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화요일(8일째)
고비사막 5박 6일 트래킹(텔레지 국립공원 가기 위한 차 이동)
이날 아침은 호텔 조식으로 느긋하게 식사를 했는데 특별히 맛있는 음식은 없었지만 미역국이 나와 좋았다.
몽골은 지금 한국이 대세이다.
한국음식이 지금 몽골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고, 마트의 상품들도 한국산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인구 삼백만 중 한국인과 한국에서 돈 벌고 온 사람이 이십만이라고 하며, 한국 음식점이 울란바토르에만 80개가 있고 이 식당들 거의가 음식점으로 장사해서 먹고 산다고 하니 한국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고려 말 몽골풍을 생각해보면 역사의 반전이 통쾌하기도 하다.
이제 달란자드가드를 떠나 텔레지로 떠난다
또 기나긴 차 타기의 시작이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황량한 땅.
황무지와 천천히 걷고 있는 낙타들의 풍경에 잠시 사진을 보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 만나는 작은 동네에서 물을 사러 내렸는데 이 짧은 시간이 우리에겐 휴식시간이다.
다시 차를 타고 비송님의 유에스비를 차에 꽂아 차안 음악회를 열었다.
김광석의 광야에서를 들으며 끝없는 벌판을 달린다.
몽골의 자연.
수많은 구릉과 완만한 산은 몽골인의 둥근 얼굴과 닮아 있다.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하얀 뭉게 구름과 물엉덩이에서 물을 먹고 있는 말들.
사람 보기가 힘든 땅, 동물이 휠씬 많은 땅.
팝에서 점심으로 칼국수, 몽골식만두, 치킨프라이드, 볶음국수 등을 먹었는데 먹을 만 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온몸이 뻐근하고 쑤신다.
이때 미경샘의 제안으로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 풀기가 시작되었고 급기야 광란의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온몸과 마음이 유쾌, 발랄한 상태에서 지겨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다 변순남님의 제안으로 우리 차 두 사람이 3호차 두 사람과 바꿔 타기로 했는데 나와 비송님이 3호차로, 성호샘과 유재명님이 우리차로 가시게 되었다.
3호차의 운전기사는 자야.
아내는 대학 교수로 현재 아들과 여행 중이란다.
몽골은 남자가 결혼 비용을 다 대는데 대학을 나와도 직장이 없어 한국에서 6년간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일을 해서 돈을 모아 결혼도 하고 차도 샀단다.
성수기에 여섯 번 정도 자기 차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투어하는 일을 한단다.
3호차는 거의 잠자는 방 수준이라고 변순남님이 말씀하셔서 우리는 분위기를 업시키기 위해 자야에게 신나는 음악을 주문했다.
성실한 자야는 한참을 시루고 골라서 우리가 좋아할만한 멋진 댄스곡을 틀어준다.
음악에 맞춰 비송님과 나는 나머지 분들을 독려해서 춤을 추게 했는데, 차만 타면 잠자는 차안의 아저씨 동권샘, 태어나서 지금까지 춤이라고는 안 춰 보셨다는 조복래님, 우아하고 기품있는 서울 사모님 변순남님, 그리고 예상을 깨고 진짜 한 춤 하시고 흥도 많으신 이종호님까지 열심히 우리의 동작을 따라 춤을 추셨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 브루스를 떨고 나니 하루 종일 차에 시달려 온 삭신이 다 찌뿌둥하던 5,60대의 몸에 활력이 넘쳐나는 느낌이었다.
이종호님은 우리에게 여행에 관한 많은 정보를 주셨고 우리는 차 안에서 열심히 여행 공부를 했다.
텔레지공원 근처에 가까워 오자 기괴한 암석과 강이 어우러진 수려한 풍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지역의 이름을 물어보니 투에니크란다.
원래 계획은 강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거였다.
그러나 비 온 뒤라 땅이 젖어 탠트를 치기가 곤란했고, 무엇보다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밤새 견디는 게 무서워 우리는 허름한 게르로 숙소를 변경했다.
낡고 누추한 느낌이지만 시내가 흐르는 숲속의 게르는 나름 운치가 있어 좋았다.
흐르는 맑은 시냇물에서 세수를 하고 저녁을 먹으로 주방으로 이용되는 게르로 갔다.
다들 몽골 전통 양고기 요리인 허르헉과 카레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는데 감기 기운이 있는 나는 겨우 카레로 밥을 비벼 먹고는 차가운 시냇물에 양치를 하고 우리 게르로 얼른 들어왔다.
우리 게르 언니샘들과 성호샘은 먹다 남은 와인을 들고 숲속으로 갔고, 어제 얼음물 같은 냉수로 목욕한 후 창문을 열고 자서 감기에 걸린 나는 혼자 게르에 누워 장작 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언니들은 밤의 숲속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겠지?
실크로드 여행 때 명사산의 와인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준비한 와인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많이 아쉽다.
그러나 아직 여행의 추억을 남길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가?
앞으로 남은 여행이 많이 남아 있는데 아프면 큰일이란 생각에 종합감기약을 한꺼번에 두 알이나 먹어서일까?
밤늦게 까지 시끄럽게 노는 소리가 들림에도 침낭 속에 들어가 몽롱한 상태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7월 29일, 수요일(9일째)
고비사막 5박 6일 트래킹(텔레지 국립공원 트래킹)
새벽에 천정에 비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장작불이 꺼져버려 침낭 속은 따뜻하지만 게르 안의 공기는 너무 차가워 계속 누워있다.
일행들이 한분 두분 일어나고 혼자 새벽산책을 나섰는데 숲과 작은 강이 주는 싱그러운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게르마다 장작불을 피우고 있다.
이때 우리 게르의 장작을 피우기 위해 나선 비송샘은 끝장이란 별명에 맞게 불을 피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불을 피우기 위해 준비해 온 소중한 여행 자료집까지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있다. 이 언니 이 게르, 저 게르 다니면서 불씨를 얻어 오는데 그럼에도 장작불은 살아날 생각을 안한다. 급기야 추위에 떨고 있는 가련한 우리를 구하기 위해 기사님들이 차례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결국 네번째 기사님인 최대식님이 등장하여 비송님이 고군분투한지 한시간만에 불 피우기에 성공하여 우리도 남들처럼 따뜻한 게르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오늘은 텔레지 국립공원 트래킹하는 날.
승마조, 레프팅조, 트래킹조로 나뉘었는데 순애샘, 영순샘, 비송님, 말순샘, 미경샘과 나는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이침 식사 후 먹는 수박 맛이 끝내준다.
아홉시에 트래킹을 위해 출발했는데 우리 일행에는 케이씨님과 몽골인 가이드 툴이 있어 든든하다.
툴은 서른살의 잘 생기고 귀티나는 젊은이로 어린 나이에 장가를 가서 아들도 있다하는데 간단하게 영어를 구사해서 산행하는 동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텔레지 국립공원은 등산로가 없어 우리는 길을 만들어 가며 정상을 향해 걸었다.
이렇게 멋진 산이라면 우리나라 같으면 길이 수십 개는 만들어졌을 거라는 말을 해 가며.
근데 생각해보니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무슨 할 일이 없어 산을 오르내리겠는가?
이날 무슨 인연인지 산행 내내 잘 생긴 큰 개 한 마리가 우리와 동행했는데 나는 이 녀석에게 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산은 동네 어느 집 개일까 아님 산 아래에 있던 절에서 키우는 개일까?
아무튼 이 녀석은 지나치게 달라붙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일행 중 개를 무서워하는 분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고 마치 우리의 안내견인 듯 우리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호위무사처럼 인솔해 주었다.
산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오!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싼 산들, 멋진 바위, 예쁜 마을, 하얀 구름이 조화를 이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온갖 야생화가 덮인 산, 허브향이 온 몸과 마음을 향긋하게 적셔오는 아름다운 산길을 충만한 행복에 싸여 걸었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들만의 거사를 치루었는데 이것은 국가기밀이라 말하지 않겠다.(케이씨님도, 툴도 모르고 아마 산이도 모를거임)
정상에 오른 후 멋진 전망을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했는데 풍경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좀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2시에 승마와 레프팅 하는 분들과 만나기로 되어 있어 하산을 하기로 했다.
근데 길.이.없.다.
완만한 쪽으로 내려가면 되지만 문제는 만나기로 되어있는 장소에서 너무 멀어져버려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마을을 향한 직선 코스로 내려가기로 했는데 온통 암산인데다 경사가 7,80도 정도라 모두 긴장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 산을 놀이터 삼아 놀았고 주말만 되면 산신령과 연애한다고 산에 사는 내가 길을 만들어 보기로 하고 앞장을 섰다. 이상하게 산에 가면 내 눈에는 길이 보이는데 이날도 전혀 없을 것 같은데도 내 눈에는 길이 생긴다.
길을 만들며 깎아지른 듯 한 험한 암산을 내려오는 것도 나에게는 가슴 뛰는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산에만 가면 펄펄 날아다니는 내 수준만 생각해서 두 분이 넘어졌는데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비송샘은 가볍게 넘어졌지만 순애샘은 완전 굴러 떨어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는데 산신령이 보호하심인지 우리의 견공 산이가 보호해서인지 큰 탈 없이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우리 케이씨님의 서두르지 않는 차분한 인솔과 챙김이 안전한 산행의 가장 큰 공이다.)
이날 우리는 한바탕 특공훈련을 받았는데, 난관을 헤치고 내려온 여전사들답게 모두 당당하고 씩씩했다.
무사히 하산한 우리는 사기가 충만하여 파이팅을 외쳤고, 케이씨님, 툴과 함께 기쁨을 같이 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끝까지 우리주변을 맴돌며 함께 한 산이는 우리가 차를 타자 그제서야 자기 길을 떠난다.
산이는 전생에 우리 중 누군가와 어떤 인연이었기에 몇 시간을 우리 주변을 맴돌며 지켜주었을까?
거북바위 앞에서 나머지 일행들을 만난 우리는 5박 6일 동안의 고비사막투어를 마치고 울란바토르를 향했다.
잠시 거대한 징기스칸 상에서 사진도 찍고 쉬다가 다시 차를 탔는데 기절해서 자다 눈을 떠 보니 제법 도로가 정체된다. 울란에 가까워졌단 증거다.
그랜드힐 호텔에 5일 만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
씻고 빨래하고 쉬다 북한식당에 저녁 먹으러 갔는데 음식 맛이 괜찮은 편이다.
북한아가씨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노래도 하고 음식도 나른다.
벽에 걸린 모니터에는 북한 노래가 나오는데 온통 호전적인 가사들이라 같은 민족끼리의 이질성을 느끼게 한다.
내일은 성호샘이 떠나는 날이다.
그동안 재치있는 입담과 순발력으로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 주신분이라 모두 서운해 하는데 나는 특히 더 서운하다.
같은 직장에, 그것도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데다 나는 성호샘의 유머보다도 따뜻한 인간미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날 본우샘과 현숙샘이 합류하셔서 첫 인사를 나누었다.
첫댓글 마음은 트래킹 코스 였는데 몸은 어림도 없어 래프팅 코스로! 형편없는 스스로에 대한 비애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