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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사
혼자 하는 실습, 마을회관살이, 여행, 내수. 사회사업 배우고자 온 제 앞에 여러 갈래의 초행길이 놓입니다. 도착지까지, 헤어지는 오늘까지 참 멀겠구나 느꼈습니다. 벌써 오늘입니다.
저는 욕심 많은 사람입니다. 노력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고, 할 수 있는 만큼을 알고 싶은 사람입니다. 올해는 속한 공동체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하는 말에 아쉬움을 담고, 홀로 깨어있는 사람 마냥 굴기도 하였을 겁니다.
다온빌 실습. 제가 택한 길이지만 혼자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혼자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며 이 자리에 떨구셨구나 싶었습니다.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겠구나.’ 이리 받아들이며 시작합니다.
없이 갔더니 채워주십니다. 도움 주러 왔는데, 도움받습니다.
희호 씨와 함께하고자 걸어온 길에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이 남아있습니다.
감사와 인정이 넘치는 한 달이었습니다. 어찌 그게 가능하였을지 되돌아봅니다.
면접 날, 여느 면접과 다르게 한 상 푸짐히 차려진 여느 집에서 면접을 보았지요. 첫 만남부터 김희호 씨는 제게 커피도 쏘셨습니다. 난 아직 한 게 없는데, “와줘서 고마워요.” 이 한마디에 다짐합니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함께해야겠다. 다른 이를 사랑해야겠다!’ 굳건히 마음먹습니다.
합동 연수 때 혼자 살고, 혼자 실습한다고 하니,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습니다. 최승호 선생님, 임영아 국장님과 한 팀이 되어 다온빌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넘치게 받은 사랑이 주위로 흘러가면 좋겠다.’
네, 사랑을 한가득 담은 컵이 이리저리 흔들리니, 흘러넘쳤습니다. 다행입니다.
첫날부터 다온빌에서 김희호 씨 손에 붙잡혀 이리저리 입주자분들에게 인사드리며 다녔지요. 희호 씨 덕분에 새로운 이들과 안면을 텄습니다. 먼저 다가와 주시는 분들 덕에 금세 정을 나눴습니다. 입주자분들이 챙겨주시는 간식과 “뭐 필요한 것 없어요?” 물어봐 주시는 직원분들 덕에 따듯함이 채워집니다.
한 달간 마을회관에 살면서 이웃 주민분들을 만나고, 인사드렸습니다.
“자식 같아서. 걱정돼서.” 끊임없이 나눠주시는 손길들에 인정을 느꼈습니다.
없이 갔더니 이웃들이 채워줍니다. 사람살이를 이리 경험합니다.
초행길이라 하였지요.
김희호 씨만 의지하며 다녔습니다. 김희호 씨가 자기 삶의 주인 노릇 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는 동네였더라면 제가 이리저리 끌고 다녔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김희호 씨가 건네는 손 붙잡고 의지하고 따라다녔습니다.
제가 찾아본 길은 알고 보니 군부대 도서관이었고, 지역민 다 아는 휴무 날이고, 공사 중이었습니다. 버스도 잘못 내렸습니다. 제가 택한 여행지는 어머님이 원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여행 계획 짜고자 김희호 씨가 아는 카페로 갔고, 센터에 들릅니다. 김희호 씨가 향하는 길에는 진짜 짜장면집이 있었고,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습니다. “어머니한테 물어봐야 해!” 희호 씨는 어머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김희호 씨도 처음 가보는 길이 아니라면 그저 손 마주 잡고 함께 걸었습니다. 멀리 걸어야 하면 김희호 씨에게 우리가 왜 이 고생 중인지 알려드립니다.
피아노 학원, 카페, 마트, 문구점….
김희호 씨가 살아온 흔적을 발견합니다.
제 추억, 김희호 씨 추억 하나 나눕니다.
바삐 지나온 오늘 하루를, 도란도란 돌아볼 틈이 생겨났습니다.
“희호 씨 오늘 하루 어땠어요?”부터 시시콜콜한 대화 나누며 오래도 걸어 다녔습니다.
뜨거운 여름입니다. 땀이 뻘뻘 흐릅니다. 길을 걷다 넘어지기도 합니다.
비가 내립니다. 어깨에는 무거운 가방 하나,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나눌 거리가 있습니다. 우산을 쓴 게 무안할 정도로 젖기도 하고 ‘참방참방’ 걸음을 재촉하기도 합니다. 어느새 선물을 담은 종이가방이 비에 젖어 찢어집니다. 무거운 갈색 가방도 뜯어집니다.
이처럼. 이리저리 흔들려 인정이 흘러넘쳤습니다.
저는 한 치 앞도 모르니 물 한 컵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온전히 채워졌다면 더 받으려 나서지도 않습니다. 가득 담은 컵을 굳건히 지키려고, 가만히 내비두었다면 몰랐을 ‘정’입니다.
20대 어린 두 청년이 길을 걷다 받은 도움이 참 많습니다. 편히 차 타고 다녔으면 몰랐을 어려움, 낭만, 타인의 친절입니다.
김희호 씨는 자기소개 누구보다 잘합니다. 누구에게든 “김희호예요!”하며 인사를 건넵니다.
이리저리 김희호 씨 발 닿는 곳에 인사를 드렸습니다. 김희호 씨와의 마지막 외출까지요. 헤어질 준비를 하니 김희호 씨가 뿌린 씨앗이 땅에 포개어지고, 뿌리내리고, 자라난 둘레 사람들의 관계들을 마주합니다.
“누군지 알아요. 저번에 한 번 뵀어요.”라 말한, 두 번 들렸다고 이제는 저도 덩달아 편안해진 카페 사장님.
양어머니 잠옷 사러 들린 ‘번영’ 옷 가게 사장님. 다음에 김희호 씨가 또 들리면 알아보실 겁니다.
김희호 씨가 메뉴 사진을 손으로 짚으면 알아채시고, 김희호 씨에게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는 알바생. “콜라 주세요.” 하면 콜라 리필해 주시는 알바생. 김희호 씨가 콜라 마시러 또 갈 겁니다.
자립센터 선생님 드릴 빵 산다며 자주 들린 빵집. 들릴 때마다 비에 젖은 채로 입장하고, 비가 와 종이가방이 찢어졌습니다. 다음번에는 다른 도움을 부탁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희호야 또 와. 우리가 기차 타고 갈게.”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고깃집 이모님.
“희호야, 다음에 또 와. 아버지 기일 맞춰서 와.”하며 편히 만날 고모님과 가족들.
“희호야, 여행 잘 다녀왔어?” 물어봐 주시는 카페 사장님.
“희호 씨, 안녕하세요~ 아이들 보려면 조금 늦게 와야 해요. 희호 씨 앞으로 오면 제가 아는 척할게요.” 하시는 CU 사장님.
희호 씨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려달라고 처음보다 편히 부탁드릴 수 있는 목사님.
언제든 자기네 집에서 묵으라며 거처를 내어주시는 목사님과 사모님.
‘아, 인사의 힘이 이리도 크구나, 용기 내 묻고, 부탁드린 자리에 이리 많은 열매가 맺었구나.’ 느낍니다.
‘타인으로서 친절하겠다’는 배움을 얻었으니 어떤 타인의 도움이 있었는지도 말해야겠지요.
마을 이장님도 모르고, 여기 계신 분들도 모르는. 완벽한 타인의 친절을 말합니다. 줄곧 함께한 분들에게 드릴 감사 인사는 넘쳐나거든요. 다른 글에 따로 남겨둡니다.
콜버스에 대해 잘 몰랐던 건 우리인데 취소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시는 기사님. 천천히 오르내리라 해주시는 버스 기사님. 무더위에 걸으니 태워다 주신 분. 응원한다며 서비스 주신 떡볶이 사장님. 떡볶이 가게 자리 입구 쪽에 서 있다가 바로 자리 비켜준 어린 학생들. 희호 씨가 강아지 무서워하니 강아지 품에 안아 올려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신 어느 가족분들.
여행 간 날, 먼 길을 가고, 애먼 곳이어도 “가봅시다.”해주며 도착지까지 바래다주신 택시 기사님. 종이가방이 뜯기고, 음료수 손잡이가 뜯기니 비닐봉지 내어주신 어르신들.
저 홀로 택시 탔을 때, 가는 길이 막히니 돈은 어느 지점까지만 받고 집까지 데려다주신 택시 기사님.
그 타인 중 몇몇은 이제는 하루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지인이 되어갑니다. 서로의 세상에서 만납니다.
아는 사람일수록 더 친절할 것 같지요? 아니더군요. 오히려 아는 게 많아 기다려 주지 못하였습니다. 완벽한 타인이기에 더 묻고, 친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리 타인을 대하겠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셋만 가는 첫 여행입니다. 비가 오고 아무것도 못 하고 피곤하고. 잘 모르는 장소라 길 찾기에도 미숙함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자식 생각하고 챙기는 양어머니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걱정되고 피곤하여, 불안하여 재촉하고 아쉬운 말들도 튀어나옵니다. 그럼에도 김희호 씨와 함께합니다. 김희호 씨에게 물었습니다. “좋았어.” 자식이 좋다 하니 저도 됐습니다.
어머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관계는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엄마와 딸입니다.
고모님과 오랜만에 만납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희호 뭘 좋아해? 희호 이거 할 줄 알지?”
하나하나 묻습니다. 기다립니다. 지켜줍니다.
자신과 닮은 점들을 찾아냅니다.
“괜찮아, 고모가 있잖아.”
“다음에 또 와.”
관계가 살아났습니다. 김희호 씨에게 있던 든든한 아군이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눔과 부지런함을 배웠습니다.
김희호 씨, 부녀회장님과 마을 주민분들 덕분에 다른 이와 나누는 법을 배웁니다.
김희호 씨는 “나눠 먹자!” “사가야 해!”하며 늘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습니다. 손이 참 큰 사람입니다. 다른 이와 나눌 줄 아십니다.
부녀회장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런 건 직접 나눠드리는 거야, 나는 이만큼만 먹을게. 가서 나눠드리고 와.”
분명 넉넉하게 산 빵이었는데 나누려 보니 몇 개 없었습니다. 직접 드리러 찾아뵈니, 더 많은 가족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양도 큰데 뭘. 고마워요. 잘 먹었어요. 하시니 부끄럽고 감사했습니다.
저도 베풀고, 나누는 삶 살겠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고, 일찍 잠드는 시골 풍경을 봅니다. 더운 여름에도 바삐 움직이는 모습들이 참으로 멋집니다.
하루는 해가 떠 있는 순간부터 노을이 지고, 해가 저물 때까지 한자리에서 묵묵히, 하나하나 정성 들여 일하는 어르신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밀린 일들로 조급해지다가도 하나하나 차분히 해나가는 농부의 모습을 보며 ‘내게 주어진 시간이 참 많구나.’ 느낍니다. 차근차근 제 일을 시작해 봅니다.
정겹습니다.
오가다 마주친 마을 어르신과 나눈 짧은 오전 인사가 참으로 정겹습니다.
저번에 인사드렸던 할아버지를 또 마주칩니다.
“그대는 집이 어딘가?”
“경기도 광주요.”
“아이고 멀리서도 왔네”
할아버지 지나가시고 바로 뒤에 처음 뵙는 할머니가 걸어오십니다.
“마을회관에서 살고 있는 학생입니다.”
“마을회관에는 왜 왔어?”
“ㅇㅇㅇ에 공부하러요.”
“아아, 그려 공부 잘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전에 뵈었던 할머님, 사모님을 마주칩니다.
인사 나눕니다.
이장님, 사모님, 할아버지 또 마주칩니다.
“출근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온빌. 입주자분들의 집에 방문하고, 서로의 일정을 나누며 기도하고 응원합니다. 출근길, 퇴근길, 쉬는 시간 틈틈이 나눈 대화들이 참 정겨웠습니다.
김희호 씨와 함께하고자 걸어온 길에는 이리도 많은 이들의 발자국이 남았습니다. 함께 걸어왔습니다.
세상은 참 살만합니다. 잠시 멈춰선 길에 마주친 이와 인사 나누고. 오래 참고 기다리고. 나와 다르니 묻고, 이해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이리하니 마주하는 관심과 나눔, ‘정’ 덕분에 세상 참 살만하다 느꼈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려 이제 남은 것이 없겠다 싶었는데 다시금 채워져 있습니다. 마음 하나만은 풍족해져 돌아갑니다.
2024년 7월 18일, 이다정
첫댓글 이다정 학생이 단기사회사업하면서 지낸 한 달동안 많은걸 느끼고 경험했네요.
이다정 학생의 글을 읽다보면 세상에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다정 학생의 시선때문인 것 같습니다.
'없이 갔더니 채워졌다.'는 이다정 학생의 말에 많은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각박해졌다 하는데 아직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이웃이 있고 살만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