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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를 사랑하는지 시험하신다
예언자나 꿈꾸는 자가 있는데 만약 그가 대단한 기적을 나타내어 비가 오게도 하고 죽은 자가 살아나게도 하고 질병을 치유한다면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까지 정확하게 예언한다면 또한 그대로 성취된다면 우린 어떻게 하겠는가? 우린 바로 연락처 받아서 식구나 자녀부터 데리고 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왜냐하면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시험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하는지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메시지는 결국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고 명령하신 법도를 지키지 않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들이 많은 능력과 기적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참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척도가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지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믿는지 알 수 있다. (신13:1~5)
2 그들의 열매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신명기와 같은 말씀을 예슈아께서 하셨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예슈아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축사하고 능력을 행했다. 그러나 그들이 불법을 행한다면 하나님의 법도를 행하지 않는다면 여호와를 배반한 거이고 예슈아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긴 것이다. 예슈아가 다른 신이 아니라 불법 때문에 다른 신이다.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를 열매로 분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열매가 무엇일까? 열매를 분별하는 방법은 그들이 불법을 사느냐 합법을 사느냐에 달려있다.(마7:15~24)
3 작은 능력에도 말씀을 지켜 칭찬받은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가진 능력이 작았지만 말씀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고 칭찬을 받았다. 이들은 말씀을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지켜냈으며 하나님께서도 시험의 때에 이들을 지키실 거라 말씀하고 있다. 한글 번역은 이들이 온 세상에 임하는 시험의 때를 면할거라고 번역하여 휴거와 연결하는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원래 헬라어와 모든 영어 번역본은 때를 면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험의 때에 지켜주시겠다는 뜻이다. 한글 번역만 유일하게 이렇게 번역되어 있어 많은 오해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킬 때 아버지도 우리를 지켜 주신다.(계3:8~10)
4 모세와 같은 대언자로 오신 예슈아
모세가 자신과 같은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거라 예언하고 있다. 이는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을 두려워함으로 대언자를 보내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바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예슈아시고 우리는 그의 모든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슈아께서는 기름부으심을 받은 메시아시며 동시에 선지자이시다. 선지자는 예언자이며 더 정확한 표현은 대언자 즉,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이다. (신18:15~22)
5 예슈아는 어떤 선지자인가?
예슈아께서는 직접 자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지 않았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했다. 또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 일획도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예슈아께서 율법을 다 이루셨으므로 우리는 더이상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한다면 예슈아는 어떤 선지자인가?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게하는 분인가? 지켜 행하게 하는 분인가?
만약 이렇게 말씀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예슈아 선지자는 죽여야 하는 분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배반하도록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슈아를 유대인들에게 전했을 때 당연히 그들은 예슈아를 거절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아닌 거짓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이 문장을 이해해야 할까? 예슈아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완전하게 이해하도록 랍비로써 가르치셨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절기가 가르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죄를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고 바르게 지키게 하신게 아닌가!
천지가 없어지지 않으면 율법도 없어지지 않는다. 즉 천지가 없어지면 율법도 없고 천지가 있는한 율법도 있다는 뜻이다. 이 율법은 지켜 행하는 율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샤밧을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은 새하늘과 새땅에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그곳이 샤밧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라는 계명이 거기는 없을 것이다. 그곳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며 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율법은 땅에서 지키는 법도이다.
이 뜻이 헷갈리더라도 사실 그 다음 구절을 읽어보면 명확히 예슈아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는 결론을 말한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가르친다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이고 모든 것을 지키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이다 이 결론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슈아 자신이 다 지켰으니 우리는 안지켜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심지어 일점 일획의 작은 것이라도 지키고 가르쳐야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더 경고하고 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었다. 가식적으로 말은 하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우린 율법을 말하지만 지키지 말라고 가르친다 어쩌면 우린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겠다. (마5:17~20)
# 벌써 유대력으로 11월, 성경력으로 6월에 이르렀다. 이번 달은 엘룰월이다. 바로 다음달에 있을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있기 직전 달이다.
6 유대력 마지막 달 11월은 엘룰월로 '수확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겪으며 여름 과일들을 내는데 대추야자, 포도, 무화과등이 있다.
예슈아께서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 나무 열매 비유에서 3년후에 1년의 기회를 더 주시면서 열매 맺기를 기다리시는데 무화과 수확의 마지막 달이 엘룰월이다.
7 무화과 열매 비유
만약 우리가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고 삼년 동안 열매를 한개도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광주리에 무화과가 넘쳐나는데 내 밭에는 아무것도 없다면 그리고 삼년 동안 들어간 거름과 인건비와 무수한 수고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왜 땅만 버리는가? 차라리 다른 나무를 심는게 낫지 않겠는가?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그냥 모두 찍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긍휼하심으로 인해 일년 더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이 마지막 기회에 열매를 맺으면 좋겠지만 맺지 못하면 찍힘을 당하고 말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슈아의 대화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린 열매 즉, 합법적인 순종의 아름다운 열매를 반드시 맺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이 구절은 앞의 어떤 이야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무엇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였을까? (눅13:6~9)
8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같이 망하리라
비유하신 이유는 빌라도에 의해 갈릴리 사람들이 해를 입은 이유에 대해 예슈아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이런 변을 당했다고 생각하느냐?" 바로 이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사람이 치어 죽었는데 이들이 죄가 더 많아서 이런 사고를 당한 줄 아느냐?"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해하기 쉽게 무화과 나무 비유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찍혀 버려지는 이유는 바로 회개하지 않아서이다.
우리는 누구나 죄가 있다.
죄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대속죄일을 만드시고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죄를 안지을 수 있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죄를 끊기 위해서, 알면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지은 죄는 회개하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율법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죄의 많고 적음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회개의 여부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열매 맺지 못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눅13:1~5)
9 여름 과실 무화과는 모두가 기다리는 열매이다
무화과 나무는 유월절이 있는 4월부터 초막절이 있는 10월까지 건기 동안 모두 다섯 번 열매를 맺는다
4월 경에 열리는 무화과 나무의 첫 열매를 히브리어로 '파게'라고 한다. 여기서 영어 무화가 fig가 나왔다고 한다.
예슈아께서 십자가를 지기 직전 무화과를 저주하셨는데 그때 기대했던 열매가 '파게'이다. 그 이후에 순차적으로 열리는 열매의 이름이 '테에나'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무화과가 열리는 때는 아니었으나 여름 직전의 열매인 '파게'를 예슈아께서 기대하셨다면 이해가 될 것 같다.
'파게'는 작은 잎과 함께 열리는 작은 열매이다.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모두 따줘야 본격적인 '테에나'가 열린다. 무화과 나무 주인은 파게를 일일이 따지 않고 그냥 두어 지나가는 행인들이 공짜로 따 먹게 한다.
당시에 소작농들에게는 귀한 과실로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파게를 기다렸다.
이사야서에도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 먹으리라고 쓰여있다. (사28:4)
10 엘룰월은 세상 끝과 연결되어 있다
아모스는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보았다. 그 뜻은 끝이 이르렀으니 더이상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이제 심판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엘룰월은 여름 과일을 맺는 달이고 세상 끝날과 연결되어 있다. 즉, 심판을 코 앞에 둔 달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심판받는 자들에 대해 나온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을 삼키고 힘없는 자들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월삭이 빨리 지나 곡식을 팔고 싶어하고 안식일이 빨리 지나 사람들을 거짓 저울로 속이고 찌꺼기 밀을 파는 자들이다. 이들이 월삭을 지킨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샤밧을 지킨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억지로 지키며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세상에서는 거짓과 탐욕으로 억울하게 하는 자들이다. 월삭과 샤밧을 지키지 말라는 말인가? 남을 속이고 망하게 하는 자들은 설령 그들이 신앙 생활을 한다해도 거짓 믿음이다. 예슈아 당시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도 안식일은 지키고 십일조는 하나 그 마음에 거짓이 가득한 자들 이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건성으로 지킨 일부 위선적인 인간에게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런 자들에게 더이상 용서하지 않겠다고 이제 심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회개할 때가 있고 용서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심판의 때가 되면 회개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암8:2~7)
11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신 달이다.
여섯째 달 곧 그달 초하루에 즉, 엘룰월 월삭에 여호와께서 학개에게 말씀하셨다. 성전은 황폐한데 너희는 자기 집 짓는데만 빠르다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와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로인해 아버지께서 기뻐하고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들이 성전을 짓지 않음으로 많은 것을 바라도 적게 얻고 집으로 가져가도 다 없어져 버린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전은 바로 땅에 존재하는 여호와의 집이다. 이 땅에 우리들의 집은 있지만 아직 여호와의 집은 세워지지 않았다. 기도해야 할 것이다.(학1:1~9)
12 예루살렘 성벽을 세운 달이다
느헤미야가 산발랏과 도비아의 방해에도 엘룰월25일에 성벽을 모두 완성했다. 이방인들이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하였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이 모든 일이 성취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루살렘의 성벽이 완성된 것도 엘룰월이었다(느6:1~16)
13 성전에서 행하는 가증한 일들을 책망하신 달이다
엘룰월 5일에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가증한 일 세가지를 보여주셨다. 그중 큰 가증한 일은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것이었고 더 큰 가증한 일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모두 흩어지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심판을 맞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태양신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그 근원을 보고 없애야 할 것이다.(겔8:1~16)
14 기쁨과 연합, 온전히 하나가 되는 달이다
엘룰월의 이름은 아가서에서 따왔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라는 히브리어에서 앞 글자만 따온 것이다. 그러므로 엘룰월은 예슈아와 하나되는 달이고 심판전에 하나되야 하는 달이다.(아6:3)
אֲנִ֤י לְדוֹדִי֙ וְדוֹדִ֣י לִ֔י הָרֹעֶ֖ה בַּשּׁוֹשַׁנִּֽים׃ ס
15 어떻게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는가?
예슈아께서 이렇게 말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거라고 말이다. 결국 아버지와 예슈아와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계명을 지키고 (계명은 명령들이다) 나의 말을 지키는 자들에게 아버지와 예슈아께서 함께 사실 거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슈아의 계명은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는, 죽기까지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순교 신앙을 말한다. 또한 예슈아의 말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예슈아께서는 여호와의 계명과 반대되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호와 안에 거하지 못하실 것이다.(요14:20~24)
16 흠과 티가 없는 신부로 단장하는 달이다
예슈아와의 결혼식을 위해 그분과 하나되기 위해 흠과 티가 없는 거룩한 신부로 엘룰월에 준비돼야 한다. 그래서 엘룰월 월삭부터 대속죄일까지 40일간을 말씀을 묵상하며 회개하고 보낸다. 엘룰월에는 매일 쇼파르를 불고 회개한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해 예슈아를 통해 아들들이 되도록 예정하셨다. 흠과 티가 없는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고 예정이다. (엡1:4,5)
또한 예슈아와의 혼인에 입을 수 있는 유일한 옷은 옳은 행실이다. 옳은 행실의 뜻은 '흠이 없다, 법령으로 결정된 것, 공의, 의로움' 등이다. 즉, 흠이 없는 공의나 의로움은 법령에 따라 결정된 것 으로 율법에 따른 공의와 의로움을 말한다.(계19:7,8)
17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기 위한 달이다
새해에 유대인들은 "샤나 토바(שנה טובה: 복된 새해가 되세요)"라고 인사한다. 또는 "레샤나 토바 트카데부 베타흐테무(לשנה טובה תכתבו ותחתמו: 새해에는 당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한다.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새해 인사에 '생명책'을 말하는 이유는 새해가 되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언행에 따라 세 권의 책에 이름을 기록하시는데 이 세 권의 책은 선한 자, 악한 자, 중간에 속한 자를 기록한다고 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그 책이 봉해지며 새해가 생명의 날들이 되겠지만, 악한 자는 생명책에 의인과 함께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여 사망의 해가 된다(시 69:28). 그리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간에 속한 자들은 엘룰월 다음인 나팔절부터 대속죄일까지 10일 동안 진정으로 회개해야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나팔절부터의 대속죄일까지 10일을 ‘두려운 날들’ ‘경외의 날들’(the Days of Awe)이라고 부른다.
18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생명책에 쓰신다
다윗은 악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시69:28)
말라기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분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기념책, 기억하는 책에 기록하며 그 날에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신다고 말하고 있다.(말3:16~18)
사데 교회에 흠과 티가 없는 흰옷 즉, 의로운 행실을 입는 성도들과 예슈아께서 동행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옳은 행실로 합당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예슈아께서 아버지앞과 천사들 앞에서 당당히 이들을 안다고 증언하실 것이다.(계3:4,5)
19 회개와 기도와 구제에 힘쓰는 달이다
새해를 맞은 유대인들은 새해 첫 날 주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새해 첫 날인 나팔절에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새해를 맞기 전 30일 동안 이들은 회개와 구제와 기도에 힘쓴다. 나팔절 전, 엘룰 월 한 달 동안을 회개의 기간으로 정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잘못했던 것에 대해' 가족과 친지와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한다. 그런데 회개만 해서는 안 되며 구제와 기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는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에 대해 특히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처럼 회개하지 않으면 대속죄일에 주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어지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채 책이 봉해진다고 가르친다.
20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방법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이다. 여기서 멸시하다는 '모욕하다, 모독하다, 조롱하다' 등의 뜻이다. 즉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창조주를 모욕하고 모독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또한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이다. 존경하다는 '영화롭게 하다'라는 뜻이므로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잠14:31)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구제하는 자는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며 반드시 그 선행을 풍성히 갚아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잠19:17)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많이 구제하고 기도하던 자이다. 그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기억하신 바 되어 베드로를 보내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는 선물을 받게 되었다. (행10:2,4)
21 모든 절기는 장래일의 그림자이다.
즉, 예슈아께서 다시 오셔서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장막이 영원히 함께 할 것에 대한 그림자이다. 또한 그 몸은 예슈아시다. 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팔절이 얼마나 중요하며 영원한 나라를 상징하는 장막절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것을 그림자이기 때문에 지키지 말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아래 구절을 보면 머리를 붙들지 않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말하며 이들에게 왜 아직도 규례에 순종하느냐고 책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규례가 정말 샤밧과 절기와 월삭과 코셔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왜 아직도 이 규례를 지키느냐고 책망하고 있는 것인가?
다음 구절을 보면 이 규례는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있다.(규례는 말씀 본문에 따라 여러가지로 의미로 번역되었으므로 반드시 분별이 필요하다) 샤밧과 월삭과 절기, 코셔는 여호와의 명령과 가르침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이다. 즉, 이 말은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인 규례로 하나님의 명령을 비판하고 있으므로 책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이 무엇일까?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다. 사람이 자의적으로 덧붙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어렵게 만든 자의적 숭배, 겸손 , 금욕주의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을 괴롭게 만들지만 죄를 이기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수많은 규례들을 더함으로 금욕주의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아무도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슈아께서 가르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게 하는 관습, 장로의 전통들은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구절로 하나님의 절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오해하지 말자.(골2:16~23)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 30분
헌금 계좌: 농협 301 0293 8190 01 레올람토라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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