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학 특강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의 원리
- 은유와 환유 그리고 차유 -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I. 로그인
문학은 전략적 글쓰기다. 생각이나 삶의 모습도 문학적 전략에 의해서 이야기되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을 수 있는 문학작품이 될 수 있다. 독자와 함께 하는 문학작품 속에서 특수성과 보편성이 함께 숨 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적 물음은 개인을 확장한 공동체적 물음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나’를 향한 물음이면서, 그 메아리는 ‘우리’들을 향한 울림이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문학이론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학이론을 몰라도 문학행위는 삶 속에도 있어왔다. 문학이론이 작품을 창작하는 데 기초가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재발견’, ‘재창조’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문학이론은 참고 사항일 뿐이다. 시학 원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변주, 변용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II. 클릭
인간이 대상으로부터 의식을 형성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물질로 치면 시냅스가 하는 것이고, 원리로 치면 은유(metaphor)와 환유(metonymy)의 원리가 작동한다. 인간은 두 축, 곧 은유의 축(metaphoric pole)과 환유의 축(metonymic pole)에 의해 세계를 바라보고 유추하고 낱말을 떠올리며 의미를 만든다.
▼ 인지시스템과 유추적 확장도식
▼ 프로이트 –전치와 랍축
▼ 라캉 –언어는 은유와 환유로
▼ 소시러 –기표와 기의
▼ 현실에 맞서는 공동주체의 체험적 언어
어떤 사물을 보는 순간, 뉴런에 있는 사물에 대한 기억이 종합된다. 이때 시냅스는 이를 무엇과 유사한지, 아니면 인접한지, 두 기준에 의하여 기억들을 연결시킨다.
▼ <은유>‘보름달’을 보며 그처럼 둥그런 ‘엄마 얼굴, 눈동자, 호수, 동전’이 떠오르듯, 은유는 사물을 보고 유사성의 유추를 통해 다른 사물이나 의미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 <환유>반면에, 보름달에서 시간적이나 공간적으로 보름달과 관련이 있는 ‘밤, 추석, 별, 구름, 동산’ 등이 떠오르듯, 환유는 사물을 보고 인접성의 유추를 통해 다른 사물이나 의미를 연관시키는 것이다.
▼ 신진의 <차유>-차유의 시학 <한국시의 이론>
시적인 순간의 삶이 가장 섬세한 언어로, 그에 합당한 새로운 언어로 드러나고 조직되는 것이 진정한 언어예술로서의 시다.
은유가 연상에 의한 유사성의 비유이고, 환유가 현실적 인접성에 의한 비유라면,
생경과 불합리에 대한 각성, 의미파괴와 의미의 부정 따위가 주는 차이성에 의한 비유, 그것을 차유라 이른다.
차유는 ‘탈관념’, ‘해체’ 등 특정 분위기의 언어형식을 포용하지만 어디까지나 발견적 의미전달의 과정이다.
시는 동창성과 사회성을 구현하는 것이기에, 시의 언어는 특정의 새로운 의미를 환기하는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상식의 자동성을 부단히 위반하는 양식, 즉 차유를 기반으로 셍성된다. 차창룡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시집 〈나무 물고기〉에는 ‘똥은 꽃처럼 향기로워’(〈트리베니 가트에서 누는 똥〉)라는 놀라운 대목이 나온다.
은유와 환유는 사물의 형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사물이 기능하고 작용하는 것도 생각하며, 더 나아가 그 사물의 고유한 속성과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의식은 상(相)에서 용(用)과 체(體)로 옮겨간다. 어떤 이는 보름달이 높이 떠서 산과 들을 비추니 보름달은 그처럼 자비의 빛을 모든 중생에게 비추는 관음보살이라고 생각한다. 달의 속성이 차고 기우는 것이라고 파악한 이들은 달의 의미를 영고성쇠(榮枯盛衰)로 생각한다. 반면에 달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달의 특성이라 본 이들은 달의 의미를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별을 바라보면서 별처럼 생긴 ‘불가사리’를 떠올리기도 하고, 별이 어두운 하늘에 떠서 환하게 빛나니 ‘이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별빛이 변하지 않으니 ‘영원’이라고 생각한다.
▼ 상(相)에서 용(用)과 체(體)
- 보름달(은유) –관음보살 –영고성쇠 –부활
- 별 –불가사리 –이상 -영원
이는 환유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름달에서 시간적으로 인접한 ‘밤, 추석’을 떠올리기도 하고, 공간적으로 인접한 ‘구름, 별, 동산’을 유추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보름달이 내 앞길을 환히 비추는 등불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보름달을 노래한 시인을 떠올린다. 모든 철학자들과 모든 시인들은 은유와 환유를 통하여 사고를 확대하고 상상의 세계를 그릴 수 있었다.
▼ 보름달(환유) -밤, 추석 –구름, 별, 동산, -등불 – 보름달의 시인
은유와 환유는 생각의 유추와 의미형성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행위와 실천에도 작용한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 <믿거나 말거나>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기이한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블도저 같은 중장비도 없는 이들이 밀림 사이로 땅을 닦아 활주로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언덕 높은 곳에는 칡넝쿨 같은 것을 엮어 비행기를 만들어 놓고는 맛난 음식을 차려놓고 정성을 들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밤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이 활주로로 닦은 길가 큰 나무에 솜방망이로 불을 밝혀 경비행기가 활주로로 착각하고 착륙할 지경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은 원주민들이 시드니인가 근처 공항에 가서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해설자는 “이들은 비행기가 하늘에서 자기를 구원하라고 보낸 사자인데 중간에 백인들이 가로채가서 백인들은 잘 살고 자기들은 못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백인들에게 가로채간 우리 사자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이들 원주민은 비행기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짓을 하므로 이를 유사성의 유추를 통하여 하늘에서 보낸 사자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달에게 정화수를 떠놓고 빈 것 또한 달이 땅에서 하늘을 향해 떠오르므로 달이 인간의 소원을 하늘에 전하는 사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 터질 듯한 생명력 - 생취, 생의
▼ 물상 속에 감추어진 비의를 날카롭게 간파할 수 있어야 -시는 촌철살인의 미학 이다.
▼ 한 편의 훌륭한 시는
시인의 독백으로써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의 원리로써 독자에게 전달된다.
▼ 시의 언어는 직접 의미를 지시하는 대신 이미지를 통한 간접화의 방식으로 의경 을 전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 이발소의 그림, 목욕탕의 벽화, 영화관의 간판 –정신이 없다.
북쪽/이용악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른다.
공갈빵을 먹고 싶다/ 이영식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 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 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하게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 쪽 떼어 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고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시집『공갈빵을 먹고 싶다』(문학아카데미, 2002)
강 –땅파기/
노인 둘이서
땅을 파고 있다.
시멘트 포장을 뜯고
아스팔트를 찢는다.
말라붙은 비닐용기, 스티로폴 조작
떡이 된 땅을 판다.
조각난 유리, 플라스틱 터진 살이
탄광처럼 엉켜 있다.
치익 칙 독한 냄새가 솟고
드디어 가스가 터져나온다.
시꺼먼 기름 거품을 숨가쁘게 뱉는다.
쓰러진 노인이
버즘투성이 다른 노임에게 말했다.
-여가......, 여기......, 강이 있던 곳이야.
바퀴벌래/
어느 교사의 혀 끝
어느 기자의 펜 끝
어느 병정의 총 끝
복골부인의 꼬 끝
어느 법관의 방망이 rmx
어느 국회의원의 손끝처럼 논치 빠른
강구의 촉수여.
(중략)
이 밤에도 불 끈
우리 침소 머리맡에
둘 둘 셋 넷 모여드는
매우 쳐라, 저놈의
바퀴벌레
엿장수/
정그렁 정그렁
고열에 구운 자기처럼
금이 가는 하늘
시루떡 시루처럼 매달린
판잣동네 엿장수 하나
지적도에도 없는 언덕 위에서
제 긴 그림자를 자르고 있다.
정그렁정그렁 가위소리에
어둠의 기왓장 하나씩 떨어지고
잘린 어둠 다시 잘려
산업은행 십층과 농방생면 심팔층 새에
대추나무 감나무로 서기도 하고
시루떡 시루 백떡 망개떡
좌판째 지워 뭉개기도 하고
작은 방 큰 방 차레로 불을 단다.
정그렁정그렁 가위질 따라
크고 작은 불마다 이음 이어 속삭이는
고물삽니다-
망가진 냄비, 부숴진 우산
종이 휴지 신문지,
쓰고 남은 약속이나 신조같은 것
다 삽니다..
판잣동네 엿장수 하나
지적도에도 없는 언덕 위에서
제 그림자 자르고 있다.
장탉/
박 선생님 가족이란 평상에서 삼겹살을 구어 먹는데 장닭이 알고 암탉들을 불러 모은다. 귀한 고기이니 지가 먹겠지 하고 여나믄 점 던져 주었더니 장닭은 한 조각 예의 없이 암컷들에게 양보한다. 암탉이 먹을 동안 자랑스럽게 갈기를 흔들면서 루우 루우 유성음의 노래마저 보탠다. 암탉들은 낼름낼름 받아막기만 한다. 장닭은 땅에 부리를 박고 원을 그리며 러시아 민속춤을 덤으로 선사한다. 암탉들을 가두고 장닭만 불러 몇점 따로 주었더니 이번에는 한 점 한 점 물고 가서 던져주고 달려온다.
저 바보 저 바보!
아내는 수탉이 바보라서 그런다 한다. 내가 귀한 음식 먹지 않고 저를 줄까 지레 겁을 내는 것이리라.
그래도 뒤통수 털이 다 빠져버린 암탉을 보면 마냥 주고 싶은 것이 해묵은 수컷의 심사가 아닐까 한다.
III. 로그아웃
문학의 힘은 언어의 힘이다. 돈이나 권력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언어’, ‘색’, ‘리듬’에서부터 나온다.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확정하고 발달한 것이 우리 사호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시의 언어가 별도로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불필요한 언어를 최대한 배제하는 등의 문학적 용법이 필요한 것이다. 문학의 힘은 언어로부터 나오지만 단순히 개인을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김수영의 여러 편의 시들, 특히 <눈>은 독자로 하여금 독재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려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진의 생태문학은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독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바로 문학의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힘이 오래오래 지속되게 하려면 비유를 차용하지 않을 수 없다. 정서적인 힘은 비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