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곤의 사람냄새]
"꿈은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산다.
평생에 걸쳐 추구하는 큰 꿈이 있고,
그 때 그 때의 사소한 꿈도 있기 마련이다.
나도 좀 별난 꿈이 하나 있었다.
내가 젊은 시절,
어느 신문 기자가 자동차로 세계 일주를 하면서,
글을 써서 자기가 재직하고 있는 신문에 연재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흥미있게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는 그 기자처럼 내 자동차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되있다.
그런데 세계 여행이나, 글보다는 그 기자가
타고 다닌 자동차에 더욱 관심이 끌렸었다.
그 기자가 타고 다닌 차는 바로 독일 Volswagen사의 Beetle이었다.
나는 그후로 그 딱정벌레 승용차를 가지는 것이 꿈이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그 차를 만나면 항상 부러운 마음으로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서울에선 쉽게 볼 수 없던 그 비틀을
내가 안식년으로 아내와 함께 살았던
런던에서는 흔히 볼 수 있어
더욱 강한 동기 유발이 되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알아야 하고, 당연히 자동차 운전 면허증도 필요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운전 면허증이 없었고,
물론 자동차를 운전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들은 나를 현대 문명의 이기와는
담을 쌓고 사는 '원시인'이라고 놀려대며,
한심스럽다는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어떤 자리에서 비틀을 갖고 싶다는 말을 우연히 했더니,
'운전 면허도 없는 사람이 무슨 비틀이냐'고 빈정거리며
내가 마치 허상을 쫓아 꿈속을 헤매는
얼빠진 놈 취급을 하던 친구도 있었다.
드디어 정년 퇴임을 하고, 어느 날 아내에게
운전 학원에 등록해서 운전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젊었을 때 그 좋은 시절 다 허송하고
이제야 다 늦게 무슨 운전 면허냐?'고 핀잔을 하면서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었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게 거세게 반대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당황스럽고, 순간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오랜 꿈이었던 그 딱정벌레 승용차를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 정년 퇴임해서 시간도 많으니
운전을 꼭 배우고 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내는 내 고집을 잘 알고 있는 지라, 결국
운전 학원 등록비를 챙겨주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40대 후반에 면허증을 취득해서
두 아이들의 고3 시절 등교를 도왔고,
중앙교육연수원 시절의 아침 출근과
한국교원대학교 있을 때, 집의 차로 가끔 운전을 해주기도 했지만,
천성이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 차를 좀 얻어 타려면
여러번 사정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나는 곧바로 수색역 근처의 자동차 운전 학원을 찾았다.
바로 등록하고 4주간의 교육을 받았다.
운전학원내의 기능교육 15시간, 도로주행 교육 15시간도
빠짐없이 수료했다.
이상하게도 수강생의 대부분은 20-30대의 여성들이었다.
남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젊은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요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모두
운전 면허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1, 2월이
운전 학원의 성수기라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나는 어디서나 눈에 띄는 별난 수강생이었다.
그러나 배움에는 노소가 따로 없기 때문에
위축되지 않고 강사가 지도하는 대로 집중해서
교육을 받았다.
강사들도 '어르신 정말 대단하십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참 잘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격려해 주었다.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학과 시험, 기능 검정 시험, 도로 주행 시험,
3차례 시험을 모두 단번에 통과했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운전 면허증을 받았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운전 면허증을 받아들고 의기양양하게 귀가하니,
아내는 놀라워 하면서도 '운전에 자만은 금물'이라며,
기어이 한마디 경고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그래도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던지, 당시 파리에 유학 중이던
둘째 아들과 국제 전화를 하면서
'빅 뉴스는 아버지가 엊그제 운전면허를 땄다.' 라고 했다.
아이도 믿어지지 않았던지 제 어미에게
'아버지가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확인하는 눈치였다.
퇴직할 때 받아 놓은 교원공제회비로 노란색 비틀을 바로 구입했다.
이제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딱정벌레차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침내 나의 오랜 꿈이 50년 만에 실현된 것이다.
이제 옆자리 조수석에 잔소리쟁이 '평생의 조수'를 태우고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아내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꿈을 지니고 갈망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는 순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는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이 딱정벌레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중국, 시베리아, 유럽을 다녀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많이 아쉽지만 이 꿈은 이제 포기해야만 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불청객 뇌출혈로 인한 뇌수술로
운전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운전면허증도 10년 만에
경찰서에 반납해버렸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 진다.'
내가 술자리에서 자주 웨치는 건배사이다.
그러나 이제는 말로나 읊어보는 공허한 장식어가 되고 말았다.
건강을 평소에 좀 더 잘 챙겼더라면 매사를 실현하는데
이렇게 발목을 잡히지 않았울 것이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2020년 7월 15일 함수곤
* 편집 : 西湖 李璟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