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광각의 풍경을 보다가 아주 작은 변산바람꽃을 초접사로 찍어봤다.
맨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꽃의 디테일을 보여 줬다.
한국 특산종인 변산아씨의 연분홍빛 흰 잎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다.
꽃받침 안쪽에 노란 꽃잎들이 관처럼 입을 내밀고 있다.
그 안쪽의 연보랏빛이 수술, 중앙의 연초록이 암술이다.
지난겨울의 혹한 때문인지 꽃빛이 더 선명했다.
요즘 노안老眼으로 초접사를 공부한다.
나이 들면서 수정체의 탄력성이 떨어지니 먼 거리는 잘 보이고, 가까운 곳은 흐리게 보인다.
초점이 잘 안 맞는다는 것은 디테일의 문제다.
노안은 가까운 내가 나를 잘 못 보고, 좀더 먼 곳, 다른 사람을 더 잘 보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허물은 안 보이고 남의 허물만 더 잘 보게 된다는 뜻이다.
갈수록 지혜로워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의심이 많거나 속 좁은 좀팽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동안 살아온 것만으로 통계를 내듯이 마구 사람들을 재단해 온 날들을 반성한다.
우리들의 시력은 좋아야 2.0이다.
몽골 사람들은 매와 독수리처럼 시력 8.0 정도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먼 곳, 인생이라는 것은 구도의 문제이며, 가까운 곳, 인생지사 오감은 디테일의 문제다.
한쪽에만 깊이 빠지지 않고 미시와 거시, 광각과 접사의 세계를 잘 넘나드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먼 곳에도 꽃은 피고, 가까운 곳에도 봄꽃은 피어나기 때문이다.
모처럼 그 산 그 숲속에 들어갔더니 너도바람꽃이 막바지 꽃빛을 보여 주고, 만주바람꽃들이 바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이윽고 섬진강에도 넉넉하게 봄비가 오시니 지난해보다 한참 늦었지만 매화 산수유꽃들이 달음박질치며 북상하기 시작했다.
섬진강을 찾아온 검독수리도 조만간 몽골 초원이나 시베리아로 돌아갈 것이다.
지난 설 연휴를 전후해 1주일 동안 바이칼호수와 몽골을 다녀왔다.
난생 처음 설날 새 아침을 머나먼 땅 바이칼호수 알혼섬에서 맞은 것이다.
신성한 샤먼바위 ‘부르한’ 앞에 바이칼 보드카 한 병을 올리고 새해 큰절을 올렸다.
일행들이 둥글게 모여 서로 맞절을 하고는 바이칼호수에서 바이칼 보드카로 음복을 했다.
이번 대륙여행의 이동경로는 인천공항-몽골-이르쿠츠크-바이칼호수-국제열차(이르쿠츠크-울란우데-몽골 울란바토르)-테를지 코스였다.
서울의 ‘왕언니’ 최정희 누님의 무한 배려로 영하 30℃를 넘나드는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도 오히려 덥다 못해 땀띠가 날 정도로 행복했다.
동행자 7명의 ‘얼떨결에 복 받은 연맹원들’(얼복연맹)은 최정희, 이원규(시인), 김영우(셰프), 김의현(시인), 박정호(전기엔지니어), 김명지(시인), 신희지(작가)였다.
비행기를 타고 몽골을 거쳐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첫날밤은 앙가라 강변의 노스시호텔에서 잤다.
바이칼호수에서 유일하게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은 예니세이강과 합류할 때까지 중앙시베리아 평원 1,779km를 가로지른다. 영하 50℃에도 앙가라강은 얼지 않는다.
한 전설에 따르면 바이칼 신의 아름다운 고명딸인 앙가라가 이웃 청년 이르쿠트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눈물이 얼지 않는다는 것은 다만 전설 속의 이야기일 뿐 ‘눈물도 얼 수 있다’는 것을 앙가라 강변에서 절감했다.
울란우데 출신인 브리야트족 현지 가이드, 25세의 착하고 어여쁜 아가다 페트로바와 함께 16년 만에 다시 바이칼호수 알혼섬에 가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인 국제열차를 탔다.
6박7일 동안 시베리아와 몽골의 길을 달리고 달렸다.
길은 발자국들의 화석이다.
아무래도 겨울 대륙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별사진’이었다.
그런데 여행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해졌다.
확률이 매우 낮았지만 하늘의 뜻을 어찌하랴.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이른 새벽에 앙가라강으로 나갔더니 영하 30℃의 혹한 속에서 물안개가 오르고 있었다.
바이칼호수와 알혼섬, 그리고 몽골에서는 밤이면 세상의 절반이 온통 별빛이었다.
특히 은하수가 흐려지는 겨울 사진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번 겨울여행에서 나름대로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어디서나 별은 많이 보이는데 막상 찍으려 하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들이 잘 안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잘 찍히는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두 번째, 바이칼호수 알혼섬이나 몽골 또한 어느새 빛 공해(광해)가 심해졌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문제는 지평선의 불빛들이 훨씬 더 멀리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세 번째, 겨울철 사진은 너무 추워 카메라 오작동의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큼 추워도 밤새 촬영할 수 있었다.
금방 뼈가 시릴 정도로 추운 몸도 몸이지만 두꺼운 장갑을 낄 수 없는 손가락도 굳어 수동 조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마스크를 끼면 그 입김이 눈썹에 달라붙어 두 눈이 쩍쩍 달라붙어버릴 정도였다.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으면 코털이 서릿발처럼 일어섰다.
릴리즈가 제 맘대로 작동해 카메라가 의도와 다르게 마구 찍어대기도 했다.
결국 릴리즈 등 모든 장치를 제거하고 핫팩을 5개 이상 붙이고 수건 등으로 카메라를 돌돌 감싸야 했다.
겨우 한 장을 찍고 다 풀어헤친 뒤에 수동으로 초점과 감도, 셔터속도를 조절해 고정한 뒤 다시 핫팩을 붙이고 촬영을 시도했다.
눈밭에서 30분 정도 혹한을 견뎌봐야 겨우 몇 장 정도밖에 찍을 수 없었다.
일단 철수해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카메라와 몸을 녹이고 배터리를 갈아 끼운 뒤에 다시 나가는 것을 반복했다.
얼었던 카메라와 삼각대는 숙소의 따뜻한 공기를 만나 성에가 끼었다 녹으면서 물이 줄줄 흘렀다.
한 시간 이상 물기를 제거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평원의 눈밭을 아무리 걸어가 봐야 거기가 거기일 뿐이니 숙소와 멀리 떨어진 출사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바이칼과 몽골의 겨울 별사진은 극한 극기 훈련과 다를 바 없었다.
네 번째, 별사진 교과서에 오류가 많다는 점이다. 캄캄한 밤에 초점을 잡는 법 등 강단의 이론은 현장에서 여지없이 깨질 수밖에 없다.
무한반복의 실전만이 카메라와 렌즈의 특성을 이해하고 한밤중 별사진의 디테일을 살려낼 수 있다.
어찌됐든 바이칼호수 알혼섬의 후지르마을, 이 마을에서 첫 번째 별 사진 한 장을 건졌다.
16년 만에 다시 가본 마을은 예전보다 너무 밝아졌지만 그래도 별빛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여했다.
후지르마을 불빛 너머 우리나라 쪽으로 오리온자리와 삼태성이 선명했다.
겨울의 대삼각형(시리우스-베텔게우스-프로키온)과 남쪽 하늘의 백미인 겨울철 다이아몬드는
시리우스(큰개자리)-리겔-알데바란(황소자리)-카펠라(마차부)-플룩스(쌍둥이자리)-프로키온(작은개자리)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이칼호수에서 나의 ‘별나무 사진’ 시리즈도 돌소나무와 소나무 두어 장 추가하고, 몽골 게르 별사진을 찍은 기쁨 또한 감출 수 없다.
고맙고 고마운 겨울 대륙여행의 별맛, 마침내 ‘바이칼 스타’의 별미를 맛보았다.
섬진강에 봄기운 완연해지자 시베리아의 밤에 얼었던 뼈가 이제야 녹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