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응원하면 생기는 일 / 복향옥
전부터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을 두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중2 무서워 김정일이 남침 못 한다는 말이었다. 지금도 이름만 김정은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만큼 누구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시기의 아이들이라는 말일 것이다. 내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곰살맞게 얘기하고, 내가 밤늦도록 설거지하고 있으면 등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던 아이였는데 언젠가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툭 하면 볼멘소리를 하고, 참견 좀 할라치면 저음으로 “왜요?”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바람에 내 가슴으로도 화가 들락거리곤 했다. 어려서부터 서먹했던 아빠와는 냉기가 더해져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내 친정아버지보다 더 고지식하고 권위적이던 남편에게 있어 아들은 항상 기대 이하였다.
어느 날 문득 아들에게서 느껴진 분위기는, 풍문으로만 듣던 ‘일진’의 것이었다. 그러나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얼른 의심을 밀어냈다. 어쩌다 그런 마음이 들면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우리 아들, 잘하고 있지? 엄만 널 믿어.”라고만 했다. 진심으로 아들을 믿었다. 공부보다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혹시 누군가를 때리고 싶을 만큼 화날 때는 벽을 쳐서 차라리 네 손을 깨라고 말하는 내 마음의 의도를 아들은 알고 있다고 믿었다. 잠시 그러다 말 거라고 믿었다. 대학생이 돼서 제 입으로 과거를 고백했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아들에게 일진의 무리임을 의심하는 말이나 마음 떠보는 식의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이듬해, 3학년이 되면서 아들은 공부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독서실 정기권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아주 잠깐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으나 또 믿기로 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응원과 찬사의 말을 쏟아부었다. 잘 생각했다, 집에 있으면 게임만 할 텐데 독서실에서 30분이라도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으면 그게 어디냐, 하면서 그 생각을 격려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개학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아들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새로 오신 선생님이 출석을 확인하던 중에 제 이름을 다시 부르더니 “일어나봐.” 하더란다. 그리고는 아래위로 훑어보는데 그 눈빛과 표정에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다. 얘기 들으면서 그 광경을 상상하는 내 마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덥석 아들 말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상황의 진실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학교 가기 싫다며 여전히 불쾌해하는 아들에게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선생님이 아직 네 진가를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네가 얼마나 괜찮은 앤지 알게 되면 아마 너한테 반할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며칠 동안 고민했다. 따지고도 싶었다. 왜 아이를 치러보지도 않고 선입견으로 판단하느냐, 그 선입견을 불어넣은 선생님이 누구냐, 아이들의 인생을 선도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그러면 되느냐 묻고 싶었다. 하지만 훗일을 생각하니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며칠을 더 보내고 나서 학교에 전화했다. 그 선생님을 찾아, 김아무개 엄만데 아이 문제로 상담할 게 있노라 했다. 일부러 상담 날짜를 멀리 잡았다. 상담실에서 만난 선생님께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많은 아이를 상대하다 보면 누가 누군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를 때도 있으시죠? 전에 제 아이를 잠깐 칭찬하신 적이 있었나 봐요.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지금은 제가 잊었는데요, 아무튼 그날 기분 좋아서 왔더라구요. 남편이 좀 무뚝뚝한 편이라 아이가 칭찬에 고파해요. 2학년 때 많이 놀긴 했지만, 심성은 괜찮은 아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대부분 탐탁지 않게 생각하실 텐데, 선생님은 새로 오셨으니까 선입견 없이 봐주실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워낙 학생들이 많아서 어려우시겠지만, 혹시 보시면 가끔 격려해 주세요. 아직 어린애 같아서 칭찬해주면 더 잘하려고 애쓰더라구요. 저는 제 아들을 믿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아들은 헛웃음을 지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랑 복도에서 장난치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자기를 부르더니 따라오라고 하더란다. 혼내려는 줄 알고 잔뜩 긴장해서 교무실로 따라갔는데 공부 잘되냐고, 요즘 수업 태도가 좋다고 칭찬하더란다. 게다가 초코파이까지 주니 어이가 없었단다. 며칠 전부터 자기를 볼 때마다 빙그레 웃는 것도 이상했는데, 아무래도 뭘 잘못 드신 것 같다는 말에 결국 난 폭소했다.
학교로 그 선생님을 찾아갔던 그 날, 그가 내 말을 믿든지 안 믿든지는 상관이 없었다. 다만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도 알고 있으며, 누가 거짓말을 했든지 우리는 선생님께 나쁜 감정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내가 찾아간 일이 계기가 돼서 선생님의 마음이 바뀐 건지, 첫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자세를 내 아들이 오해한 건지 그건 지금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 세 사람 사이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관계가 좋아졌다. 요즘도 거리에서 만나면 우리는 오래된 친구처럼 인사를 나눈다.
첫댓글 글솜씨는 기본이고 예쁜 얼굴에 현명하기까지.
복 선생님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요?
이토록 지혜로운 엄마를 둔 자녀가 삐뚤어질리가 없죠.
에고, 부끄럽습니다.
제가 좀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하
무튼 고맙습니다. 담에 뵈면
커피 한 잔 대접할게요.
선생님의 믿음 덕분에 아들이 멋진 어른이 된 것 같아요.
믿는다는 말 한 마디가 힘찬 응원가인 셈이죠.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믿으면 그 믿음이
내 소중한 사람에게 흘러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 이 말을 덧붙여야겠다. 하하하
현명한 엄마이시군요.
복스럽게 살고 있다는 그때 티비의 나레이션이 딱 맞는 말이네요.
현명한 어머니 덕분에 아들의 학교 생활이 덜 고단해졌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것만 지켜도 사회 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훌륭한 학부모입니다. 그래요. 학생에게 선생님의 격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잘 하셨네요. 글도 매끄럽고 재미있습니다.
참 현명하고 좋은 학부모네요. 저도 선입견으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아이들에게 상처 줬던 적이 알게 모르게 많이 있어서 글을 읽으며 성찰하며 잘 읽었습니다.
현명한 학부모 덕분에 동하가 제대로 자란거군요.
선생님의 한마디의 칭찬과 격려가 아이를 성장하게 한다는 건 맞습니다.
저도 그랬냐고 물어 보면 아쉽게도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