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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루터,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장코뱅 추천 4 조회 295 24.08.03 08:00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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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8.03 08:04

    첫댓글 갈5:18 다음 19절 이하도 잘 읽어야 합니다.

  • 24.08.03 18:47

    네, 성경을 읽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24.08.03 08:05

    갈5:19-26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 작성자 24.08.03 08:22

    <매튜 헨리 주석>, 경건 생활의 실천에 대한 강조(갈라디아서 5:13-26)

    본장의 후반부에서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 거짓 교사들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자구책으로 진지한 경건 생활을 실천할 것을 권고한다. 특별히 두 가지 사실을 그들에게 말한다.

    Ⅰ. 서로 다투지 말고 살아할 것을 권고한다. 그는 그들에게(13절) "그들이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자유롭게 하신" 그 자유에 그들을 굳건히 서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이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 것" 즉 그들이 부패한 것에 대한 애착을 갖거나 그러한 행위에 탐닉하지 말 것과 특별히 이러한 일들을 멀리하고 가까이 하지 말며 이러한 일들로 그들 가운데 분쟁과 다툼의 근거가 되게 하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한다. 서로 애정을 간직하여 그들 가운데 다소의 견해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서로 존경과 친절을 베푸는 데 주저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들이 마땅히 지녀야 하는 덕성인 것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즐기는 자유는 방종을 위한 자유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 작성자 24.08.03 08:23

    @@@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하셨지만 그렇다고 그가 율법에 대한 책임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것은 아니다. 복음은 "경건에 관한 교훈"으로(딤전 6:3) 복음이 죄를 조금이라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피하고 정복할 강한 의무에도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라 하겠다. @@@

    2. 우리가 기독교인이 자유 안에 굳게 서야 하겠지만 그 자유를 근거 삼아 기독교인이 베풀어야 할 자애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유를 동료 기독교인들이 우리와 다른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과 다투는 근거로 삼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오직 서로 온후하게 대하며 사랑으로 서로 섬길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득한다. 그가 이 목적을 위하여 그들에게 제시한 두 가지 생각해야 할 점들이 있다.

    (1)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다"(14절)는 사실이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핵심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첫번째 의무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두번째 의무인 것이다. 사도는 본문에서 후자의 것을 언급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의 상호 관계를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 작성자 24.08.03 08:23

    그리고 그가 이 말씀을 그들을 서로 사랑하도록 설득하는 근거로 사용한 것은 이것이 그들의 신앙의 신실성을 나타내 주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으며 또 그들 가운데 존재하는 분쟁과 분열을 뿌리 뽑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이 나타날 것이다(요 13:15). 그리고 자제할 수 있다면, 그렇다고 기독교인들 가운데 있는 불행한 불일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저지하는 작용은 한 것이다.

    (2) 서로 다루는 것은 슬프고도 위험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15절).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만일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대신에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한다. 만일 그들이 인간답게 또한 기독교인답게 행동하는 대신에 사나운 짐승들처럼 서로를 찢으려고 덤빈다면 그 결과로 아무 유익함도 없을 것이고 하나씩 멸망하게 되고 말 것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 분쟁하고 다투는 데 열심을 내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형제들간의 다툼이 계속되면 공동의 멸망밖에 낳을 것이

  • 작성자 24.08.03 08:24

    없음을 기억하자. 서로 먹으려고 하는 자들이 하나씩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기독교 교회는 결국 그들의 자신 손에 의하여 파괴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서로 돕고 같이 기쁨을 나누어야 할 기독교인들끼리 짐승들처럼 서로 물면서 잡아먹고자 한다면 결국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 베풀 것을 보류하시고 사랑의 성령도 그들을 버려둘 것이며 그들을 버려둘 것이며 파괴시키기를 구하는 악령이 득세할밖에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Ⅱ. 그들이 전적으로 죄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강조한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다른 모든 다툼을 그치고 그 대신 죄를 대항하여 싸우는 데 전념을 다한다면 교회를 위하여 큰 축복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 서로 간의 견해 차이 때문에 서로 물고 먹으려 하는 대신에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서와 자신의 삶의 주변에서 죄를 추방하기 위하여 전념을 기울인다면 교회에서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죄야말로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고 싸워야 할 대상이며 죄에 반대하고 죄를 정복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우리의 본분으로 죄에 반대하고 죄를 정복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리의 본분으로 삼아야 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극을 주고 도움을 주기 위하여

  • 작성자 24.08.03 08:24

    사도는 다음 사실을 보여 준다.

    1. 각자의 내부에는 육과 영 사이의 투쟁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17절).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육체(우리의 부패하고 육적인 부분을 이르는 말이다)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고 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모든 역사를 반대하고 영적인 모든 것에 대하여 항거한다. 반대로 "성령(우리의 내부의 다시 새로워진 부분)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고 한다. 또한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의지와 소욕을 반대한다. 이렇게 상반되는 세력의 다툼으로 "우리는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 안에 있은 은혜의 본질이 우리의 타락된 본성이 우리를 이끌어 가려고 하는 모든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것처럼 또한 부패하고 육적인 본질로부터의 도전에 의하여 우리가 하기를 원하는 모든 선을 행할 수도 없게 된다. 자연인에게도 일종의 이러한 투쟁이 있다(그의 양심의 소리와 마음의 부패된 성품이 서로 투쟁한다. 그의 양심의 소리는 자신의 악성을 정복하려고 하며 또 그의 악성은 양심의 소리를 침묵을 시키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일종의 선한 본질이 형성된, 다시 새로워진 사람에게도 옛 성품과 새 성품 사이에 투쟁이 있고 잔존한 죄의 세력과

  • 작성자 24.08.03 08:25

    시작된 은혜 사이에 투쟁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이 양자의 작용이 끊임없이 존재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2. 이 투쟁에서 우리가 보다 나은 편에 속하는 것 또한 우리의 악성에 반대하고 믿음에 거하며 욕망을 버리고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사실이다. 사도는 이것을 우리의 의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승리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제시해 준다. 우리가 이 나은 길을 보다 효율적으로 다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는 한 가지 원칙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즉 그것은 지체 없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악성의 기선을 제압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것은 곧 성령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16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영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역주: 한글 개역에는 성령으로 되어있으나 K.J.V에는 영으로 되어 있음). 본문에 영이란 성령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그는 강림하셔서 그가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한 자들의 심령속에 거하시며

  • 작성자 24.08.03 08:25

    그들이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남아서 선을 거스림으로 은혜로운 본질을 백성들의 마음에 심어 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육체에 항거하게 하신다. 따라서 본문에서 우리에게 요구된 의무는 복되신 성령의 인도와 지배 아래 스스로 거하는 일이며 우리 안에 생성된 새로운 성품의 지시에 순응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의무 우리 생활의 일생 과정을 통하여 그리고 생의 여로에서 주의 깊이 이루어진다면 비록 우리가 우리의 부패한 본성의 거스림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욕망에서 비롯되는 악의 성품에 사로잡히는 데서 보호될 것을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 죄의 감명에 대한 가장 좋은 해독제는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영적인 일들에 관하여 많은 담화를 나누며 영혼의 일들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영적인 부분으로 육욕이 자리잡은 몸의 다른 부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을 말씀의 인도하심에 맡겨야 한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우리가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그의 도움과 영향에 의존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이것이 육의 욕망을 이루는 데서 그들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것처럼 동시에

  • 작성자 24.08.03 08:25

    그들이 참된 기독교인이라는 훌륭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는(18절) "너희가 만일 성령은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그는 "너희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육과 영 사이의 투쟁을 각오해야만 한다. 영이 육체를 거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은 성령을 거슬려 욕당할 것이다"라고 말하였었고 그리고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령이 너희 생의 과정 속에서 우위에 서시게 되면, 또한 만일 너희가 성령이 너희 가운데 심어 놓으신 영적 성품과 기질의 인도와 다스림을 받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원리로 삼고 하나님의 은혜를 너희 본질로 삼는다면 비록 너희가 아직 율법의 명령과 위력 아래 있기는
    하지만 너희가 율법 아래 곧 율법의 명령과 위력 아래 있기는 하지만 너희가 율법 아래 곧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들의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요 성령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고 말씀한다.

  • 작성자 24.08.03 08:26

    3. 사도는 육체의 일들을 분류한다. 육체의 일을 우리는 경계해야한 하고 또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들을 소중히 여기어 열매를 맺어야 한다(19절 이하). 그는 이 두가지를 세목까지 자세히 분류함으로 바울은 나아가 자신이 어떠한 자이냐 하는 점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려 한다.

    (1) 그는 "육체의 일"부터 시작한다. 그것들은 그 수도 많은 동시에 분명한 것이다. 그가 본문에서 말한 것들이 육체의 일들이며 부패하고 타락된 성품의 소산이라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육체의 일들의 대부분은 본질 자체로부터 비치는 빛에 의하여 또한 성서의 빛에 의하여 죄로 규정된 것들이다. 그가 분류한 세목은 대단히 다양한 것이었다. 어떤 것들은 제 7계명에 거스리는 죄들인데 그것들은 "음행, 간음, 더러운 것, 호색"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죄들을 행동에 옮겼을 경우뿐만 아니라 범죄를 실행할 동기가 될 수 있는 그런 생각, 말, 행동도 포함되는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우상 숭배와 술수" 같이 제 2계명에 거스리는 죄들이다. 또 어떤 죄들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으로써 이웃에 대한 죄 또는 형제애라는 철칙에

  • 작성자 24.08.03 08:26

    위배되는 죄들이다. 이 죄가 동기가 되어 "분리함과 이단과 시기"가 유발되며 때로는 "살인"으로도 파급된다. 즉 우리의 동료들의 이름이나 명성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그 생명 자체까지 해치는 죄를 낳는다. 또 다른 죄들은 "술취함과 방탕"같이 자신을 거스리는 죄들이다. 그리고 그는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육체의 일들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주의할 것을 경고한다. 그리고 그들이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 볼 것을 소망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전에 내가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들이 아무리 헛된 소망으로 자신을 속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육체의 일들을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 나라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죄들임이 자명하다. 영들의 세계는 육체의 탐욕에 젖어 있었던 자들에게는 결코 위로가 되지 못한다. 또한 외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먼저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 한"(고전 6:11)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시지도 않으며

  • 작성자 24.08.03 08:27

    또한 그의 앞에 오게 하시지도 않는다.

    (2) 그는 성령의 열매들 또는 거듭난 성품의 열매들에 대하여 분류한다. 이것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맺기 위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들이다(22,23절). 본문에서 우리는 육체 또는 악한 성품이 인간들에게 죄를 행하게 하는 동기가 되고 자극제가 되기 때문에 죄를 "육체의 일들"이라고 칭하였었다. 마찬가지로 은혜는 뿌리가 있으므로 열매가 달리는 것처럼 오로지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은혜를 "성령의 열매"라고 하였다. 사도는 앞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서로 해를 끼치게 하는 육체의 일들에 관하여 주로 분류하였었고, 여기서는 기독교인들 자신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서로 타인을 용납하게 하는 성령의 열매들에 관하여 언급한다. 이 말씀은 그가 전에 주었던 경고나 교훈(13절), 즉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에 상합하는 말씀이다. 그는 특별히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 사랑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희락"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친구와의 담화를 나눌 때 기쁨으로 서로 이해하는 태도를 말하며

  • 작성자 24.08.03 08:27

    그는 하나님과 "화평"하고 또 우리의 마음에 화평을 간직할 것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나 행동이 평화로운 권고한다. 또 그는 "오래 참음"을 권고하는데 이는 분을 더디 내는 인내와 남의 가해에 대하여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또한 "자비"를 권고하는데 이는 부드러운 성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그는 우리가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상냥하고 예의있게 대한 것과 어느 누가 우리에게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너그러이 대하라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였다. 다음 그는 "양선"(친절과 덕행을 뜻함)을 권고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는 말이다. 다음에 그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약속하거나 고백하는데, 있어서 "신실한 것"(충성) 곧 변함없고 정의로우며 정직할 것을 권고하며, "온유"할 것을 권고한다. 즉 온유함으로 우리의 혈기와 원한을 다스림으로 쉽게 격노하지 말 것과 설사 화가 나 있을 때에도 곧 마음에 평정을 회복하기를 권고한다. 마직막으로 그는 "절제"를 권한다. 즉 먹고 마시는 것에 있어서 또한 생활의 다른 즐김에 있어서 지나치지 말고 분수를 지킬 것을 권한다. 이러한 일들을 금지하거나 또는

  • 작성자 24.08.03 08:28

    성령의 열매들이 발견되는 이러한 사람들을 정죄하고 처벌할 그러한 법은 없다고 사도는 말한다. 이로써 그들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것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부에 작용하는 성령의 열매들을 18절의 말씀처럼 그들이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며 따라서 그들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함"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육체의 일들과 성령의 열매들을 분류함으로 우리에게 피하고 반대할 것과 또 귀하게 여기고 촉진시킬 것을 지시함과 동시에 사도는(24절) 이것이야말로 모든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진지하게 노력하고 보살펴야 할 것임을 제보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외양이나 고백으로써 뿐만 아니라 신실함과 진실됨에 있어서도 참 기독교인인 사람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라"고 말씀한다. 그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이러한 책임이 그들에게 주어졌고(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로 세례를 받으므로 그의 죽음과 함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롬 6:3) 동시에 이제는 그가 우리의 죄를 인하여 죽으셨듯이 그들도 신실하게 이 일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들의 주님과 일치하여

  • 작성자 24.08.03 08:28

    죄에 대하여서는 죽어지내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죄에 대하여서는 완전히 승리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자기 안에 성령도 거하실 뿐만 아니라 육체도 지니고 있다. 아직도 그들에게 적지 않은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죄가 그들의 죽을 몸에서 왕노릇하지 못하게 되어 몸의 사욕을 순종치 않게 되었듯이"(롬 6:12) 이제 그들은 죄의 완전한 파괴를 구해야 하며 죄를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겨야 하셨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또 그와 연합되어 있고 또 그에게 관심이 있음을 시인한다면 육체를 그것의 타락한 열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우리의 계속적인 관심사로 여겨야 한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죄의 종으로 복종시키는 자들을 결코 자기의 사람들로 인정하시지 않는다. 사도가 본문에서는 참된 기독교인들을 보살피고, 그 특성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언급만 하였지만 이 말에는 반면에 그가 전에 분류하였던 성령의 열매로 우리가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신앙에 대한 우리의 신실성을 보여 주는

  • 작성자 24.08.03 08:28

    신실성을 보여 주는 데 적지않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악을 행하는 것을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을 행하는 것까지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독교는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죽을 뿐만 아리나 의에 대하여 살 책임도 부여한다. 육체의 일들을 거절한 뿐만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도 요구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참으로 속하였음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의 지대한 관심사로 여겨야 할 것이다. 본래 사도의 의도는 전자를 피하고 후자를 힘쓰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우리의 특성을 유지하는데 의무가 필요한 것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서(25절) 한 마디로 집약된다. 즉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는 말씀에 집약된다. 다른 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오도록 고백한다면 또는 우리의 마음 속의 영이 새롭게 되었고 영적 생활의 원리로 덧입힘을 받았다고 고백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 성령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므로 그것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는 말씀이다. 그는 전에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은

  • 작성자 24.08.03 08:29

    하나님의 자녀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수여되는 특권이라고 말하였다(4:6). 이제 그는 말한다. "우리가 그의 자녀에게 속한 자로 고백한다면 또 그러한 특권을 획득한 자로 고백한다면 그러한 고백과 일치하는 성품과 행동을 통하여 그것을 보이도록 하지."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우리가 인도를 받고 지배를 받고 있는 그 원리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롬 8:5).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의 영에 동참한 자임을 보이고자 한다면 "육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우리는 육체의 일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진지함을 보여야만 한다.

    4. 사도는 본장을 교만과 시기에 대하여 경고를 함으로 결론을 맺는다(26절). 그는 전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훈계하였었다(13절). 그리고 이 일 대신에 "서로 물고 먹으면" 그 결과가 어떠할 것도 그들에게 상기시키셨다(15절). 이제 사도는 그들을 성령의 열매는 맺게 하고 육체의 일은 금하도록 하기 위하여 헛된 영광을 사모하는 것과 또는 사람들의 칭찬과 박수 갈채를

  • 작성자 24.08.03 08:29

    부당하게 사랑하는 것을 하지 말도록 그들에게 경고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을 구하다 보면 틀림 없이 서로가 서로를 격동시키게 될 것이고 서로 시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영과 시기가 기독교인들 가운데 우세하게 역사하는 이상 그들은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무시하고 경멸해 버리게 될 것이고 또 그들이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들이 자기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할 것이요, 그리고 어떤 사람 때문에 자기들의 명예가 손상될 경우가 생길 때 그들을 질투하게 되고 말 것이다. 바로 허영과 시기가 모든 분쟁과 다툼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로써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서로 유지해야 할 사랑과는 일치하지 않게 생활하게 되며 따라서 그들은 기독교 신앙 자체의 명예와 이익에 대단한 손실을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 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사람들로부터 오는 영광은 헛된 영광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소망스러운 것이기는 커녕 우리를 죽게 하는 것이다.

    (2) 인간들의 찬조와 칭찬에 대한 부적절한 맹종은

  • 작성자 24.08.03 08:30

    현재 기독교인들 가운데 존재하는 불행스러운 분쟁과 다툼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24.08.03 18:58

    @장코뱅 와! 내용이 길고 풍성하네요. 훑어 보기만 했습니다.

  • 24.08.03 19:03

    루터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매튜 헨리의 주석은 방대해서 시간을 두고 읽겠습니다.

  • 24.08.05 18:08

    루터의 깊고 확실한 해석을 읽고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책은 없어졌으나 육체의 정욕으로 인한 죄의 본성은 남아 있어서 끊임없이 율법이 우리를 죄책을 가지도록 몰아대고 위협하지만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했을 때 율법에 매이지 않고 이길 수 있었다는 간증 섞인 말씀을 더 많은 분들이 알면 좋겠습니다.

  • 24.08.05 18:31

    경건하고 신실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힘쓰면 죄의 본성을 거스르고, 율법의 권능이 약해진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 24.08.05 19:20

    네. 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성화라고 생각합니다.

  • 24.08.05 19:29

    율법의 제3 용도와 관련해서 루터, 루터파와 개혁주의 입장이 다르다고 하던데요. 그런 요소가 보이기는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4.08.05 19:36

    그렇군요. 그런 글도 카페에 있던 것 같던데,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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