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곡리 패총에서 역사를 보았다
양승희
역사 수업 시간에만 듣던 패총(조개무지)을 보는 계기가 있었다. 해남 송지면 군곡리 방처마을이다. 청동기 시대 후기에서부터 철기시대의 유적이다. 목포대학교가 1986년부터 지속해서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군곡리의 규모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적은 2만 평(1평=1.8m×1.8m), 조개무지 높이는 약 26미터이다. 해발은 334미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패총이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발굴 지역에 들어서니 생각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발굴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이야 패총이 산자락에 있지만 2,000년 전 선사시대였던 당시에는 바다 근처에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발굴단을 이끄는 대표의 배려로 우리는 당대의 주거지도 보고, 출토된 각종 토기, 물고기 뼈와 소뼈로 만든 다양한 도구들도 보았다. 철제낚시 바늘을 비롯하여 새끼손톱보다 작은 곡옥이라는 장신구도 보고, 중국 동전도 보았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칼집을 만져보기도 하고, 칼집이 없었더라면 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산화되어 있는 칼의 흔적도 보았다. 발굴된 유물들은 상당히 세련되어 있었다.
발굴단은 아주 작은 유물도 손상되지 않도록 일일이 호미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한쪽에서는 작은 유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호미로 판 흙을 채로 거르는 분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역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이분들이 고마웠다.
조개껍데기를 만져보다가 문득 2,000년 전의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울컥했다. 유리창으로 보는 박물관의 유물을 볼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들의 삶이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에서 사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집을 짓는데 볏짚을 사용한 것이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오가면서 볏짚을 이용해 집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였다. 그래서였다. 이 글을 쓰면서 3개의 단어를 네이버에서 찾아봤다.
패총:
조개더미, 원시인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여 이루어진 무더기
원시인 : 현생 인류 이전의 고대 인류, 미개한 사회의 사람
선사시대 :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시대. 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
패총의 주인공들은 어디를 봐도 미개하지 않았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인 것은 맞으나 미개하지 않았다. 발굴단은 군곡리가 가마터를 만들고 직접적으로 토기를 만들어 쓸 정도로 큰 규모의 취락지구였다고 본다. 또한 2,000년 전부터 제주도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동남아와 교류했다고 본다. 그래서 목포대 연구팀은 패총을 일반에게 공개할 방안을 찾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철기시대부터 마한, 백제의 유적지를 보존할 방안도 국가와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복합유적이기도 하지만 고대 해상세력의 근거지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발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듣다가 이처럼 다양한 유물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그랬더니 물고기 뼈 전문가, 동물 뼈 전문가, 토기 전문가가 따로 있다고 했다. 발굴자들은 다들 각각의 영역의 전문가여서 이를 수습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발굴에 관심이 많아서 합류한 여대생도 있었는데, 그 여대생도 자기만의 전문성을 기르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서 문득 고고학자가 되고 싶은 1학년 여고생이 생각났다. 여고생의 부모는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그렇듯이 자녀가 대학을 졸업해서 안정된 직업을 갖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발굴단 대표는 “이 영역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그 학생을 위해 2,000년이 된 조개 두 개를 얻었다.
다녀온 후 페이스북에 우리 일행 한 분이 이렇게 올렸다.
‘목대 박물관의 수강생들을 위해 이렇게 귀한 기회를 주시고, 이천 년의 시간을 선물해 주신 멋진 샘들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