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일부에선 21세기의 기업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근대 초기 역사를 보면, 기업이 이익을 무한히 추구하게 놔둘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인도양에서 활약한 반면 네델란드 서인도회사는 대서양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허드슨 강에서 이루어지는 교역이 중요했기 때문에,
회사는 이를 장악하기 위해 강 입구 섬에 뉴암스테르담이란 정착지를 건설했다.
식민지는 거듭해서 원주민드의위협으 받고 되풀이해서 영국인의 공격을 받은 띁에,
결국 1664년 영국의수중에 들어갔다. 영국은 섬의 이름을 뉴욕으로 바꿨다.
네델란드 서인도회사가 식민지를 원주민과 영국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세웠던
성벽(wall)의 잔해 위에 깐 포장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즉 월스트리트(Wall Street)가 되었다.
17세기가 끈나가면서 네델란드는 뉴옥을 잃었고,
금융 및 제국의 심장이라는 유럽 내에서으 지위도 내놓았다.
여기에는 현상에 안주한 자세도 한몫했고,
대륙 전쟁을 치르느라 경비를 너무 많이 지출한 탓도 있었다.
네델란드가 빠져나간 공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은 프랑스와 영국이었다.
처음에는 프랑스가 훨씬 유리해 보였다.
프랑스는 덩치가 더 크고 자금과 인구도 더 많았으며 경험 많은 군대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어떻게해서든 금융제도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한 데 비해,
프랑스는 스스로 신용할 수 없는 대상임을 드러냈다.
프랑스 왕의 행태는 18세기 유럽 최대의 금융 버불이라 불리는 미시시피 버블 과정에서 특히 악명을 떨쳤다.
이 이야기도 제국을 세운 주식회사와 함께 시작된다.
1717년 프랑스에서 사업승인을 받은 미시시피 사는
미시시피 하류의 연안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고 뉴올리언스 시를 건설했다.
야심찬 계획을 실현할 자금을 모으고자,
프랑스 루이 15세의 궁정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회사는 파리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팔았다.
회사 사장이 던 존 로는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이기도 했다.
게다가 왕은 그를 오늘날의 재정부장관과 비슷한 정부 금융총책 자리에 임명했었다.
1717년 미시시피 하류의 연안 지대는 늪지와 악어를 제외하면 그다지 매력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미시시피 사는 여기에 엄청난 부와 무한한 기회가 있다고 떠벌렸다.
프랑스의 귀족, 사업가, 도시 부르주아 중 둔한 사람들이 이런 환상에 속았고,
회사 주식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애초에 주식은 한 주에 50리브르(프라스의 예 화폐단위)에 발행되었다.
1719년 8월 1일에는 2,750리브르에 거래되었다.
8월 30일에는 4,100 리브르, 9월 4일에는 5천리브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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