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 이사야(36)/최후
제목 : 바벨론의 혹독한 최후
성경 : 사 21:1~10
찬송 : 382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20831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21: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사 21: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사 21: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사 21:4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사 21: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사 21: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사 21: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사 21: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사 21: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사 21: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이사야의 예언은 앗수르와 애굽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당시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폭력적인 앗수르였습니다. 요즘 러시아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 속해 있는 나라들은 모두 애굽을 등에 업고 힘을 합쳐서 앗수르에 대항하는 조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그런 조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애굽은 더 이상 다른 나라를 도울 힘이 없으며, 유다 백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물리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바른 신앙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로 믿기만 하면 악한 나라들이 맥을 추지 못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악한 나라들을 다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악한 나라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되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공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대충대충 위기만 넘기려고 한다면, 앗수르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새로운 원수가 나타나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13장에서부터 시작된 이방들에 대한 예언의 모음집 첫 머리에 바벨론에 대한 경고가 나왔는데, 오늘 본문 21장에서 바벨론에 대한 예언이 다시 등장합니다. 둘 다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예언하지만 그 논조에 있어서는 다소의 차이가 있습니다.
13~14장에서 바벨론은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대제국으로서 교만의 극치를 보였고, 하나님은 그러한 바벨론을 완전히 낮추시고 멸하겠다고 선포하심으로 자신이 최고의 주권자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 의지가 강조되었습니다.
21장 오늘 본문에서는 대제국으로서 바벨론의 면모는 강조되지 않고, 멸망에 대해 어느 정도 동정의 느낌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외면한 무지한 자들을 보시고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하나님의 경고를 외면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회오리바람처럼 바벨론에게 임할 것입니다.
사 21: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해변 지역’하면 보통은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해서 지중해 바다 쪽에 있는 블레셋의 여러 도시들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해변 광야’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의 나일강을 바다라고 불렀듯이(19:8), 유프라테스 강도 ‘많은 물가’(렘 51:13)라고 불리었기 때문에 ‘해변 광야’라는 표현은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거하던 페르시아만 주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구는 바벨론을 비꼬는 표현인 것입니다. 바벨론은 다른 나를 돕는 능력에서 자신이 무한한 생명을 지닌 ‘바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메마른 ‘광야’에 불과하다고 선지자는 평가하는 것입니다.
해변 광야에 몰아닥친 적병들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여기에서 ‘광야’나 ‘두려운 땅’은 바벨론을 패망시킨 메대 바사의 영토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메대 바사의 북방 지역이 황폐하고 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는 아라비아 사막으로부터 바벨론으로 부는 폭풍으로 그 위세가 매우 강하며 급작스럽고 굉장한 소리를 내며 그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물건들을 날려 버리고 엎어 버립니다. 우리로 말하면 태풍을 말하고 미국 같은 나라는 토네이도를 말합니다. 토네이도가 지나가면 집도 날려 버리고 자동차도 날려버립니다. 무시무시한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바벨론을 침공한 메데 바사의 군대가 회리바람처럼 매우 강하고 급작스러웠기 때문에 바벨론의 그 막강한 군대도 그 앞에서는 추풍낙엽과 같을 것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사 21: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적군이 바벨론에 쳐들어오는 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선지자가 환상을 통해서 본 것인데, 그 환상은 ‘혹독한 묵시’였습니다. 여기에 ‘혹독한’으로 번역된 형용사 ‘카쉐’는 ‘어렵다, (노동이)고되다, (전투가) 격렬하다.’라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선지자가 환상으로 본 것은 극심한 상황이었습니다.
‘속이다’에 해당하는 ‘바가드’는 ‘불성실하게 행동하다’라는 뜻으로, 언약 관계에 불충하거나 배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라는 표현은 바벨론과 동맹 관계에 있는 엘람(바사의 전신)과 메대가 배반해서 그들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대적이 될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은 바사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뒤엎은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BC 539). 그전에는 엘람과 메대가 앗수르에 대항하면서 바벨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는 히브리어 본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 압제로 고통당하던 바벨론을 하나님이 구원하셔서 탄식을 그치게 하셨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것은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그가 일으킨 모든 탄식’(NASB는 ‘all the groaning she has caused')으로 번역합니다. 즉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심으로 바벨론의 압제 아래 고통당하는 나라들의 탄식을 그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당할 참상을 보고 이사야는 너무 괴로워합니다. 아파합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멸망을 아파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진리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아파하십니다. 우리도 그들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긍휼의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하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무지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회를 잃어버린 자들을 보고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모두 아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일을 모두 알게 된다면 지금 당장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몇 년 뒤에 전쟁이 일어나고 그 전쟁으로 모든 가족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슬퍼서 매일 울며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너무 괴로워서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 주시는 것은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사 21: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사 21:4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이러므로’는 결과 절을 이끕니다. 선지자가 심한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이 혹독한 묵시를 본 결과임을 말해 줍니다. 해산이 가까운 여인의 진통과 같이 허리의 진통을 느끼면서, 너무나 괴로워서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육신적으로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혼란스러워 공포에 떱니다.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떨림이 되도다.’는 작은 희망의 여지조차 없이 절박한 심정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장차 애굽과 구스가 당할 수치를 징조와 예표로 보여 주기 위해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20장), 바벨론이 겪을 참상을 미리 환상으로 보면서 그 고통과 두려움을 체감하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의 날은 순식간에 닥쳐올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이 임하는 날, 그들은 잔치를 베풀고 먹고 마실 것입니다.
사 21: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이 예언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 때 성취되었습니다. 벨사살 왕 때 천 명을 모아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성전에서 빼앗아온 금은 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술을 마시고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합니다. 그때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석회벽에 글자를 씁니다.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 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쳤습니다. 석회벽에 쓰인 글씨가 무엇이었습니까?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 글씨를 다니엘이 해석했는데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뜻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이며,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메데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습니다.벨사살 왕은 멸망이 그렇게 급박하게 임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아직은 바벨론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국 바벨론은 먹고 마시며 즐기다가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바벨론의 어리석음을 보시고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갑자기 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수꾼의 자세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깨어 있지 않으면 유혹에 빠져 방탕하다가 그날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신랑이 오면 기름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독한 최후를 보시고 아파하십니다!
사 21: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사 21: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우리 개역개정 판에는 접속사 ‘키 코’(왜냐하면)가 번역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접속사의 의미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선지자가 고관들에게 전쟁을 준비하라고 한 이유를 6~9절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파수꾼을 세워서 보고를 받게 하라고 하셨습니다(6절). 파수꾼이 무엇을 주의해서 경계해야 할지도 말씀하셨습니다(7절).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는 전쟁을 위해 진군하는 군대의 행렬을 의미합니다.
사 21: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사 21: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파수꾼의 보고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파수꾼이 충실하게 밤낮으로 파수를 보는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군대의 행렬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를 보고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대답하시며 바벨론의 함락을 선언하십니다. 메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될 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거짓과 거짓 위에 세워진 모든 가증한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집니다. 이때 그들이 믿었던 금, 은, 동, 철, 나무, 돌로 된 신상들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사 21: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라는 표현은 마치 하나님이 심판 대상을 부르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1인칭 주어는 분명히 선지자 자신입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나의 짓밟힌 자들이여, 나의 타작마당의 아들이여’가 됩니다. 이 말씀은 선지자가 유다 백성을 억압당하는 자로 부르고 있는 표현입니다. 비록 유다가 하나님이 징계의 도구로 선택하신 바벨론에 의해 타작을 당했으나, 이제 바벨론의 멸망으로 자유를 회복할 것입니다. 선지자가 유다 백성에게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이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선언하며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멸망을 보시고 아파하십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결코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모두가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그 마음이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참혹한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생명의 길로 이끄는 데 힘쓰는 전도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다는 강력한 대적 앗수르를 막기 위해 여러 나라를 의지했습니다. 바벨론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결국 몰락할 세상 권세를 의지한다는 것은 무지입니다. 열방을 주관하시는 주권자 하나님만이 우리가 의지할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