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 주요명소
부곡하와이
창녕군 부곡면 거문리. 사창리. 부곡리의 일원으로, 땅모양이 가마솥같이 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이 부곡이며, 동국여지승람에 온천이 있다고 기록이 있어 온정이라 불리어지는 곳을 1973년 부곡윈탕 고운 호텔 대표 신현택씨가 발견한 최고 78℃의 온천수를 하루 6천톤을 채수할 수 있는 유황온천이 오늘의 부곡온천이다.
유황이외에도 규소, 염소 등 20여종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어 호흡기질환, 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크다. 부곡온천 관광특구내에는 숙박업소 26개소를 비롯한 상가 21동 기타시설 9동이 있으며, 부곡하와이는 종합휴양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하와이랜드(바이킹, 타가다, 그랜드캐년 외 20여종 보유), 실내수영장(규격풀, 유수풀, 어린이풀, 유아풀, 하이슬라이드, 하미루), 실외수영장(파도풀, 규격풀, 유수풀, 어린이풀, 유아풀, 하이슬라이드, 하이다이빙장), 대쟝글탕(수중폭포안마탕, 천연폭포안마탕, 황토한방사우나, 원적외선지압동굴, 동굴온천탕,옥황토찜질방, 녹차탕, 인삼탕, 열탕, 냉탕)
식물원, 백농관(박제전시관), 대공연장, 눈썰매장, 야외특설무대, 야외결혼식장, 하와이파크(벽천호수, 중앙로, 행복의 길, 지옥의 길, 조각전시장, 연화교, 덕암폭포/호수, 팔각정), 나이트클럽, 연회장 (아리랑홀, 무궁화홀, 한마음홀), 스파니아(야외온천탕)
* 식음료장 - 한식당(진달래), 카페테리아(자율식당), 주촌(민속주점), 산마루(전통음식점), 쟈스민(양식당, 커피숍), 패스트푸드/스넥점, 하와이홀, 맘모스프라자 (무료피크닉 장소), 라면전문점
* 연간이벤트 신정맞이 축제, 설날맞이 한마음 축제, 벚꽃축제, 어린이날축제, 인디안캠프, 열린음악회, 발리대축제, 거리축제, 가을 홍단풍축제, 8/15경축 불꽃놀이, 부곡온천축제, 한마음 한가위 축제, 뷔페페스티발, 크리스마스 및 송년이벤트
창녕군 부곡면 거문리 195-7 부곡하와이 전화 055-536-6331~9
창녕석빙고
조선조 시대에 중수하였다고 보는 빙고(氷庫)이다. 이는 구조양식의 측면과 장빙(藏氷)의 풍속이 그 당시에 제도화되어 성행하였던 점을 미루어 보아서이다. 이 빙고는 봉토도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에 직각되게 남북으로 길게 구축되었다.
빙실(氷室)의 입구는 남쪽에 시설하였는데, 좌우에 장대석(長大石)을 옆으로 건너 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사이의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 (換氣孔)이 두 곳 설치되었다. 벽은 잡석(雜石)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房壁)이 되게 표면(表面)을 치석(治石)하였다. 이러한 구조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경주나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한데 규모에 있어 이 석빙고가 약간 작을 뿐이다.
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에 의하면 “崇禎紀元後再壬戌二月初一日女四月初十日畢”이라 새겨져 있으며 조선 영조 18년(1742)에 현감 신서(申曙)등이 축조한 것으로 보물 제310호 지정되어 있다.
* 빙실길이 13.05m, 홍예높이 약4.75m, 너비 4.65m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288
창녕군 문화홍보과 055-530-2237
부곡하와이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늪지 이다. 흔히 '늪'이라고 하면 가장 규모가 큰 우포늪뿐만 아니라 목포. 사지포.쪽지벌 등 네개의 늪을 모두 아우른다. 이 늪지대는 경남 창녕군의 유어·이방·대합면 등 3개 면에 걸쳐 있는데, 둘레는 7.5㎞에 전체 면적은 70여만 평에 이른다.
이곳에 늪지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억 4,000만년 전이라고 한다.
공룡시대였던 중생기 백악기 당시에 해수면 (海水面)이 급격히 상승하고 낙동강 유역의 지반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이 일대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던 물이 고이게 되면서 곳곳에 늪지와 자연호수가 생겨났고, 새로 생긴 호수와 늪은 당시 지구의 주인 이던 공룡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현재 우포늪 인근의 유어면 세진리에는 그 당시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발 자국화석이 남아있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우포늪 주변에는 가항늪·팔락늪·학암벌 등 10개의 늪이 더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과 농경지의 잠식으로 인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포늪도 한때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었다. 지난 1960년대 초에 백조도래지(천연기념물제15호)로 지정됐다가 급격한 개발로 인해, 백조 수가 급감하자 천연기념물 지정이 취소된 것이다.
그 뒤 이곳에 개발의 광풍이 거세게 불기도 했다. 다행히도 오늘날의 우포늪은 나날이 안정을 되찾고 있다. 특히 '생태계 보호지역'(1997년)과 '람사조약'에 의한 국제보호습지(1998년)로 지정된 이후로는 예전의 생태계가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현재 우포늪 일대에는 43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한다.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류의 10%에 해당된다. 그중에서 수생식물의 종류는 우리나라 전체의 50~60%를 차지한다. 이곳의 수생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표이다.
이곳에서 가장 흔한 수생식물은 생이가래·마름·자라풀·개구리밥·가시연꽃 등이다. 이 식물들은 그 자체로도 귀한 생명체이지만, 늪의 수질을 정화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포늪의 물빛이 의외로 맑고 깨끗한 것은 이 식물들 덕택 이다. 조류는 쇠물닭, 논병아리 등 텃새와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를 비롯하여 청둥오리, 쇠오리, 기러기 등 62종이 있으며 겨울철새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어류는 붕어, 잉어, 가물치, 피라미 등 28종이 서식하고 있으나 최근 황소개구리, 배스, 블루길 등 외래어종이 증가하여 자연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 외 논우렁, 말조개, 잠자리, 소금쟁이 등의 패각종 및 수서곤충이 서식하고 있다.
우포늪은 아무리 깊어도 사람의 온몸이 잠기는 데가 거의 없다. 장마철에는 수심이 5m에 이르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1~2m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늪의 바닥에는 수천만 년 전부터 숱한 생명체들이 생멸(生滅)을 거듭한 끝에 쌓인 부식층(腐植層)이 두터워서 개펄처럼 발이 푹푹 빠지지도 않는다.
억겁을 세월을 간직한 이 부식층이 있기에 우포늪은 '생태계의 고문서', 또는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우포늪은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자연환경보전법 적용을 받고 있어 낚시, 논우렁 채취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시에는 처벌을 받게 된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우포늪을 지키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
문의/안내 우포늪안내소 055-530-2690~2
경남 창녕군 대합면 , 이방면, 유어면
우포늪 생태관은 조류, 어류,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등 각종 습지 야생동물의 기록을 보존ㆍ연구하며 대중에게 전시하는 장소이다. 또한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자연환경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곳이다. 우포늪 생태관은 방문객들이 생태환경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포늪의 이해, 우포늪의 사계, 살아있는 우포늪, 우포늪의 가족들, 생태환경의 이해 등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전시실에는 현장감 있는 입체 모형, 영상 등을 볼 수 있고,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수 있다. 우포늪 생태관은 청소년들의 교육공간, 모두의 문화 공간, 가족의 휴식 공간이다. 살아있는 우포늪을 체험하고 습지에서 살아가는 생태환경을 이해하는 자연학습의 현장이다.
명륜당
창녕현의 유림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공자의 위패를 봉안하고 유교를 숭상하며 아울러 동양도덕을 가르치기 위한 학교로 건립하였다. 외삼문, 동.서재, 명륜당 동,서무, 대성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그 뒤에 놓이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외삼문은 솟을 삼문 형태로 높은 석축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석축을 쌓는데 쓰인 석재 가운데는 연화문이 양각된 사찰의 기단 면석 등이 혼용되어 있다. 명륜당은 역시 높은 석축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세워져 있으며, 주춧돌이 원주식으로 되어 장대한 외관을 나타내고 있다.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창녕군 창녕읍 교리 440
문의/안내 창녕군청 문화홍보과 055-530-2237
창녕박물관
창녕박물관은 1996년 3월 개관하였으며, 박물관에는 창녕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의 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계성고분군의 대형고분 1기를 이전, 복원하여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창녕교동 고분군(사적 제 80호)내에 있고, 인근에는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 81호)과 목마 산성(사적 제 65호), 진흥왕 척경비(국보 33호)와 창녕 술정리동 3층석탑(국보 34호)이 있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87-1
055-530-2246
만옥정 공원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로, 만옥정 공원은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면적 1만 ㎡
이며 창녕 경찰서 위에 위치한다. 만옥정은 구마고속도로 창녕IC에서 진입하여 창녕읍 오리정을 경유, 송현 삼거리 - 만옥정을 진입할 경우 5 분이 소요된다.
만옥정 공원내는 국보 제33호인 진흥왕척경비를 비롯한 창녕각사, 퇴천 3층석탑, 대원군 척화비 등의 지정문화재와 UN전적비, 창녕현감비군, 지석묘 등이 있으며 봄이면 벚꽃이 유명하여 읍민들의 쉼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 가는 길 : 구마고속도로 창녕IC -> 창녕읍 오리정 -> 송현 삼거리 -> 만옥정
* 문의처 : 창녕군 도시과 :055-530-8431
영산호국공원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동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산호국 공원은 1973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총 165만㎡의 면적으로 1592년 임진왜란 호국충혼탑과 1919년 3.1독립운동 기념비가 있고, 1950년 6.25영산지구 전적비가 있어 3대 국란호국의 성지이다.
창녕군 도시산림과 055-530-2479, 2480, 2481 3.1민속문화향상회 055-536-0031
신라진흥왕척경비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이 소풍 갔던 학생에게 발견되어 알려졌는데,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14년 2월7일 창녕 초등학교 일본인 교장 하시모토(橋本良臧)에 의해서였다. 그 후 1924년 지금의 만옥정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 처럼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말이 없고 다만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 했으므로 따로 척경비(拓境碑)라 일컫는다.
순수의 기원은 중국의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는데 중국의 황제들이 자신의 영토를 둘러보고 그 곳에서 천신께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순수한 기념으로 비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진나라 시황제(BC.259∼BC.210)부터라고 한다.
이 비는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개석(蓋石)이나 대석 (臺石)을 사용하지 않은 삼국시대 비문의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한 면을 간 다음 바깥 면 비석의 형상에 따라 음각의 줄을 돌렸는데 오른쪽 상부는 암석이 사면을 이루고 있는 관계로 일행(一行)씩 낮추어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27행으로 한 행의 자수 (字數)는 일정하지 않아 끝 행은 3자 뿐인 것도 있으나 26자의 행이 가장 많고 후반부는 위에서 2행마다 1자식 낮추어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순수의 년시(신사년 2월), 사적, 수가인물(수행원)의 3부분으로 되어있고 인물의 기록순서는 속부, 인명, 직관, 직위를 표기하여 삼국시대신라비문의 일반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글자간격은 4㎝이다. 앞부분이 마멸되어 자획(字劃)이 불분명한 점이 있다.
* 주소: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창녕군청 문화홍보과 055-530-2237
관룡사 석장승
민속자료 6호로, 관룡사 입구에 좌우마주 보게 2주가 서 있는데, 일명 돌장승, 벅수라고도
하며 민속적인 어떤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곳으로부터 관룡사의 경내를 표시하는 석표의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자연석에 남녀상을 각각 새겼다.
* 주소: 창녕읍 옥천리 산320-2
청련암
영산(靈山) 대흥사(大興寺)의 법등(法燈)을 잇는 청련암(靑蓮庵) 영취산은 고려 때 지공(指空) 법사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천축국(天竺國)의 영취산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의 북녘 기슭에 자리한 청련사는 영취산에 있던 대흥사(大興寺)의 작은 암자로 세워졌으며, 대흥사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암(東庵)이라 불려왔다.
대흥사는 청련사뿐만 아니라 인근의 극락암(極樂庵)ㆍ삼성암(三聖庵)의 기록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일대의 많은 암자들을 거느릴 만큼 사격이 높았던 듯하다. 따라서 청련사의 중창주 덕암(德庵) 스님 또한 사라져버린 대흥사를 아쉬워하며 퇴락한 암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목적으로 법당을 창건했을 것이다.
현재 청련사에 남아 있는 현판자료에는 하나같이 청련암 앞에 ‘영산 대흥사’를 붙이고 있어, 대흥사는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청련암이 그 법등을 잇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중에 전하는 1842년(헌종 8)의 중창기(重創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어, 청련사가 자리한 자연적 입지를 짐작케 한다.
좌우에 둘러 있는 봉우리들이 높이 솟아 있어 마치 많은 별들이 북두성을 향하는 것과 같고, 앞뒤로 흐르는 골짜기 시내가 잔잔하여 수많은 옥가루가 허공에서 부서져 내린 듯하다. 이는 반드시 하늘이 아까워 숨겨놓은 곳이며 땅이 내보이기 인색하게 숨겨놓은 명승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가람을 세워 법당을 창건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 연혁
처음 청련사는 영취산에 있던 대흥사의 작은 암자인 청련암(靑蓮庵)으로 창건되었으며, 대흥사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암(東庵)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러한 초기기록은 1880년대에 절을 중창하면서 기록된 여러 현판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1842년(헌종 8)에 기록된 「영산현 영취산대흥사 청련암 법당이건중창기(靈山縣靈鷲山大興寺法堂移建重創記)」 현판에 의하면, 대흥사는 신라 때 원효스님이 세운 절로 이후 폐사되었다가 1628년(인조 6)에 중창하여 양수암(兩水庵)이라 하였다.
1676년(숙종 2) 대흥사의 옛 터로 옮겨 대흥사라 불렀는데 100여 년이 지나 다시 폐허가 되고 그 중 청련암만 어렵게나마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에 덕암(德庵) 스님이 고을 사또와 신도들의 도움으로 1840년(헌종 6) 법당을 중창하기 시작하여 2년 후 초여름에 새로운 면모로 출발하게 되었다. 법당이 중창되는 이 시점을 전후하여 청련암에는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는데, 현존하는 현판기록에 의하면 1830년(순조 30)에 산령각을 건립하고 1834년(순조 34)에 법당을 보수하였으며, 1836년(헌종 2)에는 쾌엽(快曄) 스님이 법당의 상단불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청련암은 근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법등을 계속 이어왔고, 근래에 들어서는 1983년에 옛 법당을 허물고 극락전을 새로 건립하였으며, 1993년 산령각ㆍ종각ㆍ요사ㆍ천왕문을 짓고 다보탑과 비로자나불상 등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왕산군립공원
화왕산(756.6m)과 관룡산(일명 구룡산, 739.7m)을 잇는 공원으로 많은 문화재와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 많은 관광객(등산객)이 찾는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녹음과 계곡물, 가을에는 억새, 겨울에는 설경이 유명하다. 특해 봄철 진달래 경치와 가을철 억새가 유명한데, 봄철이면 진달래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화왕산성 주위의 비탈과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일대는 마치 분홍물감을 쏟아부은 듯하다.
매년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까지 그야말로 산 전체가 불타 오르듯 만발한 진달래의 붉은 기운으로 뒤덮인다. 화왕산 최대의 명물이라면 정상 주변의 넓고 평평한 억새밭인 "십리 억새밭"이다. 그 십리 억새밭이 평지에서 급경사 벽으로 뚝 떨어지는 경계선인 능선을 따라 화왕산 성벽이 쌓여 있으며, 그 바깥 경사면의 거의 모두가 진달래밭을 이루고 있다.
매년 10월이면 이곳에서 화왕산 억새제가 개최된다. 화왕산은 선사시대 화산으로 추정되며,
3개의 못(龍池)가 있으며, 창녕 조(曺)씨가 득성 하였다는 득성비가 화왕산성(사적 제64호)내 있다.
창녕군청 도시산림과 055-530-2479~81 자하곡 매표소 055-530-2497 옥천 매표소 055-530-2498
창녕은 볼거리 다양한 전통의 고장
오랜 전통의 고장인 창녕엔 볼거리도 많은데, 국보도 두 개나 된다. 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 그리고 술정리 동삼층석탑(국보 제34호)이 그것이다.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을 읍내 만옥정공원으로 옮긴 진흥왕척경비는 561년에 세운 것으로, 남한에서 최고로 오래된 빗돌이다. 진흥왕은 대가야 땅으로서 비사벌로 불리던 창녕을 점령한 뒤 척경비를 세우고 가야 지역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원래 민가 틈새에 있어 하층 기단 일부가 민가 담 밑으로 들어갈 정도였으나 1965년 주변을 정화했다. ‘동탑(東塔)’이라 하는 것은 한 사찰의 쌍탑이기 때문이 아니라 행정구역상 술정리 안에 두 기의 석탑이 존재하는 이유로 붙여진 명칭이다. 서삼층석탑은 이곳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다.
동삼층석탑 부근에 있는 하병수 가옥은 지붕을 억새로 이은 정면 4칸의 전통 가옥. 조선시대의 가옥구조와 민가의 건축술을 알 수 있는 남향의 초가인 이 가옥은 하씨(河氏) 집안이 몇 대째 살아온 곳이다. 조선 영조 때인 1706년에 지어진 집이라 하니 300년 넘게 연륜이 쌓인 셈이다.
창녕읍 교리 부근을 지나다 보면 고분군들이 눈길을 끈다. 1918년 무렵 일본인에 의해 발굴되어 유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가고 일부만 국내에 남아있어 구조와 출토된 유물 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그나마 교동고분군이 형성된 위치에 창녕박물관이 소재해 있어 교동고분군의 조성방법과 형태, 가야시대 때부터의 창녕군 역사를 엿볼 수 있다.
▲ 561년 진흥왕이 창녕을 정벌하고 세운 진흥왕 척경비.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다.
지붕을 억새로 이은 창녕읍 술정리의 하병수 가옥.
다리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만년교
창녕읍 남쪽에 있는 영산면은 창녕 안에서도 독특한 문화유산을 여럿 간직해온 고을로 꼽힌다. 영산면을 적시고 흐르는 동천을 가로지른 만년교(보물 제564호). 이를 밟고 건넌 사람은 다리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다리다. 그래서 늘 이 다리를 밟고 사는 영산 사람들은 다리병이 없다는 말도 있다.
1780년 석수 백진기가 축조하고, 1892년 현감 신현조가 석수 김내경을 시켜 중수했다고 한다. 원님이 고쳐준 다리라 ‘원다리’라고도 한다. 만년교라는 이름은 다리가 튼튼하여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으로, 그동안 늘 홍수를 겪을 때도 이 다리는 안전했다고 한다. 건각(健脚)을 빌며 만년교를 건넜으면 이제 여독을 풀 차례다.
창녕 남동쪽에 위치한 부곡온천의 온천수는 78℃로서 우리나라에서 높은 온도를 자랑한다. 부곡이란 이름은 주변의 지세가 가마솥 같이 생겼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니, ‘가마솥에서 펄펄 끓은 목욕물’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온천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부곡온천엔 유황 이외에도 규소·염소 등 20여 종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어 호흡기질환·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제공=창녕군청>
※문의 창녕군청 055-530-2521~5, 배바우산악회 055-533-2998
여행정보
>>숙식
화왕산 입구엔 토담산장(055-533-2022) 등 민박집과 식당이 여럿 있다. 음식점들이 많지는 않고 파전 굽는 냄새가 등산인들을 유혹한다. 창녕 읍내엔 창녕장(055-533-0707), 한성장(532-3005), 세림장(533-8176), 명동장(532-9356), 부일장(533-1018) 등 숙박시설과 다양한 먹거리집이 있다. 읍내서 승용차로 30분쯤 달리면 우리나라 온천수 중 최고의 온도를 자랑하는 부곡온천이다.
이곳엔 부곡하와이관광호텔(536-6331), 원탕고운호텔(536-5655), 부곡로얄호텔(536-6661), 부곡파크관광호텔(536-62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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