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낙경洛京 불광사佛光寺 여만如滿 선사의 법손
당唐의 항주杭州 자사刺史 백거이白居易
자는 낙천樂天이니,
오랫동안 불광佛光 선사를 참문하여 심법心法을 얻었고,
아울러 대승의 금강보계金剛寶戒를 받았다.
원화元和 때에 서울의 흥선법당興善法堂에 가서 네 가지 법을 물었고,
[내용은 흥선장興善章에 보인다.]
15년에 항주로 부임했다가 조과鳥窠 화상을 방문하여
문답하고는 게송을 지었다.
[내용은 조과장鳥窠章에 있다.]
일찍이 제濟 법사에게 글을 보내서
부처님의 위없는 큰 지혜로써 교리를 펼쳐 드러냈다.
근기의 높고 낮음을 따르는 일이 어찌 있겠는가마는
병을 따라 약을 주는 것은 같지 않았으니,
평등한 한 맛의 말과 상반될 때에는
유마경과 금강삼매경 등
여섯 가지 경전을 인용하여 두 이치[二義]를 물리치면서 토론하였다.
또 5온蘊과 12인연因緣으로써 명색名色을 연설하되,
전후에 유례가 없이 이치를 세워서 따졌다.
아울러 깊은 것을 끌어내고,
숨은 것을 찾아내고,
유현幽玄한 것도 통하고,
은미隱微한 것도 밝혔는데,
그러나 제濟 법사의 대답은 받지 못했다. 그 뒤에도 대답하는 이가 드물었다.
또 동도東都 응凝 선사의 8점漸 관觀․각覺․정定․혜慧․명明․통通․제濟․사捨이니 제29권에 나온다.
각각 한마디씩을 덧붙여 게송을 지어서 그 취지를 해석하니,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에 이르는 것이 마치 구슬을 꿴 것과 같았다.
취임하는 곳마다 조사의 도를 찾아서 배웠는데 일정한 스승이 없었고,
나중에 빈객賓客 관명이니, 대신 가운데 다섯 사람을 뽑아 태자를 가르치고
외국 손님을 접대하며 국가 전반을 토의하는 직책 이름이다.
동도東都를 맡아 다스릴 때에 자기의 봉급을 털어서 용문龍門의 향산사香山寺를 지었고,
절을 다 짓고는 손수 기문記文을 지어서 달았다.무릇 글을 지을 때에는 교화의 일을
고무하여 불승佛乘을 찬미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모두가 본집(本集:백거이의 文集)에 있다.
그리고 그가 벼슬한 차례와 입멸[歸全]한 연대는 사전史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