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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현실성Ⅳ(욥기 42:1-6)
신앙의 현실성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고 왜 천국에 가야하는지의 이유와 근거를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을 신앙의 현실성을 가지고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의 신앙이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내가 딛고 있는 삶의 현실에 나의 신앙이 영향을 끼쳐 나의 삶이 변화할 때, 그러한 신앙을 현실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현실성을 갖지 못한 채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로 인해 명목적인 신앙을 갖은 사람이 많습니다. 또 기독교 신앙을 일종의 ‘정보’나 ‘지식’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혀 신앙적 체험 없이 뜬 구름 잡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감리교 목사는 목사가 된 이후에도 5년 동안 시험을 보아야 합니다. 저도 그러한 시험을 치기 위해서 면접관 앞에 앉아서 면접을 보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면접관이 대뜸 ‘모세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저는 당황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아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어떤 유익을 줍니까? 그러한 단편적 정보를 알고 모르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가진 기독교에 대한 정보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지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현실 생활에서 얼마나 경험하고 체험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할 때, 우리의 신앙은 현실성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의 삶을 변혁시키게 됩니다.
예배 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있는지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을 때, 우리의 신앙은 현실 속에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예배는 바로 그러한 현실적 신앙의 힘을 체험하는 매개인 것입니다.
욥기의 말씀에서 욥은 까닭없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기는 3장까지는 참 은혜롭습니다. 욥이 고난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4장부터는 내용이 바뀌어서 욥은 하나님께 항변하기 시작합니다. “왜 나에게 이러한 고난이 닥쳐왔습니까? 하나님으은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저에게 이러한 고난을 주십니까?” 욥은 40장까지 하나님에 대해 자신이 가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이해를 나열합니다.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에 있었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모호한 관념과 개념들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41~42장에서 욥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좁은 머리로 어찌 나를 판단하느냐. 내가 천지를 창조할 때, 네가 있었느냐? 내가 동물들을 창조할 때, 네가 있었느냐? 내가 역사를 이루어갈 때, 네가 거기 있었느냐” 욥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말을 잃어버립니다. 욥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하게 됩니다. 욥은 하나님을 만난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무지한 말로 하나님의 진리를 가렸습니다. 이제 저는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묻겠습니다. 하나님 응답하여주소서. 제가 지금까지는 귀로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으나 이제는 눈으로 주님을 봅니다.”
우리도 욥처럼 ‘귀로 듣는’ 신앙생활을 많이 합니다. 제가 과거에 목회 할 때, 권사님들에게 문답을 하고 시험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에 있는 다섯가지 제사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권사님들을 대부분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거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를 참여하면서 우리는 참 많이 듣습니다. 주일 학교 아이들도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참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듣기만 하다가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주일학교를 졸업하면, 많은 학생들이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귀로 듣는것 보다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인해 신앙의 현실성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할 때, 우리의 신앙은 현실성을 갖게 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은 아버지, 어머니 양쪽으로 3대가 목사였습니다. 그는 모태신앙에 그 가문이 상당히 종교적인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얼마나 오래믿었느냐 하는 년수가 우리의 신앙의 현실성을 담보해주지는 못합니다. 모태신앙이라도, 수십년 신앙생활을 했더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회심전의 존 웨슬리도 이렇게 오랫동안 믿었으나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모 양쪽을 3대가 목사이고, 어렸을 적에부터 어머니 수산나의 신앙 훈련을 받았고, 옥스퍼드 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여 홀리클럽이라는 동아리를 조직하고, 옥스퍼드 대학의 신학부 교수가 되었을 정도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의 현실성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랬던 그가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조지아라는 곳으로 인디언 선교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1700년대 큰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는데 그만 배가 풍랑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큰 풍랑 앞에서 존 웨슬리는 두려움이 자신을 엄습해 옴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두려워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존 웨슬리는 한 쪽에서 열 명정도 되는 사람들이 천사같은 얼굴로 찬송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평안한 얼굴로 찬양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이 상황이 두렵지 않습니까?” 찬송을 하던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신앙이 이렇게 현실성을 갖게 되면 우리의 마음의 불안함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아는 사람은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존 웨슬리는 이 배 위에서의 경험 이후에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신앙의 문제점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존 웨슬리가 풍랑을 뚫고 인디언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미국에 도착했을 때 먼저 와 있던 모라비안 교도인 슈팡엔베르그 목사는 배에서 내리는 웨슬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 자신 속에 증언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언합니까?” 이와 같은 질문에 웨슬리는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연이어 슈팡엔베르그 목사는 또 질문하기를,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웨슬리는 “네, 나는 그분이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압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신앙의 현실성이 없는 사람일 수록 그 신앙을 자꾸만 ‘보편적인 것’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존 웨슬리처럼 신앙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슈팡엔베르그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웨슬리를 당황케 했습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압니까?” 이러한 슈팡엔베르그 목사의 질문에 웨슬리는 확실히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려 “나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을 것으로 희망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신앙의 현실성을 가지지 못했던 존 웨슬리는 미국 인디언 선교에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가 제대로된 신앙을 가지지 못했기에 그의 선교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실패하고 돌아온 존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에 회심의 경험을 하고 시장에 가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설교는 아니었느나 사람들이 수 천명씩 모여서 존 웨슬리의 설교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꾼을 선택할 때, 신앙의 현실성을 가진 사람을 선택 하십니다.존 웨슬리는 회심 전에 열정 없는, 하나님께 크게 사용 받지 못하는 목회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경험했을 때, 그는 온 영국을 바꾸는 위대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제가 어떻게 신앙의 현실성을 획득했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의 고향은 경기도 이천입니다. 저희 할머님께서 예수님을 믿으셨지만 저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은 신앙이 없으셨습니다. 할머님께서 저를 비롯한 여섯 형제를 주일학교에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인이 되어서 예수를 모두 믿지 않았습니다. 누님 한 명만 예외로 어릴 때부터 줄곧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렇게 일곱 명 중에서 한 명인 저희 큰 누님만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잘 지켰고, 지금까지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중학교 졸업 후에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장위동에 있는 누님 댁으로 머리를 식히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주일이었는데, 저희 누님께서 몸이 아프셔서 교회에 가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누님께서 속하신 여선교회의 회원들이 집으로 심방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선교회 회장님께서 저희 누님에게 저도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여쭤보신 것입니다. 저도 누님의 부탁에 못 이겨 난생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께 예배를 드리러 오신 분 중에 한 분이 이렇게 말하시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얼굴 한 쪽에 큰 혹이 있었는데, 3개월을 열심히 기도했더니 혹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아가면서 여선교회 회원 분들께서 간증을 하시는데, 저는 신앙의 세계라는 것이 별천지 세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누님께서는 당시에 대학을 나오신 분이어서 저는 누님께 이렇게 여쭤봤습니다. “아니, 누님, 대학까지 나온 분이 어떻게 이런 것을 믿습니까?” 그랬더니 누님께서는 저에게 신앙 간증을 하셨습니다. 저희 누님께서는 20년 동안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들을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자신이 가난한 매형을 만나 시골의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건져주셨는가를 말씀하시는 누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마음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누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저에게는 이것은 정말로 큰일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는 목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누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수색동에 있던 감리교회에 출석했는데, 감리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께서 저를 상담해주시면서 3개월을 함께 기도해주셨습니다. 저는 3개월 동안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누님께 말씀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서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사님께 여쭤봤더니 목사가 되려면 신학교에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교에 가는데 있어서 큰 장애물이 남아있었는데, 바로 저희 아버님이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수 십 년 동안 수학 교사로서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저에 대해서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뜸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목사가 된다고 하니 아버님께는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제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으시자마자 바로 저희 큰 누님께 전화하셔서 “태원이가 너희 집에 다녀오더니 정신이 이상해졌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의 뜻을 꺾으시기 위해서 저를 때리시기도 했지만 저의 결심은 점점 굳어졌습니다. 고등하교 진학 후에 점점 대입시험이 가까워오자 저는 일생 일단의 결단을 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까지 목사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야 했습니다. 저는 금요일마다 철야기도를 하기로 작정을 하고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새벽 2시쯤 기도를 하던 와중에 입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저 스스로 절제할 수가 없어서 밤을 새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새벽 5시에 나오셔서 저를 발견하시고는 제 등을 때리시면서 ‘절제하라. 저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월요일에 학교에 가서도 방언을 받아서인지 혀가 얼얼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영어시간에 선생님께서 저에게 영어교과서를 읽으라고 시키신 것입니다. 저는 교과서를 읽기 시작하자 마자 혀가 꼬이기 시작했고, ‘블라블라’하면서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별명이 블라블라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아직도 저를 그 때의 별명으로 놀립니다.
저는 그 이후에 아버지께 가서 담판을 지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자식인 제가 행복하길 원하시지 않으십니까. 저는 이 길을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더니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계획한 것이 있는데, 이렇게 까지 말하니 내가 너를 내려놓으마.” 저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감리교신학대학교 시험을 쳤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50명 중에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그 때 당시에 등록금이 10만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수석입학을 하니 10만원을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장학금을 가지고 아버지께로 가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허락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제가 수석입학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다 쓰시고 단, 만원만은 십일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앙이 없으셨기에 그 돈을 친구분에게 빌려주셨고, 지금까지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은 제 마음의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저를 목회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제가 어떤 책에서 읽은 것입니다. 돈 100만원을 가지고 물건을 사는 것과 좋은 체험을 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 책은 반드시 좋은 체험을 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체험은 우리의 삶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올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체험을 하면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평안이 찾아오며 우리의 신앙에 현실성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신앙의 현실성을 획득하게 될 때, 우리의 삶에는 평안과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삭막한 인생 동안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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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실성 있는 신앙! 요새 저의 신앙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