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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틀란티스’와 서지학의 탄생, 그리고 케플러의 연대학까지
학문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세상 모든 지식의 이야기
편지 공화국은 16세기부터 18세기 사이 유럽에서 꽃피웠던 학자들의 지식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 시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학문적 공용어로 라틴어를 구사하며 연구했고, 지적 · 문화적 · 종교적 경계를 넘어 새로운 학문을 개척했으며, 지식을 향한 열정에 방해가 되는 분쟁의 해결에 앞장섰고, 진실과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적 기관을 꿈꾸었다. 또한 도서관과 저택에서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모임을 통해 이상적인 학자로서의 삶은 물론이고 세계의 개혁에 대한 논의까지 거침없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한마디로 편지 공화국은 모든 사상과 이론이 자유롭게 유통되고 토론되는, 흡사 지식의 유토피아를 향한 프로젝트였다.
저자는 이들 편지 공화국 ‘시민’들이 남긴 자료와 지금까지 전해지는 수천 통의 편지를 통해 편지 공화국의 윤곽과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새로운 학문적 흐름을 만들어낸 이들의 삶에 주목하며 서지학의 창시자인 트리테미우스와 17세기 새로운 형식의 지적인 삶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 프랜시스 베이컨, 연대학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케플러의 연구까지 섬세하게 추적해나간다.
베네딕트회 수도사였던 트리테미우스는 신학과 성경 연구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교양에 관련된 서적까지 백과사전적으로 서적을 수집한 다음, 수집한 서적의 진본 여부와 질적 가치를 감식하고 독자에게 필요한 문헌의 목록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개척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서지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형태를 만들어냈지만, 이후 그는 거짓 역사서를 만들어내는 등 역사를 날조한 인물로 기록된다. 저자는 위대한 학자에서 역사의 날조범이 된 트리테미우스의 학문적 궤적을 따라가며 그의 변화의 배경이 된 사상적 흐름까지 세밀하게 짚어낸다. 또한 베이컨이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통해 제시했던 과학 연구기관의 청사진은 다양한 분야의 지적 노동자들이 서로 협력해 체계적으로 연구할 때 자연철학이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를 시사했다고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천문학자가 아닌 연대학자로서 케플러가 관심을 기울였던 연구를 중심으로 그 시대에 예수가 태어난 해를 둘러싸고 벌어진 가톨릭과 천문학 사이의 논란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근대 유럽의 학자들도 정치와 언어와 종교의 경계를 넘어 인적 공동체와 정보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그리고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물리적, 지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식에 대한 열정과 치열한 고민으로 학문의 체계를 만들어나가며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지식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편지 공화국의 지식인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편지 공화국>은 지식 공동체가 꽃피운 16~18세기 근대 유럽 지성의 역사를 추적한다. 교통도 통신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상과 이론, 지식과 지성이 자유롭게 흘러다니고 뒤섞이고 넘나들었다. 그 가운데에는 편지와 출판물이 있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뤄진 지식인들의 공화국은 국경 없는 국가였다. “자연과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지적이고 사회적인 조직망 이상의 존재였다.” 지적 교류는 대단히 밀도 있게 이뤄졌다. 당시 유럽 학자들은 국경을 뛰어넘은 연대를 통해 열정적으로 지식을 교류하며 탐구했고 과거 문헌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을 통해 지식 혁명의 길로 나아갔다.저자는 르네상스 학자인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1462∼1516)부터 따져본다. 베네딕트회 수도원장이자 애서가였던 트리테미우스는 도서관을 다양한 책으로 채워 20대에 명성을 얻고 30대에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역사학자가 된다. 트리테미우스는 수도사로서 신학과 성경 연구서뿐 아니라 인문학적 교양 서적까지 백과사전식으로 수집했다. 곳곳의 수도원을 찾아다니며 천문학과 음악, 수학, 역사, 이학 등을 망라하여 책을 구입하고 필사본을 교환했다. 라틴어만이 아니라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된 책들도 두루 갖췄다. 비록 그는 40대에 수도원에서 쫓겨나고 이후 자료를 조작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지만, 서지학 창시자로서 편지 공화국 시민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저자는 트리테미우스의 삶과 학문의 궤적을 쫓으며 그의 사상적 흐름을 짚어낸다.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에도 주목한다. 저자는 그에게서 ‘지식 프로젝트 팀’의 탄생을 보았다. 베이컨은 새로운 유형의 학문이 필요하다고 보고 전통적 유형의 이론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지식, 즉 “자연계를 지배하는 힘을 주는 지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학제 간의 공동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베이컨의 미완의 유토피아 소설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저자는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베이컨은 이 소설에서 “지적 작업을 위한 새로운 환경”을 이상적으로 묘사하여 고안하는 데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까지 상상했다.” 지식인들은 빛의 상인, 약탈자, 수수께끼 인간, 개척자 혹은 광부 등으로, 세분한 역할에 따라 분류된다. 이는 곧 과학 연구기관의 청사진으로 볼 수 있는데, 베이컨이 이 소설을 쓰기 반세기 전에 이미 유럽에서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공동작업이 이뤄졌다. 이는 인문주의의 구상과 실천으로서의 17세기 편지 공화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는 천문학이나 점성술로 유명하지만 평생 과거 사건을 재구성하며 역사적 시기를 규명하는 연대학을 연구했다. 케플러는 전형적인 연대학자로 보이는데, 이는 “당시에도 이미 상당한 결과를 내놓던 학제간 방법론을 물려받았다는 뜻”이다. 그는 “유대 국가의 몰락과 기독교의 탄생을 다룬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역사적 자료들과 싸”웠고 여러 신학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특히 현재는 12월25일로 정해두고 지키는 예수 탄생일을 둘러싸고 가톨릭과 천문학 사이에서 논란이 벌어지는데, 케플러와 연대학자들은 편지 공화국 구성을 시도한다. “칼뱅교도와 루터교도와 가톨릭교도가 예수의 행적과 관련된 날짜를 차분하고 건설적으로 토론하는 가상의 세계를 세우려 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구성된 편지 공화국에는 “수준별로 네트워크가 공존하며 다양한 유형의 계급 구조와 충돌했”고 “편지 공화국의 지리적 범위는 무척 넓었지만 (…) 편지는 국경을 쉽게 넘나들었다.”
지금, 우리가 잃어가는 사회적이고 지적인 세계
21세기 공공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저자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학문적 열정이 들끓었던 근대 유럽과 그 시대의 학자들을 세밀하게 조명하는 동시에 그런 치열한 토론의 분위기가 사라진 오늘날의 흐름을 아쉬워한다. 1960년대만 해도 미국 가정에서는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문제와 이슈, 화제가 되는 책과 영화 등에 대해 논쟁을 하고 사상과 이상이란 원대한 세계가 개인적 경험과 일상생활이란 작은 세계와 어떻게 교차하는가를 배웠다. 저자 역시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을 시끄럽게 달구었던 많은 사건에 대해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화석이 되어버린 지적인 토론과 공론의 장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오늘날 공공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간하였을 당시 기자였던 저자의 아버지가 아렌트를 인터뷰하려고 했으나, 당시 과열되었던 논란과 오해로 인해 안타깝게도 불발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아렌트의 책이 왜 뜨거운 사회적 논란이 되었는지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는 것을 목격했고, ‘악의 평범성’에 대한 부모님의 대화를 들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시대에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대화를 계획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깊이 있는 사고와 판단을 방해하는 다양한 미디어들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들이 각종 디바이스를 통해 넘쳐나도록 쏟아진다.
진정 사회적이고 지적인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까? 지식인이 대학 안팎에서 연구를 하고, 언론인이 시간을 내어 까다로운 책을 면밀하게 읽으며 진지한 책과 기사를 발표하고 비판하던 세계는 이제 종말을 맞은 것일까? 진지한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사라지고 복잡한 세계와 역사로 들어가는 통로가 사라져버린 지금, 저자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던지며 지적인 토론과 인문학적 논쟁이 다시 생명력을 찾아가는 문화를 꿈꾸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구글 제국까지,
인류 지성사에 보내는 뜨거운 찬사와 갈채!
오늘날 지식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은 완전히 달라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도서관의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독서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고독과 자유를 즐길 수 있던 과거의 도서관은 스캐너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데이터베이스가 한없이 늘어나는 곳이 되었다. 바야흐로 책과 정보의 세계가 전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구글을 비롯한 인터넷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펼치는 대규모의 정보 프로젝트로 인해 텍스트가 종말을 맞을 것이란 예상은 물론, 인간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모든 자료가 보관되는 ‘보편 도서관’을 예언하는 이들도 있다.
구글은 세계적인 대형 도서관 및 출판사들과 손을 잡고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포괄적으로 색인화”하려는 이른바 구글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인류의 모든 지식을 디지털화하려는 시도들은 그밖에도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런 프로젝트들은 모두 영어의 세계적인 패권을 더욱 강화하리라는 우려가 있으며 그 한계 또한 명확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기존의 도서관처럼 체계적이고 지배적인 비전이 없는 구글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는 “인간의 손이나 정신이 닿지 않는 텍스트를 세계의 독자들에게 쏟아내는 거대한 소방호스”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저작권 문제 이외에도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가 구글을 비롯한 인터넷 기업들의 추친하는 프로젝트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구글에게 어떤 보상도 하지 않은 채 그들에게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말한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북반구와 남반구의 공공도서관 장서량을 비교하며, 인터넷이 아직도 정보의 불평등을 해소하기에는 큰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거대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화 프로젝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는 분명 텍스트 생산과 소비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전통적인 출판 시장에서 종이책은 여전히 우위를 점한 채 상당한 부수가 팔리고 있지만, 계속해서 등장하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텍스트는 다양한 이름의 디지털 포맷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새로운 정보 생태계 속에서도 진지한 독서가라면 과거의 방법으로 책을 선택하고 읽어가는 방법을 버릴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 길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글이 수백만 권이 넘는 책을 계속 디지털화하는 중에도 공립도서관은 두 발로 찾아오는 독서가를 위해 좌석을 마련해둘 것이고, 인터넷 검색만으로 거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세상에서도 더 힘든 길을 이용해 새로운 자료를 얻으려는 이들이 있다. 저자는 온라인 자료가 제아무리 풍요롭더라도 도서관만이 우리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고문서, 종이책과 필사본의 가치는 무색하게 할 수는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인 정신으로 필사본을 써내려간 수도사와 필경사들의 이야기에서부터 근대 유럽의 학문 공동체의 모습까지, 서구 지성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치밀하게 또한 흥미롭게 추적한 이 책은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사학자가 인류 지성사에 보내는 뜨거운 찬사와 갈채”라 하겠다.
편지 공화국 시민들은 후원자들이 좋아하는 고대 문헌으로 채워지고 선반에 가지런히 정돈된 인문학 선조들의 흉상이 묵묵히 내려다보는 도서관을 번질나게 드나들었고, 진귀한 유물이 보관된 전시실의 벽과 선반에 예술적으로 진열된 코뿔소 뿔과 스키 및 에트루리아 시대의 무기를 겸허한 자세로 바라보았다. 또 편지 공화국 시민들은 원형의 멋진 해부학 강의실도 자주 찾았다. 그들이 어떤 곳을 주로 찾았든 간에 어떤 곳에서나 그들의 편향되지 않은 폭넓은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모든 곳이 인간과 자연, 과학과 역사를 구체적이고 시각적으로 가르치려는 의도로 구성된 백과사전이자, 새로운 종류의 지식이 구체화되는 실험실이었다. _ 30쪽
예컨대 휘호 더 흐로트는 자연법에 대해, 갈릴레이는 자연철학, 즉 물리학에 대해, 존 로크는 재산권에 대해 연구한 글을 남겼다. 합당한 이유로 돈을 요구할 때가 아니면 편지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요즘의 세계에서 이런 편지, 예컨대 라틴어로 된 형식적인 인사말, 소변 분석과 신장결석에 대한 자세한 설명, 점성학에 기초한 예측, 기형아 탄생 등이 언급된 편지는 신기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대에 편지는 공화국의 곳곳을 연결하며 지식의 교환을 자극하는 미약하지만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냈다. 편지 교환의 끈은 모세혈관처럼 길게 이어졌고, 그 가닥을 따라 로마 교황청부터 북부의 칼뱅파 근거지까지,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소식이 전해졌다. 양쪽 모두에 서로 교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_ 45~46쪽
15세기와 16세기의 자연사학자들은 플리니우스의 전례를 따라 자연사를 통시적인 학문이 아니라 공시적인 학문으로 보았다. 요컨대 시간에 따른 자연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들이 안정된 자연계로 보았던 것의 차이를 추적하는 데 주력했다. 학자들은 미술이 여기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심지어 자연을 완벽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에 내재한 자원만을 이용하고, 그 자원이 부과하는 비좁은 한계 내에서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미술가들과 수집가들은 자연이 변하는 것이고, 인간의 개입이 자연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힘이라는 걸 깨닫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수집물을 정리하고 형상화함으로써 자연계가 움직이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_ 148쪽
고전 라틴어의 보존은 새로운 지적 세계의 탄생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알베르티와 몽테뉴 같은 작가들은 고전학에 몰두했지만 당시의 쟁점을 논의하고 대중과 접촉할 때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16세기 신교도 개혁가들도 라틴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루터는 자신의 꿈과 악마의 출현에 대해 독일어만큼이나 편안하게 라틴어로 학생들에게 강의할 수 있을 정도였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로버트 보일 같은 자연철학자들은 천문학과 화학에서 지극히 난해한 문제들은 이탈리아어나 영어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지 공화국 시민들의 공용어도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교체되었다. 18세기쯤에는 드니 디드로의 《백과전서》를 비롯해 지식을 망라한 총서도 프랑스어나 다른 근대어로 쓰였다. 라틴어는 실리적 유용성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_ 261쪽
역사와 철학이 다시 교류하기 시작하자 또 한 번의 지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이론’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 칭해진 변화로, 이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었고, 결국에는 문화 전쟁까지 촉발한 원인이 되었다. …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석의 방법에 변화를 주려는 많은 노력 중 하나였다. 따라서 지적 세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존재는 사상사학자에게 해롭기보다 유익한 것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사상사학자들이 해석학의 문제와 전통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석학은 고대 이후로 유럽 사상에서 주된 위치를 차지했지만, 사상사학자들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해석 이론이었다. 요컨대 그들은 일련의 서구 사상을 제대로 다루려는 역사학자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고, 관련된 문헌을 충실히 읽지도 않았다. _ 349쪽
아렌트가 내 아버지의 인터뷰 요청을 결국 거부한 것도 놀랍지 않다. 항상 호기심에 넘치던 지식인이었고, 근본적으로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도 눈과 머리와 마음을 항상 열어두었던 아렌트였지만, 자신의 책이 불러일으킨 분노의 폭풍과 오해가 수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라도 몸을 웅크리고 피신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아렌트 사건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그 과정을 나는 우리집 식탁에 앉아 지켜보았고,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프로젝트의 진지하고 야심찬 시작, 서너 건의 인터뷰와 그에 대한 아버지의 묘사, 아렌트의 약속과 번복, 결코 생략되어서는 안 될 대화가 빠진 채 쓰인 기사, 그리고 최종 원고가 완성되었다. 최종 원고는 퇴고되고 교정된 후에 저장되었다. 하지만 첫 페이지에는 ‘출간되지 않음’이란 기록이 손으로 쓰여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997년 가을, 나는 아버지의 파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아렌트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학계에서 한 부분을 차지했고, 그녀의 편지와 논문도 적잖게 출간되었다. 그 자료들로 아렌트 이야기의 윤곽이 더 복잡해졌다. 역사는 기억을 보완하면서도 복잡하게 만든다. _ 460쪽
구글과 경쟁 기업들 덕분에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시기를 연구하는 사회문화사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최고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잘 알고 있는 문학 텍스트를 구글 북스에서 노트북에 전송받아 올려놓고 가르치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최고의 상황에도 씁쓸한 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구글은 저작권 보호를 받지 않는 모든 책의 전문을 제공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저작권이 풀린 텍스트라도 전문을 다운로드받을 수 없거나 읽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는 책에 덧붙여지는 세 겹의 작은 물결 무늬가 그런 텍스트에도 똑같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에라스뮈스처럼 구글도 책의 세계에 대한 너그럽지만 오류를 범하는 안내자인 셈이다. _ 509~510쪽
오늘날의 학자들은 e메일, 사회관계망서비스, 국제 학술 콘퍼런스, 그리고 전문 학술단체와 같은 다양한 지식의 연결망을 통해 이전에 교류해본 적이 없던 학자들과도 언제나 손쉽게 소통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학문의 세계는 대부분 편지의 교환을 통해 연결됐다.
물론 우리가 이미 다뤘던 바와 같이 편지는 아주 오래된 소통 수단 중 하나였다. 결코 새로운 소통 방식이라고 할 수 없는 편지가 지식의 소통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서유럽에서 13세기 말에 양피지를 대신해 리넨 종이가 더 구하기 쉬워지고 저렴해져 급속히 확산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편지의 양적 증가와 확산만으로 르네상스 시대 편지가 수행했던 다양한 역할과 면모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편지의 르네상스에 관심을 가졌던 폴라 핀들렌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편지가 등장하는 초상화들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편지의 중요성을 재발견했던 과정들을 재검토했다. 핀들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편지는 1450년부터 초상화에 등장하기 시작해 1500년대 베네치아 초상화에선 편지를 들고 있는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 하나의 패턴을 이룬다. 화가가 한 인물을 그리며 포착할 수 있었던 수많은 장면 중 편지를 받아든 순간을 선택한 것은 편지가 르네상스 지식인들에게 소통을 위한 일상적인 수단이면서도 동시에 드라마틱한 순간을 선사하는 도구였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편지가 등장하는 많은 초상화 중에서 두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끈다. 첫 번째 작품은 로소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가 그린 ‘편지를 들고 있는 젊은 남자의 초상’(1518)이다. 비록 이 그림이 편지를 펼쳐 읽고 있는 인물을 묘사한 첫 번째 사례는 아니지만, 마치 이 그림을 보고 있는 감상자가 내용을 거의 읽어볼 수 있을 정도로 편지가 완전히 펼쳐져 있고 편지의 접힌 주름도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마치 이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에 의해 편지 읽기를 방해라도 받은 듯이 우리를 응시하는 젊은 남자의 시선에서 편지를 받아 읽는 수신인의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피오렌티노의 그림이 편지를 읽는 수신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 것에 비해, 야코포 다 폰토르모(Jacopo da Pontormo)는 1552년쯤 발신자와 수신자를 동시에 그려 넣은 초상화를 선보였다. 초상화는 두 남자가 한 통의 편지에 의해 서로의 우정을 돈독하게 가꿔온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마침 이 두 사람이 함께 들고 있는 편지가 보여주는 글귀는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De Amicitia)>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다른 모든 사회적 의무와 관계보다 우정을 높이 칭찬하고 있다. “우정은 가장 많은 이득을 가지고 있다네. 자네가 어디로 돌아서든지 우정은 함께하며, 어느 곳에서나 방해되지 않으며, 결코 시의적절하지 않은 때가 없으며, 결코 힘들게 하는 법이 없다네. 그리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물을 끊고 불을 끊어도, 우리는 많은 경우 우정 없이는 살 수 없다네.”
이 그림이 그려지기 약 100년 정도 앞서 1443년에 시칠리아의 인문주의자 조반니 아우리스파(1376~1459)는 로렌초 발라(1407~1457)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학생이기도 했던 발라와의 우정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자네와의 교우가 언제나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고, 자네의 지적인 탁월함에 대해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계속 지대한 존경심을 가질 것이기에, 내가 [공무로 인하여] 자네와 교제하지 못하고 자네의 지적인 통찰로부터 깨달음을 얻지 못할 때마다 무척이나 속상하곤 했네. 실로 친구들과의 좋은 우정 속에 살면서 그 우정의 열매로서 편지를 보내고 또 돌려받는 것은 내게 있어 최고의 즐거움이었네.” 아우리스파의 말대로 폰토르모의 그림 속에 등장한 ‘우정의 열매’로서의 편지는 이제 편지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무미건조한 매개체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생생한 통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핀들렌 교수는 르네상스 시대 편지가 재발견된 것을 이렇게 요약한다. “편지는 생생한 손을 통해 생각과 열정, 욕망과 명령을 전달했다. 글을 쓰는 것에는 편지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마법이 있었으며, 이미지로 묘사된 것에 도전하는 ‘단어로 된 초상화’였다. 편지는 한 사람의 행위의 소품으로서 르네상스 초상화에 속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 역시 펜이 종이에 닿는 순간부터 살아 숨쉬는 대상이었다.”
17세기에 조직된 과학 학회는
지속적이고 폭 넓은 편지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나누고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이렇게 르네상스를 거쳐 이전보다 더 친밀하고 생생한 소통의 통로로 인식되기 시작한 편지의 연결망은 17세기에 조직된 여러 과학 학회들의 사회적 연결망과 여행을 통해 형성된 물리적 연결망에 의해 지속적으로 두꺼워지게 됐다. 단적으로 말해, 편지는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시대(1466~1536)부터 프랭클린 시대(1706~1790)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비판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
눈에 보이는 정치체제가 아니지만
지리·정치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혁신적 발견을 가능케 한 원동력
인공지능 핵심기술의 수학적 근간을 이루는 선형대수학에서 아이겐밸류는 행렬변환 후에도 변화가 없이 그 자신으로 남는 고유벡터의 고윳값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모든 이들에게 다양하게 다가오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것이
그래서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lingua franca)로 사용해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지식인들의 장거리 상호 소통이 가능하게 했던 이 편지의 연결망을 보통 ‘편지공화국(Res Publica Litterarum 또는 Res Publica Literaria)’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비록 눈에 보이는 어떤 정치체제를 갖춘 것은 아니었지만, 편지공화국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앤서니 그래프턴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 공화국의 시민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파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 일종의 공통 규범을 공유하고 있었을 정도로 근대 초기 유럽의 지식인들에게는 편지공화국이 자신들이 속했던 지리적 공간만큼 중요했던 정신적 세계였음을 밝혀냈다. ‘편지공화국’의 학자들이 지리·정치적 경계를 뛰어넘어 지식을 공유하고 혁신적 발견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최단시간강하곡선’ 문제를 던진
베르누이의 편지와 뉴턴의 답장은
지식 나눔의 눈부신 사례다
때로 역사는 수학 문제를 통해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볼 수 있다. 요한 베르누이(1667~1748)의 ‘최단시간강하곡선’ 문제는 편지공화국에서 편지를 통한 지식 교환의 눈부신 사례 중 하나다. 그는 악타 에루디토룸(Acta Eruditorum)의 지면을 빌려 동료 지식인들에게 이렇게 고했다.
“나 요한 베르누이는 이 세계의 가장 명석한 수학자들에게 고합니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들에게는 꼬임이 없고 또 도전할 만한 문제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명성을 얻을 것이고 그 해답은 영원한 기념비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스칼과 페르마가 그랬던 선례를 따라, 나도 자연을 탐구하는 우리 공동체의 은덕을 입고자 우리 시대 가장 훌륭한 수학자들 앞에 그들의 탐구 방법과 또 지적 능력을 시험해볼 만한 문제 하나를 내놓고자 합니다. 만일 누군가라도 제가 제안한 문제에 대한 답을 회신해 오신다면 저는 그 사람의 이름을 큰 칭송과 함께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696년 6월.”
이어서 그는 최단시간강하곡선으로 알려진 유명한 문제를 꺼내들었다. “평면 위에 높이가 다른 두 점이 있다고 할 때, 마찰 없이 중력의 영향만으로 구르는 구슬이 높은 지점에서부터 낮은 지점까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굴러 내려올 수 있는 선의 모양은 무엇인가?”
물리학과 기하학의 교차에서 탄생한 이 도전은 단순한 해답을 넘어, 근대 초기 학문의 생태계를 장식한 수많은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일으켰다. 과학과 수학, 철학의 여러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이들이 자신의 해답과 아이디어를 빠르게 공유했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 바람이 유럽의 대지를 휩쓸고 있을 때, 베르누이의 최단시간강하곡선의 문제를 담고 있었던 편지 한 장이 아이작 뉴턴의 집에도 도착했다. 그는 단 하룻밤 만에 최단시간강하곡선이 사이클로이드(직선 위로 원을 굴렸을 때 원 위의 정점이 그리는 곡선)의 모양을 취한다는 풀이를 적어 익명으로 베르누이에게 답신을 보냈다. 풀이의 비범함을 보고 이내 그 익명의 수학자가 뉴턴임을 알아차린 베르누이가 “사자의 발톱을 보고 사자를 알아보았다(tanquam ex ungue leonem)”고 말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베르누이의 문제가 대표적으로 말해주듯이, 편지공화국 지식인들 사이의 흥미로운 발견들이 근대 초기 학문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켰다. 이 네트워크는 편지를 통해 아이디어와 발견을 공유하는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연결망이 보여주는 지식의 교환과 협력의 강력한 힘은 근대 초기의 편지가 마치 오늘날의 ‘인터넷’과도 같은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편지공화국의 연결망이 증진시킨 소통의 속도와 효율성이 학문적 발전을 가속화했다.
드라마틱한 순간을 선사한 편지
생각의 전달이 디지털로 바뀐 오늘
발신·수신자의 그림 속 교감을
우린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
오늘 각종 고지서와 광고전단만 드문드문 배달되는 우리집 우편함을 괜히 한번 더 열어보면서, 그리워하던 친구와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편지를 받아들고 그것을 열어보기까지 설렘을 느꼈던 때를 아련하게 추억해본다. e메일과 카카오톡으로 바로바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각과 감정이 맺어지는 기쁨은 그만큼 줄어들지 않았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쯤에서 다시 피오렌티노와 폰토르모의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이 그림 속에서 편지를 발신하는 사람과 수신하는 사람이 느꼈을, 편지가 고유하게 전달하는 그 생생한 생각과 감정을 디지털로 대체된 시대에도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지 숙고해볼 문제이다.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