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63)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과의 국경에 건설한 두 곳 댐의 준공식에 참석한 뒤 헬리콥터에 탑승, 북서부 타브리즈로 이동하던 중 헬기가 추락해 숨진 사실을 확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다음날 전했다.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외무장관을 비롯해 함께 탑승했던 8명 모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이란 정부는 사고 헬리콥터가 경(비상) 착륙, 구조대가 현장에 급파됐지만 안개 등 악천후 때문에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국 BBC는 '경착륙'이 러시아가 군용기가 '추락'했을 때 피해 정도를 축소하기 위해 자주 쓰는 표현이라고 소개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정치범및 반대파 처형에 앞장선 이슬람 법학자이자 정치인이다. 2021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뒤 내년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본명이 사이드 에브라힘 라이솔사다티인 그는 1960년 종교 수도 마슈하드의 성직자 집안 출신으로 다섯 살 때 부친을 여의었다. 이맘 레자 사원의 이맘이자 마슈하드의 금요기도 이맘인 아흐마드 알라몰호다의 사위이기도 하다.
취임 이듬해 이란과 미국 등의 핵합의를 뒤집고 2022년 9월부터 지난해 초까지 반체제 시위로 정치적 곤경에 몰렸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 “서구 제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협력기구를 설립하고 함께 맞설 군대도 동원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자지구 전쟁 와중에 벌어진 시리아 주재 영사관 피폭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달 13일 밤 사상 처음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하도록 명령하는 등 초강경 지도자로 각인됐다.
그는 2017년 대선에 보수주의 성향 이슬람혁명군 인민전선 후보로 출마했으나 온건파로 분류된 하산 로하니 대통령에게 38.3%-57%로 졌다. 1989년 이후 군림해 온 최고지도자 라흐바르 알리 하메네이가 내심 밀던 후보였고 모함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전 테헤란 시장이 지지를 표명하며 후보를 사퇴했는데도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던 로하니 대통령을 추적하는 데 실패했다.
2021년 대선에 재수해 연임 제한 조항으로 출마할 수 없는 로하니의 후임으로 당선돼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라이시가 약 62%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해 같은 보수 성향의 모흐센 레자이가 11.79%, 중도 및 범여권 단일 후보 헴마티가 8.38%에 그쳐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국제 인권단체 및 유엔 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반인륜 범죄로 지탄받고 있다. 1980년 카라지에서 검사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 뒤 300km 이상 떨어진 하마단을 오가면서 검사 일을 병행했다. 1985년 수도 테헤란검찰청의 차장으로 임명됐다. 정치범 및 반대파 처형을 감독하는 데 열심이었다. 1988년 수천 명의 정치범을 처형했고, 국내 반대파 및 서구 언론들에 의해 "살인위원회"라고 불린 기소위원회의 위원 4명 중 한 명이었으며, 미국 해외자산통제국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이란이 반미 국가이긴 하지만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는 인물이 대놓고 대통령이 된 것도 그가 처음이다.
1994년부터 10년 동안 종합검사실장을 지내다가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대법원 차장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검찰총장을, 2019년부터 2021년 대통령 취임 전까지 대법원장을 지내는 등 사법부에서 활동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공익신탁 아스탄 쿠드스 라자비의 관리인 및 대표를 역임했다. 2006년 남호라산주 전문가회의 의원으로 당선돼 대통령이 되자 물러났다.
이란의 대통령은 큰 실권이 없지만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발 나아가 2025년 재선에 당선되면 하메네이가 86세가 돼 라이시가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서방의 관측이 있어왔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세상을 떠난 뒤 대통령이었던 하메네이가 라흐바르를 계승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하메네이 사후 라이시가 라흐바르를 계승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