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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사유, 사념에 젖은 듯하고 눈빛이
살아있다. | 10대제자, 16나한, 오백나한 등 526체 영산전, 나무와 흙벽 그대로인
백골단청 고려오백나한도 14점과 순번, 존명 일치 생로병사 애환 밴 천태만상의 나한 표정
지눌스님 정혜결사를 펼친 도량
나한(羅漢)은 범어 아르한(arhan)의 음역인 아라한의 줄임말이다. 아라한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수행을 통하여 일체의 번뇌를 끊고
수행자들의 최고 계위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를 이른다. 공양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응공(應供)으로도 부르고,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또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무학(無學)으로도 부른다. 불제자들은 경전에 따라 여러 숫자의 집합단위로 등장한다. 〈유마경〉에서는
십대제자, 현장스님이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에서는 십육나한, 〈증일아함경〉, 〈오분율〉 등에서는 오백나한으로 나온다. 십대제자,
십육나한, 오백나한 등은 부처님 사후 칠엽굴에 모여 아난존자가 경을, 우바리존자가 율을 암송하여 경과 율을 결집한 ‘1차결집’의 역사적
인물들이다. 동시에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 ‘수기품’ 등에서 광명여래(가섭), 명상여래(수보리), 전단향여래(목건련),
화광여래(사리불), 법명여래(부루나), 보명여래(교진여 비구와 500아라한) 등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장차 부처로 수기(授記)를 받으신
경전상의 성자들이다. 미륵하생 때까지 이 땅에 머물며 불법을 전하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역할을 부촉 받았다.
은해사 거조암(居祖庵)은 그 아라한들의 세계다. 거조암은 ‘조(祖)’가 머무르는 절, 거조사였다. 그런데 거조사의 ‘조’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팔공산의 아미타신앙을 바탕으로 아미타여래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법을 전하고 정법안장하는 선종의 조사(祖師) 느낌이
강하다. 아라한의 이미지가 선종의 조사에 겹친다. 거조사의 이름과 오백나한상이 인과의 선후로 연관되어 보인다. 특히 보조국사 지눌께서 거조암에
7년간 머물면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천명한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보면 고승 조사와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거조사는 보조국사 지눌과의
인연으로 인해 한국불교사에 중요한 시공간으로 평가된다. 1190년 늦봄에 지눌은 이곳 거조사에서 “땅에 넘어진 사람,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로 시작하는 〈권수정혜결사문〉을 발표했다. 한마음을 몰라서 끝없는 번뇌 속에 있는 이가 중생이고, 한마음을 깨달아서 한없는 지혜를 드러낸
이가 부처이니 마음을 떠나서는 불교를 논할 수 없다고 했다. 지눌은 깨달음에 이르는 올바른 길로 고요함과 깨어있음으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나가는, 정혜쌍수(定慧雙修)에 힘쓸 것을 권했다. 한국불교사의 파사현정의 큰 획의 자취가 거조사에 유서깊은 인문의 향기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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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과 시선, 자세가
천태만상이다. | 영산전, 해인사 장경판전 닮은 고려건축
거조암의 핵심불전은 영산전이다. 영산전의 외양은 한눈에 보기에도 흔치않은 구조다. 현존하는 고려건축에서 보이는 법식이 눈에 띈다. 벽체의
살창이라든지 단순한 주심포식 건물에서 오래된 연륜을 짐작할 수 있다. 근래 해체 수리과정에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해 1375년에 지은 고려시대
건물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영산전은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가로로 확장해나간 장대함이 특히 인상적이다. 가로 30m. 세로 10m의 수평성이
강하고, 또 벽체의 투박한 나무 살창구조에다 단청을 전혀 입히지 않은 가식없는 백골단청의 불전이다. 여러 면에서 해인사 장경판전을 연상케 한다.
내부천정 역시 서까래 목재 그대를 노출해서 자연 그대로의 선적인 아름다움과 뼈대의 힘을 보여준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처럼 건축 전체에 간결하고
소박한 윤리적인 아름다움이 흐른다. 불필요한 것은 생략하고 꼭 필요한 요소들만 갖춘 절제된 내면이 엿보인다.
영산전은 삶의 기침소리로 가득하다. 사람의 표정을 취한 오백나한이 천태만상이다. 자유분방하고 명랑하며 왁자지껄하다. 영산전을 들어서면
공간은 삶의 애환이 밴 저잣거리 골목처럼 익숙하다. 골목을 접어들면 한번쯤은 스쳐 지났을법한 한국인들의 표정을 만난다.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에 모신 오백나한은 탱화가 아니라 석조조형이다. 10대제자, 16나한, 오백나한을 결집한 526체의 대규모 나한세계를
펼쳐 놓았다. 저마다 다른 형상을 취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나한세계로 대단히 특별하고 파격적이며 세상에 보기 드문 장면이다. 운문사, 증심사 등의
오백전에도 오백나한상이 모셔져 있지만 거조암 영산전의 오백나한상과는 규모, 형식, 조형의 예술성 등에서 비교불가로 차원이 다르다.
오백나한상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알려진다. 그 위에 두터운 흰색 호분을 입혔다. 신도들의 증언에 의하면 40년전쯤 호분이 버짐처럼 벗겨졌을
때 석재가 경주흑석처럼 검은 빛을 띄고 있었다고도 전한다. 오백나한 존상에 입힌 색채도 변화를 거듭했다. 주지스님 태관스님이 필자에게 보여준
40여년 전의 칼라사진에는 모든 나한의 가사는 지금과 다르게 흰색 호분으로만 입혔고, 머리만 청색, 검정, 빨강, 초록, 노랑 등의 페인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20년 전쯤에 새로 개칠하면서 페인트를 벗겨내고 대신 파스텔톤의 일본안료로 채색해서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갖춘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나한의 머리색은 흰색, 검정색, 회색의 무채색으로 통일했다. 하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점은 그 정확한 재질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누가 언제 어떻게 제작하였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 일체의 제작정황을 모르는 까닭에 더욱 신비감을 심화시키고, 사람들의 신심을 불러
일으켜서 나한기도도량의 영험을 미묘하게 지속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거조암은 3일만 정성껏 기도하면 영험을 본다는 입소문이 자자해서
나한기도도량으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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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제자, 십육나한, 오백나한이 결집한
526체의 부처님 상수제자들. | 청문 의례 따른 오백나한 차례와 존명
거조암 오백나한의 불가사의한 특징은 모든 나한의 존명을 밝히고 있는 점이다. 즉 모두 이름표를 달고 있다는 것이다. 운부암의 영파스님이
18세기말에 허물어진 거조사를 다시 세우면서 1805년에 한 분 한 분의 존명을 밝혔다고 전한다. 오백나한상의 존명과 차례번호는 영파스님이
무학대사의 의례집을 참조하여 편찬한 〈오백성중청문(五百聖衆請文)〉 의식집에 따른 것이다. 〈오백성중청문〉은 은해사 박물관에 보관중인 40여쪽의
의례집이다. 석가모니불의 십대제자와 십육나한, 오백나한을 차례로 봉청하고 모든 이름을 밝혀두고 있다. 이 의식집에서 밝힌 나한존자의 순번과
이름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중인 7점의 나한도를 포함해서 현존하는 고려 오백나한도 14점의 화제 묵서에서 밝히고 있는 순번과 존명이 거의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 놀랍다. 그것은 하나의 범례의 모듈을 갖췄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어 대단히 실증적인 문헌자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526체의
나한은 의상스님의 210자 화엄일승법계도처럼 법계도의 흐름으로 봉안하여 법화경의 핵심 가르침인 일승불의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을 일깨우고
있다. 청문에 따른 나한의 봉청 차례를 살펴보면 후불벽 뒷벽 끝자락에서부터 ‘십대제자’ 제1 가섭존자, 제2 사리불존자, ... 제10
부루나존자로 이어지고, ‘십육나한’은 제1 빈도로존자, 제2 가락존자, ... 제16 주다반탁가존자의 순서로 청하고 있으며, ‘오백나한’에
와서는 제1 법해존자, 제2 전광존자 순으로 봉청해서 제500 무량의존자로 매듭 짓는다. 법계의 흐름은 순환과 대칭의 커다란 나선형
구조다.
사탕, 동전, 쌀 등의 만발공양
사람들은 그 법계의 나선형을 따라 기도를 하고 공양을 올린다. 나한 앞에는 접시와 발우가 놓여 있다. 500개가 넘는 발우라서 오백나한에
올리는 공양을 ‘만발공양’이라 부른다. 미황사 괘불재에 만인이 올리는 만물공양만큼이나 공양장면이 재미있고 가슴뭉클하다. 한 분에게 100원동전
하나씩만 올려도 6만원이 필요하다. 그런 사정이고 보니 사탕 한 알씩 올리는 장면이 연출 된다. 발우마다에 사탕 한 알씩 올리고 합장의 예를
올리는 모습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때로는 쌀 한줌씩, 꽃 한 송이씩 육법공양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감동적인 대목은 그 회향에 있다.
공양물로 발우에 오른 사탕과 쌀은 주변의 군부대, 복지회관, 농협, 우체국 등에 회향해서 이웃의 삶에 되돌려진다. 만인에게 회향하는 대목이 인상
깊다.
거조사 영산전에 526체의 나한들이 결집해 계신다. 어떤 분은 즐겁고, 어떤 분은 심각하며, 어떤 분은 깊은 사유에 젖었다. 마치 인생의
모든 표정과 감정을 결집해 놓은 것 같다. 이 골목 저 골목,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만나는 인생도처의 얼굴들. 인생도처의 표정들이다. 낯설지
않은 친근한 이웃들을 만난다. 저마다의 표정에는 생로병사의 애환과 깊은 탄식, 놀라움, 기쁨, 슬픔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눈빛이 살아 있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아라한에 앞서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일대사인연의 방편이 읽혀진다. 사람의 아들에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아라한과의 최고계위에 올랐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여래로 수기 받으신 분들, 헤아려볼수록 감동적이고 위대한 두타행의 걸음이다.
지눌스님의 정혜결사문의 한 구절이 훈습처럼 밴다. ‘수심지외 무별행문(修心之外 無別行門)’ 마음을 닦는 것 외에는 따로 수행하는 문이 없다. 그
절집의 빛은 만고청산 지눌스님의 빛이고, 영산전 오백나한의 빛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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