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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도행전 19:8-22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어떻게 개척하였는지 보여줍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문제가 많았던 다른 교회들과 달리 에베소 성도들은 바울이 떠난 후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사랑이 충만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우상 숭배로 가득한 에베소 지역을 복음화 했을 뿐 아니라 로마선교의 전초 기지로도 쓰임 받았습니다. 이런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의 큰 열매요, 면류관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의 위로가 되었고, 자랑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렇게 이런 훌륭한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을까요? 에베소 성도들이 기본이 훌륭해서였을까요?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그런 부분들도 있었겠지만, 눈물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선교에 바쁜 와중에도 바울은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에베소 교회를 세우는데 헌신하였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도 고령화 되면서 다음세대가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상숭배가 가득한 땅에서 에베소교회가 어떻게 부흥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는가를 배우심으로 위기의 시대에 우리 교회도 더욱더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는 제자를 따로 세우고, 성경을 날마다 강론하여 세워졌습니다(9)
8절을 보면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어느 지역에 가던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평일에는 생업인 텐트를 만들다가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그 곳에 모인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서도 회당을 찾아가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3개월이나 계속 회당에 가서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하였습니까? 9절을 보면 “어떤 사람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회당에서 온 힘을 다해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였지만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는 무리들로 인해 바울은 고전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중 일부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거부하고 방해하였습니다. 이때 바울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9절b를 보시면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바울은 이 비방하는 자들을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이는 회당에서 무리를 중심으로 설교하던 방식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대신 바울은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들을 제자로 따로 세웠습니다. 바울은 과감하게 기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양성이라는 방식 이였습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두란노 서원을 월세로 얻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헬라 철학자들이 수사학, 철학을 논하던 장소였습니다. 바울은 이 곳에서 매일 가르쳤고 그렇게 2~3년 동안 지속적으로 가르쳤습니다. 회당에서는 <매 안식일마다> 가서 설교했었는데, 두란노서원에서는 <매일마다> 가르쳤습니다. 베자 사본에는 바울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에 5시간씩 가르쳤다고 합니다. 매일마다 5시간씩 말씀을 가르치고 소감을 묻고 발표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2년을 꼬박 훈련했으니 제자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뜨겁게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제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매일 5시간씩 3년 동안 말씀을 공부하면 대략 5500시간이 됩니다. 다니엘 레비틴이라는 신경과학자가 주장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약 1만 시간의 연습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짧은 시간 매우 집중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 제자들이 훗날 사도바울을 이어 에베소 교회를 섬기고 세계선교를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바울은 어떻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말씀을 <강론> 하였습니다. 헬라어를 보면 강론하다는 “dialegomai” 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영어로는 discuss in argument 즉 말씀을 주고받으며 공부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보면, 대화하다라는 뜻의 dialogue와 의미가 같습니다. 이는 혼자서 말하다는 뜻의 monologue와 반대말입니다. 바울은 일방적으로 말씀을 전달하고 제자들은 듣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제자들과 말씀을 주고받았습니다. 말씀을 넓고 깊게 공부하려면 주고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복음에 대해 제자들과 폭넓은 대화를 하며 가르쳤습니다. 제자들과 복음에 대해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훈련하였습니다. 바울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따르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화의 방법으로 겸손히 말씀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도 바울은 제자들에게 말씀으로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0:31절을 보면 그는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일깨워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흔히 우리는 말씀은 잘 배우지만 습관은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습관은 잘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소원이 있지만 음란물 시청을 끊지 못하여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바울도 눈물로 훈계했습니다. 성도들이 죄악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사실 지도자들은 갈등을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합니다. 고쳐지지 않는 죄로 인해 고통하고, 죄짓고 괴로워하는 성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더라도 성도들의 문제를 함께 도전했습니다. 그는 죄로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성도들을 오래 기다리며 섬겼습니다. 때로 지도자 때문이라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성도들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의 눈물로 자라난 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은 바울의 진심을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 간에는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말씀과 바울의 눈물로 자라난 것입니다.
우리도 목양을 하다보면 죄에 넘어지는 아이들, 거역하고 원망하는 성도들을 자주 봅니다. 그러면 목자는 심령이 상하고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나가서 눈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오래 기다리고 찾아가고 섬겨주고 받아주고 말씀을 잘 전해줍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와 목자가 흘린 눈물과 겸손으로 인해 성장해 가게 됩니다. 우리교회는 직분자들의 눈물과 겸손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어머니들의 눈물로 어린 자녀들과 가족들이 잘 자라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능력의 역사를 일으키셔서 세워졌습니다.(11)
10절을 보면 “두 해 동안 이 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 바울의 제자양성 역사는 매우 풍성한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제자뿐 아니라 아시아에 사는 많은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몇 명만 가르쳤는데도 아주 강력한 복음의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급속도로 퍼져갔습니다. 결국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복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1절부터는 어떻게 제자양성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함께 해주시므로 바울이 지니고 있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얹어도 병이 떠나가고 악귀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희한한 능력을 행하자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남용하여 악귀를 쫓아내고자 하였습니다. 그 중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그렇게 하다가 악귀에게 혼이 났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두려워하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죄를 자복하고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은(銀) 오만원어치, 약 10억원이나 되는 마술책을 불사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에베소 지역이 복음화 되었습니다.
셋째, 힘있는 말씀으로 에베소 교회는 세워졌습니다(20)
제자를 잘 세우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교회성장은 제자를 세우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성장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20절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성경은 “이와 같이 에베소교회 성장은 제자들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라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주어는 “주의 말씀”입니다.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주체는 주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성장의 주체라는 말입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킴으로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이 다가와야지 우리 생각 안에서 변화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과거 죄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 운명적인 생각, 한계적인 생각이 지배하였는데, 말씀을 듣자 긍정적이고,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바뀝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교만하고 세상적이고, 어두웠었는데 말씀이 들리자 사랑하는 마음, 섬기는 마음, 인내하는 마음으로 자랍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없는 것 같아도 지속적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면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는 마치 씨의 형태로 작은 모습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씨가 자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듯이 말씀은 우리 안에서 점점 커져가서 믿음의 열매, 사랑의 열매, 소망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렇게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삶을 지배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자리잡기까지 부단히 가르치셨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못알아듣고 특히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3년을 가르치셨어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죽으시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부터는 제자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 자라났습니다. 모두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로 변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훗날 5천명을 회개시키는 말씀의 종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포기하기 않고 계속해서 말씀을 가르치고 가르치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결국 변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입니다. 또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비결입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도 우리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들 안에 말씀이 역사할 수 있도록 돕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말씀이 그들 안에 흥왕하게 되어 세력을 얻을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바울은 바로 이때 놀라운 비전을 보았습니다. 21절을 보면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바울은 놀라운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씀 역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 제국 로마도 말씀으로 능히 복음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 비전 가운데는 세계 중심 로마를 복음화 하여야겠다는 비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제자훈련을 받고 세워진 분들이 몇 명밖에 되지 않는데 도대체 무슨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제자양성의 열매를 보면 제자양성이야말로 하나님의 명령이요 이 시대에 꼭 해야 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제자를 양성해서 교회가 언제 성장하겠냐 하겠지만 제자 양성이 되면 반드시 교회를 크게 세워 질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제자 양성을 위해 더 기도하고, 제자양성에 더 주력해야 하겠습니다. 결코 주눅 들지 마시고 제자양성이야말로 예수님께서 하신 방식임을 믿고 도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문명은 급속도로 발전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달라지더라도 우리 사랑의 교회는 제자 양성을 잘 감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고 말씀이 힘을 발휘하여 흥왕하게 되어 세력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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