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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할 성도(1)
너희가 진심으로 네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2022년 5월 29일 / 마태복음 18:23-35 / ♬ 305장
마 18:23-35 / 하늘나라는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정해진 날에 셈을 맞춰 보는 것에 비할 수 있다. 24) 셈을 하는 중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나왔다. 25) 그가 빚을 갚을 돈이 없음을 알자 왕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는 왕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제발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빌었다. 27)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놓아 보내며 빚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사람을 만나자 멱살을 잡고 당장에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29) 그 사람이 엎드려 조금만 시간 여유를 달라고 빌었으나 30)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다른 종들이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고해 바쳤다. 32) 그러자 왕은 용서해 주었던 그를 불러서 말하였다. `이 악독하고 뻔뻔한 놈아! 네가 애걸하기에 불쌍히 여겨 내가 그 엄청난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33) 그러니 내가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남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왕은 몹시 노하여 그를 형리에게 보내고 마지막 한 푼까지다 갚게 하였다. 35)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네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데나리온과 달란트는 신약시대의 화폐 단위이다. 1데나리온은 무게가 약 4g인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이며(마 20:1) 1달란트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20kg에서 40kg 정도 나가는 금의 무게를 가리킨다. 100데나리온과 10,000달란트의 화폐 가치를 비교하게 되면 일만 달란트라고 표현하는 하나님께 입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에 비하면 크게 표현한 일백 데나리온에 해당되는 형제자매의 실수나 허물은 또 얼마나 작은 지를 깨닫게 된다. 참고로 1달란트는 품꾼의 16년 품삯이며, 일만 달란트는 16만 년을 매일 벌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이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것처럼 개개인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것이다. 그러기에 값없는 은혜라도 한다.
물론 지옥에 갈 사람에게는 이런 말씀이 길가처럼 소용이 없겠지만, 천국을 사모하는 성도라면 마음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귀중한 말씀이다.
< 문자 메시지와 카톡을 통하여 보낸 글이 있어 그대로 실린다.
다시 마 18:23-35을 보면서 / 1달란트 = 6,000데나리온 / 1만 달란트 = 6,000만 데나리온 / 1데나리온 = 하루 품삯(최저 10만원) / 1만 달란트 = 60,000,000일×10만원 = 164,384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한 액수.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다면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빚은 탕감해 주는 것은 기본적인 의무이다. 그것도 형제에게 말이다. 이것조차 못한다면 그는 사람도 아니요 미물만도 못한 극악(極惡)한 인간이다. 누가 뭐라 할지라도 일만 달란트를 빚질 정도의 사람이라면 1백 데나리온은 적은 돈으로 충분히 탕감해 줄 수 있었다. 아니 더 한 것이라도 탕감해 주었어야 한다. ‘내가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남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은 결코 무리하거나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닌 주머닛돈처럼 동냥도 할 수 있는 액수일 것이다.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더불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가지를 부탁하시며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요 15:12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마 6:12-13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13)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다시 한 번 강조하셨고, 본문에 나오는 비유의 결론에서도 이 점을 지적해 주셨다.
마 6:14-15 / 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다.
마 18:35 /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네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 금세기 용서의 실천으로 한 공동체, 한 나라를 위대한 미래로 이끈 우리 시대의 가장 감동적인 리더가 남아공의 고인(故人)이 넬슨 만델라가 아니었나 싶다. 존 칼린의 <인빅터스>(Invictus)라는 책은 이런 만델라의 감동적인 크리스천 리더십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가 꿈꾸는 기적>이란 제목으로 영화로 상영되기도 했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본래 백인들만의 스포츠였다. 오래전부터 백인들만이 사용해온 남아공의 국기(國技)였다. 남아공의 대표적인 럭비팀 스프링복스는 인종차별의 상징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럭비 경기가 벌어지면 흑인들은 남아공의 상대 팀을 응원하곤 했다고 한다. 천신만고 27년간의 복역 생활을 마친 넬슨 만델라가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나라의 통합은 불가능한 기대처럼 보였고 언제 어떻게 산화(酸化)될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였다. 백인들에게 넬슨 만델라의 당선은 그들에게 임할 복수를 기다리는 불길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정권은 바꾸었지만 아직도 백인들만으로 구성된 스프링복스 럭비팀의 유니폼은 남아공 흑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모든 것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남아공과 호주와 월드컵 럭비 결승전이 벌어졌다. 경기 5분 전에 갑자기 넬슨 만델라가 월드컵 경기장에 등장하였다. 그것도 남아공 흑인들이 그렇게 증오하는 스프링복스의 유니폼을 입고 말이다. 그것은 흑인 지도자로서 백인들의 모든 것을 용서하며 수용하겠다는 말보다 더 큰 행동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약 5분 동안 경기장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넬슨 만델라는 유니폼을 입은 채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선수들 앞으로 다가서 첫 번 백인 선수의 손을 잡는 순간 스탠드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넬슨~~넬슨~~넬슨~~.’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소리는 온 경기장을 압도하고 있었고, 백인도 흑인도 함께 울었다고 한다.
<인빅터스>의 저자 존 칼린은 이렇게 적고 있다. “만델라는 자신의 관용을 드러내는 이 조용한 상징적 행동으로 남아공을 새로운 국가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날 남아공의 백인들은 만델라가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 ‘우리는 당신들의 과거를 용서합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들 백인들과 함께 열광하며 살아갈 것입니다.’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흑인들도 그들의 지도자들을 따라 백인들을 용서하기로 동의한 것이다. 이렇게 용서와 화해의 새 날은 찾아왔다.”
그날 남아공의 한 흑인 ‘결코 백인을 용서하지도 그리고 백인의 게임을 응원하지도 않겠다’고 한 베케 베케라는 청년도 TV를 보다가 갑자기 마음이 무너지고 동시에 자기의 가슴속에 쌓인 증오가 녹아내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새로운 현실이야. 이제 남아공의 팀은 나의 팀이야! 그들이 누구든 그들의 피부색이 무엇이든 그들은 나의 팀이야!”
하나님은 그날 남아공에게 게임에서도 극적인 승리를 선물로 주셨다. 다음 주일 만델라는 남아공에서 가장 인종편견이 심했던 네덜란드 개혁 교회를 찾았고, 백인 목사와 교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교회를 방문한 흑인 성도 만델라를 끌어안고 함께 찬양을 불렀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남아공에는 진정한 역사의 새 날이 찾아왔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밀려온다.
❶ 예수님의 비유 속에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주면서 조건을 붙이지 않았지만, 은혜를 받았다면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며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고 할 수 있다.
❷ ‘왜 하나님께서 회개를 하여도 용서해 주지 않으시는가? 왜 고난은 계속 되는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이런 말을 전에 먼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며 탕감해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❸ 백데나리온 빚진 자에 불의한 청지기처럼 오십이라고 써서 빨리 갚도록 해 주고(눅 16:1-9), 대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도록 해야 한다(눅 13:6-9).
❹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누구나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셨다(마 12:50).
엡 6:12 / 우리가 싸워야 할 적들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육체가 없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악한 지배자들과 강력한 존재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어둠의 왕들과 영적 세계에 있는 무수한 악령들입니다.
찬송가 350장 1. 우리들이 싸울 것은 혈기 아니오 우리들이 싸울 것은 육체 아니오
마귀권세 맞서 싸워 깨쳐 버리고 죽을 영혼 살릴 것일세
<후렴> 한마음으로 힘써 나가세 한마음으로 힘써 싸우세
악한 마귀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2. 우리들이 입은 갑옷 쇠가 아니오 우리들이 가진 검은 강철 아니오
하나님께 받아 가진 평화의 복음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3. 악한 마귀 제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들의 대장 예수 앞서가시니
주저말고 용감하게 힘써 싸우세 최후 승리 얻을 때까지
4. 죄악 중에 빠진 사람 죄를 뉘우쳐 십자가에 달린 예수 믿기만 하면
위태한데 빠진 영혼 구원 얻어서 천국 백성 될 것임일세
➎ 기독교는 용서와 화해를 기초한 종교이다(마 7:24-25).
빅토르 유고의 작품인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에는 선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주인공 장발장이 등장한다.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죄가 불어나 무려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만기 출감했다. 그러나 모두 전과자라고 외면하여 잠잘 곳이 없어 방황하다 사제관에서 뜻밖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은식기로 식사대접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날 밤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순경에게 붙잡혀 다시 사제관에 끌려왔다. 그런데 이를 본 신부는 장발장에게 '은식기와 은촛대 모두 내가 준 것인데, 당신은 왜 은촛대는 안 가져갔습니까?'라고 말하자 장발장은 감격하여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착한 사람이 되어 선행자가 되었다. 반면 끊임없이 그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형사 자벨 경사가 있었다. 장발장이 나중에 어느 소도시의 시장이 되었을 때, 역시 쟈벨 경사는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장발장의 뒤를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그가 과거 탈옥범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려 한다. 그때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했다. 장발장을 존경하는 청년대원들은 일평생동안 장발장을 괴롭힌 악질 경사 자벨을 잡아왔다. 세상이 뒤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그 경사를 총살시키려고 계획하였다. 이 사실을 안 장발장은 '그 사형을 중지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그를 풀어주어 자유인이 되게 하였다. 그때 쟈벨 경사는 장발장을 향해 물었다. '당신이야말로 나를 가장 죽이고 싶을 텐데 왜 살려 줍니까? 왜 입니까?'그때 장발장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보다 넓고 하늘은 그 땅보다 더 넓소. 그러나 그보다 더 넓은 것은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요.'
용서는 나의 것을 포기하고 서로 화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랑의 행위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십자가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셨다. 용서는 내가 나를 사랑함같이 상대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탕감하여 주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원수일지라도 그를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나를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 주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내 한쪽 뺨을 치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 하거든 속옷까지도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에게 사랑을 주면 그것을 다시 얻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서 차고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분량대로 되돌려 받을 것이다(눅 6:27-38).
● 본문 마태복음 18:23-35은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지만 감사하면서도 두려운 말씀이다. 인간은 누구나 용서받아야 할 때 용서받아야 하고, 용서해야 할 때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가 있고 하늘 평안이 임한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간곡히 권면하신 기록들이 여러 곳에 있다.
특히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 다시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만큼 용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 6:14-15 / 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마지막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적이 있으셨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일행이 그 무화과나무 곁을 지나다가 보니 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께서 그 전날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보십시오, 선생님!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막 11:21-24 / 만일 너희가 이 산더러 ‘저 바다로 빠져라’고 하더라도 너희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그대로 되리라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내 말을 잘 들으라. 너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후에 다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이 마가복음 11:25-26이다.
막 11:25-26 / 그러나 너희가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먼저 용서하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26) 만일 너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지 않을 것이다 ….
▶ 이렇게 용서에 대하여 강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 하신 명령으로 곧 나를 위한 말씀들이다. 본문 앞에서 예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마 18:15-20 / [형제가 죄를 짓거든] 만일 어떤 형제가 네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만일 그가 말을 듣고 잘못을 고백하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은 것이다. … 18)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땅에서 매어 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어 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 이름으로 모인 곳] 내가 또 진정으로 말한다. 만일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 위에서 마음을 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교회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
엡 4:31-5:2 / 심술궂고 불쾌한 태도와 성내는 버릇과 싸움과 가시 돋친 말과 남을 멸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32) 친절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한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사랑받는 아이가 그의 아버지를 닮는 것같이 여러분도 모든 일에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십시오. 2) 여러분을 사랑하신 나머지 여러분의 죄를 없애려고 자신을 향기로운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다른 사람을 한마음으로 사랑하십시오.
골 3:12-14 /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겸손하게 온유와 인내로 13) 관용을 베풀어 언제나 남을 용서하고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14)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모두를 완전하게 하나로 묶어 주는 띠입니다.
결론으로 용서에 대한 예화 몇 개를 … .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 마음속에 불안한 마음, 증오심, 원한, 독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사람의 정신생활과 육체활동에 많은 해독을 가져온다고 한다. 반면 용서와 사랑을 베풀면 …….......
■ 한 여자가 음식도 잘 소화되고 건강했는데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토해 버린다. 의사에게 가서 아무리 의학적으로 진단해 봐도 무슨 원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에게 가서 심리상태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정신과 의사가 여러 가지로 묻고 상담하던 중 발견한 것은 ‘시골에서 시어머니가 아무 날 너에게로 간다’는 전보를 받고 난 뒤부터 토하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였다. 이 여자는 결혼생활로 행복했는데 유독 시어머니만 싫어했다. 고부갈등이 심한 상태이다. 그가 미워하는 시어머니가 온다는 전보를 받고부터 음식을 먹는 것마다 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미워하는 마음은 정신적으로도, 육신적으로도 건강을 해친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목장우유를 많이 먹는다. 지금 자라나는 신세대는 얼마나 날씬한가? 우유 많이 먹는 덕분이라고 하지만 ….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쩐지 모르지만 서양 목장에 가면 반드시 스피커에서 음악을 들려준다고 한다. 이유인즉 소가 성날 때 짠 우유는 아주 해롭다는 것이다. 유아도 성난 소의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나고, 위장이 상할 확률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젖소에게 기분이 좋으라고 음악을 들려준다고 한다.
산모(産母)가 화를 내고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아이에게 젖은 먹이면 아주 해롭다. 성이 날 때는 핏속에는 독사의 독보다 더 독한 독이 분배된다. 성난 다음에 왜 소화가 안 되는가? 이는 위 분비액이 분배되지 못하고 위액 가운데 독소가 분배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의사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신을 창조하실 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육체에 고장이 나지 않도록 하셨다’고 했다. 인간관계의 핵심적인 단어는 용서와 사랑이다. 용서 없이는 사랑이 없고, 사랑 없이 용서가 없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사랑을 입으며, 인간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용서의 문제를 교훈한 것이 본문 말씀인 것이다.
■ 박 자람이라는 청년은 미국의 유명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유수한 콩쿠르에서 여러 번 입상하고 보스턴 오페라단 가수로 인정받아 활동하다가 군 입대를 위하여 귀국했다. 군에서 뇌의 해마가 손상되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해서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회복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성악하는 사람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절망 속에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중에 말씀을 받았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그는 자유로운 미국생활을 하다가 군대에 들어오니 이해할 수 없는 제약과 압박이 있었는데, 자신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 뜨겁게 회개하고 결심했다. 불치병 판정을 받은 토요일에 군법회의가 열렸다. 자신의 삶을 완전히 망쳐버린 사람들을 죽이도록 미웠기에 도저히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군법회의에서 자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겠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성악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잃었으니 절망적인 삶이 그에게 남아있을 뿐이다. 제대 후, 어느 날 청년부 예배에서 형제자매들에게 이 기가 막힌 환경을 간증하며 ‘너무 너무 찬양하고 싶다’고 하며 울었다. 청년부원들이 모두 함께 울었다. 그러자 청년부원들이 쇳소리가 나는 찬양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것이라고 격려하며 찬양을 해보라고 응원했다. 박 자람 형제는 용기를 내어 찬양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 하시며” 탁하고, 쇳소리가 나고, 높은 음에서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찬양을 하는 오페라 가수였던 당사자는 얼마나 괴롭고 애처로웠겠는가? 찬양을 듣는 청년들의 표정도 애처로웠다.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1절을 마치고 2절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하시니 그가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를 부르는데 점점 목소리가 변하더니 찬양이 아름다운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병원에서 불치 진단을 받고 조금 전까지 쇳소리가 나왔는데 하나님이 말씀대로 살며 용서할 수 없는 이들을 용서하고 말씀에 순종하니 찬양하는 짧은 시간동안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을 용서한 박 자람 형제의 목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이다.
■ 2차 대전 때의 일이다. 영국의 한 비행사관이 독일기 하나를 격추시켰다. 적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그 적병의 생명이 염려스러워서 적기를 따라 착륙했던 영국 비행사관은 죽은 자의 몸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너의 어머니로 부터]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전투를 끝내고 안전하게 돌아온 이 영국 비행사관은 전사한 독일인 비행사관의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인즉 자신은 그 아들이 미워서도, 죽이고 싶어서도 아닌 전쟁이라는 잔인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이게 되었으며 또한 자신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죽은 아들의 심정이 되어서 어머니에게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편지가 중립국을 통해 독일의 그 어머니에게 전해진 후 며칠 뒤 그 영국 사관은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보내주신 편지를 받기 전에 이미 아들의 전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당신을 원망했겠지만 편지의 사연을 읽고 보니 그 원수가 도리어 아들로 소생해서 이 어미에게 편지를 보내준 듯이 느껴집니다.]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때가 오면 자신을 어머니로 여기고 꼭 찾아와 달라는 부탁과 사진에 쓰여 있던 ‘너의 어머니로부터’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처참한 전쟁터에서도 아름다운 인간애의 꽃을 피운 감격스런 이야기다. 영국 병사와 독일군 병사의 어머니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였다면 서로에게 용서라는 보상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 어떤 사람에게 조우라는 충성된 노예가 있었다. 주인은 모든 일을 그와 의논하고 그에게 많은 일을 맡기고 있었다. 어느 날 주인은 조우와 함께 또 다른 노예를 사기 위해 노예 시장에 갔다. 많은 노예들이 상품처럼 진열되어 있는데 유달리 늙고 힘없는 한 노예가 끼어 있었다. 주인은 힘이 좋고 젊은 노예를 사려는데, 조우가 병든 노예를 사자고 주장해서 조우의 말대로 그 노예를 사 왔다. 병든 노예는 집에 와서도 별로 일을 하지 못했지만 조우는 열심히 그를 간호하고 잘 돌보아 주었다. 주인은 조우에게 “일도 못하는 그 노예를 무엇 때문에 그토록 극진히 돌보는가?”라고 물었다. 조우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 노예는 나의 원수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 나를 유괴해서 노예 상인에게 팔아 지금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저 사람도 노예가 되어 병들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저 분이 세상 떠날 때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 어느 사람이 세계의 존경을 받던 그렌펠 선교사에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처럼 헌신적인 생애를 살도록 영향을 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어느 날 밤, 그가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병원에 불에 몸을 몹시 데인 여인이 응급환자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 여인은 몸을 너무 많이 데었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그 여인은 술을 많이 먹고 집에 들어온 남편이 파라핀 등불을 던져서 그렇게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다. 술이 반쯤 깬 남편을 경찰이 연행하여 병실로 끌고 들어왔을 때, 책임 담당관은 그 여인의 목숨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알고, 어떻게 그런 화상을 당하게 되었는지 경찰에 그대로 말해주기를 재촉하였다. 그 불쌍한 여인은 자기 침대의 곁으로 끌려온 남편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시선이 남편의 그 억센 손에 닿게 되었다. 여인의 기운없는 시선은 남편의 팔을 따라서 어깨 그리고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고통 중에 있는 여인의 얼굴이 잠시 고결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책임 담당관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냥 불의의 사고였습니다.” 그런 뒤 베개에 머리를 묻고 곧 사망했다고 한다. 윌프레드 그렌펠 선교사는 이 이야기를 하고 다음과 같이 맺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사랑과 똑 같았습니다.”
■ ‘미네소타 크리스천 크로니클’이라는 잡지에 실린 이야기이다. 킴 푹 여인은 베트남 여인으로 월남전쟁 당시 살을 태우는 무서운 네이팜 폭탄이 떨어진 마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 생존한 사람이다. 그가 유명인사가 된 것은 우연히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그 도망치는 모습이 찍혀 전 세계 여러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다. 1996년 워싱턴에선 월남전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는데, 킴 푹 여인이 초청되어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연설에서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면 그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존 머플러라는 비행기 조종사가 참석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 조종사입니다. 저의 오판으로 고통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일로 인해 전 그동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다들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감격스런 장면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자기와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 그 당사자를 킴 푹 여인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는지, 신문은 그녀가 월남전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비행기 조종사 역시 오래전부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