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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폐셜 172회 : 소년 미라, 300년 만에 깨어나다 (2002.1026.)
방송일: 20021026 조회수 : 40299번 읽음
동영상 : 줄거리:
<역사 스페셜 / 더빙원고>소년 미라, 300년 만에 깨어나다.
방송일시 : 2002. 10. 26 저녁 8:00 - 9:00(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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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관으로 Z.I 12 [3,4초 정도 흘리고-] 흙더미속에서 발견된 관은 1미터 남짓한 크기였다
[한호흡 쉬고-] 뚜껑을 열었을 때
-미라의 발 8 그곳에는 생생한 모습의 소년이 잠들어 있었다.
엠블란스 경광등 3 [흘리고-]달리는 엠블란스 5 [흘리고-]관 타이트 SK 10
문제의 미라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정밀 조사를 위해 옮겨졌다.
해부실 - 멀리 의사들 모습 7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미라
-관 집어넣는... 12 이것은 소년 미라가 들려줄 애절한 ~5 앞에서 받고 이야기의 서막이었다.
[문닫히면 타이틀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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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1] : 피라미드의 내부
- 피라미드 내부, 벽을 따라 카메라 이동하고 / 방안으로 다가서면 문이 양쪽으로 스르르 이동한다
- 방안으로 들어서는 카메라, 방향 돌리면 관이 놓여있고 -
- MC, F.I해서 관옆으로 다가와 선다.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칭했던 이집트의 파라오들
- 이들은, 부활을 믿으며 자신의 시신을 썩지않는 몸, 즉 "미라"로 만들도록 했습니다. 만약 시신이 썩어버린다면
다시 살아났을 때 되돌아갈 몸이 없어지게 되는거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렇다면, 이 파라오들은 어떻게 부패하지 않는 육신을 갖게 됐을까요?
- 머리쪽으로 걸어가서 바닥의 내장함 들고~ 이 항아리는 <카노픽>이라는 건데요,
시신에서 위나 간 등의 내장들을 꺼내서 따로 담아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썩기 쉬운 장기들은 따로 보관을 하고
시신은 천연 탄산소다를 이용해서 방부 처리를 합니다.
시신의 찢어진 부분을 다시 봉합한 후에 붕대를 감고 송진으로 코팅 처리를 하게 되는데요, 이런 과정을 거쳐
미라가 완성되기까지 70일이 넘게걸리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었습니다.
- 내장함 내려놓고 돌아서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라는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의도적으로 만들
어진 것들이죠. 그런데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파라오의 그것을 연상케하는 미라가 발견됐습니다.
피부 조직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과 손톱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미라
- 그러나 이 미라는 매장후 땅속에서 자연히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공개되는 미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 카메라, 관속의 미이라로 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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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1단국대 외경 5 [잠시 보다가-]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 박물관
-슬라이드 철컥철컥 5 [철컥 두번정도 흘리고-]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미라 연구를 위해화면 보이고
(사람들 뒤통수) 11 전공이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6 장교수 얼굴 정면... [흘리고-]슬라이드 화면으로 Z.I 11 미라가 발견된 것은 지난해 11월.
(윤호의 얼굴) 경기도 양주에서, 도로 공사를 위해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였다.
회의실 FS 김우림 교수 설명 미라가 나온 출토 요건은 땅이 굉장히 습하다는 것이다.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고,
단웅이가 발견된 당시가 11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땅에서는 얼음층이 발견될 정도로 기후보다 더 추운
상태, 냉장의 상태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 모습, 얼굴 타이트 16 연구팀에는 전통 장묘와 복식 전문가는 물론이고,
생물학, 체질 인류학, 모발학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총 망라됐다. 미라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위해서였다.
회의실 - 화면으로 Z. I 20 [시간 확인 !!!! 잠시 흘리고-] 발굴 당시 미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겹의 천조각에
싸여 있었다. [잠시 보고-] 조심스레 천을 풀어 헤치자
-미라의 사진 무빙 22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벽하게 보존된 미라의 전신이 드러났다.
방금 물에서 나온 듯 촉촉하게 젖은 상태, 그 생생한 모습은, 보는 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하 흘리고-]밤, 가톨릭대 외경 5 [흘리고-]의사들 들어간다 21
[의사 들어가는 것 좀 흘리고-]~12 내부에 모여있는 의사들 가톨릭 대학 응용 해부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미라의 상태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 과정에는 해부학 전공의를 비롯해 피부과, 법의학과 등 여러 분야의 의사들도 참여했다.
[이하 흘리고-]한승호 선생 천 걷고 17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9 미라의 모습 드러나고 발굴 직후부터 시신
안치실에서 보관중이던 미라가, (한호흡 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하 흘리고-]미라의 얼굴로 Z.I 12 1미터 남짓한 작은 체구
- 여기에 몸속의 수분까지 날아가 버린 미라는 매우 왜소한 모습이다.
사람들 진지한 얼굴 8 [권복규 선생 얼굴 보이고 나서-] 그러나 시신을 많이 다뤄본 의사들이 보기에앙감으로
찍은 의사들 표정 6 미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양호한 상태다.
[흘리고-]피부과 선생 현장음 일단은 뼈구조도 잘 보관돼어 있지만, 피부의 탄력성이 남아있다.
보관이 굉장히 잘되고 진공 상태에서 보관된 듯... 정성들여 보관한 듯한 피부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상태는 죽은지 얼마안된 모습으로 남아있다의사들 모습 4 X-레이 촬영 결과도 마찬가지,
X-레이 살피고 있다 4 몸속의 뼈 역시 고스란히 잘 남아 있었다.
한승호 선생 현장음 16 [흘리고-] 관을 한꺼번에 든게 아니라... 관절된 구조가 아니니까 저는 이거라고 봤거든요.
~12 한길로 선생 얼굴선생들 모여서 있는데 무빙 12
[잠시 흘리고-]~7 길이 잰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미라의 기본적인 신체 치수부터 측정하기로 했다.
[이하 흘리고-]어깨너비 3 [잠시 보고-] 어깨 너비는 15.3cm
- 자의 끝부분 타이트(153) 6 성인 남자의 손 한뼘도 안되는 길이다.
얼굴 길이 7 [잠시 보고-] 코의 길이는 4.5cm.다리 길이 6 머리에서 발끝까지는 95cm로,팔길이 재는....
9 전체 신장이 1m가 채 안되는 작은 키였음을 손 움직이는 확인할 수 있다.
[이하 흘리고-]모여선 FS 9 어린 아이로 추정되는 이 미라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미라들과 달리 피부가 건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이하 현장음]발바닥 만지는 손 12
[현장음-] 공간이 비어있었고 무릅뼈가 아래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무릅뼈는 제 위치에 있네요.
한승호 선생 현장음 6 여기 비록 섬유소만 남아있지만 인대를 붙들어매주는 성분들이 그대로 있다는 소리죠미라
머리부터 PAN 18 일부분 건조가 진행된 곳도 있지만, 미라의 피부는 전체적으로 만지면 물컹거리는 감촉이 느껴질
만큼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호흡 쉬고-] 그만큼 잘 보존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발 타이트 5 피부뿐 아니라 손톱, 발톱 등의 조직들도 잘 남아있는 상태다.
손 4 [흘리고-]손톱 3 [흘리고-]머리카락 9 발굴된 직후부터 급속히 탈색이 진행된 머리카락-전자현미경
-머리카락 (16) 그러나 전자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살아있는 요즘 사람들의 머리카락보다 훨씬 더 건강한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헤어팁 16 그리고 뭉툭한 머리카락의 끝 모양새는 태어난 이후 머리카락을 한번도 자르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승호 선생 현장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피부뿐 아니라, 전반적인 상태가 실제 추측되는 연대에 비해서 보관상태
가 매우 좋다.
예를 들어서 손발톱의 발달정도, 특히 피부는 바로 기증한 시신과 비슷할 정도다. 그리고 지금 이 부분은 관속에서
일부분 티슈들이, 조직들이 무르긴?했지만 전체적인 상태가 잘 남아있다.푸른 빛 아래의 미라 10초 미만
[잠시 흘리고-]~10 책상 너머로 미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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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2] : 잘꾸며진 수술실[또는 해부학 교실]의 내부, 미이라 옆에 선 MC- 미이라에서 Z.O해서 나오면 MC 고개
숙여서 미이라를 들여다보고 서 있다.
- 피부를 조심스럽게 만져보는 MC, 고개들고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카메라본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시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데요, 어떻게 썩지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미라 외에도 최근 몇 년 사이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미라들이 여러구 있었습니다. 곧바로 화장하거나 다시 매장을 한 까닭에 이 미이라처럼 일반에 공개된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런 미라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건지가 궁금하실텐데 말이죠,
그 원인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중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전통 묘제와 관련이 있지 않나 추정하고 있는데 명확한 결과는 좀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미라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공개된 미라인데요~) 키가 95cm에 불과합니다.
제 옆에 선다면 이쯤 될까요?
(허리깨쯤에 손을 갖다대며-) 키만 놓고 본다면, 예닐곱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아니었을가 싶은데
- 만약 그렇다면 이 미라는 왜 이토록 어린 나이에 죽었던 걸까요?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미라의 나이와 사망 원인을 추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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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2단국대 외경 4 [흘리고-]CT 조종실 4 미라에 대한 정밀 조사에 앞서,
미라 CT안으로 들어간다 9 CT 촬영을 해보기로 했다.~4 컴퓨터 화면의 전신 뼈
[잠시 흘리고-] X-레이 촬영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신체의 내부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다.
여교수 얼굴 3 [흘리고-]미라 머리위로 붉은 선들 지나고 24
[머리까지 흘리고-] 먼저 미라의 단면을 1mm간격으로 조밀하게 촬영했다
[이하 흘리고-]컴퓨터 화면 5 CT촬영을 통해 미라의 뼈구조뿐 아니라뼈 윤곽 드러나고 5 내부 장기들의 위치와
상태도 서서히 드러났다교수 INT CT촬영을 하면 피부, 피하지방, 그아래의 뼈, 흉곽내나 복부내의 폐,간,심장등
조직들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볼 수 있다컴퓨터속의 뼈 보는 12
[3-4초 흘리고-] 촬영된 단면들을 모두 합해 3차원으로 구성하면, 미라의 신체 내부를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한승호 선생 얼굴 6 복원 결과 미라의 몸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장기들이 잘 남아있었다화면속,
다양한 뼈 모습 18 하지만 미라의 몸속은 살아있는 사람들과는 ~5 내부장기 윤곽 드러나고 차이가 있었다.
내부 장기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이하 흘리고-] [한호흡 쉬고-] 오랜 시간 누워있었던 탓에, 장기들이 모두 아래로 내려 앉은 탓이다.
한승호 선생 INT 전체적으로 상태를 보면 장기들이 뇌조직은 일부 남아있지만 우리가 직접 실물을 봤을 때 비
해서 내부 장기들이 상당히 서로 엉켜있는 상태다.
그래서 내시경을 해보면서 조직을 구분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비교적 지난 시간의 경과에 비해선 상당히 많은
내부 장기들이 남아있는데 정상인 상태에 비해서는 많이 엉켜있는 상태다. 컴퓨터 화면, 뼈 움직이는 모습 10
[4-5초 흘리고-]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먼저 미라의 나이부터 추정해 보기로 했다.
네 개로 분할된 화면 4 여기서 단서가 되는 것은 뼈의 발달 정도
-신경진 선생 부감 6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치아의 성장정도만 봐도, 나이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뼈사진 12
[현장음 : 이거 현장음 맞나?] 영구치가 뼈속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설명하는 신선생 뼈속에서 자라고 있는 정도가 나이하고 상당히 연관성이 높은데요, 첫 번째 큰 어금니,
두 번째 그리고 뼈속의 송곳니, 앞뒤 사진에서 앞니 네 개 정도의 자란 정도를 놀라와 데뮬리언의 회기식에 넣어
보았더니 5세는 넘고 6세는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고, 여러 가지 산술적 평균을 냈더니 5와 1/2세, 즉 5.5세로 추정이
되었습니다.
이빨 뼈 (요즘애와 비교) 24 다섯 살 반인 요즘 아이들의 치아와 비교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잇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치아의 상태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잠시 포즈/두번째 화살표 나오고 나서-] 이렇게 본다면, 미라가 사망한 것은 그의 나이, 여섯 살되던 해였음을
알 수 있다.
카대 밤 외경 4 [흘리고-]실험실 의사들 5 그는 왜 이토록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던 것일까?머리맞대고
있는 의사들 7 사인을 밝히기 위해 다시한번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한길로 선생 등 표정 SK 5 [흘리고-]살펴보는 의사들/만지고 9 먼저 외상 여부를 확인했다.
골절이나 기타 외부의 충격이 있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한길로 선생 INT 우선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골절은 없고
피부나 전체적 으로 다 살폈는데 개방성 창상은 없었다
그래서 외인에 의한 사망은 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질병에 의한 사망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부감 Shot 4 질병으로 인한 죽음- 선생들 의논하는 모습 PAN 16 미라의 사망 원인에 한걸음 더 다가선 셈이다.
~ 마지막 손 움직이는 것 보이고
[한호흡 쉬고-] 그렇다면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의사들 고개숙여 보는.. 4 그런데 피부 표면을 살피는 과정에서 피부의 상처 타이트 7 의심가는 흔적이 발견됐다.
[잠시 보고-] 조그마한 흉터 자국들-현미경 들여다보는 의사 13 피부과 전문의들이 정밀 진단에 들어갔다.
~7 피부 [흘리고-]피부과 선생 설명 1'16 바이러스에 의한 피부병변은 흉터가 없이 아무는게 대부분인데 두창은
염증후 상처가 나는 것이다. 이걸 보고 두창의 특징적인 마크라고 하는데 여기만 있는게 아니라, 팔 여기 딱지가
붙어 있어서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걸 보여주는 특징적인 병변이 되겠고, 여기뿐 아니라 양쪽 팔에도 똑
같은 피부 병변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얼굴과 팔, 가슴까지 와 있다.
아직 다리쪽이 깨끗한 걸 보면 이 친구가 면역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감염 형태가 만성이
되어서 낫기 전에 2차적인 직접적 사인이 생겨서 사망한 것으로 보여진다
피부의 상처들 PAN 11 두창, 즉 천연두에 감염된 상태에서 또다른 합병증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FS / 카메라 무빙 6 좀 더 명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등뒤의 구멍/
얼굴 9 내부 장기에 대한 조직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등뒤의 구멍을 통해서 간, 폐, 심장, 위장 등의 장기 일부분을 떼어냈다병에 넣는다 6
[흘리고-]국과수 외경 4 그로부터 1주일 후-현미경 보는 한선생 3 일부 장기에 대한 검사 결과가 나왔다.
얼굴 타이트 - 현미경 판 8 [잠시 흘리고-] 폐조직에 대한 검사 결과, 실험판 5 정상적인 폐에서라면 나타나지
않는 혈흔이 발견되었다.
[흘리고-]조직 확대 그림 9
[자막 뜨고 나서-] 폐속에 피가 고이는 경우는 주로 폐렴 등 폐질환을 앓았거나 각혈을 하는 과정에서 피가 폐로
들어간 경우다.
혈흔 타이트 SK 7 그런데 천연두의 증상중에도 폐출혈에 대한 언급이 있다.한길로 선생 INT 두창이 생겼을 때는
폐의 출혈을 동반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피부 병변과 같이 생각해본다면 두창이 있는 아이였는데 폐에 출혈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해 두창집요>C/G 39 조선 중기의 명의, 허준이 정리해 놓은 <언해 두창집요>를 보면 과거 사람들에게 천연두
가 얼마나 무서운 질병이었는지 알 수 있다
~9 책 내용 발생 두창에 걸린 자는 열명중 네다섯 밖에 살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매우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뒷 페이지 펼쳐지면
[글자 발생하면-] 특히, 입이나 코, 귀등으로 출혈을 하는 경우는 생명을 구하기 힘들다고 언급해,
이로 인한 사망이 꽤 많았음을 시사하고 있다.권복규 선생 INT 특히 두창은 사망률이 아주 높아서 많은 사람이
굉장히 두려워한 병이다 사망률이 적게는 40에서 높게는 100%까지에 이르렀고 대개 3-7세 어린이가 많이
걸렸기 때문에 이 어린이도 5살때쯤 죽은걸로 봐서는 두창에 걸려 사망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밤,
실험실의 미라 10 천연두로 인한 합병증, 바로 이것이 미라의 사망원인이었다.
[이하 흘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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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3] : 한의원 [동의보감의 전신도 등이 걸려있다](약간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는 마마라
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천연두, 바로 이것이 다섯 살에 불과했던 어린 미라의 생명을 앗아갔던 것이군요.
현재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질병으로 기록돼 있지만 제너의 종두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천연두는 전세계 사람들
의 목숨을 앗아간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초상화 발생하고- 얼굴의 곰보자국들) 여기를 한번 보실까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초상환데요,
얼굴을 가만히 보면 한결같이 조그마한 흉터자국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연두를 앓았던 자국입니다. 일단 감염되면 절반이상이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질병, 설령 살아남는
다고 해도 이렇게 치명적인 흉터를 남기는 것이 천연두인데요, 어쩌면 옛날 사람들에게 이같은 흉터는,
죽음을 극복해 낸 훈장과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린 미라에게는 이같은 행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겨우 다섯 살의 문턱을 넘어선 시점에서 죽음을 맞이
해야 했던 아이,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언제이며 그는 과연 누구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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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공사현장 부감 Z.I 15 [자막뜨고 나서-]~10 도로옆 경기도 양주군의 도로 공사 현장, 바로 이곳이 소년
미라의 무덤이 있었던 곳이다
도로 공사중인 자리 11 현재 이곳에서는 의정부와 (양주)를 잇는 도로 건설이 진행중인데,
미라가 묻혀있던 장소는(PD와 할아버지 찾아아고-) 도로의 중앙 부분
- [한호흡 쉬고 이어서-]공사장 올라가는 두사람 4 때문에 무덤을 이장할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발굴이
이뤄졌던 것이다.
카메라 훝고 11 [잠시 흘리고-] 지난 수백년동안 이 일대의 땅은 해평 윤씨 가문의 선산이었다.
때문에 해평윤씨 종친회에서는 소년 미라가 자신들의 조상일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한호흡 쉬고-]할아버지 현장음 7 할아버지 INT - 어떻게 아시나요? 우리가 수백년동안 벌초를 해왔으니까 우리
직계가 아니면 우리가 벌초할 일이 아니지...
옛날에 다른 사람이 산소를 쓸 수가 없어, 우리 선산이고 묘만 여기 있으니까...
만일 몰래 갔다 쓴다면 평토를 해서 봉분을 안만든다고공사현
-크레인 6 이들의 주장대로, 이곳에 묻혀있었던 소년
미라가깃발꽂힌 흙더미 5 정말 해평 윤씨 문중의 아이였을까?
세브란스 외경 3 [자막 뜨면-] DNA 감정을 통해 상피세포 체취중 7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윤규진씨 얼굴 보이면-]스포이드 작업하는 여자 8 먼저 윤씨 문중의 남자로부터 입안의 상피세포를 ~4 타이트
추출했다. 여기서 얻어진 DNA를 미라의 그것과 비교해 보려는 것이다.
기계에 넣는다 18 이 검사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Y 염색체-~14 문닫고 컴퓨터 화면으로 성 염색체인 Y 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유전되는 까닭에 같은 조상을 가진 남자라면 모두 똑같은 Y 염색체를 갖게 된다.
신경진 선생 얼굴 4 만약 미라가 여자아이였다면 불가능했을 실험이다.
신선생 INT 350년된 미라에서는 유전자가 분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러 가지 실험중 네 개가 믿을만한 결과
를 얻었다. 위는 미라, 아래쪽은 후손되시는 윤규진 선생님의 것이다. 보시다시피,
13/13.... 미라의 결과와 후손인 윤규진 선생의 결과가 일치함을 볼 수 있는데 이런결과로 볼 때 이 미리가 해평
윤씨가문의 미라로 추정하는데 큰 모순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DNA 결과 6 DNA 검사 결과는, 미라가 윤씨 문중의 아이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단국대 외경 3 [흘리고-]박성실 교수와 제자들 5 그렇다면, 윤씨 문중의 이 소년 미라가 살았던 시대는 언제였을까?
박교수 얼굴 7 전통 복식을 연구하는 박성실 교수
- [잠시 사이두고-] 전문가들중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옷 펼친다 12 박교수로부터 발굴 당시의 상황을 확인
할 수 있었는데 무덤에서 시신과 함께 출토된 것은 몇벌의 의복이 전부였다.
[이하 흘리고-]옆선 9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있었던 탓에 원래의 색깔이 모두 날아 가버렸지만 의복은 고운 명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박교수 옷 만지는 모습 7 [얼굴 흘리고-] 복식의 생김새를 통해옷 펼치는
(장옷인가?) 7 옷이 만들어진 시대를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하 흘리고-]박교수 설명 소매가 일자 소매
인데 끝이 약간 배가 불러지는 것이 성인 것과 같다. 양쪽 트임이 있고....
1600년대 중반을 전후해 나타나는 복식의 특징이다옷 SK 12 소매가 일직선이고 옆트임이 없었던 이전의 복식에
비해 임진왜란 이후에는 좀 더 멋을 부린 옷들이 유행했던 것이다.잘라진 소매
- 아이 소매 10 즉, 옷의 모양새만으로 볼 때 이 의복은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울대 외경 4 [흘리고-]실험실 교수 8 좀 더 구체적인 연대를 알기 위해, 탄소 연대 측정을 해보기로 했다.
기계에 뭔가 끼우고 9 미라가 입고 있었던 명주 옷의 안감과, 머리에 베고 있던 천 조각을 채취해, 각각의 직물이
만들어진 시기를 확인해 보았다.
실험실 FS 6 [흘리고-]컴퓨터앞 교수와 PD 4 실험 결과, 직물이 만들어진 시기는
컴퓨터 화면 8 의복 디자인이 유행했던 때보다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대물림해 내려오는 천을 이용해서 옷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대눈금맞춤 결과 1475/1610 3 [흘리고-]교수 INT 저희가 측정한 바에 의하면 머리에 베고 있던 베갯닛에서
1460년경, 의류 안감의 경우는 1530년, 이때 오차의 범위는 100년정도다.
이렇게 볼 때 이 인물이 생존했던 시기는 적어도 그 이후임을 알 수 있다.
컴퓨터 화면 13 이같은 결과를 종합해 보면, ~7 결과 보이고 미라는 둥근 옷 소매를 만들어 입었던 1600년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화분 추출검사중 4 발굴당시 무덤 주위에서 채집한 흙속에서도흙 퍼담는다 6 재미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실험관에 물 붓고 4 원심 분리기를 이용해 화분, 즉 꽃가루를 분리해 낸 결과-화분들
(현미경) 8 소나무와 참나무를 비롯해 봄철에 주로 날아다니는 꽃가루 성분들이 발견된 것이다. 인터뷰 소나무같은
경우 5월초순에서 중순... 이들이 나타나는 양을 종합적으로 볼 때 5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매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시골 집 찾아가는 9 천연두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을 아이, 그 아이가 죽은 것은 삼백여년전 어느
따뜻한 5월의 일이었다.
집 찾아들어가고 6 [잠시 흘리고-] 지금까지 밝혀낸 결과들을 근거로, 미라의 실체를 찾아보기로 했다.
족보보고 있는 FS 4 [흘리고-]족보 넘기는 13 먼저 해평 윤씨의 족보속에서 가능성의 인물을 확인해 보았다.
[흘리고-]족보 C/G 해평 윤씨 가문의 후손들이 모두 기록돼 있는 대동보
- 여기서 1600년부터 1700년 사이의 남자들을 모두 조사했다.
[이하 흘리고-]해당 페이지 펼쳐지면- 수백명의 후보들 가운데, 후손을 남기지 못한 이는 단 한사람이었다.
<호>라는 외자 이름을 쓰는 인물-책 앞으로 넘어가고
- 이 사람의 가계도를 다시 확인했다. 창원 이름 발생하면 1591년에 출생한 윤창원- 그에게는 상민이라는 아들이
있다.
C/G 무빙하면 윤상민은 세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이 세주, 한주, 학주다.
한주밑으로 발생 시작 둘째 아들이었던 한주에게는 네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가 경
[한호흡 쉬고-] 둘째가 개, 셋째가 용, 그리고 막내 아들이 바로 호다. 할아버지 얘기중이다 대에 맞춘다면 이분밖에
없다. 그전에도 안계시고 그 이후에도 안계신다.
그러니까 이 양반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무덤 찾아가는 10 [2-3초 흘리고-] 윤 호의 증조 할아버지인 윤 창원
- 그의 묘는 미라의 무덤이 있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멀리 아파트 보이고 12 더욱이 이곳에서는,
미라의 무덤이 있었던Z.O하면 무덤 FS 자리가 한눈에 바라 보인다.
[한호흡 쉬고-] 미라가 윤창원의 직계 후손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비석의 글씨 10 윤창원의 묘비석 속
에서 또한가지 흥미로운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1691년에 세운 묘비석 뒷면에
신미년 3 그의 자손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와 비석 글 읽고 41 여기 한주라고 나오잖아,
한주 4남.... 이 양반이 어리다는 것은 1살인지 몇 살인지 모른다
~ 29 <여유> [손으로 동그라미 치면-]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탓에 태어난 후 한동안 이름을 짓지 않았던 옛 전통을
생각해보면 비석이 세워질 당시 호는 한 살 전후의 갓난 아기였음을 알 수 있다.
[흘리고-]족보의 <호>라는 이름으로 12 300여년전, 다섯살 반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감해야만 했던 미라,
그는 해평 윤씨 가문의 막내아들, <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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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4] : 창원의 무덤옆 (- MC 무덤 옆으로 다가서며 뒤쪽으로 보이는 아파트 바라본다) 제가 서 있는 이곳은
윤호의 증조 할아버지인 윤창원의 무덤입니다.
저 뒤쪽으로, 지금은 이렇게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얼마전만하더라도 이곳에서 미라의 무덤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 MC 뒤돌아보면 주변 변하면서 호의 무덤 보이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무덤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증조 할아버지의 무덤 아래 묻었던 것일까? 윤호의 가계도를
통해서 이 의문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인 윤한주는 1648년에 태어났으며, 바로 윗형인 용이 태어난
것은 1673년입니다.
그리고 증조 할아버지의 묘비석을 참고해보면, 윤호가 태어난 것은 1690년 전후, 그리고 죽은 것은 1695년전후
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 아이가 죽었을 당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생존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어린 호가 죽었을 때 그 무덤을 증조 할아버지인 윤창원의 무덤 근처에 마련한 것이지요.
(잠시 사이두고-) 이 계보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또한가지 있습니다.
윗형들과의 터울을 살펴보면, 바로 위인 윤용은 1673년생, 1690년 무렵에 태어난 윤호와는 최소한 15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여기에 호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의 나이를 살펴보면, 최소한 40대 초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가계 계통도 올라가고...) 이렇게 보자면 미라의 주인공인 윤호는 집안의 막내이자 늦둥이였던 것이죠.
여느 집안이 다 그렇듯이, 온 식구들의 사랑이 막내인 윤호에게 쏟아졌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 잠시 사이두고) 300여년동안 땅속에 묻혀있었던 탓에, 지금은 볼품없는 미라일 뿐이지만 살아 생전의 윤호는
분명 사랑스러운 다섯 살박이 아이였을 겁니다. 그의 살아 생전의 모습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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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가톨릭 의대 외경 5 [흘리고-]컴퓨터 보는 사람들 3 생전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컴퓨터 화면의 해골 3 먼저
미라의 두개골부터 만들기로 했다.
의사 얼굴/컴퓨터 화면의 해골 돌고 13 [잠시 흘리고-] 두개골을 복원하는 까닭은 얼굴 윤곽을 정확하게 가늠
하기 위해서다.
스캔실 전경 9 미라의 피부 조직이 잘 남아 있기는 하지만 수분이 많이 날아가버린 탓에,
살아 생전의 모습을 그림-윤곽 뚜렷해지고 5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때문에 두개골이 필요한 것이다.
석고 올라온다 4 [흘리고-]지켜보는 사람 7 [사람에서 PAN하면-]
- 청소기로 흡입 컴퓨터를 이용해 두개골 데이터를 전송하면, 성형틀 속에서 녹말 가루가 두개골의 모양으로
타이트(청소기 흡입) 7 만들어지게 된다.
[흘리고-]윤곽 드러난 해골 13 [흘리고-]~8 들어 올리고
조용진 교수 연구실 14 복원된 두개골을, 두상의 좌우 균형을 확인하는 등고선 램프에 비춰 보았다.
오른쪽 이마가 조금 더 튀어나왔음을 알 수 있다조용진 교수 살펴보는 모습 5
[한호흡 쉬고-] 복원에 앞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 형태를 뼈 길이 측정중이다
12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조용진 교수의 도움을 받아 미라의 체질 인류학적인 특징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해골로 Z.I 10 [흘리고-]조용진 교수 INT 이 아이는 이마가 오른쪽이 크고 뒷짱구다.
우리나라 에서 이런 경우는 내륙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경기도 내륙지방, 이런 아동들을 보면 성격이 활달하고
명랑하고 개구쟁이다. 진흙 붙이는.. 4
[잠시 흘리고-] 본격적인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복원 작업중 13
[흘리고-]해골 타이트 4 [흘리고-]번쩍, 조용진 교수 얼굴 5
[흘리고-]아이 얼굴 보인다 7 1주일의 작업 끝에 완성된 아이의 얼굴
- 바로 이것이 여섯 살 박이 윤 호의 살아 생전 아이얼굴 TD 10 모습이다.
[흘리고-]조용진 교수 INT 얼굴을 복원하고 보니까 이미가 넓은 편이다. 얼굴이 긴편이고 눈사이는 좁고 작은
편이다. 이런 몇가지 특징을 볼 때 북방계 형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경기도 내륙형의 특징이다.
아이 얼굴 돌고.. 18 [흘리고- : 그냥 흘리기엔 너무 긴가?]단국대 외경 4 복원된 미라에게 옷까지 입혀보기로
했다. 연구원들 모여서 서 있다 3 관속에서 입고 있었던 옷을 다시 만들어야하는
얘기중인 박교수 7 의상 복원은 처음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사진-출토 복식 8 탈색돼 버린 복식의 원래 색깔을 알아낼 방법이 없어, 풍속화와 당시의 기록을 참조해야만 했다.
자료속의 오방색 두루마기 2 [흘리고-]옷 펼치서 만지는.. 10 바느질도 큰 문제였다.
출토된 옷의 바느질이 너무나 촘촘하고 섬세해, 그대로 복원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박교수 얘기중 당시에 이걸 미싱도 없이 했을텐데, 앞이나 뒤나 똑같이....
이건 홈질이라 간단해 보이지만 앞뒤가 똑같은 건 기술이 필요한데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성이다.
이건 옷이 아니라 정성이다. 옷 SK 10 지금은 색이 바래, 칙칙하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원래 이 옷은 다섯 가지의
색상을 잇대 만든 화려한 비단 옷이다.
옷의 바느질 자국 12 여기에 추운 날씨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옷전체에 명주솜을 넣고 한땀 한땀 누벼서
만든 겨울 옷이었다.
[이하 흘리고-]
복원작업중인 FS 4 [잠시 흘리고-] 섬세한 바느질 솜씨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옷, 부분 나눠서 작업 16 전국의
내로라하는 바느질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하 흘리고-]눈/바느질하는 손 11 옛 여인네들의 뛰어난 솜씨는 물론이고,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작업 테이블 PAN 18 여섯명의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꼬박 한달을
작업하고서야 누비옷 한벌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완성된 옷 타이트 16 [흘리다가 윗 동정 보이고 나서-] 두루마리 형태의 고운 비단옷,
FS 7 300여년전 윤 호는 바로 이같은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아이 복원되어서 내려오고-
(ST?) [흘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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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5] : 사대부집 툇마루- 카메라 방밖으로 빠지고, MC 모습 보인다.- 아이의 모습 쳐다보다가 돌아앉으며
~ (흐뭇한 표정) 어머니가 손수 장만해주었을 고운 한복을 입고 서 있는 다섯 살 박이 아이의 모습,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나요?
- 뒤쪽에는 아이와 엄마의 실루엣이 보이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저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저 아이 역시 한창 이쁜 짓 많이 해서 온 집안에 즐거움을 안겨주는 존재였을
겁니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이가 갑자기 천연두에 걸려 눈을 감고 말았으니, 부모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다섯해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윤 호는 죽기 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어떻게 살았던 걸까요? 300여년전, 윤호의 살아 생전 생활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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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5 도로 TR 7 [흘리고-]PD와 할아버지들 걸어온다 16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7 집 보이고 해평 윤씨
동강공파의 종가집을 찾았다. 이곳에서부터 윤 호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이하 흘리고-]처마 4 지금은 안채만 남아있을 뿐이지만,집 문 열리고- 마당 20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아흔
아홉칸의 대저택이었다.
[한호흡 쉬고-] 만약 윤호가, 이 집이 지어진 후에 태어났다면 이곳에서 살았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하 흘리고-]늑당유고 35 [자막 발생하면-] 가문에서 전해져오는 기록들을~8 글자 발생 확인한 결과, 집의
건축과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흘리고-]한글 자막 발생하면
- 이 기록에 따르면, 윤 호의 할아버지였던 윤상민은, 노년에 직접 집을 지었다고 한다.한자 발생하면
- 그 집의 이름을 만취당이라고 했으며, 위치는 여주읍 동남쪽이라고 적고 있다.
(지금의 종갓집을 가리키는 말이다.)할아버지 INT 집을 지은 연대로 봐서 그 양반이 집 지은 이후에 출생했고,
그 당시는 유가의 법도에 따라서 대가족 제도였기 때문에 한집안에 사오대가 살았다.
그러니까 그 양반이 여기서 살 수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집 마루 TR 29 이 집이 완성된 것은 윤 호가 태어날
무렵인 1690년대 초-
[한호흡 쉬고-]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가족 제도대로라면 손자인 윤호가 할아버지와 한집에서 사는 것은 너무
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흘리고-]~19 조상 사진 [조상 사진 보이면-] 늦둥이로 태어나,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을 윤 호는 넓은 집안을 마음껏 뛰어 다니며 놀았을 지도 모른다글씨
- 가재 도구들 10 그러나 워낙 어린 나이에 죽은 까닭에, 집안에서 이 아이에 대해 전해져오는 이야기는 없다.
처마에서 나무로 15 [4-5초 정도 흘리고-] 그렇다면- (잠시 포즈) 천연두에 걸려 병상에 눕기 전까지,
윤호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하 흘리고-]국편 찾아가는 5 [좀 빨리 읽어야 함-] 한 사대부가 남긴 기록은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묵재 일기 11 [잠시 흘리고-]~6 양아록 조선 중기의 양반인 이문건은 자신의 일기와 더불어 손자를 키우면서
기록한 양아록이라는 육아일기를 남겼다.
책 살펴보는 두사람 7 이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육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DISS양아록 19 이문건은 책 서두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문 발생하면 나레이션 시작-) 아이를 기르는 일은 반드시 기록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자신이 할 일이 없어
기록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어서-] 그러나 이것은 말뿐이고 실제로는책 살펴보는 두사람 6 남성들도 아이의 양육에 매우 적극적
으로 개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책 내용 SK 7 그런데 특이한 것은 양아록의 기록중 다섯 살 이전에는 교육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첫 번째
C/G 17 교육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한 것은 다섯 살 나던 해,
하지만 이때에도 손자가 아직 어려서 깨우쳐줘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적고 있다.
두 번째 C/G 10 글쓰기에 관해 처음 언급한 것은 손자가 여섯 살 되던 해였다.
백혜리 교수 INT 7세 이전의 아이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지 않고 방위등의 생활교육이었다.
그당시 교육은 아이가 원하는 것,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래서 규율을 강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육을 했고 7세가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교육이 시작된다.
7세가 넘어가도 엄격한 교육보다는 글을 가르치고 기초적인 교육을 한 다음에 대체적으로 10세가 넘어가면
굉장히 엄격해 졌다고 볼 수 있다나무아래 재연 14 어릴때부터 글공부만 했을거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아이들은 일곱 살 이전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뛰놀았음을 알 수 있다.
꽃앞에서 웃는 아이 8 부모의 관심은 오직 아이의 건강에만 집중돼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 어린이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C/G 23 양아록에서도 질병에 관한 기록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다섯 살까지의 기록만 살펴봐도 이문건의 손자 또한 이질, 학질, 두창 등에 걸려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겨
야만 했다.
권복규 선생 INT ...적어도 절반 이전의 아이들은 5세 이전에 사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사망 원인으로는 각종 전염성 질병과 외상에 대해서도 항생제 등이 없었기 때문에 합병증을 일으켜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감나무 아래 재연 23 소년 미라 윤 호 역시, 살아 생전에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섯 살되던 해에 찾아온 천연두는 끝내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흘리고-]관 Z.I 12 [4-5초 정도 흘리고-] 그로부터 300여년- 여섯 살 박이 소년 미라는,
관 타이트 SK 20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 곁으로 왔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묻혔던
다섯 해의 짧은 삶과 그 부모의 애절한 사랑 또한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사진속의 미라 16 미라가 처음 발견됐을
때,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던 정체모를 천조각들
-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옷으로 밝혀졌다.발에서 상반신으로 TU 11 자신들의 옷으로, 아이를 감싸 놓았던
것이다. 출토 복식으로.. 9 [흘리고-]옷 펼치고 있는 박교수 10 아이가 죽자, 그 아비는
~3 바닥에 아버지 옷 자신의 옷을 찢어 바닥에 깔았다.
[흘리고-]장옷으로 덮고... 15 그 위에 아이를 곱게 눕히고, ~11 얼굴 덮고 어미의 옷으로 이불을 삼았다.
[흘리고-]남은 천으로 몸 감싼다 12 부모보다 앞서서 죽은 아이들은 관에도 넣지 않은 채 갖다 묻어 버린다지만,
감싸진 천 10 얼마전까지 체온이 느껴졌던 아이를- 차가운 땅속에 그냥 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흘리고-]박성실 교수 INT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차디찬 땅속에 넣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400년전
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떻든 이불을 대신해서 체온이 담긴 부모의 옷을 여러 겹으로 싸줬다는 건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어린 아이를 옆에 두고 싶어하던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옷 SK 30 300여
년이라는 시간은 부모의 옷자락에 남아 있던 고운 색깔이며 문양들을 지워버릴만큼 길고도 아득한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옷속에 감싸져 있던 아이는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남겨졌다. 그것은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절한 사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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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6] 클로징 : 미이라가 전시된 박물관 - 뒤쪽으로는 유리 전시실들이 늘어서 있고, 앞에는 미이라가 유리관속
에 놓여있다 어둡고 차가운 땅속이었지만 따뜻한 부모의 체온이 남아서, 지난 세월 어린 미라의 몸을 감싸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서 300년전에 죽은 다섯 살박이 소년의 사인을 밝혀
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짧았던 삶과 죽음, 가족들의 애틋한 사랑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의 질병과 가족 관계등 그가 살았던 시대의 단편적인 이야기들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요,
이처럼 미라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몸으로 보여주는 또하나의 타임캡슐인지도 모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한해 평균 한구 이상의 미라가 출토되고 있지만, 대부분 다시 매장돼 버립니다.
그가 간직하고 있었던 수많은 과거의 이야기들또한 함께 묻히게 되는 것이죠.
바로 이 때문에 최초로 공개된 소년 미라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한호흡 쉬고) 다음달 30일부터 일반 공개를 앞두고 있는 소년 미라,
300여년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다섯 살박이 윤 호는 자신이 살았던 조선 중기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