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리스(3)-귀향(13)
글쓴이 그라테우스
여러 번 다녀서 익숙한 산길을 내려갔다. 구멍이 뚫렸던 다리는 멀쩡해졌고 어께역시 무기를 쓰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깨끗이 회복되었다. 뒤통수도 물론 회복되었고 말이다. 화살은 다시 가득 보충했고, 부러진 롱소드를 대신해서 새 검을 숏소드와 함께 허리춤에 걸었다.
단 일주일 만에 상처를 모두 회복하고 다시 나가게 되다니. 무기도 새로 장만해서 말이야.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주일 전을 떠올려봤다.
오크들에게 둘러싸여서 거의 포기했던 그때 의외의 원군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브레임은 오크들을 무섭게 몰아쳤다. 순식간에 열 마리도 넘는 숫자의 오크들이 죽어버렸고, 그 자리에서 도망친 오크들은 다섯 마리가 채 안됐다. 그나마도 브레임이 꺼내든 활에 의해 생을 반납해야만 했다.
정말 놀라운 힘을 과시하듯 내게 보이며 다가온 브레임은……. 나를 비웃었다. 젠장. 아주 신나게 날 비웃은 다음 그는 죽어 나자빠져있는 트롤을 보더니
“여기에도 머저리가 또 있었군.”
이라 말하곤 나를 짐짝처럼 짊어지고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전후 사정을 듣더니 나를 세상에 다시없을 머저리 취급을 하며 상처부위에 붉은색 액체를 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상처부위가 트롤보다도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브레임은 포션이라는 비싼 것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외상은 모두 회복되었지만 떨어진 체력과 부러진 롱소드(여기서 가장 많은 욕을 먹었다)를 회복하고, 구하느라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내려올 수가 있었다.
내려 올 때는 브레임에게서 오크 조심하라는 덕담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고마워서 새 검에 인간의 피를 묻혀 길들일 뻔했지만 참아내고 숲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현재 내가 향하는 곳은 던버튼. 처음으로 알게 된 내 고향의 지명이었다.
나의 ‘적대자’가 있는 곳이니 만큼 껄끄럽기는 했지만 그자와 마주치지 않고 아저씨만 만나고 오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향한 것이었다.
브레임에게 받은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갔고, 지도가 정확하지 않았던 탓에 이틀을 헤매느라 허비해버렸다. 겨우겨우 고향에 도착했을 때. 난 놀라버렸다. 높고 단단해 보이는 성벽과 거대한 성문을 본 것이었다. 이곳을 떠날 때만 해도 나무 울타리에 방책이 전부였는데…….
내가 없던 사이에 살아왔던 곳에 변화가 생긴 것을 보는 건 뭔가 기묘한 느낌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거 말이다.
성벽에 가까이 도달하자 체인메일로 상반신을 감싼 남자가 내게 창을 겨누며 말했다.
“정지하십시오.”
그의 말대로 바로 멈췄다. 그리곤 성문 앞을 막고 있는 여러 명의 남자들을 훑어봤다. 호오, 경비병들 장비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는걸. 전에는 가죽갑옷에 나무 끝에 날을 단 창이었는데 지금은 사슬갑옷에 철제 장창이라니. 목책이 성벽으로 바뀌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건가.
“무슨 용무입니까.”
가장 앞에서 내게 창을 겨눈 경비가 사무적인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나도 비슷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여행하던 중 쉬기 위해 들렸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통행증을 소지하셨습니까?”
“아니오.”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당연히 없을 것이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통행료로 1실버를 내야지만 통행하실 수 있습니다.”
1실버씩이나? 겨우 마을에 들어가는데 그 정도나 되는 돈을 써야 한다고? 단지 통행료로 내기에는 큰 돈이었기에 조금 따져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금 비싼 것 아닙니까?”
내가 따지자 그는 피식 웃더니만 창끝으로 내 허리춤을 가리켰다.
“짐이 많은 자나 무기를 소지한 자는 통행료가 더 붙습니다. 원하지 않으신다면 돌아가셔도 무방합니다만?”
말 되는군. 고개를 끄덕이며 은화 한 닢을 그에게 넘겼다. 그러자 성문을 막고 있던 경비들이 비켜섰다.
“그럼 편히 쉬다 가십시오.”
“오늘 하루도 무사히.”
그의 인사에 대뜸 답하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예. 오늘 하루도 무사히.”
경비병들과 인사하곤 성벽 내부. 즉 마을로 들어섰다. 아, 드디어 돌아온 건가. 5년만의 귀향이로군. 약간은 감상에 젖어도 좋겠지만, 우선은 예전의 집부터 가볼까?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걸.
그리곤 세 시간을 집을 찾는데 허비했다. 마을이 커지고 커져서 도시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까닭에 예전에 알던 건물을 찾는 것만도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예전 집을 찾긴 했지만 역시나 가난한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누군가 와서 살 것이리라 예상했기에 별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서지지 않은 게 다행인가.
내 집을 찾은 바로 다음으론 아저씨의 집을 찾으려했다. 내가 살던 곳을 찾았기에 아저씨의 집도 찾을 수 있을 줄로만 알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한참을 헤매고도 찾지 못했기에 결국은 포기하고 여관을 찾아 나섰다. 내일이 있으니까. 내일이.
지나가는 나이 지긋이 드신 아저씨께 물어보니 가까운 곳에 적당한 크기의 주점 겸 여관이 있고, 멀리에는 비싼 여관이 있다했다. 물론 나는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오두막에서 나올 때 알아서 벌어 쓰라며 브레임이 돈을 얼마주지 않았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 사람의 설명에 따라 길을 찾아가니 과연 2층짜리 여관이 있었다.
‘고향’
“그럴 듯한데?”
여관의 간판을 보며 혼자 좋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실내로 들어섰다. 마침 해가 질 무렵. 노동이 끝난 시간이었기에 인부들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름대로 유쾌하게 노래를 하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는 그들을 바라보며 훈제된 고기만으로 끼니를 대신하느라 부실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양고기 스튜를 시켰다.
음식이 나올 때 까지 지루함을 가시게 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난 구석에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익숙한 인상의 초췌한 남자를 보곤 굳어버렸다. 술을 마시던 그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굳어버렸다. 하지만 빠르게 본래의 안색을 회복하곤 다시 술을 홀짝이는데 열중했다. 나 역시 그와 같이 모르는 척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음식이 나오자 최대한 빠르게 먹어치우고 셈을 치렀다.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을 힐끔 본 그는 내가 식사를 마치는 순간 남은 맥주를 한꺼번에 들이키곤 동화를 바텐더에게 내민 다음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밖으로 나가고 잠시 후에 나 또한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뒤따라 나간다면 누가 보다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뻔했으니까.
‘고향’의 밖으로 나오자 그때까지 나를 기다린 것처럼 여관 근처에 서있던 그는 천천히 골목으로 향했고, 난 주변에 누가 없는지를 살피곤 그의 뒤를 따랐다.
골목을 어느 정도 들어간 후에야 그는 멈춰 섰고, 그제야 그와 난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미소. 익숙한 몸집. 그동안 변한 것은 얼굴의 주름 말곤 없어보였다.
“많이 변했구나.”
“아저씬 별로 안 변했는걸요.”
잠시 침묵이 우릴 갈라놓았고 아저씨는 말없이 양 팔을 벌리셨다. 나는 아저씨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마주 끌어안았다.
“예, 예. 돌아왔습니다. 돌아왔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고, 이젠 나보다 작아진 아저씨가 밑에서 내게 말했다.
“잘 커서 왔구나. 잘 돌아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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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