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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76년째를 맞이한 커피숍이 있습니다. 설립자 이노다 시치로(Inoda Sachiro)는 수입품 도매업을 하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징집병으로 차출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커피콩이 담긴 15개의 가방을 들고 교토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이노다 커피의 전신이 된 INODA COFFEE SALON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41년이었습니다.
현재 이노다커피는 본점을 포함하여 일본 내 일부 지역에서 총 1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토에서만 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전국적으로 유명한 커피 전문점은 분명 아닙니다. 혹자는 소규모 커피 네트워크(Small Local Coffee Network) 업체에서 차별화를 일깨울 수 있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업체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지 않냐며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부 커피 전문가가 이 곳을 방문한다면 일본인 특유의 고집스러움이 베어있다고 문전박대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커피의 기조는 따르지 않고 강배전한 커피만을 내어주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창업한 이래로 77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서 고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한 이노다커피 산조점도 올해로 47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가치는 시간에 있지 결코 규모 등에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정확하게 배울 수 있을까요?
다시 제프리 케인의 칼럼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는 칼럼의 말미에서 강남 스타일의 가장 큰 폐해는 소위 영혼 없는 모습을 양산하는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로 차별화를 하고 있다곤 하나 이내 어제의 차별화가 오늘의 획일화로 점철되어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급속도로 성장한 저가 커피 전문점, 스페셜티 커피만을 취급하는 고급 커피 전문점 등도 강남스타일로 설명 가능할 것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이노다커피를 다시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노다커피에는 굿 머신도, 굿 스페셜티 커피도 없습니다. 최신의 유행은 모조리 사라진듯한 기분마저 자아냅니다. 심지어 음악도 없어 카페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낼 수도 없습니다. 커피의 양은 한 사이즈로 정해져 있고 아이스 커피는 양도 적습니다. 카페는 온통 나이 드신 분들로만 가득차 있어 마치 우리네 다방에 온 것 같은 착각 때문에 머무르기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엔 시간이 만들어놓은 금자탑이 있습니다. 그 곳엔 시간이 만들어놓은 가치가 숙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엔 이노다 커피라는 브랜드의 영혼이 있습니다. 요즘 카페에선 살펴보기 힘든 노력이 내제되어 시간의 깊이와 함께 이어져오고 있는 셈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들만의 바람직한 스타일로 깃들여져 서양의 산물인 커피를 자신들만의 색으로 추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치장과 가식은 시간이 깊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증발되고 마침내 그들만의 영혼이 오롯이 남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강점을 계속해서 쌓아갑니다.
그리고 이노다커피는 그들의 강점을 바탕으로 지역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남길 수 있는 논리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오모테나시(Omotenashi) - 따뜻한 환대(Warm hospitality) - 는 우리가 나아갈 길을 재정의해주고 있습니다. 커피라는 사물에 자신들의 생각을 담아 사물로 만들고 따뜻한 영혼까지 담아 환대를 하니 자연스레 경쟁도 불필요하게 되었습니 다. 다카기 커피점에서 말씀드린 경쟁이 없는 가게는 이노다커피에도 적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가끔씩 이노다 커피가 생각납니다. 정말로 어쩔 때 너무 가고 싶어 비행기 티켓을 끊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불현듯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려우니 직접 내린 커피로 달랠 수 밖에 없습니다.
[TIPS]
언젠가 이노다 커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웨이트리스가 시원한 카페오레 두 잔을 주문으로 받았습니다. 원탁의 바 안에서 음료를 제조하는 직원은 재빠른 솜씨로 이내 두 잔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어진 카페오레 두 잔을 손에 고이 들고 웨이트리스가 음료를 받아가는 곳에 두려는 찰나, 함께 일하는 직원과 부딪히면서 카페오레의 크림이 살짝 흔들렸습니다. 아래 깔려있는 커피와 뒤섞이긴 했지만 모양새가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망설이지도 않고 직원은 흔들린 카페오레 두 잔을 싱크대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웨이트리스를 다시 불러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웨이트리스는 고객에게 갔고 직원은 다시 카페오레를 만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부딪혔던 직원이 다시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상황을 유추해보면 카페오레를 만들었던 직원은 웨이트리스에게 주문한 메뉴가 늦을 수 있다고 얘기를 했고 웨이트리스는 다시 고객에게가 그 상황을 설명했을 겁니다. 부딪혔던 직원이 그에게 다가간 이유는 조금 전 일을 사과하러 간 것이 틀림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론 그의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흘륭한 고객 서비스를 위한 책임감과 함께 이상적인 서비스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언제나 친절함이 베여있는 그의 몸짓과 손동작, 심지어 눈빛 마저도 하나의 표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적인 찰나였지만 저는 그것을 느꼈고 언제나 교토를 방문하면 으레 이노다 커피부터 방문합니다. 하물며 저도 그런데 이노다커피의 단골 손님들은 오죽할까요. 그러니 당연히 찾아갈 수 밖에 말입니다.
고객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사람으로서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하면 그들의 영혼은 정말로 오모테나시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새로움, 진짜 차별화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브랜드 콘셉트 디렉터 김도환님의 글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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