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강하게 만드는 법
치유자가 되는 수많은 책들이 있고 치유의 기법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암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있는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최선의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유한 방법으로 환자들을 돕고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때로 우리 자신의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거나 때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울리는 직관을 통해서 우리는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위한 우리의 헌신이 그들에게 삶의 의지를 주고 병마를 이겨나가게 한다. 누군가의 생명이 소중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힘은 그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 이러한 것이 어떤 말이나 의식보다 더 큰 치유의 효과를 낳는다.
몇 년 전 나는 세균성 뇌막염에 걸린 세 살 된 남자아이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돌본 일이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리카르도였다. 아이는 의식불명인 상태로 누워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필리핀인 3세였다. 그녀는 한시도 아이의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 잠도 의자에 앉아 침대에 엎드린 채로 잤다. 리카르도를 진찰하러 가면 그녀는 늘 아이의 담요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아이의 작은 두 발을 꼭 잡고 있었다. 때로 그녀는 졸음을 참느라 눈을 반쯤 감고 있기도 했다.
아이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산소호흡기 등의 생명 보조 장비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 때 나는 그녀에게 왜 아이의 발을 잡고 있었는지 물어 보았다. 그녀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아이의 발을 잡고 있는 것은 생명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자기가 아이의 발을 놓으면 아이의 생명이 스르르 빠져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감동이 되어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
“기도하고 계셨어요?”
“아니에요. 아이의 미래의 모습을 생각했어요. 제 마음속에서 아이는 매일매일 조금씩 자랐어요.”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가는 상상을 했다. 아이가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것을 바라보았다. 친구들과 공놀이하는 것도 보고 첫영성체 때 성당에 예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 날 아이가 아름다운 신부와 춤추는 모습을 상상했다. 결혼을 한 아들이 아이를 갖게 되어 자기가 할머니가 되는 상상도 했다. 그녀는 끝없이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그녀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아이의 발에서 손을 떼지 않았던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몰라요. 제 상상이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리카르도의 엄마가 했듯 미래에 대해 상상을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데 기여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다.
동료 의사인 할은 아주 다른 방법으로 생명을 살리고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아내가 암 진단을 받은 후 할은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일본인 2세인 할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서 종이학 접는 법을 배웠다. 종이 접는 예술인 오리가미는 일본에서는 오래 된 전통이었다. 그들은 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과 아름다운 형상을 종이로 창출해 냈다.
종이학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어떤 상징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학이 장수와 조화와 균형의 상징이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천 마리의 학을 접으면 아픈 사람이 회복되어 살아난다고 믿었다. 할은 의학도로서 그런 전통을 믿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면서 아내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다. 결국 그녀를 위해서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책상에 앉아 외과의사의 긴 손가락으로 종이학을 접었다. 한 마리를 접는데 5분가량이나 걸렸다. 종이학을 접는 동안 그는 아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자기에게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한 마리를 접으면 정성스럽게 상자에 넣어 두었다. 천 마리를 다 접으면 아내에게 줄 생각이었다.
종이학을 접은 지 두어 달이 지난 후였다. 어느 날 그는 종이학을 상자에 넣고 다음 날 수술할 환자들의 차트를 보았다. 그는 문득 이 두 환자들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자신의 아내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환자들의 생명도 그에게 중요했다. 그는 종이를 꺼내 종이학을 두 개 더 접었다. 수술 환자에게 각각 하나씩 줄 생각이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환자들의 치유를 위한 기도가 울려나왔다. 그는 수술 대기실로 종이학을 들고 갔다. 그리고 두 환자에게 주면서 이 종이학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어째서 그것을 접었는지 설명했다. 그때부터 그는 계속해서 자기 환자들을 위해 종이학을 접었다.
내 환자 중의 한 사람이 수술 전 나를 만나기에 앞서 할에게서 그 종이학을 받았다. 그녀는 내심 걱정을 많이 하던 여자였다. 암 진단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수술이나 다른 치료를 받아도 다시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받아야 하는 치료를 미루고 있었다. 의료진은 그녀에게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겨우 설득 했지만 확실하게 결심을 굳히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그녀는 수술 받기로 했다면서 의자 밑에서 상자를 꺼내더니 종이학을 보여 주었다. 섬세하고 우아하게 접은 종이학이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종이로도 그렇게 아름다운 학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 학이 어디에서 났지요?”
“저를 수술하실 선생님이 저를 위해 만드셨어요.”
그녀는 할에게서 들은 천 마리 학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경탄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 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좀 보세요. 어떻게 이렇게 진짜 학처럼 예쁘게 만들었을까요? 이렇게 학을 잘 접는 선생님이 저를 수술하는데 제가 어떻게 낫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 선생님이 저를 위해 이 학을 접었어요.”
나는 몇 년 동안 똑같은 훈련을 거친 외과 의사들 중에 어떤 사람이 수술을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 몹시 의아했다. 이것은 미묘한 기술적인 차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어떤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환자들을 만나기 전에 그들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 주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댓글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환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건 삶의 의지를 불어 넣어주는 것이겟지요. 힘과 용기가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신부님께 감사드리며, 신부님도 건강하세요^^`
신부님..."종이학"에는 단순히,종이접기에 있는것이아니라...그 종이학 ,하나하나에....접는 사람의 모든, 마음..정성..사랑.. 간절함..희망..슬픔..애절함..기쁨...아픔...그사람의 전존재가 함께하고있기에 상대방은 "감동"으로 다가오나봅니다..,때로는 "기적"을 낳기도하구요....
종이 한장이 아름다운 생명을 이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