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살아보기 여행’은 <대한민국구석구석×스테이폴리오> 이벤트를 통해 특별한 휴가를 선물 받은 여행자 6팀의 이야기입니다.
아빠와 아들의 투박한 여행기부터 깨 볶는 신혼부부의 감성여행기까지, 매주 소소하지만 특별한 여행기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일주일동안 내가 만난 풍경들 Prologue 바로가기>>>
2018년 8월 27일: 인연의 시작
설마 했는데 이럴 수가!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하는 ‘일주일 살아보기 여행’ 이벤트에 당첨됐다. 여행하는 일주일 동안 숙박비가 지원된다. 딸 둘과 언니, 조카 두 명과 섬에서 푹 쉬고 싶은 마음에 응모했었는데, 운이 좋았다.
드디어 여섯 명이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목포 외달도다. 우리 가족은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외달도행 표를 구입했다. 섬이 작다고 해서 자동차는 싣지 않았다. 배를 타고 달리도, 율도를 지나 50여분 만에 외달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우리가 머물 숙소인 외달도 한옥민박 사장님이 마중 나오셨다.
외달도 한옥민박까지는 선착장에서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천천히 걷다보니 대합실, 벽화, 표지판 곳곳에 하트가 보였다. 동화에 나올 법한 앙증맞은 성도 있었다. 하수처리장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예쁜 하수처리장이 아닐까 싶었다. 외달도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풀장은 8월 20일에 폐장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근처 가게에서 무공해 무화과를 2kg 샀다. 요즘은 유통기술이 좋아져서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주생산지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
숙소에 도착했다. 푸른 잔디 위에 선 한옥 3채가 멋스럽다. 비파정(枇把亭), 삼학정(三鶴亭), 목련정(木蓮亭). 한자로 적힌 현판도 그렇다. 가지런한 섬돌과 정갈한 처마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부엌과 화장실은 현대식이다. 빨리 짐을 풀고 마당에 놓인 나무 그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싶어졌다. TV, 컴퓨터가 없으니 휴대폰만 끄면 전자기기와도 안녕이다. 밤이면 파도 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의 하모니가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8월 28일: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본격적인 섬 생활 시작이다. 목포 시내에서 사 온 지렁이 미끼와 낚싯대를 챙겨 방파제로 갔다. 파도가 제법 높았지만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 돔 두 마리와 망둥이 세 마리, 꽃게 몇 마리를 낚았다. 삼겹살을 넣어둔 통발에는 돌게 세 마리가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고동을 잔뜩 주워 왔다. 수입이 꽤 괜찮다. 방금 잡은 게와 고동을 넣고 라면을 끓였다. 국물 맛이 진짜 끝내줬다.
낚시 후 숙소에 돌아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것도 잠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소나무 사이로 비친 햇살이 눈부셨다. 마을길로 나갔다. 백일홍과 나팔꽃이 매력을 뽐냈다. 감나무 열매는 푸릇한 티를 벗고 조금씩 여물어가고 있다. 한옥 지붕 위엔 고양이 가족이 앉아 있고 박하 향기를 맡은 나비는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누군가 널어놓은 태양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다로 시선을 옮겼다. 전복 양식판과 김발이 노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역시, 자연이 가장 멋지다.
저녁 메뉴는 바비큐다. 자연 속에서 놀다 보면 으레 떠오르는 음식이다. 친절하고 순박한 사장님의 도움으로 삼겹살, 소시지, 버섯, 양파, 마늘 따위를 구웠다. 파도 소리를 양념 삼아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다. 냄새를 맡고 고양이들이 몰려왔다. 고기 몇 점을 나누어 주었더니 아주 잘 먹는다. 그동안 손님들에게 얼마나 얻어먹었던 건지 모르겠다.
오후 8시쯤 선착장 근처 무인도 별섬으로 갯벌체험을 하러 갔다. 하루 한 번 외달도에서 별섬으로 갈 수 있는 바닷길이 열린다. 도착해보니 까만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랜턴을 켜고 갯벌 탐색을 시작했다. 살짝 들린 돌을 뒤집으니 소라가 나왔다. 바다 속에 있던 것들이라 확실히 몸집이 크다. 고동, 다시마, 톳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시끌벅적하게 노하우를 공유하며 보이는 것들을 열심히 주워 담았다. 내일 아침엔 고동을 넣고 시원한 된장국을 끓여야겠다.
2018년 8월 29일: 휴식이 별거야?
눈 뜨자마자 다시 별섬으로 향했다. 썰물이 오전 9시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제는 캄캄한 밤이라 보이는 것들만 대충 주웠다. 오늘은 여한 없이 갯벌을 누빌 생각이다. 소라 잡고 톳 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물이 제법 들어와 있었다. 별섬 앞 경고판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폭염 속에서 달아오른 몸을 해수욕으로 식혔다.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며 숙소로 돌아왔다. 무화과를 먹다가 한숨 자고, 낚싯대를 던져 놓은 뒤 책을 읽었다. 저녁상엔 돔 구이와 삶은 고동이 올랐다. 직접 잡은 것들이다. 이슬비가 내리자 한옥에 운치가 깃들었다. 귀뚜라미 소리와 파도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2018년 8월 30일, 넷째 날: 다 좋을 순 없잖아
생태숲길을 따라 물양장까지 나홀로 트레킹에 나섰다. 평지라 만만하게 여겼건만 초반부터 쉽지 않았다. 우거진 수풀과 거미줄이 자꾸만 길을 막았다. 거미줄 한쪽을 끊어 다른 곳에 이어주길 반복했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아가다 들꽃들과 마주쳤다. 색깔이 참 곱다. 닭의장풀, 칡꽃, 해당화... 몇몇은 이름도 알겠다.
바다 쪽으로 나오자 자갈길이 펼쳐졌다. 길을 따라가면 숙소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한참 걸었다. 어느덧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인적이 끊긴 바다는 대낮에도 음산했다. 파도는 높고 바위는 거칠었다. 바위를 건너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제 별섬에서 밀물이 빠르게 들어와 아찔했던 일을 떠올렸다. 산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주위에 정박을 위해 나무를 정리한 흔적이 보였다. 그곳을 통해 무작정 산에 오르려다 덩굴과 가시에 긁혀 상처를 입었다. 알고 보니 못 넘은 바위 근처 모퉁이만 돌면 숙소였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무사히 섬 반 바퀴를 돌았다.
내친 김에 화훼단지에 가보기로 했다. 지도상에는 유럽형 정원으로 표기돼 있어 여행 전부터 기대를 했던 곳이다. 아이고, 이런! 입구에 있는 조성도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엉성한 나무들 곁에 조각상 두 점만 달랑 남았다. 외달도의 상징인 빨간 하트 조형물도 마찬가지다. 벤치까지 덩굴이 우거져 앉을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관리가 조금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8년 8월 31일: 마당이 필요해
아침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내렸다. 대청마루에 앉으니 바람에 실려 온 빗방울이 얼굴에 닿는다. 처마 끝 낙수 소리가 요란하다. 문득 어제 읽은 책 구절이 생각났다.
“비가 온다. 비 오는 날이면 마당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난한 일인지 깨닫는다. 마당이 있다면 살구나무를 한 주 들일텐데. 이 빗소리를 쓸어 담아서 살게 할 수 있을텐데. 나뭇잎 속에 곤히 깃든 빗소리, 온종일 바삭이는 것처럼 기분 좋은 빗소리. 그걸 듣다가 깜빡 졸기도 하고, 그걸 듣다가 이 세상을 탈출하기도 한다. 빗소리를 듣고 있는 가난한 오후.”
-최갑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나는 가난하다. 나도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날이 갠 후 매봉산에 올랐다. 숙소 사장님이 멀지 않다 하여 나섰더니 어제 지난 길 못지않게 험하다. 비 온 뒤라 웅덩이가 많았다. 수풀이 우거져 길도 자주 끊겼다. 며칠 전 누룩뱀을 본 터라 덜컥 겁이 났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2018년 9월 1일: 아듀 외달도!
꿈같은 일주일이 흘러 어느덧 마지막 날, 우리는 섬 일주를 했다. 별섬에 다다랐을 때, 그제야 별섬이 왜 별섬인지 궁금해졌다. 별 모양이라서 그런 걸까? 내가 볼 수 있는 별섬은 전체의 절반뿐이니 확실하지 않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별 모양일 거라고 짐작해보았다.
숙소 사장님이 직접 선정했다는 외달도 9경이 있다. 외달도 해수욕장, 외달도 해수풀장, 외달도 일몰, 별섬, 화훼정원, 등대길, 치유의 숲길, 사랑의 등대, 그리고 외달도 한옥민박이다. 이미 폐장한 해수풀장 빼고 모두 즐겼으니 만족할만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빽빽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휴식을 취했다. 휴가를 늦게 떠난 덕분에 한적한 외달도를 내 것처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정든 섬과 이별했다. 외달도에서 즐거웠던 기억들은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외달도 한옥민박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숙박후기 이벤트를 발견했다. 숙소 후기를 남기면 3명을 뽑아 무료 숙박권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기억을 더듬어 정성스럽게 후기를 남겼다. 그리고…뽑혔다!
늦가을에 외달도를 다시 찾을 예정이다. 한겨울과 봄에도 갈 것이다. 인연이 닿았으니 계절별로 외달도를 만나고 싶다.
“사장님, 그때는 돈 내고 갈게요. 머리털 빠지면 곤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