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남강 촉석루 아래 의암 바위 옆에 논개사당이 하나있다. 진주에 있을때 촉석루와 의암바위 그리고 논개사당을 보면서 논개 출생지 장수를 언제 한번 가봐야 하던 차에 장수 논개 사당을 가게되었다.
진주남강 의암바위 만 보고 장수 논개사당을 보지 못하면 반쪽만 본 느낌이라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며 3년간 있을때 촉석루 아래 의암바위에 자주 들리기도 하고 학교에서 수주 변영로 선생의 논개 시(詩)를 배울땐 자주 진주남강에 가보기도 했던 곳이지만 장수는 언젠가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한 여행지이기도 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남 콩 꽃보다도 더 푸른 물결 위에
아름답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며 아!... 강남 콩 꽃보다도 더 푸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기리 푸르리니 아!... 강남 콩 꽃보다도 더 푸른 물결 위에 ( 논개 : 수주 변 영로 作)
논개는 선조 7년(1574) 9월3일 부친 주달문과 모친 밀양박씨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숙부가 임내면의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보내게 된다.
재판을 받게 되는데 다행이 무죄방면 되었다. 최현감 후실로 들어 앉게 되었다. 그후 선조 25년 (1592)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현감은 의병을 모집해서 왜군을 무찌르는 전공을 세운다.
이어 1593년 4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되어 논개와 함께 진주로 부임하게 된다. 최절도사는 김천일 ,고종우 장군등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였다.
이에 논개는 국치의 설욕과 부군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엿보던 중,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하여 주흥에 도취 된
이때부터 논개가 떨어졌던 바위를 의암(義巖)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조정에서도 논개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여 의암이라는 사호(祠號)를 내렸고 , 진주 촉석루 아래 남강 의암바위 곁에 논개 사당을 지어 그 넋을 위로 추모하게 되었다.
전라북도 장수에 논개의 사당을 세우고 의암사라 이름지었다.
지금부터는 장수 논개 사당 의암사입니다.
장수는 진주에서는 참 먼거리에 위치해 있다. 진주 남강 촉석루와 남강의암 바위와 남강논개사당을 보고 논개의 출생지 장수로 가려면...... 진주에서 남원을 가거나, 아니면 함양에서 장수행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제일 빠른 교통수단이 된다.
의암사는 경내에는 생장향수명비각 , 기념관,외삼문(숭앙문), 내삼문(충의문),영정각등이 있다.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 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라는 비석이며
임진왜란 때 순국한 주논개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이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진주 고을민들은 강변에 제단을 마련하여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적인
일제시대 때 중단되었다가 1954년 당대 일류화가인 김은호가 고증을 통해 논개의 초상화를 그리고 부통령인 함태영 선생이 직접 현판을 쓰면서 남산 공원에 사당을 세웠다. 지금은 매년 음력 9월 3일을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큰 규모의 제례를 올리고 있다.
여행정보 3> 전화 : 063-351-4837 / 350-2561 ( 논개사당 관리사무소) |
출처: 혜천의 바람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