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사랑
임두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찌뿌듯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오랜만에 완주군 오봉산을 찾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산들바람까지 더해주니 야외로 나오기 잘했구나 싶었다. 산 어귀에 들어서니 이른 아침인데도 등산객들이 줄을 이었다. 저 멀리 솟아오른 다섯 개의 봉우리에는 가을이 짙어가는 듯 울긋불긋 아름답고 산길 따라 밭 가장자리에는 감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한눈에도 감나무고을임을 짐작케 했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마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대봉감에 입맛을 다신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는 절에 연등을 매달아 놓은 듯 귀물스럽다. 자연의 섭리가 아니고선 그 누가 이 아름다움을 선사했을까?
내 고장 시골 집 뒤란에는 감나무 여러 그루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어른 팔로 한 아름 반이 넘을 정도로 고목이었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감나무로 삭정이가 많아 아무나 함부로 오르질 못했다. 어느 날, 집안아저씨가 감을 따다가 삭정이를 디뎌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참으로 큰일이었다. 다행히도 머리와 팔다리는 괜찮았지만 몸통에 피멍이 들고 부어올랐다. 그 때만해도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동네 어른들은
“큰일 났네! 골병에는 0물이 최고라고 하던디…”
라는 말에, 0통에 용수를 박아 놓고서 걸러 마시게 했던 일이 새삼스럽다.
내 고향 진안(鎭安) 사인동마을은 감나무고을이라 불릴 만큼 감나무가 많았다. 감을 따는 가을철이면 장사꾼이 몰려들어 장터를 방불케 했다. 어른들은 감나무에 올라가 간짓대로 감을 따야 했고, 아낙과 어린이들은 쉴 새 없이 선별작업에 들어갔다. 행여, 감 표면에 흠집이라도 생길까 봐 갓난아이 다루듯 해야 했다. 우리 집엔 논밭이 적어 돈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고작해야 담배농사에 누에치기가 수입원의 전부였다. 다행히도 산골 밭에는 감나무가 많아서 가을이면 한 밑천 했다. 그 돈으로 밀렸던 수업료를 내고, 식량도 구입할 수 있었으니 감나무사랑은 남다를 수밖에…….
중국 당唐나라의 단성식段成式의 감나무 예찬론을 보면
“감나무는 잎이 넓어 글씨를 쓸 수 있으니 문文. 목재가 단단해서 화살촉을 깎으니 무武, 겉과 속이 한결 같으니 충忠, 치아가 없는 노인도 즐겨 먹을 수 있으니 효孝, 서리를 이기고 오래도록 매달려 있으니 절絶이라고 했다. 그 다음으로 목재가 검고黑, 잎이 푸르며靑, 꽃이 노랗고黃, 열매가 붉으며紅, 곶감이 희다白 하여 오색오행五色五行, 오덕오방五德五方을 모두 갖춘 예절지수禮節之樹이다.”
라며, 수많은 나무 중에서도 감나무를 으뜸으로 여겼다.
어린 시절, 감꽃과 감또개가 떨어지던 봄이면 세 살 터울 여동생과 감또개를 실에 뀌어 목걸이와 팔지를 만들고, 감꽃을 찧어 사금파리에 올려놓고서 소꿉장난을 했었다. 어느 날이었다. 배고픔에 감 말랭이를 주워 먹고 배가 부풀어 나뒹굴었던 일,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홍시를 따려다가 지붕으로 떨어졌던 일, 어머니가 홍시광주리를 머리에 얹고 7Km 넘는 진안(鎭安)까지 다녔던 일들을 생각하니, 어린 시절의 감회가 새롭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바란다.”
는 말이 있다. 노력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과일나무는 가꾸지 않고 수확의 기쁨만 누리려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완주군 봉동읍 변두리 얼마 되지 않은 밭에 감나무와 복숭아, 사과, 배나무 몇 주씩을 심어 놓았다. 그러고는 한 해 두 해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과일이 농익는 날이면 손자손녀들을 불러 놓고, 과일을 손수 따도록 해서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게 나의 바람이자 꿈이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가을자락에 널려있는 감나무와 마주하니, 나훈아가 부르던 ‘홍시’가 떠오른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땜에 울먹일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하략”
감나무는 내 가족을 구원해준 은인이고 구세주였다. 어렵던 시절, 그가 아니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에서 고달파했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