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사람의 절망과 하나님의 소망』
여호수아 7:25-26, 321・323장
25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여리고를 정복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12 지파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7장에서 여리고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성읍인 아이에서 그들은 보기 좋게 패하여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여리고를 정복하고 왜 아이에서 패배하였을까요? 그리고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은혜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아이 성 전투에서 믿음의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여리고 성은 워낙 크고 웅장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하나님께 엎드렸고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침묵한 채 성을 돌라는 명령과 마지막 날에는 크게 함성을 지르라는 명령은 그냥 순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했기 때문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 성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의 대상이 바뀝니다. 여리고에서는 무조건 하나님을 의지하고 무조건 순종했는데 아이 성 앞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묻지 않고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판단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아이를 정복하기 위해서 올라갔습니다.
여리고 성 앞에서는 하나님만 온전히 믿고 의지했다면 아이 성 앞에서는 자신들이 믿음의 대상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큰 문제나 작은 문제나, 큰 시험이나 작은 시험이나 언제든지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는 작은 잘못 혹은 죄악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유다 지파 셀라 족속 삼디의 손자 아간이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오십 세겔 금덩이를 보고 탐낸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고 죄악일까요?
우리가 아간을 보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악은 무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과 정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정말 중요한 것은 죄악의 마지막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작은 죄악이라 할지라도 용납하지 말고 늘 예수의 보혈로 씻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은 사람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십니다.
아간을 처형한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2장 15절을 보면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간의 죄악과 심판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골 골짜기는 저주와 절망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짓누르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기 위하여, 절망을 소망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려주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지금 나에게 믿음의 대상은 누구십니까?
그렇다면 작은 죄악도 용납하지 말고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럴 때 나를 짓누르는 저주와 절망이 축복과 소망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삶의 적용 : 작은 죄악도 용납하지 말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마무리기도
아골 골짜기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