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천장, 그리고 내 마음의 천장.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태복음 6:27)
일련의 사태가 이어졌다. 시작은 세탁기였다.
잘 사용하던 세탁기에서 누수가 발생했다.
통으로 들어가는 밸브가 잠기지 않아 물이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AS를 의뢰하니 수리보다는 교체를 권유받았고, 결국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
두 번째는 청소기였다.
집에서 사용하던 물걸레 겸용 청소기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았다.
물걸레용 배터리를 교체해 보았지만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AS 센터에 가져가 점검을 받으니 배터리 두 개가 모두 수명을 다했다는 진단이었다.
같은 시기에 구입한 것이라 그런지, 두 배터리가 동시에 사망한 셈이었다.
동시에 수명이 다하도록 만들었다는 합리적 의문은 남았지만,
결국 비용을 들여 모두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더 큰 일이 찾아왔다.
벽 속에서 조용히 시작된 누수는 결국 아랫집 천장으로 번지고 말았다.
얼룩진 천장을 직접 마주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계의 고장은 비용으로 감당하면 그만이지만, 아무 잘못 없는 이웃의 일상을 훼손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얼마나 불편하실까.
미안함이 또 다른 미안함을 불러왔다.
고요해야 할 이웃의 일상이 우리 집에서 새어 나온 물로 얼룩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을 나와 돌아오는 길, 발걸음은 돌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은 계속 아래층을 향했다.
지금 얼마나 불편하실지, 공사 과정은 또 얼마나 번거로우실지,
혹시 이 일로 이웃 간의 관계까지 상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까지 마음속에서 키우며, 스스로 불안을 키워가고 있었다.
염려로는 젖은 벽을 말릴 수 없다
그때 마태복음의 말씀이 다시 마음을 두드렸다.
“내가 밤새 괴로워한다고 해서 아랫집 천장의 얼룩이 지워질까.
내가 숨이 막히도록 염려한다고 해서 그들의 불편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아니었다.
나의 과도한 자책과 염려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웃을 위한 책임감이라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가까웠다.
염려로는 키를 한 자도 더할 수 없듯, 자책으로 젖은 벽을 말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저앉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안한 마음을 책임 있는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얼룩을 지워가는 담담한 발걸음
마음을 가다듬고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기로 했다.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불안을 키우는 대신,
이웃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치에 집중하기로 했다.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불편을 겪으신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정중히 고개 숙인다.
원인을 정확히 찾아 확실하게 수리한다.
전문가를 통해 누수를 완전히 잡는다.
아랫집 천장은 가능한 한 깔끔하게 복구한다. 도배와 마감까지 책임진다.
내가 할 일은 결국 이 범위 안에 있다.
그 이후의 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나 혹시 계속 마음 상해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내려놓기로 했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타인에게 작은 빚을 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진심으로 책임을 다하는 태도일 것이다.
다시 하얀 천장을 향하여.
새 세탁기가 힘차게 돌아가며 묵은 때를 씻어내듯, 아랫집의 천장도,
그리고 미안함으로 얼룩졌던 내 마음의 천장도 결국은 다시 제 색을 되찾을 것이다.
삶은 때로 이웃의 배와ㄷ 스쳐 가며 작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과한 염려가 아니라, 미안함을 담은 진솔한 마음이 이닐까.
암튼 몸도, 마음도, 기계도, 집도 늙고 망가지는것 같아 우울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