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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국기> |
✼수도: 라바트(Rabat) ✼인구: 3천 6백 만 명 ✼면적: 44만 2천 평방km |
<모로코(Morocco) 개관(槪觀)>
모로코는 8세기에 최초의 회교왕조를 건설한 이후 12세기에 이르러 알제리·리비아·스페인 남부지역에까지 세력을 확장한 적이 있었다. 19세기부터 프랑스 등 유럽열강의 침략을 받아 1912년에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56년 3월 2일 독립하였으며, 1961년 국왕 하산 2세(Hassan II)가 즉위하여 1962년 12월 입헌군주국을 선포하였다. 현재 국왕은 모하메드 6세(Mohammed VI)이다.
1975년 11월 스페인이 서부사하라에서 철수하자 모로코는 서부사하라를 점령하였는데 그 뒤 서부사하라의 토착민인 사라위(Sahrawi)족의 독립투쟁조직 폴리사리오(Polisario)와의 분쟁으로 오늘날까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모로코는 폴리사리오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알제리와 1976년 외교관계를 단절하였고, 1979년 3월에는 이디오피아와, 4월에는 이집트와도 단교하였으나 1989년 2월 알제리·튀니지·리비아·모리타니와 아랍-아그레브연합(AMU)을 결성하고, 1991년 9월 폴리사리오와의 휴전협정을 체결하는 등 분쟁종식에 주력하고 있다. 모로코의 지형을 살펴보면 알제리, 튀니지에 걸쳐있는 아틀라스(Atlas)산맥이 서북에서 남동쪽으로 2.400km를 내려오며 뻗어있는데 가장 높은 산은 투브칼 산(4.165m)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아틀라스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 신으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형제인데 프로메테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os)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벌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Caucasus/Kavkaz) 바위산 절벽에 쇠사슬로 묶어놓고 낮이면 독수리가 날아와 옆구리를 찢고 간을 쪼아 먹는 고통을 받게 한다. 신이라 죽음이 없으니 밤이면 다시 간이 되살아나 상처가 치유되고 다음 날이면 또 독수리가 날아와 쪼아 먹고...
스페인 남부 타리파(Tarifa)항과 모로코의 탠지어(Tanger) 사이에는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이 가로놓여있는데 이 곳이 세상의 끝으로 허큘리스(Hercules/헤라클레스)의 기둥이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허큘리스는 12가지의 어려운 모험(과제)을 하게 되는데 그 11번째 모험이 헤스페리데스(Hesperides) 네 자매와 머리 12개의 괴물이 지키는 헤라의 황금사과를 따오라는 것이었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허큘리스에게 지구를 받치고 있는 아틀라스(Atlas)신에게 가서 조언을 구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허큘리스는 아틀라스를 만나기 위해 거대한 산을 넘어야 했는데 넘는 것이 지겨워 산줄기를 무너뜨려버리고 갔는데 그 때문에 바다를 막고 있던 아틀라스산맥이 갈라지면서 대서양과 지중해의 바다가 통하게 되었고 오늘의 지브롤터 해협이 생겼다고 한다.
아틀라스를 만난 허큘리스가 도움을 청하자 헤스페리데스는 아틀라스의 딸이었으므로 자신이 대신 따다 줄테니 잠시 하늘을 메고 있으라고... 허큘리스가 잠시 대신 하늘 메고 있었는데 하늘을 메기가 지겨워진 아틀라스가 도망가려고 하자 헤라클레스는 꾀를 내어 어깨가 아파 바칠 것을 덧대야겠으니 잠시만 메고 있으라고 속여 하늘을 넘겨주고는 사과를 들고 도망을 갔다고 한다.
헤라클레스가 산줄기를 자를 때 부서진 산의 한 부분인 지브롤터의 바위산(Rock of Gibraltar)과 모로코의 에벨 무사(Jebel Musa/혹은 모로코의 스페인령인 세우타<Ceuta>에 있는 몬테 아초/Monte Hacho) 바위가 지브롤터를 지키는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Pillars of Hercules)이라고 한다.
프로메테우스 아틀라스 허큘리스(헤라클레스) 헤스페리데스 자매 아틀라스(투브칼 봉)
(1) 탠지어(Tanger)와 라바트(Rabat)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회교 모스크 엄청나게 큰 석류 시장 골목길 풍경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최북단의 탠지어(Tanger/탕헤르)인데 스페인의 풍광에 눈이 익은 우리에게 모로코의 첫 인상은 너무나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높게 솟아있는 회교사원 탑, 좁은 골목길, 잡다한 물건들을 길거리에 빼곡히 진열한 가게들, 그리고 푸른색 긴 치마에 무슬림 히잡(Hijab)을 쓰고 길거리는 누비는 여인들...
이곳 탠지어는 유럽과 통하는 항구도시로 BC 8세기 고대 페니키아(Phoenicia)인들의 세웠던 카르타고의 무역 거점도시였다고 하니 그 역사가 거의 3.000년에 가깝다고 하겠다.
미리 1박을 예약하고 찾아 나선 우리의 숙소 까사 우데아(Casa Oudayas)가 하필이면 베르베르인들의 옛 주거지 메디나(Medina) 안에 있을 줄이야... 꼬불꼬불 골목길을 누비며 간판도 없는 숙소를 찾아가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나중 몇 번 혼났지만 이곳에는 호텔을 제외하고 모든 숙소에 간판이 없다. 오로지 지도와 주소만 가지고 물어물어 찾아가야 되는데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통용어가 프랑스어다. 아시겠지만 프랑스어는 영어 발음과 너무나 달라서 글씨를 보고 영어발음으로 물으면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한다. 결국 지도를 보여주고, 번지를 보여주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엄청나게 큰 석류를 발견하고 즉석에서 짜주는 주스를 한 잔 마셨는데 너무나 맛있고 가격도 싸다.
Episode<1> 아찔했던 순간
라바트에 저녁에 도착해서 5시 쯤 숙소에 도착했는데 탠지어에서 처럼 또 숙소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나는 좀 피곤하기에 샤워를 하고 한숨 자겠다고 했더니 임교장은 거리 구경을 좀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가까운데 조금만 보고 들어오라고.....
샤워를 하고 잠깐 누워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니 7시가 됐는데 임교장이 들어오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모로코는 여행오기 전에 굉장히 위험한 지역이라고 수차례 들었던 터라 더욱 걱정이 된다. 그런데 8시가 돼도 9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틀림없이 무슨 사단이 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납치가 됐나? 못된 놈들에게 걸려 매를 맞고 쓰러졌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나? 벼라 별 생각이 다 든다.
10시가 지나도 오지 않아 틀림없이 사고가 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대사관에 연락을 해야 하나, 우선 집으로 연락을 해야 하나... 그러는데 11시가 되어서... 임교장이 퀭한 눈으로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반가우면서도 짜증이 난다. 아니 어케 된거여??
임교장 왈, 골목길을 돌며 구경을 하다가 젊은 모로코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영어를 제법 하더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임교장은 얼씨구나 이야기를 계속 한 모양이다.
대화를 나누며 꼬불꼬불 골목길을 얼마나 갔는지 젊은 녀석이 다 왔다고 빠이빠이.... ㅎ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모로코의 꼬불꼬불 골목길은 아무리 눈여겨 보아두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골목이 그 골목 같고, 틀림없을 것이라 여기고 열심히 가다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장장 5시간 이상을 헤맸으니.... 아무튼 그 후로 임교장은 절대로 혼자 바깥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모로코 아가씨 무함마드 영묘 하산탑 입구 기마병 하산탑의 돌기둥들
모로코의 수도(首都)는 라바트(Rabat)로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며 인구는 60만 정도이다.
라바트에서 2박을 했는데 라바트 볼거리의 첫 번째는 하산탑(Hassan Tower)이다. 우선 높이 솟은 모스크가 눈에 들어오는데 한 변 16m의 정사각형 탑으로 높이가 44m라고 하며 쌓다가 중단한 상태란다.
1192년 알 만수르(왕)가 야심차게 시작한 모스크 건설은 1197년 그가 죽자 중단한 채 오늘날까지 멈춰있다는데 앞쪽에 남아있는 거대한 돌기둥 300개를 보면 그의 건설계획이 얼마나 웅대했는지 짐작이 간다.
또 하산탑과 광장을 빙 둘러 높다랗게 쌓아올린 붉은 진흙 벽은 반쯤 허물어진 채 서있지만 웅장하다.
하산탑 광장의 한쪽에는 아름답게 축조된 무함마드 5세 영묘(靈廟)가 있는데 들어서보면 푸른 타일로 장식된 정교하고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문양의 내부 장식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관광객의 접근이 금지된 아래층 영묘 옆에서는 이슬람 사제가 앉아 끊임없이 코란을 낭송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라바트는 성안(구시가지)과 성 밖(신시가지)으로 나누어지는데 대부분의 관광지는 성 안에 있다. 성 안에는 다시 이슬람 지역인 메디나(Medina)와 유대인 거리인 밀라(Milla)로 나누어진다.
(2) 카사블랑카(Casablanca)
모스크 주변건물 모스크 카사블랑카 해변의 수영 화려한 아라베스크
모로코 중부 해안의 도시 카사블랑카는 영화 ‘카사블랑카(하얀집)’의 배경이 된 도시로 멜랑꼴릭한 영화주제가의 선율과 함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오는 도시이다. 너무나 낭만적인 이름에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악명 높은 베르베르인들의 해적 소굴이었다고 하는데 포르투갈에 의해 소탕되었다고 한다.
카사블랑카의 자랑은 높이 2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나레트(Minaret)를 자랑하는 하산 2세 모스크이다.
하산 2세(Hassan II/1929~1999)는 자신의 6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모스크를 짓기 시작했다는데 그 웅장한 규모와 화려함이 압권이다. 사원 좌우로 들어서 있는 부속 건물들도 정교한 아라베스크 장식으로 너무나 아름다우며,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대서양을 끼고 광장과 공원이 어울려 매우 인상적이다.
하산 2세는 1961년 아버지 무함마드 5세가 죽자 왕위를 계승하여 38년 간 모로코를 통치하면서 오늘의 모로코를 건설한 왕으로 사후 그의 아들 무함마드 6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호기심 많은 임교장의 성화로 모스크 옆의 바다에서 수영을 했는데 10월 초순이라 물이 차다. 파도가 세고 해변이 자갈로 이루어져 있어 수영하기 마땅치 않아 물에 조금 들어갔다 나왔는데 사람들이 모두 쳐다본다.
불후의 명화 카사블랑카(Casablanca/하얀집)
- 마이클 커티즈(미국) 감독의 1942년 작품.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 -
<영화 포스터> | 세계 2차 대전, 파죽의 독일군에 밀려 파리까지 점령당하자 지하에서 싸우던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은 프랑스령 모로코로 피신, 미국행 배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미국인 험프리 보가트는 옛 애인이었던 잉그리드 버그만이 프랑스 레지스탕스 리더인 남편과 나타나 독일 첩보원을 피하여 미국으로 밀항하는 통행증을 부탁한다. 아직도 옛 애인을 잊지 못하는 험프리 보가트.... 결국 부부를 미국으로 떠나도록 도와준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카페에서 속삭인다. |
Casablanca(카사블랑카/하얀집)
I fell in love with you watching Casablanca/ Back row of the drive-in show in the flickering light
Popcorn and cokes beneath the stars became champagne and caviar
Making love on a long hot summers night
나는 카사블랑카를 바라보며 당신과 사랑에 빠졌었지/ 야외극장의 뒷줄, 희미한 불빛 아래
별 빛 아래에서 팝콘과 콜라는 샴페인과 캐비어로 변했지/ 길고 더운 여름밤 사랑을 하면서...
(3) 마라케시(Marrakech)
고대 모로코의 수도(首都)였던 마라케시는 모로코 중남부지역의 내륙에 위치한 도시로, 모로코에서는 비교적 비옥한 평야지대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이다. 우리는 사하라사막 낙타 사파리(Safari)와 다데스 협곡(Dades Gorges), 토드라 협곡(Todra Gorges) 등 베르베르인들의 오랜 마을들을 둘러볼 목적으로 왔다.
저녁에 숙소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아주 예의바른 필리핀 루손섬 출신의 40대 초반의 젊은이를 만났는데 현재 직장은 미국 필라델피아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는 사하라 사파리를 할 예정이라고 하자 자기는 이미 내일 출발하는 패키지를 예약했다고 한다. 2박 3일짜리를 106유로에 했다기에 우리도 함께 갈 수 없느냐고 물어보는데 옆에 있던 숙소주인인 20대의 젊은 녀석이 자기는 70유로에 소개해 주겠다고 나선다. 이게 웬 횡재냐, 재빨리 연락해 보라고 해서 내일 새벽 출발하는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마라케시에서 3박을 예약하고 왔는데 돌아와서 2박을 해도 되냐? OK, 가방은 맡기고 가도 된단다.
일정이 어떻게 짜여 졌는지, 어떤 멤버로 구성되었는지 따지지도 않고 덜컥 돈(140유로)을 주어버렸다.
이튿날 새벽 집으로 데리러 온 사람을 따라 골목길로 나가보니 중형 승합차 안에 사람들이 꽉 차있고 남은 자리는 우리 두 사람자리 뿐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중형 승합차에는 프랑스인 가족, 캐나다인, 스페인 친구들, 그리고 이태리 젊은이들... 우리까지 16명이다.
어쨌거나 그리하여 꿈에 그리던 사하라사막 낙타 사파리를 떠났는데 처음에는 무슨 2박 3일이나 되나 의아했지만 우리가 너무도 무지했다는 사실을 여행을 하는 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새벽 마라케시 출발 ☞ 아틀라스 산맥 통과 ☞ 다데스 협곡<1박> ☞ 다데스 출발 ☞ 토드라 협곡 관광 ☞식물정원 관람 ☞ 에잇 벤하두 요새 관람 ☞ 5시간 대 황야 통과 ☞ 메르주가 도착<1박> ☞ 새벽에 낙타투어... 그리고 난 후 12시간동안 차를 타고 갔던 길을 되돌아 마라케시로 오는 여정(旅程)이다.
그리고 중간에 고대 베르베르인 마을과 영화촬영장소 및 유적들을 몇 군데 들르는... 대장정이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이었으랴... 가지가지 예상치 못했던 기상천외한 이변들의 연속으로 그야말로 신밧드의 모험이었다.
<1> 거대한 아틀라스(Atlas) 산맥
마라케시를 떠나 한 시간쯤 달리면 거대한 산맥이 앞을 가로막는데 아프리카에 이런 거대한 아틀라스 산맥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아틀라스 산맥 아틀라스 고개 정상 계곡 바위벽의 요새
뱀처럼 구부러진 아틀라스 계곡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우리고향 강원도 대관령이 아흔 아홉 굽이라고 자랑을 했는데 이건 999 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꼬리를 물 듯 이어지는 수많은 아슬아슬한 고갯길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거대한 산과 암벽들이 금방 쏟아질 것처럼 벌리고 서 있는 골짜기로 용케도 찻길을 뚫었다.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느낌인데 정상에 올라왔다 싶으면 또다시 검붉은 거대한 산들이 첩첩이다. 모로코 쪽은 나무가 울창하고 푸른 산인데 산맥을 넘으면 대부분 검붉은 바위산이다. 이곳 어디메 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에잇 벤하두(Aït Benhaddou) 마을이 있다.
<2> 에잇 벤하두(Aït Benhaddou) 성채
베르베르부족의 하두(Haddou) 가문이 13세기에 세웠다는 이 성채(城砦)는 붉은 흙벽돌로 지은 전형적인 북 아프리카 식 요새인 카스바(Qasba/Kasbah)인데 황량한 주변 풍경과 어울려 너무도 아프리카적이다.
에잇 벤하두 성채 전경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정상의 전망대
차가 작은 마을에 도착하면 강의 흔적이 있고 시멘트 다리도 있는데 강 건너편에 이 성채가 있다. 붉은 성채 안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관광객이 오르는 좁은 골목길에는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강은 작은 도랑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는데 강 주변에 푸른 숲이 우거진 것을 보면 비가 오면 제법 강물이 흐를 듯싶다. 제법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데 아래에서 보나 위에서 보나 너무나 이국적이고 신기한 붉은 흙벽돌의 성채이다. 이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영화들이 촬영되었다는데....
아라비아의 로렌스/글래디에이터/인디애나존스/소돔과 고모라/나자렛 예수/나일의 대모험/007/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쿤둔/미이라/알렉산더/킹덤 오브 헤븐/바벨/페르시아의 왕자/선 오브 갓..... ㅎ
여행 동지들 불 그림 와르자잣(Ouarzazate) 영화세트장
가는 길목마다 작은 마을이 있고 또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찍을 때면 이곳에서 많이 찍는 모양으로 와자르잣(Ouarzazate) 영화세트장도 제법 규모가 크다.
점심을 먹고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나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흑인 녀석이 담배를 한 개비 달라는 손짓을 한다. 그냥 줄까 하다가 ‘땡큐를 한국말로 해봐. 따라 해 <감사합니다.>’
이 녀석 ‘캄싸하니다.’ 다시 ‘<고맙습니다.> 해봐.’ ‘코마쓰미다’... 제기럴 담배 한 개비를 뺏겼다. ㅎ
꼬불꼬불한 계곡을 한참 달리다보면 다데스(Dades) 협곡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수많은 화석과 수정이 발견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관광차가 멈추는 곳마다 늘어놓고 사라고 성화다. 화석 중에는 삼엽충, 암몬조개 등 고대 해양 동물의 화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바다였다가 융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붉은색, 은색, 푸른색 수정(水晶)들도 수없이 많은데 값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이 다데스 협곡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계곡위로 떠오르는 달이 정말 한 폭의 그림이다.
<3> 토드라 협곡(Todra Gorge)과 식물원(Botanical Garden)
토드라 협곡 기념사진 수정과 화석 식물원(Botanical Garden)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얼마쯤 달리다보면 또다시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이 나타나는데 바로 토드라 협곡(Todra Gorge)이다. 협곡 입구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데 제법 수량이 많다. 협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정말 금방 쏟아져 내릴 듯 바위절벽이 병풍처럼 나타나고 그 사이의 좁은 계곡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려오는데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라는 팻말도 보인다. 계곡 바깥은 후텁지근한 바람으로 땀을 찍어내는데 이곳은 무척 시원해서 관광객들은 물에 손을 담그며 고된 여정의 피로를 씻어낸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협곡을 내려오면 별천지가 나타나는데 이 메마른 황무지의 붉은 바위산 투성이인 골짜기가 녹색의 초원으로 바뀌어져 있다. 이 계곡의 물이 황량했을 벌판을 농경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제법 큰 마을도 보이는데 계곡 입구 쪽에 제법 긴 다리가 있는데 다리 밑은 완전히 녹색의 장원이다.
다리머리 쯤에 가이드가 내리고 다른 영감 가이드가 차에 오르면서 지금부터는 자기가 가이드라고 한다. 그리고 저 아래는 식물원(Botanical Garden)인데 자신이 한 시간 쯤 안내를 하겠다고 모두 내리라고 한다.
여기에서 내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Episode<2> 토드라 식물원(Botanical Garden)에서
모두 차에서 내려 영감탱이를 따라 내려갔는데.... 식물원이라기보다 둘레의 숲은 대추야자, 바나나, 올리브나무 등 열대식물들이 무성하고 가운데 부분은 주민들의 밭으로 사람들이 밭고랑에 엎드려 일을 하고 있다. 이 가이드영감은 나무마다 우리를 둘러 세워놓고 설명을 한다. 이 나무이름은 ○○이고, 열매는 어떻고, 식용일뿐더러 약리작용은 어떻고.... 계속 가는 곳마다 주절거리니 짜증이 난다.
덥고, 다리도 아프고.... 뒤에서 한 10여 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따라가다가 임교장 더러 나는 차로 돌아가 기다릴 테니 갔다 오시오. 하고는 슬며시 돌아섰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될 줄이야....
다리로 돌아와 보니 차가 없다!! ‘혹시 저쪽 반대편으로 차가 가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서둘러 다시 숲속 길로 내려가 종종걸음을 쳤는데도 길이 여러 갈래라 통 알 수가 없다. 땅 바닥을 들여다보고 발자국이 많은 쪽으로 헉헉거리며 10여 분 달려갔는데도 종적이 묘연하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가운데 밭쪽으로 나와 내려다보니 저 아래쪽으로 사람들이 가는 모습이 보이기에 헉헉거리며 길도 아닌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쫓아가면서 보니 아무래도 우리 일행이 아닌 것 같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거의 다 되어간다. 아이고... 안되겠다. 서둘러 되돌아서서 다리 쪽으로 가는데 왜 이리 멀고 또 왜 이리 더운고.... 숨이 턱에 차서 서둘러 왔는데... 차가 없다!!! 시계를 보니 20분쯤 초과.
설마 나를 두고 가버린 것은 아니겠지? 다리 난간에 앉아 조마조마 기다리는데... 종문소식이다......
임교장이 여행비를 몽땅 가지고 있으니 나는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다. 10시 쯤 갔는데 12시가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아!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임교장은 차를 가지고 오겠지...’ 1시가 되어도 오지 않는다. 벼라 별 생각이 다 든다. 목적지인 마르주가로 가서 만나야 되나? 트럭을 얻어 탈까? 그런데 5시간 거리라...
2시까지만 기다리자.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으면.... 마을로 가서 한국대사관에 전화.... 어흐흑....
결국 2시가 거의 되었는데 차가 나타났다!! 가이드 영감이 스케줄을 바꾸어 식물원 관람을 마치고 식물원 반대편에 있는 유대인 마을을 방문했단다. 그리고 그 앞에 차가 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점심 먹으려다 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점심도 못 먹고 왔다고 한다.
이태리 젊은 녀석 나더러... ‘4시간동안 뭐했어요?’ ‘Take a rest, and wait, wait.....' 으~~~
<4> 험난한 사하라사막 캐러번 길
거기에서 사하라사막 사파리가 시작되는 지점인 알제리 접경의 작은 마을 메르주가(Merzouga) 까지는 다시 5시간 정도 황야를 달려야 한다.
아틀라스산맥을 뒤로하고 황야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황량하다는 표현밖에는 할 말이 없다. 메마른 붉은 황토 흙, 자라는 식물이라야 이따금 나타나는 선인장과 용설란류의 식물들이 전부이고 물이 흐른 흔적이 있기는 한데 이런 곳에 과연 비가 오기는 하는지... 그래도 오래되어 갈라지기는 했지만 시멘트 포장길로 차가 달리는데 조금씩 부슬비가 차창을 때리기 시작한다. 잔뜩 찌푸린 날씨였는데 갑자기 번쩍 번개가 치는 느낌이 있어 차 뒤를 바라보니 검붉은 황토 흙먼지가 커다란 장막처럼 드리워져 우리를 뒤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흙먼지 속에서 번개가 연이어 번쩍이고 있었다. 모두들 조마조마 맘을 졸이는데 황토 장막이 점점 차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삽시간에 휘이익~~ 우리 차를 뒤덮고 앞서나간다. 우리 차는 황토장막 속에 갇힌 꼴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무시무시한 황토장막 속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서 시뻘건 흙탕물 빗방울이 유리창을 후려치는 통에 차가 앞으로 달릴 수가 없다.
삽시간에 도로는 시뻘건 흙탕물로 뒤덮이고 차는 굼벵이 걸음을 한다. 조금 지나자 흙바람은 저만치 앞서가서 조금 시야가 트이는데 조금 구릉진 곳에 이르자 흙탕물이 도로를 덮어 차들이 멈추어 서서 지켜보고 있다. 승용차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우리 차는 승합차라 차대가 조금 높아서 우리 기사가 비집고 나서더니 용감하게 물을 건넌다. 모두 조마조마 하다가 일제히 박수를 터뜨리며 환호성을 올렸다. 다른 차들은 감히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서 있는데 우리 차는 건너자마자 신나게 쌩~~ 달렸다.
작은 마을을 지나다보니 마을 골목마다 흙탕물이 도랑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아이들은 좋아서 이리저리 건너뛰고 있었다. 이 건조지역에서 폭우라니....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저녁 어스름 녘에야 알제리 접경마을 메르주가(Merzouga)에 도착했는데 마을에서 숙박을 하지 않고 곧바로 사막에 세워놓은 텐트로 데려간다. 이곳은 알제리와 국경인 사하라사막의 끄트머리이다.
사막에서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 보기를 기대했었는데 아직도 가랑비가 부슬거리고 텐트 안 침대 모서리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니 몹시 아쉽다. 그러나 얼마 지나자 구름 사이로 달빛이 비치며 별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둥그렇게 10여 개의 텐트를 둘러친 가운데에 원래는 모닥불을 피우고 전통 민속공연도 있을 예정이었지만 밤이 너무 늦어 공연이 취소되었다면서 화톳불을 피워준다. 우리들은 웅기중기 화톳불 둘레에 모여서서 젖은 옷들을 말리고 있노라니 미안한지 가이드 영감이 빈 플라스틱 통을 들고 나와 막대기로 요란하게 리듬을 연주하며 흥을 돋운다. 그리고 노래를 할 사람은 불러 보라고 부추긴다.
사하라사막 낙타 사파리 별로 크지 않은 낙타 사막의 캠프파이어
내가 성당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임교장이 느닷없이 나를 가운데로 밀어내며 ‘He is a famous Korean singer....’ 할 수 없이 ‘No, I'm not a singer, but OK, I'll sing a Korean farmer's song’.....
몇 년 전 인천 미추홀합창단 멤버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이희조 편곡의 ‘농부가’를 공연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솔로부분을 무대 앞으로 나가 내가 불렀었다. 그 대회에서 금상으로 상금 500만원....
‘에~~헤~~ 에 에헤~에~ 상~ 사~뒤야, 어~럴럴럴~ 상사뒤야. 여보시오. 농부님네~~’
기왕 하는 김에 목청껏 소리를 질러 노래를 했더니 임교장은 옆에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일동 박수>
그러더니 임교장이 다시 앞으로 나서면서 나도 한곡 부르겠다고... 그러더니 목청을 가다듬고 남진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을 구성지게 부른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내가 냉큼 옆으로 나가서 ‘I love you with all my heart’(가사 번역) 했더니...
임교장 머리를 긁으며 그 다음 가사가.... ‘He forget the next word...’ 모두를 박장대소하며 손뼉을 친다.
그런데 이것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 줄이야... ㅎ
사파리 멤버들 새벽을 여는 캐러번 행렬 이태리친구의 핸펀 사진
꼭두새벽에 일어나라고 재촉을 하더니 서둘러 아침을 먹고 어스름 녘에 낙타를 타고 1시간 동안 사파리를 하더니만 곧바로 차에 태우고는... 몇 군데 들르기는 했지만 마라케시로 되돌아오는데 만 12시간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소렌토가 고향이라는 이태리의 젊은 녀석은 계속 나보고 노래를 하라고 성화다.
‘No, I can't...’ ‘Please...’ ‘No!’ ‘Please...’ 결국 내가졌다.
‘OK, Then do you ever heard about Korean folk song Arirang?’ 일제히 ‘No’
‘Aren't you? Well, Arirang is Korean famous traditional folk song. And there are many different kind of Arirangs in Korea. For example Seoul Arirang is.... like this.’ - 경기아리랑 두 소절 부름.
‘And southern part of Korean Arirang is.... like this.’ - 진도아리랑 두 소절 부름.
‘And Northern part of Korean Arirang is.... like this.’ - 정선아리랑 두 소절 부름. <모두 박수>
졸지에 본의 아니게 아리랑 강의가 돼 버렸다.
이것까지는 참겠는데 요 이태리 소렌토 젊은 녀석은 점심 먹고 난 후 또 노래하라고 성화다.
그리하여 이태리가곡 ‘돌아오라 쏘렌토로....’ ‘Hey, this is your song!!’ 일행 웃으며 박수...
그 밖에도 일부만 불렀지만 이태리가곡 ‘O sole mio’, ‘Caro mio Ben’ 암튼 이태리 녀석 때문에 혼났다.
마라케시에 도착하니 어두워졌다.
마라케시의 올드 메디나는 미로의 연속으로 숙소 찾아가기가 너무 힘들다. 분명 엊그제 아침에 출발했는데 다시 찾아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가까스로 숙소를 찾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2박 3일의 힘든 사하라 사파리의 여독을 풀었다.
다음날은 마라케시 중앙광장인 자마 엘프나 광장, 사디안 묘, 그리고 마라케시 전통시장의 골목길 투어에 나서기로 했다. 자마 엘프나 광장(Jamaa el-Fna Square)은 마라케시 중앙광장으로 항상 관광객들과 장사꾼들로 북적이며, 저녁이면 휘황한 불빛 아래 갖가지 행사가 열리는 축제의 광장이다.
자마 엘프나 광장 광장의 밤 쿠토비아 모스크
한 편에서는 음악공연, 코브라 부리는 사람, 비보이 공연, 마술로 공중에 떠있는 사람, 가지가지 잡화들을 벌여놓은 수많은 장사꾼들, 이곳저곳에는 과일 가게들... 아무래도 돈을 달랄 듯 싶어 코브라 쇼를 멀찍이서 줌으로 당겨 찍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녀석이 부리나케 뛰어와서... 20 디르함(2.400원)을 내 놓으라는 것을 5디르함을 주고 뺑소니를 쳤다. 광장 한편에는 1197년에 준공된 아름다운 쿠토비아(Koutoubia Mosque) 사원의 모스크가 우뚝 솟아 있는데 높이가 68m, 그 아래 사원 면적은 5.400㎡나 되며, 마라케시의 중심이자 상징이라고 한다.
다음 찾아간 곳은 바히야(Bahia) 궁전, 엘 바디(El Badi) 궁전과 사디안 묘(Saadian Tomb)로, 우선 사디안 묘부터 보기로 했는데 입장료가 12디르함이나 되어 기대가 컸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우선 작은 문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서 기대가 컸는데 들어가 보니 의외로 정원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좁은 공간에 나무 몇 그루와 화단, 그리고 조그만 오픈된 방(공간)과 한쪽에 무덤인 듯싶은 건물의 문이 보이는데 또다시 구불구불 긴 줄이 늘어서 있다. 1시간 이상이나 기다린 끝에 문 앞에 다다랐는데... 들어가지는 못하고 들여다보고 사진만 찍으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화려한 금박타일과 온통 형형색색의 정교한 꽃무늬와 아라베스크 문양들, 의외로 작은 대리석 관. 아름답기는 한데... 뒷사람을 위해 10초정도 기웃거리며 사진만 찍고 돌아 서려니 조금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 묘는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대리석과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바깥의 뜰에는 가족과 군인 및 신하들의 무덤도 있으니 만수르의 무덤이 아니라 사디안 왕가의 무덤이라는 표현이 알맞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나 협소하고 입구의 문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쪽문이다.
길게 늘어선 줄 벽면의 코란구절 아름다운 타일 만수르의 관
이 사디안 묘는 사디(Saadi) 왕조를 연 아흐마드 알 만수르(Ahmad al-Mansour) 왕의 무덤으로, 16세기 초 포르투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모로코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하는데 그 기념으로 왕궁 엘 바디궁전을 건축하였으며 이곳 마라케시(Marrakech)를 수도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뒤를 이은 알라위(Alawite) 왕조의 2대 왕이었던 이스마일(Isma'il ibn Sharif)은 옛 시가지를 허물고 40km의 3중의 벽으로 둘러싸인 카스바(Qasba)를 건설하며 사디안 묘는 높은 담으로 둘러쌓고 철저히 봉쇄해 버렸었다고 한다.
줄을 서서 벽면의 기하학적 문양을 보고 있는데 뒤에 섰던 아랍 젊은이가 벽면을 보며 중얼중얼 글을 읽는 소리가 난다. ‘Is that Koran?’ 했더니 ‘Yes’ 하면서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고 해석을 해 준다.
그 옆에 바히야궁전이 있었는데 시간도 촉박하고 돈도 아까워 그냥 패스... 마조렐 정원, 자르딘 정원도 패스... 그까 꽃구경이야... ㅎ
우리 늙은이들 취향에 맞는 전통시장을 보러갔다. 마라케시 전통시장 쑥(Souk)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니는데 제법 볼만하다. 우리는 어차피 물건을 살 일이 없으니 눈 구경이지만 관광객들에게 엄청난 바가지를 씌우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마라케시 전통시장 쑥(Souk)
우리가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시로 오기 전에 예약해 둔 숙소가 벨코 노마드(Belko Nomads)였다. 지도상으로 보면 구시장인 메디나(Medina)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이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자마 엘프나 광장으로 갔는데 과연 그 옆에 붉은 성벽(흙담)으로 둘러싸인 메디나가 보인다.
길거리의 경찰한테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으니 저쪽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지도를 펴들고, 핸드폰 지도를 들여다보며 골목길을 헤매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길모퉁이에 있는 30대 중반의 가게 주인한테 지도를 내밀었더니 자기가 잘 안다며 옆의 친구에게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이 친구를 따라가라고 한다. 속절없이 무거운 배낭을 추스르며 따라가는데... 한없이 꼬부랑거리는 거리를 계속 가는데 눈치가 일부러 빙빙 도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20여 분 헉헉거리며 따라갔더니 좁은 골목길 간판도 없는 작은 대문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린다. 주인이 나오더니 우리 숙소가 맞다고 한다. 그리고는 길안내 녀석이 손을 내밀며 20디르함(2,800원)을 달라고 한다. 가까스로 10디르함...
모로코에서는 몇 번이나 경험했지만 무조건 따라붙으며 길안내를 해주겠다고... 그리고는 어김없이 돈...
거짓말 같겠지만 우리가 사막투어를 하고 다시 올 때도 이 숙소를 못 찾아 또 헤매었다.
사파리에서 돌아온 다음날 숙소를 나서며 우리는 숙소 대문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골목에 나와 사진도 찍고...
조금 나오다 보니 길을 파헤치고 공사를 한다. ‘임교장, 이 공사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네. 이따 올 때는 이 공사현장에만 오면...’ 그리고는 나와서 종일 구경을 하고 저녁이 되어 다시 숙소로 가는데.... 골목을 몇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 보니 아침에 보았던 공사현장이 보인다. 아이고... 이제야 찾았네... 둘이 마주보고 웃으며
‘요리로 가서... 요 골목으로 들어가면...’ 하고 가보니 엉뚱한 골목이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공사 부근을 한 시간 이상이나 뱅뱅 돌다가 결국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우리의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메디나의 골목길은 정~~말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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