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놀이를 진짜라고 집착하게 되면
우리는 이 생에서 다양한 삶의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연기자와도 같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다. 삶이라는 이 놀이의 주인공은 다양하다. 그 중에는 매력있고, 호감 가는 배역도 있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배역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특히 이 가운데에도 좋은 역할이나 배역을 맡을 때일수록 우리는 그 배역이 진짜 자기 자신이라고 집착하기 쉽다. 사장이라는 역할, 회장, 부장, 국회위원, 교수, 선생님, 의사, 변호사, 그 배역을 진짜 자기 자신의 실체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이나 역할을 ‘나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아는 한 회사의 중간 관리자 분께서 오랜 회사 생활을 마감하면서 한 말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25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며 어떻게 달려 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죽자 살자 뒤도 옆도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고, 회사를 위하는 일이고, 동시에 가족을 위해 잘 하고 있는 것인 줄 알았지요. 그동안 오직 회사와 회사에서의 성공과 진급이 내 삶의 중심이었어요. 그동안 가족들과는 맘 편히 휴가 한 번 다녀오지 못했고, 주말에도 밀린 업무 때문에 가족과 기억에 남는 나들이 한 번 못했습니다. 평소에는 아이들과 대화를 못 하다 보니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서먹서먹해 졌을 정도지요. 이제 정신 차리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려 해도 이젠 애들이 다 커서 나를 필요로 하지를 않아요. 어떻게 살아 온 건지,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되, 퇴근 후에는 완전히 회사 일을 마음에서도 퇴근을 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에 최선으로써 집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평일에는 회사 일에 집중하더라도 주말에는 완전히 주말을 보낼 줄 알아야 한다.
현대인들의 엄청난 일중독은 하루 24시간, 주말도, 휴가도 반납하며 일에 매달리고, 심지어 자신의 삶조차 반납해가며 일에 매달리는 것을 능력 있고, 우수한 인재인 것으로 떠받들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그럴까?
퇴근 후에 완전히 아버지로 남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완전히 순수하게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순수하게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과 집착이라는 ‘아상’에 기초한 위에서 일을 행한다. 진급도 해야 하고, 인정도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저 순수하게 오직 나에게 주어진 삶의 역할로써 그저 그 일 자체로써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아상이라는 삿된 욕구가 개입된 채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상이나 욕심이 개입됨 없이 오직 순수한, 내 삶의 주어진 몫으로써 오직 그 순간에 ‘함이 없이 그 일을 행한다면’ ‘집착 없이 그 일을 행한다면’ 분명히 그 사람은 퇴근과 동시에 그 일을 놓아버리고 또 다른 가족으로써의 몫에도 순수하게 동참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장’이라고, ‘연예인’이라고, ‘회장’이라고, ‘성직자’라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그 자리가 나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매 순간 우리는 역할 놀이를 할 지언즉 그 역할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점을 사유해야 한다.
그 역할은 하나의 놀이일 뿐이며, 잠시 아주 잠시 내게 주어진 이번 생의, 혹은 잠시 동안의 배역일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매 순간 어떤 ‘역할’로서가 아닌 순수한 ‘한 존재’로써 바로 그 순간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부모이고 너는 내 자식일 뿐이다’ ‘너는 내 말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 부모 자식 지간의 일반적인 편견과 역할 동일시 없이 오직 순수한 한 존재가 또 다른 한 존재와 자연스럽고 향기 나는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모든 존재와의 만남은 붓다와 붓다가 서로 만나는 것과도 같은 깊은 영적인 교감이자 영적 성숙의 장이 될 수 있다. 다만 역할을 하되 그 역할에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을 때, 비로소 모든 관계는 순수해지며 삶의 영적 진보가 시작된다. 그렇게 만나는 모든 관계는 존재의 성숙과 진화를 위한 창조적인 관계로 발돋움한다.
어떤 배역에도 머물러 집착하지 말라. 배역은 단지 배역일 뿐 내가 아니다. 그러면 참된 진짜 내 배역은 무엇인가. 가짜의 역할이나 배역 말고 진짜배기 ‘나’는 누구인가!
배역을 하되 배역에 집착함이 없이 다만 순수한 깨어있음으로 순간순간의 순수한 역할을 관하게 될 때 비로소 가짜의 역할이 아닌 진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뿐이다.
이번 생에서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 삶의 배역을 온전한 집중과 알아차림으로 행하되 거기에 집착하거나 얽매임 없이 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이끄는 지고의 수행이요 붓다가 말한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
첫댓글 향기나는 관계를 맺을수있는 부모가되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