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밑 좁은 땅에는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마치 장난감들을 쌓아놓은 것같다. 저 수많은 장난감같은 공간에서 삶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한강물은 흐르는지 멈추어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시루봉 한쪽에는 참나무 한그루가 멋진 그림이 되고 반대쪽에는 밤나무 한그루가 또 한장의 풍경화를 만들고 있다. 최고의 전망대에 서 있으니 내가 신선인지 인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도다. 집에서 나와 조금 고생하면 이리도 좋은 仙景을 맛볼 수 있어 자주 찾는 곳이다.
시루봉보루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한다리마을 방향으로 하산했다. 하산하면서 밤도 줍는 행운을 누렸다. 한다리마을에서 구리코스모스축제장으로 갔다. 전에는 드넓은 한강변에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장관을 이뤘는데 지금은 먹거리장터가 되어버렸다. 명색이 코스모스축제인데 코스모스는 길가 화분에 심은 것들과 한쪽 구석에 눈꼽만큼 심어져있다. 순수하게 코스모스축제가 되어야하는데 먹거리장터로 변했으니 전에 보았던 그 많은 코스모스가 그리워진다. 실망한 채 장자호수공원으로 가서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잘 가꾸어진 공원이다. 호수도 있어 공원 분위기가 난다. 넓은 공간에서 마음놓고 쉴 수 있어 좋다. 코스모스축제에 실망한 마음이 호수공원을 보니 좀 풀리는 느낌이다.
8호선이 별내역까지 연결되는 바람에 동구릉역이 생겨서 장자호수공원역에서 전철타고 동구릉까지 가서 동구릉 구경했다. 때마침 왕릉음악제가 열리고 있어 국악인들이 하는 아리랑을 몇곡 듣고 농악놀이공연도 보았다. 10월 문화의 달을 맞아 축제를 열고 있는 곳이 많다. 9개의 왕릉을 다 찾아보았다. 숲이 우거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융건릉에 가서 아름다운 숲에 감탄했는데 여기 동구릉도 대단하다. 면적이 어마어마하다. 동구릉에서 왕릉마다 찾아보기는 처음이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 동구릉터에 자신의 음택을 마련하고 돌아가는 길에 망우리고개에서 이제야 걱정을 잊었다고 해서 망우리고개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동구릉에 아홉개의 능이 조성되어 지금에 이르러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으니 참 좋은 일이다.
점심을 초코파이하고 귤하고 초콜릿으로 대신했더니 힘들었다. 오늘 많이 걸었다. 망우산으로 해서 장자호수공원을 지나 동구릉까지 멋진 걸음이었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