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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는 이유
*쟁신칠인(爭臣七人)
*바른말로 간언하는 사람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보면 쟁신칠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 제자 자공(子貢)이 그 스승 공자에게 여쭙기를 자식으로써 아버지 명령에 따르는 것을 효(孝)라고 하고,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정(貞)이라고 합니까? 그런데 이를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참 비루하구나! 사(賜)야! 네가 아직도 모르구나! 옛날에 명석한 임금의 만승(萬乘)지국에서는 다투어 간(諫)하는 신하가 일곱 사람만 있으면 임금에게 지나친 행동인 허물이 없게 되고, 천승(千乘)지국에서는 간하는 신하가 다섯 사람만 있으면 사직이 위태롭지 않고. 백승(百乘)의 집안에 간하는 신하가 세 사람만 있으면 벼슬자리를 놓칠 염려가 없게 되고, 아버지에게 간하는 자식이 있으면 무례한 지경에 빠지지 않게 되며, 선비(士)로써 간하는 친구가 있으면 불의(不義)한 일을 행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자식이 아버지 명령만 따른다고 해서 어찌 효(孝)라고 할 수 있으며, 신하가 임금의 명령만 따른다고 해서 어찌 정(貞)이라고 하겠느냐? 오직 그 쫓아야 할 일을 잘 살펴 행해야만 그것을 효라고도 하는 것이고, 정(貞)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쟁신(爭臣)은 바른말로 간언(諫言)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삼사(三司)가 있었다. 삼사는 사헌부(司憲府), 홍문관(弘文館), 사간원(司諫院)을 가리킨다. 사헌부는 문무백관에 대한 감찰, 탄핵과 정치에 대한 언론 담당 기관이고, 홍문관은 궁중의 서적과 문한(文翰)과 왕이 신하들과 함께하는 학술 토론인 경연을 관장하여 왕의 학문적 정치적 고문에 해당하는 업무를 당당한 부서이고, 사간원(司諫院)은 국왕에 대한 간쟁(諫爭)과 정치 일반에 대한 언론을 담당한 언관(言官)로서 왕의 독재나 특정 당파의 독주를 방지하기 위한 견제와 탄핵 기관이다. 나라에 있어서는 임금이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하게 되면 고치도록 하는 방법이 간언(諫言)이다. 옛 역사서에 보면 간언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상황이나 일에 따라 간언하는 방법도 다르게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간관(諫官)들이 간언(諫言)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고 국정을 바로 잡기 위한 지혜였다. 여기서 역린은 용(龍)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이란 뜻이다. 용은 역린을 건드리면 성이 나서 산과 바다를 다 뒤집는다고 한다. 용은 임금을 상징한 말이고, 역린은 왕의 자존심(약점)이고, 인간성의 허점을 말한 것이다. 임금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간언하는 자는 누구라도 죽게 된다. 그래서 간언하는 방법을 역린(임금)을 건드리지 않고 지혜롭게 간언하는 방법을 찾아던 것이다. 간(諫)자는 말씀언(言)과+가릴 간(柬)이 합쳐서 된 글자이다. 말의 옳고 그름을 가려서 말하는 것이 간언(諫言)이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간언이다. 옳은(是) 것을 그르다(非)고 해도 옳지 않고, 그른(非)것을 옳다(是)고 해도 안 된다는 말이다. 사극드라마에서 보면 사간원 관원이 임금에게 간언을 할 때 목숨을 걸고 직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분명하게 간청을 한다. 이것이 간언이다. 공자님도 오간(五諫)중에서 풍간(諷諫)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오간(五諫)은 풍간(諷諫), 순간(順諫), 규간(窺諫), 지간(指諫), 함관(陷諫)을 말한다. 풍간은 비유나 풍자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전란이나 재난이 생길 것을 미리 알고 간언하는 방법을 비유로 풍자적으로 간언하는 것이다. 이 풍간 법은 지혜롭게 간언을 한다고 해서 오상(五常)중에 지智라고 한다. 공자님도 간언을 한다고 하면 오간 중에 풍간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순간(順諫)은 간언하는 말을 공손하게 하고 순리대로 일의 이치를 제시하여 임금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한다고 해서 이것은 오상중에 인(仁)이라고 했다. 규간(窺諫)은 임금님의 얼굴빛이 좋지 않으면 잠시 물러났다가 안색이 좋아 보이면 다시 간언을 드린다. 이런 간언은 오상중에 예(禮)라고 한다. 지간(指諫)은 문제가 된 사건을 진실하게 지적하여 간언하는 것이다. 지간은 오상중에 신(信)에 속한다. 함간(陷諫)은 죽기를 각오하고 직언(直言) 직간(直諫)하는 간언을 말한다. 나라를 위해서 죽을 것을 각오한 간언이라 오상으로 보면 의(義)에 속한다. 이조시대에는 도끼 상소도 있었다. 날이 시퍼렇게 선 도끼를 들고 와서 상소와 간언을 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직언 상소 간언을 했다. 이것이 나라를 바로 서게 한 선비정신이다. 간언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오상의 방법을 택하여 나라일을 바로 잡았다. 간언하는 방법은 그 후로도 많은 방법들이 나왔다. 정면에서 정직하게 말하는 정간(正諫)도 있고, 일단 임금의 뜻에 따랐다가 나중에 틈을 보아서 하는 항간(降諫)도 있고, 성심을 다하여 간언하는 충간(忠諫)도 있고, 우직하게 직언하는 당간(戇諫)도 있고, 직언하지 않고 교언(巧言)으로 말하는 휼간(譎諫)도 있고, 시비를 가려 임금에게 따지는 쟁간(爭諫)도 있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강간(强諫)법도 있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군주의 통치법에 따라서 많은 간언법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간언 법이 나오게 된 것은 통치자와 소통하기 위한 방법이다. 소통은 백성들과 소통이다. 궁궐에 살고있는 임금은 문부백관들의 입을 통해서 민의(民意)를 수렴한다. 그런데 그 백성들의 민의가 순조롭게 사실대로 전해질 수가 없었다. 노론이다, 소론이다, 서인이다. 남인이다, 당리 당파 논쟁으로 이해득실이 불통의 원인이 된 것이다.
사실대로 알려지면 큰 손해를 본 쪽에서는 아니 됩니다. 하고 결사반대를 했을 것이고, 이득을 본 당파 쪽에서는 지당합니다, 하고 옹호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 때는 삼사(三司)를 두어서 간언을 하게 한 것이다. 당파의 소리가 결론이 나지 않으면 가끔 민의를 살피기 위해서 평복 차림으로 민정을 살피는 군주도 있었다. 백성들의 민의를 직접 듣고 소통하기 위해서다. 파당의 소리가 아니라, 직접 백성들의 소리를 군주의 귀로 듣기 위해서다.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만승 나라에서는 칠인七人의 쟁인爭人만 있으면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쟁인(爭人)은 목숨을 걸고 간언(諫言)하는 신하(臣下)이다. 제후가 다스리는 천승 나라에서는 다섯 쟁신(爭臣)만 있어도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다. 경대부가 다스리는 백승 식읍에서는 세 사람만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식읍이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승 천승 백승은 춘추전국 시대의 전쟁 규모인 전차를 동원 할 수 있는 규모를 말한 것이다. 일승(一乘)의 규모는 공격용 전차를 말 한 것이다, 일승(一乘)은 말 네 마리가 끄는 수레 전차를 말한 것이고, 일승(一乘)에는 창 담당, 활 담당, 말을 모는 사(士) 세 명과 보병 72명과 취사병 10명과장비 보수 운영담당 5명과 말 사육병 5명과 물 긷고 나무하는 사역병 5명등 공격용 전차 한 대당(一乘)100명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만승(萬乘)국은, 10000×100=1,000,000만명이고, 천승(千乘)국은 1000×100=100,000명이며, 백승(百乘)가는 100×100=10,000명을 전쟁이 결정되고 나면 제후들이 소유한 토지와 인구 비례만큼 상비군이 아닌 임시 차출한 군대를 말한 것이다. 만승은 천자가 다스리는 큰 나라이다. 천자는 황제를 말한다. 천승은 제후가 통치하는 작은 나라로써 천자의 통치를 받는 제후국이다. 백승은 경대부가 록의로 받은 백가 정도 되는 고을 식읍을 말한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데로 바른말을 하는 쟁인爭人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언(諫言)은 반대를 위한 간언이 아니다. 일의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간언을 말한다. 옳지않는 것을 옳다고 하면 그것은 간신(奸臣)이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는 것은 충신(忠臣)이다. 역사책에는 수많은 충신과 간신이 득실거렸다. 조선시대 때는 세 번 간언을 해도 임금이 듣지 않으면 벼슬을 내놓고 낙향을 했다.(三諫不聽去) 옳은 것을 옳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어에 보면 공자님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임을 얻는 뒤에 간언을 해라(信而後諫) 신임을 얻지 못하고 간언을 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긴다.(未信則以爲謗己也)임금을 섬길 때 자주 간하면 욕을 당한다,(事君數斯辱) 친구 간에 자주 충고하면 사이가 멀어진다.(朋友數斯疏矣) 서로 신뢰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 간언을 해라고 했다. 신뢰가 없는 사이에 충고나 간언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서양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간언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에토스(ethos)와 파토스(pathos)와 로고스(logos)라고 했다. 에토스는 인격적인 측면으로서 설득하는 사람의 명성, 신뢰감, 호감을 말한다. 이것이 설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라고 한다. 파토스는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로서 친밀감, 유머, 연민 등인데 설득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30%라고 하고, 나머지는 로고스가 10%인데, 그것은 설득의 논리적 근거이고, 실증적인 자료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남을 설득할 때 인격과 감정이 90%나 사용된다고 했다. 간쟁에서 합리적 논리보다는 마음의 감정으로 간언을 해야 설득이 된다는 것이다. 신뢰가 이루어진 뒤에 간언하라는 말과 상통되는 말이다.(信而後諫) 사람들을 보면 옳고 바른말은 듣기를 싫어한다. 감언이설(甘言利說)은 잘 듣는다. 그것이 문제이다. 남의 충고를 잘 듣는 사람은 그릇이 크다. 속이 좁은 소인들은 귀에 단 소리를 좋아한다. 쓴소리가 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릇이 작기때문에 그렇다. 친구도 쓴소리 충고를 해준 친구라야 좋은 친구이다. 중국 초나라 장왕은 즉위하자 바로 간언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포고령을 내렸다. 그러나 장왕은 3년간 국정을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주색에 빠졌다. 군주가 주색 환락에 빠졌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보다 못한 충신 오거가 죽을 각오로 풍간(諷諫)을 했다. 전하 이곳 언덕에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어떤 새입니까? 전하! 그러자 장 왕이 말했다. 3년을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다. 그만 물러 가거라고. 했다. 그 후로도 장왕이 계속 환락에 빠져있으니, 이번에는 소종이란 신하가 직간直諫을 했다. 장왕이 직간을 받고 말했다. 내게 간언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잊었는가? 하고 위협을 하자. 소종이 말했다. 폐하께서 정신을 차리시고 올바른 정치를 하게 된다면 지금 죽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소종이 당당하게 죽을 각오로 간언을 하자, 장왕은 마음을 바로 잡고 정치를 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언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 말 중의 말이다. 나라 살림에 있어서나 가정 살림살이에 있어서나 쓴소리(諫言)는 우리 삶에 있어서 좋은 약이 된다. 충고를 약으로 듣는 사람은 바로 선 사람이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바르지 못할 때 자식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효(孝)이냐가 오늘 주제다. 나라에서는 바른말 간언이 정(貞)이고, 가정에서는 효(孝)라고 했다. 나라일이나 가정일이나 사람 사는 도리는 똑같다. 지혜롭게 간언 충고를 한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상황이나 일의 사건에 따라서 하면 된다. 그 방법을 찾는 몫은 각자가 상황과 정황에 따라 찾아야 한다. 오간법(五諫法)도 있고, 십 이간법(十二諫法도 있다. 오늘은 쟁신 칠인(爭臣七人)이란 주제를 가지고 살펴보았다.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임금을 만나면 죽고 만다. 걸 왕은 관룡봉을 죽였(桀殺關龍逢)고, 주 왕은 비간을 죽였(紂殺比干)다. 바른말을 싫어한 폭군들은 결국에는 나라가 다 망했다. 야당과 협치도 않고 소통이 부재인 오늘날 통치자도 있다. 새겨 보아야 할 일 아닙니까? 충고나 쓴소리도 약으로 받아먹는 큰 사람이 되어야 나라가 선다. 통치자 곁에 바른말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다, 쓴소리 바른말을 듣지 않는 통치자는 실패한 정치인이 된다, 요즘 우리나라도 대통령의 국정운영 여론조사 결과 부정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고 있지만, 누구 하나 여론 민심을 바로 전하는 참모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직언 참모가 없다는 것은 통치자가 여론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오만하고 독선이, 강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통합이 통치자의 능력이고 선결 과제다, 통합이 없는 분열의 정치는 분열 보복 정치로 간다. 오늘날 민주 주주의 국가에서 쟁신 칠인(爭臣七人)은 언론의 몫이다, 언론의 사명은 정론 직필(正論直筆)에 있다. 그런데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정론 직필(正論直筆)하는 언론은 찾아보아도 하나도 없다. 언론이 좌우로 갈라져서 편향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런 언론과 작당 상부상조 이용하고 있다. 요즘 언론과 정치판을 비판하는 목소리로 정치는 개판이고, 행정은 깽판이며, 언론은 돈 판이라고 비판하는 소리도 나온다. 쟁신 칠인(爭臣七人)만 있어도 나라가 바로 선다는 고사는 대한민국 현실 정치에 유효한 가르침이다. 증오의 정치 분열의 정치, 야당을 악마화해서 섬멸 타도 대상의 정치만 일삼고 있다. 그런 결과가 야당 대표를 백주대낮에 테러를 당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테러범 신상도 당적도 밝히지 않겠다고 수사 당국은 말한다. 야당 대표를 살해하려고 한 살인미수 범죄자를 뭣 때문에 신상을 보호하고 공개하지 않는지 국민들은 의혹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국회가 의결 통과한 쌍특검 법도 국민 여론은 70%나 찬성 하는데도 대통령은 거부하고 민심 여론을 무시한 채로 민심에 반한 정부로 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네 차례에 걸쳐서 8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신중하게 행사해야 할 헌법적 권한을 빈번하게 행사한 것도 문제인데, 이번엔 배우자 비리를 비호 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공과 사도 구분 못하고, 공평과 형평성 상실 처사로 민심은 그래서 분노를 한다. 여론 민심의 비판과 쓴소리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권은 결국에는 실패하고 도태되고 만다. 윤석열 현 정부는 각성하고 새겨 반성해볼 일이다,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