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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칼럼·연재
차이콥스키 '10월'…고엽 수북 쌓인 11월에 들어도 될까?
유윤종
2025.10.03
[arte] 유윤종의 시와 음악 사이
슬픔과 사랑의 계절...
가을 노래한 시와 차이콥스키 '10월'
도처에서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0월’이 울린다. 대개는 당연히 올해 발매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다. 이 음반에 묻혀 잘 언급되지 않지만, 2021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브루스 리우도, 일본 피아니스트 마쓰다 카논도 올해 차이콥스키 ‘사계’ 음반을 내놓았다.
11월이 오면 이 아름다운 차이콥스키의 ‘10월’은 어울리지 않는 선율이 될까.
성급히 다음 트랙으로 옮겨갈 필요는 없겠다. 차이콥스키가 이 곡에서 그려낸 계절은 러시아 옛 달력인 율리우스력의 10월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는 10월 14일에서 11월 13일에 해당한다. 차이콥스키 생전에는 두 달력이 12일의 차이를 보였지만 지금은 간격이 더 벌어져 13일 차이가 난다.
러시아의 위도가 높아 가을과 겨울이 일찍 오기는 점도 있겠지만 이 곡이 그려내는 10월은 분명 우리의 11월과 닮았다. 11월이 되어도 최소 2주일간 우리는 차이콥스키가 표현한 10월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차이콥스키 ‘사계’ 악보에는 곡마다 각 달을 정경을 그린 짧은 시 구절이 붙었다. 10월을 나타낸 시는 알렉세이 톨스토이가 썼다. 우리가 잘 아는 문호인 레오 톨스토이의 육촌이었고 레오보다는 열한 살 많다. 두 사람이 교류했다는 기록은 없다. 알렉세이는 생전 시 외에 역사 소설가로도 유명했다.
대문호 육촌 때문에 명성이 가려졌지만 그를 ‘레오 톨스토이와 이름이 닮은 무명 시인’ 정도로 기억해서는 곤란하다. 그의 시 중 절반 이상은 차이콥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륵스키, 라흐마니노프 등이 곡을 붙였다. 차이콥스키는 “알렉세이 톨스토이는 음악 붙여달라고 요구하는 시의 헤아릴 수 없는 셈이다. 내게 가장 매력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차이콥스키 ‘10월’의 악보에 있는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시는 두 줄이다. 제목은 없다.
가을. 우리의 가난한 정원은 모두 낙엽이 지고,
누렇게 변한 잎들이 바람에 날린다.
악보에 없는 나머지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오직 저 멀리, 골짜기 깊은 곳에서만
시들어가는 마가목의 붉게 빛나는 송이들.
내 마음은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여,
말없이 그대의 작은 손을 데워주고 꼭 쥐며,
그대의 눈을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 흘린다.
나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차이콥스키의 ‘10월’에 필적할 만한 음악적 기호로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된 선율로는 이브 몽땅의 샹송 ‘고엽(Les Feuilles mortes)’을 꼽을 만하다. 직역하면 ‘죽은 잎들’이다.
가수는 ‘떨어진 낙엽은 삽으로 주워 담을 수 있고, 추억과 후회도 마찬가지다’라며 ‘인생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아주 조용히, 소리 없이’라고 탄식한다.
‘고엽(枯葉)’이란 제목은 드뷔시의 피아노곡에도 있다. 전주곡 2권 2번 ‘고엽(Feuilles mortes)’이다. 이 곡을 쓸 당시 드뷔시는 암 진단을 받고 죽음(mort)을 예감하던 시기였다. 드뷔시 특유의 몽롱한 화음은 다가오는 미지의 날들에 대한 불안, 나아가 해체되고 흩어지는 자연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린 시절 집안의 서가에 문고판 ‘프랑스 명시선’이 있었다. 마음속에 폭풍이 일던 사춘기의 늦가을, 시 구절 하나가 가슴에 들어와 꽂혔다.
기억아, 기억아, 뭘 원하느냐 가을은
지빠귀가 단조로운 대기 속을 날게 하고
태양은 지루한 빛을
북에서 바람 불어오는, 노랗게 물드는 숲으로 던지는구나.
- 폴 베를렌, ‘네버모어’
가을이 단조롭거나 지루할 리 없다. 시인은 ‘가을(l‘automne)’과 ‘악센트 없는(atone)’, ‘단조로운(monotone)’으로 압운(押韻)을 맞추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찬연한 색채로 물들어가는 가을날 오후가 어느 순간 악센트 없고 단조로운 상실감으로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들곤 한다.
그러나 잎들이 떨어지는 늦가을이라고 해서 쇠락과 슬픔의 계절이어야만 할까? 소설 ‘폭풍의 언덕’으로 친숙한 에밀리 브론테는 시 ‘떨어져라, 낙엽이여, 떨어져라’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떨어져라, 낙엽아, 시들어라, 꽃들아,
밤은 길어지고 낮은 짧아지거라.
모든 잎사귀가 내게 기쁨을 말하네,
가을 나무에서 하늘거리며.
눈의 화환이 피어날 때 나는 미소 지으리,
장미가 자라야 할 곳에서,
나는 노래하리, 밤의 쇠락이
더 을씨년스러운 날을 맞이할 때.
독일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의 ‘정화된 가을(변용된 가을, Verklärter Herbst)’도 정원의 열매가 익어가고 철새 떼가 떠나가는 한 해의 막바지를 ‘사랑의, 온화한 시절’로 표현한다.
장엄하게 한 해가 그렇게 끝난다.
황금빛 포도주와 정원의 열매와 함께.
숲들은 경이롭게 둥글게 침묵하고,
고독한 이의 동반자가 된다.
이때 농부가 말한다: 좋구나.
너희 저녁 종소리여, 길고 고요하게,
마지막까지 기쁜 용기를 주어라.
철새 떼가 여행길에서 인사한다.
사랑의 온화한 시절이구나,
작은 배를 타고 푸른 강을 따라 내려간다.
얼마나 아름답게 그림과 그림이 이어지는가 -
고요와 침묵 속으로 사라져 간다.
독일어의 Verklären은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 말은 우리말에서 ‘변용(變容)’과 ‘정화(淨化)’ 두 가지로 번역된다. 쇤베르크의 ‘Verklärte Nacht’는 ‘정화된 밤’으로, 슈트라우스의 ‘Tod und Verklärung’은 ‘죽음과 변용’으로 흔히 소개되는 것과 같다.
독일어의 ‘klar’가 ‘맑다’는 뜻을 갖고 있으니 어원적으로는 ‘정화’에 더 가깝고, 영어를 거치면 ‘Transfiguration’으로 ‘변용(모습을 바꿈)’에 가깝다. 성경에서 예수가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순수하게 변모했다는 내용으로 인해 두 가지 개념이 섞이게 됐다.
시인 트라클이 표현한 가을은 퇴락하거나 불운한 계절이 아니었다. 그의 시 속에서 세상은 축복처럼 다양한 색상으로 정화 변용되었다. 기원하건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늦가을이 그러하기를.
자료출처 : https://www.arte.co.kr/music/theme/9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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