마세요. 동석씨 아니더라도 할 사람은 많으니까.’
“결국에는 이런거였구나..”
동석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순수하게 꿈꿔온 꿈이 눈앞에서 처참하게 망가졌다.
그때부터였다. 그는 어떠한 꿈도 꾸지 않았다.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은 차갑고 무직했다.
멍하니 동석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러자 자신의 책상 위 붙어있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정의와 신뢰를 기본으로!’
그것을 보자마자 동석은 자신이 역겹게 느껴졌다.
자신이 그렇게 꿈꿔 들어온 곳은 책상에 붙어있는 글귀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듯이 묵묵하게 일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일만 하던 동석은 손을 들어 자신의 책상에 붙어있는 종이를 거칠게 떼어내어 휴지통에 버렸다.
텅 빈 휴지통에는 삐뚤빼뚤하게 적혀있는 ‘정직과 신뢰를 기본으로!’라 적혀있는 종이만이 나뒹굴었다.
....
“동석씨? 동석씨!”
어느새 나타난 지혁이 말을 걸어왔다.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아직 안 가고 왜 여기서 자고 있어요?”
“아..잠깐 졸았나봅니다. 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아직 조금 남아서요.”
“그래요..?”
동석의 대답에도 지혁은 할 말이 있는 듯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동석은 피곤한 듯 고개를 돌리며 지혁에게 물었다.
“무슨 할 말 있으십니까?”
동석의 대답에 지혁은 한참을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기사.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겁니다.”
침묵을 깨고 그가 동석에게 건넨 짧은 두 마디였다.
그러나 동석은 꿨던 꿈 때문이었을까.
무언가 들킨 사람 마냥 지혁에게 소리쳤다.
“무슨 의도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동석의 소리침에도 지혁은 담담하게 답했다.
“나는 단지 선배로써 동석씨를 아끼는 마음에서 한 말입니다. 동석씨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어리숙했지만 소신 있는 태도에....”
“그런 마음 사양하겠습니다. 선배님께서 하신 말처럼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요, 저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습니다. 정의 외쳐대면서 혼자 바보처럼 돌아다녀도 결국 달라지는 거 하나도 없다는 거 선배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일 어차피 제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할 일입니다. 누구든 해야 할 일이라면 제가 해서 성공하면 좋은 거 아닙니까? 눈 한번 감고 모르는 척하면 내 인생이 달라지는데, 남들 10년 15년 걸리는 거 나는 한 번에 갈 수 있는 기회잖아요. 이 기회를 그냥 무시해요? 그깟 정의 한번 지키겠다고? 지금 제 입장에선 아무것도 얻지도 못하면서 신뢰, 양심만을 운운하시는 선배님이 더 이해가지 않습니다.”
동석은 봇물 터지듯이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그대로 지혁에게 내뱉었다.
“..내가 괜한 오지랖을 부린거 같네요.”
가만히 동석의 말을 듣던 지혁은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사무실을 나섰다.
지혁이 떠나고 동석은 불꺼진 사무실 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짜증나는 듯 머리를 헝클었다.
자리에 앉은 동석은 기사 마무리에 더욱 집중했다.
‘째깍 째깍’
조용한 사무실.
시계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배고프네..”
동석은 서랍을 뒤적이며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러자 작은 소시지 하나가 굴러 나왔다.
“이거 밖에 없나”
계속해서 서랍을 뒤적이던 동석은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서랍을 닫았다.
그리고는 껍질을 까 크게 베어 물고 계속해서 기사 마무리에 집중했다.
“드디어 끝났다..”
동석은 마무리된 기사를 보내고 노트북을 덮었다.
고개를 젖히며 기지개를 피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자정이 다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빠르게 짐을 챙긴 동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하였다.
그의 발걸음에서는 은근한 들뜸까지 느껴지는 거 같았다.
다음날 아침, 동석이 쓴 기사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모든 신문사와 방송국들은 짠 듯이 해당 연예인에 대한 가십을 쏟아냈다.
인터넷, 라디오, TV..모든 곳에서 해당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관심은 해당 연예인에게 쏠렸다.
‘저런 줄 알았다.’, ‘원래 이상하다 생각했다.’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수많은 악플과 소문들이 일렁였다.
기사를 확인한 동석은 별다른 죄의식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했을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6개월 후, 별다를 것 없이 일을 하던 동석은 인터넷에서 자신이 표적 삼은 연예인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연예인 C양, 도를 넘는 악플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
기사를 확인 한 다른 사람들도 동석을 힐끗거렸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동석에게 이번과 같은 일은 처음도 아니었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깊은 구석 뭔지 모를 역함이 올라왔다.
동석은 손으로 가슴을 연겨푸 쓸어내렸다.
그저 아침을 먹지 않아 속이 쓰린 것이라 생각했다. 깊은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타다닥 타다닥’
몇 시간이 지났을까. 동석은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 듯 손톱만 물어뜯었다.
“하.. 왜이러냐...”
짜증난다는 듯 동석은 넥타이를 살짝 풀어헤쳤다.
하루 종일 이유 없이 짜증이 났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오늘 해야 할 분량의 일도 마무리 하지 못했다.
어느새 가까워진 퇴근시간에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석은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보려 담배를 챙겨 옥상으로 향했다.
“후....”
연기와 함께 복잡한 생각과 원인 모를 답답함이 떨쳐지길 바랐다.
동석은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동석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짧아진 담배꽁초를 바라보다 이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일을 끝내고 빨리 집에 가 쉴 심산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동석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작은 파일을 발견했다.
고개를 돌려 주의를 살펴보았다.
차가운 적막만이 동석을 감쌀 뿐 아무도 없었다.
다시금 시선을 돌려 파일을 살펴보자 위에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져 있었다.
‘이 기사가 지금 동석씨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지혁’
지혁이 남긴 메모였다.
뜬금없는 지혁의 메모에 동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파일을 펼쳐보았다.
‘2013년 0월 0일.....’
다름 아닌 동석이 회사에 입사한 후 처음 쓴 기사였다.
빨간 색 펜으로 이곳저곳 체크가 되어있어 읽기도 쉽지 않았다.
어리숙한 문장과 깔끔하지 않은 문맥. 모든 곳에서 어설픔이 배어있었다.
기사를 읽어 나가던 동석은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맨 뒷장을 넘기자마자 동석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정직과 신뢰를 기본으로!’
기사 맨 뒷장 써져있는 글씨. 누가 봐도 동석의 글씨체였다.
짧은 문장이었다. 그러나 동석은 그 문장을 보자마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처음 동석이 기자를 꿈꾼 그날. 그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품어온 신조,
항상 자신이 쓴 기사 마지막 장에 꼭 쓰던 글귀였다.
그러나 동석은 그 문장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다.
자신의 책상에 앉아 모든 걸 휴지통에 버린 그날.
그날 이후부터는 자신이 쓴 기사 마지막 장에는 더 이상 어떠한 글귀도 쓰지 않았다.
현재 동석의 ‘기사’에는 ‘정직’과 ‘신뢰’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모든 것이 울렁거렸다.
그때였다.
‘지잉..’
작은 진동이 울렸다.
떨리는 손을 감추며 휴대폰을 확인한 동석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올려둔 기사를 확인 했는지 모르겠네요. 괜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나도 동석씨처럼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 쫒기며 바쁘게 살아가다보니 결국 진짜 ’내 모습‘이 없더군요. 나는 이 사실을 깨닫는데 참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동석씨는 나와는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지혁’
지혁의 문자였다.
모든 게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처음 그 시작을 잊을 채 그저 지금처럼 살아가는 게 맞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의 비겁함을 포장했다.
진실을 외면한 대가는 온 몸으로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냥..남들보다 더 잘 살아보고 싶었던 것 뿐 이었는데..왜 나만 이렇게 힘든건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선택을 후회했다.
자신을 이렇게 변하게 만든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렇게 무너졌다.
동석은 무엇이라도 잃어버린 아이처럼 그렇게 울었다.
달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창을 통해 동석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춰보였다.
너무나 작아져버린, 한 남자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고요한 사무실안.
동석의 울음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째각 째각,,’
지극히도 평범한 날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