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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된 사회에서는 각종 정보매체를 통하여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신속하게 새로운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작년 9월 뉴욕에서 일어난 테러 사태나 몇 일전 김해 공항 근처에서 발생한 중국 민항기 추락사건도 거의 시간의 간격없이 국내외에 전송되곤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최첨단의 영상이나 음성 매체가 시간과 공간의 벽을 무색케 하면서 신속하게 소식을 가져다 주지만 많은 관심을 끌게하는 것일수록 대부분 충격적이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내용들입니다. 솔로몬의 말처럼 해 아래는 새로운 것이 없고 그나마 번뇌와 근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찼다고 할 수 있습니다(전1:14, 18). 불안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좋은 소식을 가져다 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옛날 다윗왕은 병사들이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 동안 전령이 가져다 줄 소식을 기다리며 마음이 초조해 있었습니다.
그때 망루에 있던 파수병이 전쟁터에서 달려오는 전령을 보고 왕에게 고하기를 "나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 같으니이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들은 왕은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하고 반겼습니다(삼하18:27).
본문 말씀에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빨리 전해주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사람의 발이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구약의 이사야는 세상 사람들이 기다리는 가장 좋은 소식을 선포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입니다. 그는 일찌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처녀의 몸을 빌어 세상에 오실 것을 말했습니다(사7:14). 그는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예언하면서 마치 사막에 시내가 흐르는 것 같고 광야에 길이 뚫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35:1-8). 그는 또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속죄의 도리와(사53:1-5)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찬란한 메시야 시대의 환상을 선포하였습니다(사54:1-3). 어느 시대에나 그리스도인은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복음(福音)의 대언자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소리의 뉴스 메이커입니다.
Ⅰ. 하나님의 통치를 전하는 자입니다.
본문 말씀 7절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하였습니다.
(1) 평화의 소식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뉴스를 통하여 방송된 일본 왕의 울음 섞인 항복선언은 당시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일본에 압제받던 대동아 전역에 감격적인 평화의 메시지로 전파되었습니다.
인간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본래 지음을 받았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자유의지를 부여받았기에 누구나 다 외부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집니다. 성경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과(출12:29-36)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것을 선민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하나님의 구속사역으로 소개하였습니다(시126:1-2).
본문에서 말하는 평화의 소식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신령한 평화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14에 "그는 우리의 평화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2) 구원의 소식입니다.
"…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일찌기 메시야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하고(사9:2) 그리스도의 탄생이 사망에 얽매인 자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임을 발표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21에 보면 동정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고민하는 요셉에게 천사 가브리엘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이름의 뜻과 같이 구원을 공포하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남의 것을 토색한 죄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던 수전노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언하였습니다(눅19:9). 또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면서 자기 영혼을 부탁하는 강도를 향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고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눅23:43). 죄와 죽음의 공포 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구원을 약속해 주고 죽음에서 해방된 것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1에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5에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인간나라뿐만 아니라 자연계와 영계에까지 그 영역이 미치고 있습니다(시139:8-10). 옛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말할수 없이 교만하고 포악한 왕이었으나 하나님의 통치권을 알고 나서는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단4:3).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에 공과 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아모스 5:24에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처럼 권력자들에 의해서 불의와 횡포가 심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를 희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며 모든 나라와 종족에게 평화로 공존케 하신다고 하였습니다(행17:25-26).
Ⅱ. 파수꾼의 소리를 발하는 자입니다.
8절에 "들을지어다 너의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고 하였습니다.
(1) 대언자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바를 이루게하는 군대가 있습니다. 여기 파수꾼은 군사들 중에서도 가장 민첩하고 훈련된 정예병들입니다. 이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에스겔 3:17에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2:6에는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희 성벽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중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의 소리를 전해주는 파수꾼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죄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므로 마음에 평안과 소망을 일깨워 주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1:11에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밤과 아침은 교차되는
것이지만 파수꾼의 소리는 찬란한 아침의 희망을 일깨워주는 비젼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30:5에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
(2)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소리입니다.
파수꾼은 성루에 올라가서 망을 보는 자이며, 긴급한 상황이 올 때는 적의 내습을 알려주는 나팔을 부는 자입니다. 성중의 백성들은 파수꾼의 나팔소리에 비상을 걸고 경계체제에 들어가야 됩니다.
에스겔 33:2-6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경계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파수꾼에게 그 경비를 소홀히 하거나 나팔을 불어야될 대상과 시기를 잘못 알고 기회를 놓쳐버리면 그 책임을 묻겠다고 하였습니다.
파수꾼은 시대의 상황을 민감하게 살피면서 백성에게 경고의 사인(Sign)을 주어야 하며 그때마다 백성들은 파수꾼의 소리를 신뢰하면서 거기에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11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 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5:8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3) 축복의 소리입니다.
이사야 62:6에는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파수꾼이 황폐한 성벽 위에서 잠잠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대언하여야 될 말씀은 큰 꿈과 비젼을 갖게하는 소리입니다.
본문 말씀 9절에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 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0:18에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0:21-22에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파수꾼의 소리는 실의에 빠져있는 백성들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축복의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Ⅲ. 회복의 소식을 전하는 자입니다.
본문말씀 10절에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고 하였습니다.
(1) 예루살렘의 회복입니다.
본문 말씀 9절에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선민의 자존심인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이방에 포로가 되었던 시절을 가장 불행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편 137편에는 바벨론 포로시절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 있습니다.
1절에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고 하였습니다.
7절에는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5-6에는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포로된 자리에서 해방시키시고 예루살렘으로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시편 126:1-2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고 하였습니다.
(2) 인간성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자요 상실된 인간입니다. 로마서 1:28에 보면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땅으로 가시다가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옷을 입지 아니하고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사이에 거하면서 광란의 발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옷을 벗은 것처럼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수치를 모릅니다.
가정이 무너져도 불행인줄 모릅니다.
그뿐 아니라 죽음의 도시인 무덤을 배회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광란극을 벌이면서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9에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배를 신으로 여기고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군대 귀신들린 자는 결국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제 정신이 돌아오고 단정한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눅8:35).
(3) 완전한 회복입니다.
여기 좋은 소식에 대한 이사야 메시지의 중심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복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9:1에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와 죽음에 속박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들입니다. 죄와 흑암의 권세에 짓눌린 세상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황폐한 성읍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되는 복음의 도리를 제시하여 줍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21:3-4에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완성된 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이루어지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소식, 복된 소식, 평화의 소식, 구원의 소식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눅2:10-11).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