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월요일은 날씨가 몹시 무더웠어요. 습도도 높아서 끈적끈적하게 고인 땀이 잘 마르지 않는 마당에 마이크 앞에서 입을 맞추느라 애를 먹기까지 했죠. 며칠 전에 라디오 국악방송 구성작가 분에게서 전화가 왔었어요. 대학이나 직장, 인터넷 모임 중에 게스트를 출연시키는 코너가 있는데, 나와 달라는 출연 섭외였죠.
단지 홍보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면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 방송사가
우리 국악을 알리는 성격이라 괜찮겠다 싶더군요. 일단 주인장에게
메일로 알렸지만, 바로 아차 싶었어요. 당장 나갈만한 분들이 없는 거예요. 그쪽에서도 그렇고 함께 모임에 어우러진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그 동안 얼굴이라도 보며 말을 나눠본 분들이 나가야 했거든요.
일단 다음 날 아침에 거절의사를 정중히 밝혔었는데, 저녁 무렵 다시
전화를 해서 꼭 출연해 주길 바라더군요.
할 수 없이 제 임의로 수도권 모임 참석자들에게 연락을 했어요. 카페 게시판에 공지를 내보낼 수도 있겠지만, 방송사 측에서 빠른 회답을 원하는 데다 호흡을 맞추며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야 하는 만큼 그
분들밖에 나갈 사람이 없었어요. 방송출연이라는 말에 다들 조금은
꺼려하더군요. 제가 좀 억지를 부려 끌어냈어요. '마음'님, '호미'님,
'실브리스'님, '술이'군은 응해주셔서 다행히 최소인원을 꾸릴 수 있었죠. 전 출연할 분들만 이끌고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담당 구성작가가
운영자나 주인 중에 한 분은 참석해 달라고 하더군요. 일명 심각병 환자라 방송 분위기 망친다고 발을 뺐지만, 생각해보니 모양새가 좋지
않기는 했어요. 남은 자리 하나를 제가 차지하고 앉으니 그나마 남자
둘 여자 셋으로 그럭저럭 머리 숫자가 알맞기도 했죠.
방송에 나갈 분들을 알아보면서 모임 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아쉬움을 새삼 느끼게 됐어요. 고른 연령대로 꾸리는 게 좋겠다 싶어 평소에
카페 채팅방에서라도 말을 나눠본 학생들을 불러봤지만, 마침 개인사정들이 있어서 다들 참석이 어렵더군요. 부랴부랴 방송사에 전화를
하고, 구성작가 분이 메일로 보내준 질문지를 보내드렸죠.
늦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놓고 녹음 당일 날은 제가 늦을 뻔했어요.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했죠. 시간에 맞춰 모인 분들과 함께 마을버스를 타고 국립 국악원으로 이동했어요. '호미'님은 차를 몰고 미리 가
있었고요. 무더운 날씨와 수풀이 우거진 산을 끼고 있는 탓에 국악원으로 건너가는 지하도 안이 물안개로 온통 뿌옇더군요. '호미'님이
'노을바다' 형님을 모시고 나와주셔서 다른 분들도 그 잘생긴(?) 얼굴을 뵐 수 있었어요. 일찍 가서 쉬었다가 말을 맞추는 둥 연습을 해야
하는 만큼 약속시간 7시보다 30분 일찍 서둘러 국악 박물관 2층 라디오국 사무실을 찾았어요.
담당 구성작가 분이 아주 밝은 웃음으로 맞아주시더군요. 휴게실 책상 앞에 둘러앉아 설명을 들으며 연습을 할 때는 벅벅거리더니 스튜디오에서는 전혀 달라지더군요. 한 번의 엔지도 없이 녹음을 무사히
마쳤어요. '방방 2030'이라는 그 코너의 제명대로 밝고 쾌활하게 떠들어달라고 했지만, 워낙 조용한 분들이라 걱정스럽더니 한마디로 선수들이었어요. 워낙 말투가 딱딱한 제가 제일 고생한 듯했어요. 각자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 모였고, 그 동안 자잘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모임
참가자들이라 코너의 성격에 맞게 잘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호미'님은 밤을 꼬박 새운 마당이라
'술이 곧 소설이다'군과 같이 차를 몰아 바로 댁으로 향했어요. 남은
사람들끼리 가볍게 이야기를 하다가 일부러 대전에서 올라오신 '실브리스'님이 기다리고 계신 부군에게로 가실 때 '마음'님이 따라 일어서고, 전 '노을바다' 형님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작은 행사였지만, 본인들의 굳은 마음을 마이크 앞에서 내세웠던 기억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리라 생각해요. 그만큼 문학과 그 사람들에 대한 믿음도 커질 듯하고요.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드릴게요.
특히 '노을' 형님은 녹음하는 동안 밖에서 공연 보며 기다리느라 고생하셨어요. 그 야외무대를 볼 수 있어서 지루하지 만은 않았으리라 여겨요.
앞으로 이런 행사가 있을 때 다른 분들도 나갈 수 있도록 모임 참가를 적극 바래요. 이번 일이 그럴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요. 물론 각 지역별로 나서서 이끌어주는 분들에 의해 각기 모임이 활성화되어야 하죠. 그리고 방학기간 등을 고려해 지방회원들도 함께
할 수 있는 모임 조성에 노력할게요. 공부라 해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면이 있으니, 이따금 주저 없는 편안한 자리도 마련하도록 힘쓰죠.
각 개별모임이 잘 커져야 카페의 정기모임도 우뚝 자라날 수 있는 법이니까요. 방송은 목요일에 나간다고 해요. 23시부터 24시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라디오로 들어도 되지만 인터넷으로 국악방송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저희 사진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직접 들어보면 녹음하신 분들은 아주 어색하리라 생각해요. 하나의 추억이죠. 우리 식구들이 그런 목소리를 담고 왔으니, 한 번 낯설었던 우리 음악도 들을
겸 목요일 23시에 국악방송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저도 한동안 멀어졌던 우리 음악을 다시 가까이 할 마음이 살그머니 들어 서네요.
첫댓글 편재..... 고2 때부터 우리 음악에 심취하다~~~~~~쩝
입을 맞추다니 흠냐. 누구와 누가 입을 맞췄수? 난 못봤는디
안봐도 훤하죠... 호미가 억지로 마음님, 혹은 실브리스님에게....
하하 여튼 추억도 됐지만... 버벅버벅 콩콩 버벅버벅 콩콩... 과연 이게 무슨 소리일까?
ㅋㅋㅋㅋㅋㅋㅋ 이야~ 오호~ 대단하군요. ㅋㅋ
대단합니다. 꼭 볼께요. 손이 유리에 베어서 타자 치기가 힘드네요. 독수리 타법..아파요. 오시는 모든 분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