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31-37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것이 예언의 성취이고 옆구리를 찔렀을 때 물과 피가 나온 것은 예수님이 분명히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것이며 모든 것이 다 예언대로 성취된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모든 일을 다 이루신 것을 아시고 목마르다 하심으로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알리시고 사람들이 준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며 그 영혼을 넘기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것이 예언의 성취이고 옆구리를 찔렀을 때 물과 피가 나온 것은 예수님이 분명히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것이며 모든 것이 다 예언대로 성취된 것이라고 증언하는 내용이다.
31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유대 사람들은”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다시 유대사람들이 등장했다. 유대사람들이란 역시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다. 이어서 그 때가 준비일이었기에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보통 로마인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된 죄수들을 그대로 둔다. 그러면 새들이 파먹고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식민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저들의 뜻을 받아 주었다.
이어서 왜냐하면 그 안식일은 큰 날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무교병을 먹는 첫번째 날이기 때문이라고 큰 날의 이유를 설명한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신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그래서 무교절 안식일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던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었다. 그래서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의 시체의 다리를 꺾어 치워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이들은 이처럼 잔인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고도 여전히 율법적인 정결만을 강조한다.
그런데어째서 다리를 꺾어달라고 할까? 보통 사람들은 어깨를 움직여 숨을 쉰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어깨를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 경우는 다리로 몸을 밀어 올리고 팔로 몸을 끌어 올려서 숨을 쉬게 된다. 그러나 다리를 꺾어 버리면 몸은 두 팔에 매달려 있게 되어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또한 다리를 꺾으면 피가 많이 나와서 빨리 죽게 되는 것이다. 그냥 두면 보통 2-3일까지 살아 있기도 하는데 다리를 꺾으면 숨을 쉬지 못해 바로 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32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빌라도가 유대교 지도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병사들에게 그대로 하라고 명령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병사들이 가서 먼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의 다리와 또 다른 한 사람의 다리를 꺾었다고 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사람은 아직 살아 있었기에 다리를 꺾은 것이다.
33절은 “그러나 그들이 예수께로 갔을 때”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들은 예수께로 갔을 때 그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서 다리를 꺾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죽으셨다는 말은 완전히 죽었다는 뜻이다. 34절은 그 대신에 병사들 가운데 하나가 그의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고 했다. 그러자 즉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완전히 죽었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확인하려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이 창은 3 ½ ft 짜리 로마 군인들의 창이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물과 피가 나왔다는 것을 두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창이 심장을 찔렀기 때문에 심장의 피와 심장을 둘러싼 심낭에 있는 액체가 흘러나왔을 것이라고 한다. 둘째 관통상을 입지 않은 채 심하게 다치면 출혈성 체액이 2 리터까지 가슴에 모일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심장과 심장을 둘러싼 심낭을 찔렀다면 왼쪽을 찔렀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심장을 둘러싼 심낭에서는 그렇게 예수께서 매를 많이 맞으셔서 내출혈이 생겼고 갈비뼈와 허파 사이에 혈액이 고였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의학적인 증거를 찾아 성경을 해석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이렇게 해서 성경을 해석하면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증언을 한 요한은 의학적인 지식에 근거해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놓치면 안된다. 요한이 이러한 내용을 증언하는 이유는 첫째로 예수께서 분명히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둘째로 1:14절에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라고 증언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물과 피를 가진 육신으로 오셨다는 증거를 분명히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일서 5:6에서도 “그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신 분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했다.
요한이 이렇게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이유는 당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은 것처럼 보였을 뿐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던 또 다른 종류의 이단들 때문이다. 이러한 이단들은 가현설(Docetism)을 주장했는데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은 것처럼 보였을 뿐 진짜 인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은 것처럼 연극을 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처럼 연기를 하셨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사기꾼이다. 이런 이단들의 주장도 역시 요한복음이 기록되던 당시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제 35절에서는 이처럼 육신으로 오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에 대한 증인이 등장한다. 35절은 “이것은 목격자가 증언한 것이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원어는 완전히 본 것을 완전하게 증언했다는 뜻이다. 요한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완전히 보고 완전하게 증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는 자기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고 한 것이다. 그의 증언은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진짜라는 것이다. 또한 그 자신이 보기에도 진짜라는 뜻이다. 이렇게 증언한 이유는 “그는 여러분들도 믿게 하려고 증언한 것이다.
이 증인이 누구일까? 어떤 이는 마가복음 15:39절에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말한 백부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근거가 없다. 원문은 완전히 다 본 것을 증언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사랑 받는 제자 요한일 것이라 말한다. 그 근거는 “자기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는 말에서 찾는다. 원어는 “그는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는 뜻이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에도 계속 그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요한은 자신이 목격한 것을 제 삼자가 목격한 것처럼 썼을 가능성이 있다.
36절은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출애굽기 12:46절의 “뼈는 하나라도 꺾어서는 안된다” 라는 말에 근거한다. 유월절 양을 먹을 때 그 뼈는 하나라도 꺽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 말씀에 근거한 예언은 시편 34:20절에 보면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라고 나온다. 이 시편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 말씀에서 두번째 예언의 성취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된 것이라는 증거가 구약성경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 37절에서는 또 다른 예언의 성취가 나온다. 37절은 “또 성경에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쳐다 볼 것이다’ 한 말씀도 있다” 라는 말이다. 이는 스가랴 12:10절에 나오는 말이다. 요한이 스가랴 12:10절을 인용한 일차적인 이유는 로마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것은 우연이 아니라 스가랴가 예언한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뼈가 꺾이지 않은 것도 옆구리를 찔리신 것도 모두 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뜻에 따라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증거들이다.
요한이 스가랴의 예언을 인용한 것은 또한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스가랴 12장1-9절에는 하나님께서 이방민족들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 나온다. 12: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 백성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찔려 상처를 입으셨다는 것이다. 선지자들을 보내서 회개하라고 하셨지만 저들은 선지자들을 찔렀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찌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찌른 사람들은 후회하며 외아들을 잃은 부모처럼 슬퍼한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7절에는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라고 했다. 계시록에 따르면 주님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 예수님을 찌른 사람들은 심판대 앞에 서서 예수님을 보고 후회의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뜻일 수 있다. 이처럼 앞으로 주님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뜻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본문에서 일차적으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초점은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것 조차도 예언의 성취라는 점이다.
오늘 말씀에서 요한이 강조하며 증언하는 초점은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분명히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물과 피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인간이 아니셨고 인간처럼 보였던 것이라 주장하던 이단들에게 분명히 알리는 것이다. 요한이 또 강조하는 것은 예수께서 분명히 죽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지 않고 무덤에 놓였기에 다시 살아났다고 하던 이단들의 말을 반박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자세한 증언들은 예수께서 우연히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의 정확한 성취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