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8일 토요일
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을 찾아서~
삼강교와 낙동강
낙동강의 모래톱
비룡교
제2전망대
물맑은 낙동강과 모래톱!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강' 모습입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우리곁에 남아 있다는 것
'행운'입니다.
제 1전망대
청정한 낙동강을 바라보니,
가슴 벅차 오르고~ ㅎ
50여년전,
제가 보았던 '한강의 모습'을
여기서
다시 보는 느낌입니다.ㅎ
'제 1전망대'안에서~
'푸른 하늘과 흰구름'은
'덤'입니다.
ㅎㅎ
'삼강주막'으로~
강 문화전시관
캠핑장
야영데크
삼강나루캠핑장
삼강 문화단지
삼강주막 옆에 있는
500년 된
회화나무(보호수)
삼강절경
삼강절경
삼강절경은 낙동강,내성천,금천인
삼강이 만나 화합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가는 곳으로
낙동강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과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있고,
주위에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삼강팔경 한시는
조선시대 문인인 청풍자 정윤목이
삼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하였고,
삼강절경 휘호는
서예의 대가인 초정 권창륜 선생이
직접 쓰셨음.
삼강 나루터 유래
삼강 나루터는
문경 주흘산맥과 안동 학가산맥,
대구 팔공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며,
내성천과 금천,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는 수륙교통의 요충지이다.
예로부터 서울로 장사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릴때,
그리고 선비나 장꾼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때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으로,
나루터 주변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 배를 통한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대구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도로였기에
196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었다.
더구나 이곳에는 강을 이어주는
나룻배 두 척이 오갔었는데
큰 배는 소와 각종물류를
수송하는 수단으로,
작은 배는 15명의 사람을 태우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였으나,
인근 교량설치로 인하여
1980년경 나룻배 운행이 중단 되었다.
2013년 청소년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나룻배를 재현했다.
삼강마을
삼강나루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내륙교통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황포라는 명칭은
돛의 색깔이 누렇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돛의 재료인 광목에 황톳물을 들여
좀을 방지하고 질기며
비바람을 맞아도 변하거나
썩지 않게 하였다.
황포돛배는
내륙지방의 물류와 문화의
교류의 중요한 수단 이었다.
조선 후기 기록을 보면
한강을 항해하던 황포돛배 수는
하루 평균 100척 이었고,
배 한 척에 대략 30가마니의
쌀이나 소금을 실었다고 한다.
한양의 객주에서 구입한 물품을
황포돛배에 실어 지방에 가져다 팔고,
다시 그곳에서 쌀,소금,나무,생선 등을
싣고 와 한양의 포구나 객주에 팔았다.
이를 통해 수도 한양과 지방의 물자와
인구의 이동과 문화 교류가 이뤄졌고
강을 따라 나루터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황포돛배는 우리나라 강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예천 삼강주막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길 27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삼강주막 인증샷!
뱃사공 외상장부
부엌벽에 돌로 긁어서
외상장부를 표시함.
유옥연 할머니 외상장부
사방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손님들이 많았음을
추측 할수 있네요.ㅎ
들돌의 유래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농부(어른)로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보부상.사공숙소
소재지: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56번지
원래 이 곳에는
1900년대에 지은 보부상 숙소와
사공숙소가 있었다.
당시 삼강은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 이동이 아주 활발하였다.
언제나 보부상과 길손들이 이어졌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 만큼 분주했다.
밤이 되면 낯모르는 사람들이
호롱불에 둘러앉아 야담을 나누면서
잠을 청하던 곳이 보부상숙소이며,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은
길손을 위해 기꺼이 노를 잡았던
사공이 기거하던 곳이다.
당시 건물은 1934년(갑술년) 대홍수로
모두 멸실되었으나, 마을 어른들의
증언과 고증을 바탕으로
2008년 복원하였다.
차림표
주모한상!
삼강마을
동에서 낙동강
동북에서 내성천
서북에서 금천
푸르게 하나로 어우르니
낙동강 칠백리 수를 놓는다
대구 팔공산맥 동남으로 이백리
문경 주흘산맥 서북으로 일백리
안동 학가산맥 동으로 이백리
산과 강 셋씩모여 정기가 가득하니
청풍자 할아버지 광해에
삼강으로 이름지어 솟는 기운
대대손손 이어 가는 곳
유서 깊은 삼강
그 고명
영원히 빛나리
술상,
셀프
'옛맛'을 느끼며~ ㅎ
이, 맛이야!
ㅎㅎ
경상도 별미!
배추전
두부와 도토리묵!
'술'이
술~술~
잘 넘어갑니다. ㅎㅎ
'추억'을 남기는 트레킹 - 무아투어
02) 2285-2585
이래서,
'고향'이 좋은가 봐요!
ㅎㅎ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오고~ㅎ
고향의 맛,
추가!
소식하는 농심님인데,
'고향의 맛'은 땡기나 봅니다.
ㅋㅋ
'곶감과 주막군밤'도
사고~ㅎ
왕밤!
제 어머니 것도 챙겨주시고~ㅎ
감사!
주모가 보내주는 우체통
사랑하는 이에게
소중한 추억을 전하세요
편지는 333일 후에 배달됩니다.
예천 삼강 문화단지
삼강리 "새샘"의 유래
400여년전(1620년경) 청주 정씨
삼강파 입향조이신 청풍자 정윤목(1571~1629)
선생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먹는 물이라
강조하시고 현 위치에 샘을 파게 하셨다.
당시에는 강물과 바가지샘 4~5곳에
의존하며 살았으나 식수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이곳에 샘을 파서 명칭을
"새샘"이라고 하였다.
폭 1m, 깊이 30m정도로
1980년대만 하더라도
예천군 관내에서는
가장 깊은 샘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 샘물을 먹고 자란 후손들은
정치가,학자,사업가 등
우리나라의 큰 인재로 많이
배출 되었다고 전해진다.
힘들여서~
두레박을 올렸는데,
물이 없네요.ㅎ
꿈에서 얻은 용의 알
약포 정탁 대감에 얽힌 일화로
약포가 새로 집을 짓고 우물을 팠으나
웬일인지 물이 나지 않았다.
며칠동안 애를 쓰다가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용이 꿩 알 만한 돌을 주면서
"이 돌을 파던 우물속에 넣으면
물이 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며칠 후 약포는
우연히 본인이 살았던 옛 집터에서
꿈속에서 본 알처럼 생긴 돌을 줍게 되었고
용이 시킨 대로 파던
우물에 돌을 집어 넣었다.
그랬더니 우물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약포대감의 우물은
현재까지도 예천읍 고평리에
'중간샘'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별동 선생의 지혜
별동 선생이 먼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어느 주막에 들게 되었다.
주막에 앉아 밖을 보고 있노라니,
주인의 손자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떨어뜨린
구슬을 거위가 삼키는 것이 아닌가.
집안의 가보였던 구슬을 잃어버린 주인은
별동 선생을 의심해 관가에 끌고 가려 했지만,
별동은 거위가 멀리 못 가도록 묶어
자신과 함께 두면 내일 아침
구슬을 찾을 것이라며 사정했다.
별동 윤상 선생이다.
별동 옆에 다리가 묶인 거위가 똥을 누자
그 똥 속에서 구슬을 찾아낸 주인은
왜 거위가 구슬을 먹었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별동은 허허 웃으면서
"거위가 구슬을 먹었다고 하면
급한 마음에 당장 구슬을 찾기 위해
주인장께서 그 거위를 죽였을 것이니
내가 하룻밤만 고생하면 구슬도 찾고,
거위도 죽이지않을 것이 아니요"라고 했다.
이 별동이 바로
조선 초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별동 윤상 선생이다.
한창 개발중인
예천 삼강 문화단지
비룡교
'제 1전망대' 앞에서~
사림재로 가는 길
국가지점번호
라바
7252
4154
농심님!
옛추억에 젖어서~
'찔레꽃 열매'를
열심히 따 먹고 있습니다.
ㅎㅎ
오후 5시 55분...
사림재 도착!
함께하는 회룡포
우리의 보배 입니다.
쓰레기는 되 가져 갑시다.
회룡포 사랑회
회룡포 및 삼강주막 안내
010-8707-8942
용포마을,사림봉,
전망대,생태탐방로 가는
사거리 이정목
국가지점번호
라바
7280
4185
'제 2뿅뿅다리'에서~
제2뿅뿅다리
-뿅뿅다리 유래-
기존 놓여 있던 노후된 외나무 다리
대신 1997년 예천군에서 강관과
철발판을 이용해서 다리를 놓았다.
그 후 마을주민들이 이다리를 이용하면서
발판구멍에 물이 퐁퐁솟는다 하여
퐁퐁다리라 불렀으나 98년도
신문 및 방송에 뿅뿅으로 잘못 보도가
되었고 이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
지금의 뿅뿅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비룡산,내성천,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
회룡포
'제1 전망대',
'회룡대'를 땡겨봅니다.
넓은
회룡포 백사장
강변길(삼강~회룡포) 관광안내도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
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랴
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에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
한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
맑게 갠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속에서 잦아드네.
장안사에서 [이규보의 시]
미로숲 조성중~
아침 햇살 속삭이는 가파른 숲길
솔향기 넘쳐나는 생명의 길
정감 어린 동행은
눈물보다 뜨거워라
언제 또 다시 울지
심장의 디딜방아 소리
태고의 낙동강으로 회귀하고
태극 회돌이에 머문 눈길
용암처럼 이글거린다
오늘도 용드림은
미래 향한 영원할 흐름이다
돌아 올 기약도 없는
묵묵한 강줄기
아아 회룡포
회룡포 [최대식 시]
강은 산을 돌아 길을 열고
길은 길이 없는 곳에서 찾고 있다
소백산 3백리를 달려 온 내성천
비룡산 감고돌아
태극 나루 이루고
휘돌아 흘러가는 물구비
힘찬 용틀임 친다.
백년 노송 몇 그루 옛날을
말해줄 뿐
한가로운 들길에는
백로떼가 놀고 있다
3백년 지난 자취 찾아도
간 곳 없고
한이 서린 이계 바위
달빛속에 프르른데
규보의 옛 시혼은
강물 위에 떠도건만...
[임한수 호명면 금능2리]
간식 먹기!
'참외'만큼은
주먹으로~
박살 내야
제 맛이라고 하시네요
ㅋㅋ
제 1뿅뿅다리.
KBS 해피선데이
1박2일 촬영지
KBS드라마 가을동화의 그림같은 배경
여행작가 100명이 추천한 최고의 여행지
내성천이 350도 휘감아도는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
종합안내도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중 최우수하천
2008년 12월(국토해양부 선정)
예천군
'제 1뿅뿅다리'에서~
서산에
해 질무렵, 다가오고~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네요.ㅎ
'고향'은
언제 찾아가도~
푸근하고 참 좋습니다.ㅎ
오후 6시 42분...
회룡마을 도착!
'농심님'과 함께 한
고향 나들이!
오래도록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ㅎ
고맙습니다.꾸벅!
| | |
비룡산,회룡포:377.7km(왕복) | | 오후 10시 13분 집도착 |
'추억'을 남기는 트레킹 - 무아투어
02) 2285-2585
카페 게시글
└─▶ 일반 사진방
예천 '삼강주막'을 찾아서~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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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2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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