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음주 목요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을 계몽주의 시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요한 수난곡> 공연, 중간에 마크 패드모어의 시 낭송이 있을 거라는 얘기만 떠돌았는데,
어떤 시를 낭송하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상세 프로그램이 모카페(;;)에 올라왔더군요.
요한 복음서 1장 1~5절
J. S. 바흐, <요한 수난곡 (Johannes Passion, BWV 245)> 1부
시편 22편 2~19절
T. S. 엘리어트, <네 개의 사중주 (Four Quartets)> 중 '리틀 기딩 (Little Giddding)' 5부
J. S. 바흐, <요한 수난곡 (Johannes Passion, BWV 245)> 2부
야코프 한들,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는지를 (Ecce quomodo moritur justus)'
(인터미션 없음.)
프로그램만 봐도 가슴이 설렙니다. 요한 복음서의 시작 부분인 유명한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와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부르짖으셨던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마태 27, 46)로 시작하는
시편 22편을 낭송한다니 말이에요. 야코프 한들 (Jacob Handl, 1550-1591)의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는지를' 역시 이사야서 57장 1-2절을 바탕으로 한 가사의, 사순 시기를 위한 곡이고요.
그래서 예습 차원에서 참고가 되실까 하여 낭송될 내용들 - 요한 복음서 1장, 시편 22편,
T. S. 엘리어트의 '리틀 기딩' 5부 (우리말 번역을 찾지 못해서 영문으로)를 올려봅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 1, 1-5)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 위에 좌정하신 분.
저희 선조들은 당신을 신뢰하였습니다.
신뢰하였기에 당신께서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당신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고 당신을 신뢰하여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
저를 보는 자마다 저를 비웃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 주님께 맡겼으니 그분께서 그자를 구하시겠지. 그분 마음에 드니 그분께서 구해 내시겠지.”
그러나 당신은 저를 어머니 배 속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 젖가슴에 저를 평화로이 안겨 주신 분.
저는 모태에서부터 당신께 맡겨졌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제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환난이 다가오는데 도와줄 이 없습니다.
수많은 수소들이 저를 에워싸고 바산의 황소들이 저를 둘러싸 약탈하고 포효하는 사자처럼 저를 향하여 입을 벌립니다.
저는 물처럼 엎질러지고 제 뼈는 다 어그러졌으며 제 마음은 밀초같이 되어 속에서 녹아내립니다.
저의 힘은 옹기 조각처럼 마르고 저의 혀는 입속에 들러붙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죽음의 흙에 앉히셨습니다.
개들이 저를 에워싸고 악당의 무리가 저를 둘러싸 제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제 뼈는 낱낱이 셀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저를 보며 좋아라 합니다.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시편 22, 2-19)
V
What we call the beginning is often the end
And to make and end is to make a beginning.
The end is where we start from. And every phrase
And sentence that is right (where every word is at home,
Taking its place to support the others,
The word neither diffident nor ostentatious,
An easy commerce of the old and the new,
The common word exact without vulgarity,
The formal word precise but not pedantic,
The complete consort dancing together)
Every phrase and every sentence is an end and a beginning,
Every poem an epitaph. And any action
Is a step to the block, to the fire, down the sea's throat
Or to an illegible stone: and that is where we start.
We die with the dying:
See, they depart, and we go with them.
We are born with the dead:
See, they return, and bring us with them.
The moment of the rose and the moment of the yew-tree
Are of equal duration. A people without history
Is not redeemed from time, for history is a pattern
Of timeless moments. So, while the light fails
On a winter's afternoon, in a secluded chapel
History is now and England.
With the drawing of this Love and the voice of this
Calling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Through the unknown, unremembered gate
When the last of earth left to discover
Is that which was the beginning;
At the source of the longest river
The voice of the hidden waterfall
And the children in the apple-tree
Not known, because not looked for
But heard, half-heard, in the stillness
Between two waves of the sea.
Quick now, here, now, always—
A condition of complete simplicity
(Costing not less than everything)
And all shall be well and
All manner of thing shall be well
When the tongues of flame are in-folded
Into the crowned knot of fire
And the fire and the rose are one.
(T. S. 엘리어트, '리틀 기딩' 중에서)
그리고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할 한들의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는지를', 라틴어 및 우리말 (대충 ;;)
번역 가사와 이사야서 57장 1-2절입니다.
Ecce, quomodo moritur justus,
et nemo percipit corde.
Viri justi tolluntur
et nemo considerat.
a facie iniquitatis
Sublatus est justus,
et erit in pace memoria ejus.
In pace factus est locus ejus,
et in Sion habitatio ejus,
et erit in pace memoria ejus.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는지를,
알아보는 자 하나 없다.
의인들이 사라져 가도
마음에 두는 자 하나 없다.
죄인들의 면전에서
의인은 사라졌고,
그의 기억은 평화 속으로 들어가리라.
평화가 그의 자리가 되고,
시온이 그의 거처가 되리라.
그의 기억은 평화 속으로 들어가리라.
의인이 사라져 가도 마음에 두는 자 하나 없다.
알아보는 자 하나 없이 성실한 사람들이 죽어 간다.
그러나 의인은 재앙을 벗어나 죽어 가는 것이니
그는 평화 속으로 들어가고
올바로 걷는 이는 자기 잠자리에서 편히 쉬리라.
(이사 57, 1-2)
P.S.
요즘 성가대에서도 성삼일에 부를 곡들을 맹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지휘자님이 새로
오셨는데, 성금요일에 팔레스트리나의 'O Domine Jesu Christe'를 부르게 되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드디어 르네상스 폴리포니를 불러 보는구나! 하고요. ^^;;
첫댓글 잘 봤습니다. 인터미션 시간에 시 낭송하면 아무도 나갈 사람 없겠습니다.. ㅋ 요한수난곡이 무대에 올려지다니.. 가슴 떨림을 금할 수가 없네요. 다음 날인가요? 그 전 날 인가요.. 기회가 된다면 b단조 미사도 보세요. 정격연주와 현대 오케스트라에 의한 연주가 대비될 터인데.. (현대 오케스트라에 의한 연주일지라도 라이프치히의 바흐에 대한 전통 때문에 듣기에 무척 좋을 건데) 하여튼, 잘 보시고 감상평도 올려주세요. 부럽습니다.
그래서 실제 인터미션이 없습니다. 그 날 지각하면 큰 일 날 것 같습니다.
그 전날이요... 이틀 연속은 아무래도 무리여서 B단조 미사는 포기하고 요한 수난곡만 선택했습니다. (패드모어와 하비 때문에. ^^;) 예전에 헤레베헤 왔을 때 갔더라면 좋았을 걸... ㅠ.ㅠ 그때는 B단조 미사에 관심이 없었죠... ;;;;
에우제니아님도 성가대시군요? 사순,부활곡들 연습하시느라 애쓰시겠네요.^^ 위의 글 복사해서 들고 가야쥐~ 고마워요.
네, 소화데레사님(맞나요? ㅎㅎ)도 연습하시느라 바쁘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