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신문과 방송, 온라인 기사를 보면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기자들이 글을 쓰는 일이 많아 안타깝고 화가 날 때가 적지 않다. 해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애정이 깊은 기자들이 오랫동안 언론 현장을 지키며 후학들을 잘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곤 한다.
중앙일보에 2003년 3월부터 '우리말 바루기'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 정년퇴직 후에도 계속 집필, 우리말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써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상복 전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부국장(전 경희대 겸임교수)이 18일 낮 12시쯤 암과의 싸움 끝에 스러졌다는 소식이다. 63세,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1961년(호적에는 196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문경종고,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 1987년 중앙일보에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2004년에 펴낸 책 '문장기술'을 비롯해 '글쓰기 정석', '단어가 인격이다' 등 글쓰기 관련 저서도 여러 권 냈다. 지난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기 전까지 경희대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고, 교육방송(EBS) '우리말 우리글'에 출연한 적도 있다. 문화부장관상인 '우리말 글 대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 2022년 한글날 한글학회가 주는 '국어운동 공로 표창'을 받았다.
고인의 입사 동기인 한규희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이사는 "공부도, 강의도, 회사 일도 모든 걸 열심히 하는 '교열기자'였다"고 말했다. 2015년 한국기자협회 인터뷰를 통해 장기간 연재로 소재가 고갈돼 여러 차례 연재를 중단했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달 8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웬 떡을 웬일로?'에서는 '왠지'는 '왜인지'의 준말이라는 걸 기억하면 '웬지'로 쓰지 않을 수 있고, '웬 떡' '웬 걱정', '웬걸', '웬일'등 그 밖의 말은 모두 '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자 신문에 실린 것이 마지막 칼럼이 됐다. 제목은 '~화하다' '~화되다' 어느 것이 맞을까?'였다. 원래는 '핵가족이 보편화했다'가 맞지만 '핵가족이 보편화됐다'는 쓸 수 있는데 '~화되다'도 '~화하다'도 쓰기 싫으면 '화'를 빼고 '합의 사항이 완전 무효화됐다' 대신 '합의 사항이 완전 무효화됐다' 대신 '합의 사항이 완전 무효가 됐다'고 쓰면 된다고 조언했다.
유족은 부인 홍성례씨와 사이에 아들 배형섭씨 등이 있다. 빈소는 광명 중앙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 20일 오전 8시. (02) 2610-9481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자사 기자가 안타까운 죽음을 당했는데도 정작 중앙일보의 부음 기사는 형식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고인의 뜻을 올바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교열 기자를 낮춰 보는 시선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지난 20여년 경영 논리를 좇아 교열 직종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기는 시각이 있었다. 이를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