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한 번도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분노의 감정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럴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살령 그렇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내면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의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데일카네기가 쓴 '인간관계론'에는 이런 글이 있다고 합니다. 옯겨온 글입니다만..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을 논리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며 편견으로 가득차 있고, 자존심과 허영심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 감정이 이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정신체계를 지닌 존재가 바로 인간일 것입니다. 감정이 이성의 통제권 안에 늘 갇혀있는 것이 아니지요. 감정이 폭발하면 이성은 걷잡을 수 없이 무력해집니다.
감정이 잘못되면 문제가 생기지요. 좋은 감정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나쁜 감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분노는 나쁜 감정에 속하는 것이지요. 감정은 분명 자기 관리의 영역입니다. 자신이 다스려야 할 분야입니다. 영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분노 그 자체가 악의 수괴인 악마, 즉 사탄의 소유물, 즉 기능 또는 세력은 아닙니다. 사탄이 분노를 도구화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뿐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분노를 발판으로 삼아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분노는 마귀에게 악을 행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구실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뚜렷합니다. 그 책동의 목적은 불행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귀가 하는 책동의 목적을 이렇게 도적에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또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10:10).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파괴하려는 마귀의 공작이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는 반드시 다스려져야 합니다. 처리해야만 하는 해로운 세력입니다.
Phil's ToGather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Dealing with the Anger Inside, 즉, '내면의 분노를 다루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Don't give the Devil a foothold in your life. If you give him an inch(2.54cm), he'll take a mile(1.61km). In our anger, let's not sin but deal with our anger, today!
위의 영문을 번역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마귀가 당신의 삶에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마귀에게 1인치(2.54cm)를 내어주면, 마귀는 1마일(1.61km)을 취할 것입니다(조금 분노를 나타내어도 마귀는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엄청나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오늘은 분노하는 경우에도 그 분노를 다스려서 죄를 짓지 맙시다!'
위의 글은 성경의 에베소서 4장26절과 27절을 가지고 쓴 글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이 말씀에서 '틈을 타지 못하게'라는 부분에서 '틈'에 해당하는 영어가 바로 '후트홀드'(foothold)입니다. 발판, 디딤돌, 디딤판, 이런 뜻이지요.딛고 올라갈 수 있는, 딛고 일어설수 있고 넘을 수 있는, 이런 기능적인 도구가 되는 셈이지요. 분노는 마귀가 악을 행하기 위하여 딛고 뛰어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악이라는 것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이고 살상적이지요. 행복과 생명을 빼앗고 죽이는 잣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분노는 1인치가 1마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가면 갈수록 깊어지고 굳어져서 풀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더욱 악해집니다. 포악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는 그날 해지기 전에 해소시켜야 합니다. 부부가 그렇고 부모와 자식이 그렇고 모든 인간 관계가 바로 그날 해소되어야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풀어야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관용하고 용서해야지요.
자존심을 내려놓고 허영심도 버리는 것이 좋은 일이지요.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일이 중요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셨어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새"(누가복음23:34).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마음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줄 수 있습니다. 나를 분노케 한 사람들, 그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분노의 불길을 끄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십시오. 못자국 난 예수님의 손길은 치유의 능력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또한 치유의 능력이 되십니다. 성령으로 영혼이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언제나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치유의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5:22-24).
그렇습니다. 분노는 위의 말씀처럼 인간의 정(情)에 해당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이미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입니다. 분노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육의 몸을 입고 있으니 그 분노를 완전히 다스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럴더라도 거룩하신 성령의 사람으로서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힘으로 그 분노를 다스려야지요. 마귀의 악한 책동에 발판을 내어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분노조절장애, 즉 분노 조절하기가 어렵고 힘들고 감당키 어렵더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