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주님 안에서 더 큰 뜻과 더 큰 복을 받아라
08/30금(金)엡 1:7-10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엡 1:10).
우리의 자아는 거짓 자아와 참 자아가 있습니다. 참 자아는 주님의 마음이고, 거짓 자아는 내 마음입니다. 우리는 거짓 자아를 자기 자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짓 자아의 사람은 성경을 보아도 자기중심으로 봅니다. 참 자아로 사는 사람,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모든 말씀이 주님의 생각으로 깨달아집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엡 1:3). 참 자아로 살면 신령한 복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엡 1:4). 흠이 없다는 것은 사단이 공격할 틈을 잡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흠이 많다는 것은 귀신이 들어오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상처가 있는 곳에 파리가 붙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의 원형은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흠이 없도록 한다는 것은 창조의 원형으로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엡 1:5). 천국에 가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엡 1:7). 죄 사함을 받는 전제는 자아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이 죄 사함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기 위함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보다 더 큰 뜻은 마귀에게서 자유하기 위함입니다. 마귀에게서 끊어져야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의 의인이 되는 것이 복음의 목적입니다. 이미 자아가 죽은 사람에게는 죽음이 와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에 눈뜨면 죽음에서 해방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사단에서 해방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일꾼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엡 1:8-9).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륜을 위해 구원하셨습니다. 경륜이란 내 생애 가장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구원이지만 젊어서 구원하신 것은 놀라운 경륜이 있어 그때를 위해 예비하신 것입니다.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것,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있습니다. 나를 통해 나의 가정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면 됩니다. 빌립보 교회에서 간수를 구원하신 것은 그 사람을 통해 그 가정을 구원하는 것이었고, 그 가정을 통해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복음에 눈이 떠져 큰 뜻을 이루어야 큰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엡 1:10).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것이 경륜입니다.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날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우리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And...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제게 마음에 새기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삶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고,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날마다 시간마다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릇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 복음을 간단하게 정리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주인 되신 주재권을 인정하고,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도 연결됩니다. 주인을 나타내는 통로로 오늘 하루를 쓰임 받는다면 이런 삶이 종말을 준비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종말을 준비하는 자세가 오늘 하루 하나님의 하루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둠에 갇힌 영혼에게 빛이신 주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셔서 주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왔을 때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 문제를 주인이신 주님께 맡깁니다’라고 주님께 문제를 드렸을 때 늘 해결해주시는 주님을 체험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많아질수록 주님에 대한 신뢰가 쌓여갑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것을 주님은 믿음으로 보십니다. 대상을 신뢰하기에 그분이 원하는 시간까지 기다릴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힘들 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시고, 진짜 빛나는 보석은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고, 그분이 원하는 좁은 길로 가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 자아를 죽음에 넘기는 일이 처음에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내 자아가 없어질수록 주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서 이제는 버릴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 묻습니다. 버리면 버릴수록 삶이 자유합니다. 그리고 오늘 부르신다고 해도 미련이 없습니다. 후회 없는 삶이 카이로스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시간을 사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삶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는 것도 배웁니다.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니기에 오늘 잘 살아내면 주님의 부르심에 후회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 마음에 서운함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주님을 만날 때 어색함이 없으니까요.
내가 높아져서 얻는 이익보다 내가 낮아짐으로 얻는 평안이 더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찬사보다 주님의 따뜻한 위로 한 마디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열광할 때 그 자리를 슬그머니 떠나셨습니다.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이 그토록 행복한 것은 그 시간에 만나는 하나님의 위로가 떠들썩한 세상의 위로보다 더 크다는 맛을 알기 때문입니다.
높아지고, 성공하고, 많은 것들이 채워질수록 영원의 세계에서 누리는 기쁨이 작아짐을 알기에 오늘도 주님의 그릇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애써 나 자신은 그릇일 뿐이라고 날마다 자신에게 다짐합니다. 어둠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려고 귀를 닫습니다.
하나님의 ‘그래, 넌 내가 쓰기 편한 그릇이야’ 이 한 마디면 족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를 비우고, 나를 정결하게 씻어내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나는 주님의 그릇입니다. 오늘도 나를 비우고 주님으로 가득 채워져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빛을 전하는 그릇이 되기 원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나는 보이지 않고 주님을 비취는 그릇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라나타
https://youtu.be/xhGwENJWo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