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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새로운 피조물. 고후5:17
오늘 본문은 매우 짤막한 말씀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의 신분이 어떤 것인가를 알리는 놀라운 선언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주제로 하여 새로운 피조물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그냥 우리들이 예수를 믿으니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었다는 말이거니 흘러 넘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닫는다는 일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원에 대한 확신과 승리적인 신앙생활을 이루는 데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란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존재란 뜻입니다. 새로운 생명체란 언제나 아직까지 없었던 것이 새롭게 탄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창조물은 어떠한 것입니까?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피조물들입니다. 이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6일 동안의 창조 역사에서 이 세상에 생겨난 것들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 바다의 고기들, 땅위에서 서식하고 있는 각종 동물들과 식물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6일간의 창조 세계에 속해 있는 기존의 피조물들입니다.
그런데 이 존재들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바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 불타 소멸해 버릴 운명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째 대접 심판이 바로 이 같은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으로 작용하는데 이 심판으로 지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습1:2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계16장에서는 이 지구가 세 갈래로 갈라지고 세계 만국의 모든 도성이 일시에 다 무너지며 각 섬도 사라져 버리고 모든 산악도 간데 없어지는 지구의 파멸이 올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벧후3장에서는 ‘그 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라’고 경종 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처음 것들이 완전히 소멸될 심판의 날이 이 땅에 반드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바로 이 같은 심판 받을 창조 세계에 속해 있지 아니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만이 주님이 오실 때, 이 땅위에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인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생각하려면 먼저 밤에 예수님을 찾아가 예수님으로부터 중생에 관한 새로운 진리를 들은 니고데모의 경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선생이요 유명한 관원인 이 니고데모란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뵙고는 예수님을 칭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생님과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면 선생님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이런 칭찬을 들으신 후, 그에게 어리둥절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은 니고데모에게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습니까? 거듭난다고 하오니 사람이 늙어서 어머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까?’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같은 대화로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나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거듭난다는 말은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이처럼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 중생이며 이 생명을 가지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말은 육신적인 방법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3:6절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윤회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만약 사람이 죽어 천 번 만 번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해도 그런 일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거듭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1장에서 말씀해 주시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므로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며 이 사람들을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새롭게 태어나는 방법
여기서 우리는 더 깊은 구원의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롭게 태어나게 되며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불려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 생명은 물론 죄 값으로 죽게 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르며 이들은 그 죄 값을 치르기 위해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옛사람 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값으로 죽어야 한다는 말은 우리 기독교의 기본 진리입니다. 우리가 죄 값에 대한 완전한 처리를 죽음으로 해결하지 아니하면 새로운 피조물도 존재할 수 없으며 구원의 진리도 설 땅이 없습니다. 이런 우리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는 죄 값으로 오는 죽음을 치르실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가 죽으신 일은 나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 이미 내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막연한 하나의 교리적인 문제로 여기면 안 됩니다. 나는 지금 이처럼 멀쩡히 살아 있으며 이 내 생애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름이 없는 데 왜 내 옛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해 주는 것인가에 대하여 올바른 성경적 이해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할 것은 예수를 영접하기 이전의 나는 예수를 믿은 후,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렇게 선언하셨기 때문에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은 죽음을 그대로 가지고 그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생들에게는 줄 수 없는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의 옛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으로 완전히 처리하신 후,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시키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옛사람이 확실히 죽지 아니하였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을 수 없으며 거듭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우리의 죄 값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그 예수를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지난 옛 사람이 분명히 죽었습니다. 그 분은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는데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 분의 죽으심은 헛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는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옛사람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 많이 죽기는 했지만 아직도 얼마간 남아 있다고 여기십니까? 여러분 중에는 아직 죽어야 할 옛사람이 자기에게 얼마간 남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지난날 아담으로부터 이어 받았던 옛사람은 죽어서 장사까지 지낸 바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죽음으로 처리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다시 처리 받지 않으면 안 될 옛사람은 여러분에게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옛사람의 행실을 버리지 못하고 옛사람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일은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알아야 할 일은 그런 사람은 자신의 옛사람이 아직 살아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새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옛사람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그 행실을 쫓아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옛사람의 행실을 쫓아갈 뿐이지 옛사람이 살아 있거나 덜 죽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의 옛사람은 이미 장사지낸바 되어 완전히 죽었습니다. 다시 살수도 없으며 살아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옛사람의 행실을 따라가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새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원칙을 무시하고 옛사람의 행실만 따라간다면 시행착오가 생깁니다. 새사람은 영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난날 생활하던 방식대로,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면 새사람의 생활에 적응이 안 되기 때문에 실패만 찾아오고 어려움만 가중되고 하나님의 손에 얻어맞기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되는 일이 없고 얻어맞기에 분주하고 예수 믿는 일이 피곤한 사람들은 모두 옛사람을 따라가느라고 새사람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죄의 심판으로 이미 죽은 우리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해답을 찾지 못하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생애에 대하여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해답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찾아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이 이루신 모든 일이 모두 우리들을 대신하여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중생이라든가, 구원이라든가, 천국이라든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모든 새로운 성경적인 낱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적용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옛날에 지상에서 살아 계셨던 그런 옛사람으로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시는 죽으실 수 없는 부활하신 몸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이 생명은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생명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부활의 새로운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부활케 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서 우리에게 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으며 부활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죽음이 있습니다. 병으로 죽기도 합니다. 노쇠 해서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죄 값으로 인한 죽음이 아닙니다. 죄 값의 죽음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치렀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신령한 몸으로 덧입기 위해 부활의 씨로 심는 일입니다. 이 부활의 씨로 심는 우리의 육체가 부활의 날, 신령한 몸으로 우리의 영을 덧입고 살아날 때 우리의 소망은 완성되며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완전한 신분을 가지고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5:24절에는 실로 고무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선언적인 말씀으로만 이해하려고 하지만 이 말씀은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생명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시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단 한번뿐입니다. 이 한 번의 심판으로 죄인은 영원한 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심판이 우리에게 미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이미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죄의 사람에서 의의 사람으로,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뒤돌아 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옮겨지지 않은 상태라면 몰라도 완전히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3. 이전 것은 지나갔도다.
오늘 본문에서 이르시기를 ‘이전 것은 지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이전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담으로부터 받은 모든 유산으로 죄악의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안고 있는 모든 저주스러운 것들이 모두 이전 것에 포함됩니다. 이런 것은 이제는 이전 것이 되었을 뿐 아니라 지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죄가 나를 지배했던 죄의 종으로 살아온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죄에 팔려 죄 아래서 종노릇을 해 왔습니다. 죄가 시키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죄가 시키는 대로 그 죄에 얽매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생애를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 같은 이전 것은 완전히 지나갔습니다. 이 모든 것이 소멸되고 새롭게 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새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우리의 생활에는 그에 따른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서 살아간 옛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우리의 행실이 옛사람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옛사람이 살아 있어서가 아니라 새사람의 행실을 스스로 버리고 옛사람의 행실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에 대하여 이미 죽은 사람들이므로 옛사람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옷 입는 새로운 생애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롬12:2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신 말씀은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원래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죄로 타락한 인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신 목적은 죄로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서 이제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일을 회복하게 하시려고 그리 하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를 그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시는 한 가지 소원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에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우리로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시려고 우리를 그 귀한 값을 지불하시고 당신의 소유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께 드릴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헛된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인가를 스스로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셨다는 믿음을 가지신다면 옛사람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의 능력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새로운 피조물로써 부족함이 없는 인생의 결실을 맺어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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