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박남수
외로운 마을이
나른나른 오수(午睡)에 조을고
넓은 마을에
솔개미 바람개비처럼 도는 날......
뜰 아 암탉이
제 그림자 쫓고
눈알 대록대록 겁을 삼킨다.
(『문장』 9호, 1939. 10)
[어휘풀이]
-오수 : 낮잠
-솔개미 : 솔개, 수릿과의 새로 들쥐. 개구리, 작은 새 등을 잡아먹는다
[작품해설]
이 시는 그의 첫 번째 추전작으로, 평화로운 농촌의 여름날 오후 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낸 서경적 경향의 서정시이다. 향토적 분위기의 간결한 시어와 ‘나른나른’ · ‘대록대록’과 같은 의태어를 3연 7행의 짧은 형식에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효과적인 표현을 이루고 있다. 1연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부분으로, 시골 마을의 정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느낀 이미지를 평화로움으로 제시한다. 2연에서는 무대를 하늘로 옮겨, ‘솔개’가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고 있는 원경을 그리고 있으며, 3연에서는 시선을 땅으로 이동하여 솔개에게 겁먹고 뜰 안 한구석에 숨어서 눈알만 대록대록 굴리고 있는 암탉의 모습을 근경으로 나타내고 있다. 겁을 삼킨 ‘암탉’의 눈알을 클로즈없시켜 생동감 있는 표현을 이루는 한편, 오수에 잠겨 있는 외로운 마을 속으로 녹아들게 함으로써 이 작품을 더욱 평화롭고 한가로운 분위기로 끌어들인다.
이와 같이 평화로운 농촌의 정경을 풍경 그 자체로 표현해 그 자체로 표현해 낼 수 있었던 시작 능력이 있었기에 박남수는 후일 주지주의 시인으로 변모한 후에도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여 「새」, 「종소리」 등 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소개]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양 출생
1939년 『문장』에 「마을」,「초롱불」,「밤길」 등이 추언되어 등단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거쳐 일본 츄우오(中央)대학 법학부 졸업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
1957년 조지훈, 유치환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 창립
1957년 제5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
1973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강사 역임 및 도미(渡美)
1994년 사망
시집 :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1958), 『신(神)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 (1970), 『사슴의 관(冠)』(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이후』(1993), 『소로(小路)』(1994), 『박남수전집』(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