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벽화이야기 시리즈 중 그 열네 번째 이야기 - 원광법사 편입니다..

신라 진평왕 때 모량부(牟梁部)에 귀산이라는 어진 선비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 취항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이 사군자(士君子)들과 같이 어울려 놀려면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근신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필경 욕을 당하는 것을 먼저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어진 사람을 찾아가서 도(道)를 묻지 않겠는가?」
두 청년은 가슬갑(嘉瑟岬)이라는 절에 계시는 원광법사(圓光法師)를 찾아가기로 작정했다.
이 때 원광법사는 중국에서 불법을 깊이 공부하고 교화활동 등으로 이름을 떨치다가, 왕의 간청으로 고국에 돌아와 대승의 법문을 펴고 크게 교화하니 국왕을 비롯한 온 백성이 그를 성인으로 우러렀다.
귀산과 취항은 곧 원광법사를 찾아 뵙고 공손하게 여쭈었다.
「저희들 세속 선비는 몹씨 어리석어서 아는 것이 없아오니, 바라옵건대 평생의 교훈으로 삼을 가르침을 주십시오」
인정이 많은 원광법사는 그들의 물음을 갸륵하게 여겨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불교에는 열 가지의 보살계가 있지만 너희들은 신하 된 몸으로서 필경 이것을 지키어내지 못할 것이다.
다만 세속인으로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가 있으니,
첫째는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는 것이요, (事君以忠)
둘째는 부모를 효도로 받드는 것이요, (事親以孝)
셋째는 벗을 신의로 사귀는 것이요, (交友以信)
넷째는 전쟁에 임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것이요,(臨戰無退)
다섯째는 산 목숨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려서 한다는 것이다.(殺生有擇)
너희들은 이 일을 실행함에 소홀히 하지 말라」
이것은 원광법사가 지은 것도 아니며 부처님의 말씀도 아니다. 오랫동안 신라 사람들에게 내려오던 미덕들 중에 당시의 젊은이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일들을 원광법사가 덕목화(德目化)하여 그들로 하여금 평생을 지킬 교훈으로 삼게 한 것이었다.
그 다섯가지 중에서 마지막 것만은 원광법사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절대 살생을 금하고 있는데 원광법사는 여기서 살생은 하되 가려서 하라고 했으니 불교의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살생을 안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살생을 해야 할 때에는 함부로 하지 말고 가리어서 하라는 것이다.
두 청년도 다섯 가지 중에서 네 가지는 잘 알 수가 있었으나 다섯번째 것은 처음 듣는 말이므로 다시 물었다.
「다른 것은 모두 이미 들었읍니다만, 마지막에 말씀하신 산 목숨을 죽이되 가리어서 하라는 뜻은 이해할 수가 없읍니다」
이에 원광법사는 살생을 가리는 데는 때를 가리는 것과 대상을 가리는 것의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6재일(六齊日)과 봄 여름에는 생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시기를 가리는 것이요, 집에서 기르던 말·소·닭·개 등을 죽이지 않고 조그만 목숨 즉 고기 한 점도 되지 않는 것은 죽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대상을 가리는 것이다.
또 죽일 수 있는 것도 쓸 만큼만 죽이고 함부로 많이 죽이지 말라는 것이니, 이것이 곧 세속에서 지켜야 할 올바른 길인 것이다」
「지금부터 이 오계를 받들어 실천하며 어김이 없도록 하겠읍니다」
두 청년은 기쁜 마음으로 공손하게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 뒤 두 사람은 전쟁에 나가서 모두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이 세속오계에서 원광법사는 불교의 참 뜻은 사회를 지도하고 정화하는 데 있으므로 반드시 불경이 불교적 의식에 따르지 않더라도 그 국가와 사회 및 개개인의 경우에 적합한 방법으로 일깨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평생의 교훈이 될 가르침을 청하는 두 청년에 세속인으로서 지켜야 할 다섯가지 교훈을 일러주어 국민의 도리를 다하게 한 것이다. 이 세속오계가 곧 신라 화랑도의 근본 사상이 되었다.
이렇게 온 백성의 공경을 한 몸에 받았던 원광법사는 640년 황룡사에서 평안히 앉아서 세상을 마치니 세수 99세였다. 입적하실 때에 하늘에 음악소리가 가득하고 이상한 향기가 절 안에 가득차니, 모든 스님들과 신도들은 슬퍼하면서도 경사롭게 여기고 그것이 스님의 영감(靈感)임을 알았다. 나라에서는 우의(羽儀:의식에 장식으로 쓰던 새의 깃)와 장구(葬具)를 내려 임금의 장례와 같이 모셨다.
다음에는 환적대사편이 이어집니다
첫댓글 세속오계가 곧 신로 화랑도의 근본 사상이 되었다.-()-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
"殺生有擇"은 당시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인가 합니다. 그러나 그뜻이 지향하는 바를 안다면 어찌 쉽게 살생을 항겠습니까.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