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혁명이라는 전 지구적 변환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특히 코로나19 재난 상황을 겪으면서 돌봄 위기, 돌봄 공백에 대한 말들이 넘쳐났다. 돌봄 위기는 아동, 노인, 장애인 당사자 개인의 위기이기도 하고, 그들을 돌보는가족, 보호자의 위기이기도, 그리고 돌봄 노동자의 위기이기도 할 것이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발달장애인 부모를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가족 돌봄체계가 공적 돌봄체계로 전환되기 시작하였으나 발달장애인 지원서비스는 사각지대가 많아 가족의 돌봄 부담이 여전히 높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자녀의 교육 기관 휴관 및 온라인수업(22.5%), 사회복지 기관 휴관(13.2%) 등으로 돌봄 부담이 가중되었다고 하였다. 돌봄부담으로 부모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둔 비율이 20.5%에 이르렀고, 직장을 그만둔 쪽은 어머니가 78.8%로 나타났다.
돌봄은 사랑, 애정과 같은 도덕적 가치이고, 이타적 관계에 기반한 실천이자 윤리적 태도에 기반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편 돌봄은 덜 성취적이고 흔적이 남지 않는 지루하고 따분한 일, 사랑의 노동이라고 한다. 즉, 돌봄은 무급의 가사노동, 그림자 노동으로 불리고, 돌봄 가족은 숨겨진 환자(hidden patient)라고 지칭한다.
돌봄의 특성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이다. 즉, 돌봄의 양가성과 복합성을 반영하고 있다.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의 문제이다. 돌봄의 문제는 고령화, 저출산 등 인구구조의 변화, 가족형태의 변화, 노동시장의 변화 등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돌봄을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대응이 바로 ‘사회적 돌봄’, ‘돌봄의 사회화’ 정책이 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돌봄을 좁은 의미에서 보면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사회적 보호·지원·돌봄을 포괄하는 사회적 지원서비스라고 할 수 있고,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다양한 제도적 예방·보호·지원서비스와 돌봄 제공자에 대한 서비스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돌봄은 주로 사적 영역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관계적 측면에서 수행되어왔으나 공적 영역에서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정의됨으로써 하나의 사회서비스로 자리매김하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여기서 사회서비스로 정의한다는 것은 개인의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욕구와 필요, 특성과 상황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스핑 앤더슨(G. Esping-Andersen)은 돌봄의 사회화정책을 탈가족화 정책이라 명명하였다. 탈상품화가 노동시장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면, 탈가족화는 가족의 복지 부담을 덜고, 가족에 대한 개인의 복지 의존을 감소시키는 정도라고 개념화하였다. 가족이 떠맡고 있는 복지와 돌봄의 책임이 국가나 시장의 복지 제공에 의해 완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국가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시장의 돌봄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여 돌봄 노동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 공급하는 돌봄서비스를 구매하는 경우, 돌봄 노동이 사회화되었다고도 볼 수는 있지만 시장화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릴 수있다. 이는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가족의 돌봄 비용에 대한 지불능력에 따라 돌봄 격차를 야기시킬 수 있고, 다시 가족의 돌봄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
돌봄은 돌봄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돌봄의 부담으로 인해 돌봄 제공자는 개인시간보다 돌봄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각종 사회적·직업적·여가 활동에 제한을 받는다. 그 외에도 돌봄으로 인한 심리적·정서적 스트레스와 우울, 신체능력 저하, 돌봄 수행과정에서 가족 간·세대 간 갈등을 겪기도 한다. 고령화 등 인구학적 변화는 돌봄의 장기화를 가져오며, 돌봄 제공자인 가족의 돌봄 부담을 높이고 삶의 질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가족 돌봄 부담에 극단적 선택까지
돌봄가족에 대한 지원 필요성은 언론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8월 부산에서는 지체장애 5급인 70대 남편이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바 있다. 같은 해에 또 다른 돌봄가족인 80대 남편은 3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살해하고 본인도 숨을 거두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사건들의 공통점은 고령층 돌봄 대상자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주 돌봄 제공자인 배우자의 스트레스, 우울감이 심화되었고, 결국엔 배우자와 자신까지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점이다.
류은숙 인권활동가는 ‘돌봄과 인권’에서, 돌봄 제공자에게 혼자 감당해야 하는 독박 돌봄까지 가세한다면 돌봄 부담 가중, 소진으로까지 이어져 더욱 위험해진다고 설명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돌봄 제공자가 개입함으로써 돌봄의 분산, 돌봄의 배분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것이 사회적 돌봄의 기초가 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정의의 원리에 비추어 돌봄의 필요와 가치를 분배하는 원리를 함께 고려함으로써 돌봄의 책임을 사회적책임으로 확장하여야 한다. 돌봄 책임의 사회화가 이루어진 상태로써의 사회적 돌봄이 구축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돌봄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가운데 돌봄 공백과 돌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돌봄 정책이 구축되려면, 사회적 돌봄과 가족 돌봄 간의 균형점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노동·돌봄분야 양성평등정책 국민인식 조사’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돌봄 관련 우선정책 과제로 필수적 돌봄서비스 유지와 안정성 강화가 31.6%, 공적 돌봄시설 확충이 30.5%, 가족을 돌보는 사람에 대한 정서적·경제적 지원 강화가 29.0%, 돌봄 노동자 처우개선이 28.1%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돌봄이란 복잡한 삶의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돌봄은 개인과 가족, 개인과 개인, 그리고 개인과 국가 등 그 관계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고립된 돌봄가족,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는 사회적 돌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이다. 돌봄 정책은 그 사회의 규범, 물질적 수준, 행위자의 가치관 및 행태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 돌봄과 일 사이의 균형 속에서 돌봄 책임이 평등하게 순환되도록 하는 사회적 돌봄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동·장애인·노인·환자 돌봄을 모두 포괄하는 가족 휴직제도로의 확대, 가족 돌봄 제공자에 대한 간병비·돌봄수당 지원, 긴급돌봄·상시돌봄체계 구축,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한 휴식·심리상담서비스 제공, 사회적 지지망 지원 등 돌봄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또한 돌봄가족도 돌봄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소수의 사례이지만 정신장애인 가족 구성원을 가족상담인력(가족지원활동가)으로 양성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장애인부모 동료상담가 교육 등 다양한 유형의 돌봄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 돌봄가족 자조모임으로부터 출발해 돌봄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근로와 자립을 위한 사업을 운영하며, 돌봄가족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과 휴식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운영 중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돌봄가족을 위한 사회적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돌봄 자원들이 개인 단위와 가족 단위에서, 동시에 지역사회와 국가 단위에서 공급·축적되어야 하고, 돌봄가족을 둘러싼 지역사회 네트워크, 공공기관, 보건의료기관, 복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사회적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역사회 내에는 아직도 고립된 돌봄가족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이슈들과 욕구들이 산재할 것이다. 보다 효율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통해 사회문제의 민낯을 살피고 개입전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민간 사회복지 영역에서 는 그동안 축적해 온 사례관리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여 신속하고 적합한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일 민관 협업이 가능하다면 장기적인 비전하에 단계별 개입전략을 구조화하고 사회적 울타리를 구축함으로써 서비스 공백을 조금씩 메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사람은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
힐러리 코탐(Hilary Cottam)은 그의 저서 ‘Radical help’에서 ‘변화의 작업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지지와격려가 필요하고 한발 물러서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두를 돌보는 것은 모든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래디컬 헬프, 이전과는 근본부터 다른, 완전히 새로운 돌봄체계이다. 이 체계에서는 모든 사람의 역량이 성장하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본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설계하고 만들어야 하는 사회적 돌봄 정책에 대한 변화의 작업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그 정책은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어야 할 것이다. 국가가 보편적인 공공 돌봄을 구현하고, 돌봄의 사회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간에 생애 어느 시점에서 또는 생애 전반에 걸쳐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돌봄에 책임을 가지고 돌봄 제공에 참여하는 돌봄 책임의 사회화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사회적 돌봄이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복지타임즈(http://www.bokj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