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업무차 김포에 갔다가 강화에 사는 지인 부부와 식사를 했다. 상담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상담을 끝내고 서둘러 초지대교를 건너 지인 부부를 만났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는 길을 나섰다. 강화에 정착한지 얼마 안 되는 지인 부부는 주변에 어떤 식당들이 있는지 잘 몰랐다. 어쩔 수 없이 식당 선택은 내 몫이 됐다.
필자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역시 마땅치 않았다. 좀 더 지역을 넓혀 찾아보다가 직접 장을 담가 음식을 조리하는 식당이 있음을 알았다. 모처럼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그곳으로 달렸다. 예상보다 멀었지만 제대로 잘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60줄에 접어든 주인장 부부가 자녀들과 된장을 담그고 음식을 만든 식당이었다.
이 집 된장은 일반 된장과 조금 다르다. 안 주인 박옥자(63) 씨는 경남 의령이 고향이다. 친정 고모님이 예전에 담갔던 방식 대로 된장을 담근다. 식재료가 부족했던 시절, 콩은 조금만 넣고 보리방아 찔 때 나오는 보리기울로 된장을 담갔다. 콩으로 만든 청국장, 보리메주, 밀떡, 풋고추를 재료로 담가 1년 숙성시킨 된장이다. 콩으로 유명한 파주 장단콩을 사용한다.
이 된장을 식구들 모두 잘 먹었는데, 부친에 이어 이 집 대표인 박씨의 장남 편도영 씨가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군대에서 휴가 나오면 치킨이나 피자가 아니라 보리된장부터 찾았다는 것이다.
박씨 가족은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11년째 지금의 터전에서 보리된장을 담가 판매를 시작했다. 된장 특유의 구수한 풍미가 짙고 짜지 않아 마침 건강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단골손님이 많이 생겼다. 2009년에는 유명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도 방영돼 일반에도 많이 알려졌다고.
직접 만든 두부 넣고 끊여 매콤한 순무김치 곁들여 먹어
이 집의 보리된장 음식 맛을 보기 위해 우리 직원과 필자는 보리강된장비빔밥과 보리된장찌개를 주문했다.
보리된장찌개(8000원)는 보리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다. 이 집에서 가마솥에 만든 두부와 팽이버섯, 풋고추, 호박을 넣고 끓였다. 된장찌개를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자마자 시골 된장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났다. 무럭무럭 올라오는 김이 토속적 된장 풍미를 우리 일행의 코로 바쁘게 실어 날랐다. 예전 시골 밥상에서 맡아볼 수 있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고기를 넣지 않고도 찌개 맛이 월등했다. 된장의 힘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찌개에 들어간 호박 덕분이다. 약간 늙은 호박을 썰어 넣었는데 애호박처럼 흐물거리지 않아 씹는 식감이 좋고 단맛이 강했다.
반찬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톡 쏘면서 살이 단단한 순무김치는 여기가 강화도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매콤한 어리굴젓은 필자 입에도 맞았다. 된장 담그는 된장콩으로 볶은 콩자반, 오이지무침, 멸치볶음. 청포묵이 식탁에 올랐다.
보리강된장비빔밥(1만원)은 큼지막한 그릇에 무생채, 콩나물, 고사리, 느타리버섯, 파래, 참나물 등 6가지 나물을 넣고 비벼먹는다. 이 집에서 담근 청국장과 직접 짠 참기름, 그리고 가늘게 썬 채소를 함께 넣고 비빈다. 우리 같은 중년들에겐 더 없이 좋은 건강식이다.
집 주인 고향이 영남인데 액젓을 넣어 담근 김치가 무척 맛있다. 김치명인 강순의 씨 스타일의 고추씨 김치다. 개운하면서 감칠맛이 뛰어나다. 2인 이상 주문 가능하며 보리밥과 쌀밥 중 선택할 수 있다. 나물 추가는 3000원인데 굳이 더 추가로 주문할 필요가 없을 만큼 넉넉히 준다.
아내에게 이 집 된장 맛을 보여주고 싶어 통보리된장과 조선된장을 각각 한 병씩 구입했다. 집에 와서 소고기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아내가 아주 된장 맛이 좋다고 평가했다. 아마 된장 속 탄수화물 성분이 발효되면서 자연스런 단맛을 생성한 것 같다. 된장 맛이 좋아 곧 내한할 일본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 주려고 더 주문할 생각이다.
비린내 없는 저염 간장게장, 가성비도 높아
지인 부부가 주문한 한방간장게장백반(1인분 3만3000원)은 꽃게가 커서 양이 무척 많았다. 일부를 덜어 맛 좀 보라며 필자에게 건넸다. 먹어보니 게장 역시 된장처럼 짜지 않았다. 감초, 월계수 잎, 인삼, 대추 등 한방재료를 넣어서 그런지 비린내도 전혀 없었다. 간장게장은 밥도둑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가졌다. 하지만 필자는 짠맛과 비린내 때문에 평소 먹기를 주저했다. 그런데 감칠맛은 그대로 살리고 비린내와 짠맛을 제거해 필자 같은 사람이 먹기에 무난했다.
알이 찬 꽃게를 먹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게 조각을 냈다. 진노랑의 꽃게알과 흰 꽃게살, 얼룩무늬 껍질이 화사해 보였다. 반찬으로 나온 천사채와 꽁치구이도 필자의 입맛을 돋웠다. 연한 우거지로 끓인 된장국은 시원하고 개운하게 입 안을 정리해줬다. 시래기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처음에는 아욱국인 줄 알았다.
예전 강남 유명 간장게장 집에서 비싸고 맛없는 간장게장을 먹고 불만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그 간장게장에 비하면 가성비가 꽤 괜찮다. 그래서 그런지 간장게장을 먹어보고 포장판매 주문을 하는 손님도 적지 않은 듯하다. 염도가 낮아 간장게장 역시 냉장고에 5일까지만 보관이 가능하다. 5일 이내에 먹거나 당분간 먹지 않는다면 냉동실에 보관해야 한다.
멀리서 왔으니 맛이나 보라면서 인심 좋은 인상의 안 주인 박씨가 손두부 부침을 내왔다. 함께 갔던 직원이 “마치 카스테라처럼 부드럽고 폭신하다”고 말했는데 필자도 동의했다. 맛이 아주 고소했다. 다른 음식도 그렇지만 두부 역시 만들어서 바로 먹어야 맛있다. 모두부는 물론, 손두부 부침과 손두부 김치도 판매한다. 지출(4인 기준) 보리된장찌개8000원+보리강된장비빔밥 1만원+한방간장게장백반(3만3000원X2) 6만6000원 = 8만4000원
한방간장게장백반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