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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조금 지원 '유혹'…세부조건은 '기밀 공개' 수준
中에 반도체 장비수출 금지 1년 유예도 10월 만료
中 "전 세계 적대" 美비판…26년 반도체 생산 1위 전망도
우리 기업, 中생산 기지이자 시장…미중 경쟁에 '낀' 상황
이재용·최태원, 중국 이어 미국 방문…돌파구 마련에 관심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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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표면상으로 '보조금'을 내세운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기업 비밀 수준의 정보 제공과 중국 투자 제한을 조건으로 걸었다. 중국이 대응에 나선 가운데 조만간 반도체 생산능력 점유율 1위에 오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는 중국 수출 비중이 높고, 중국에 생산 공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하지만, 패권 경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눈치보는 상황이다.
美, 거세지는 보조금 지원 조건…사실상 기밀 요구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신청 시작에 앞서 최근 세부 조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이번에 눈에 띄는 점은 반도체 공장의 수익 예측치를 엑셀 파일로 제출하도록 한 부분이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초과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하도록 규정한 만큼 관련 자료를 확보하겠다는 조치로 풀이된다.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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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익성 지표로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 △생산 첫 해 판매 가격 △이후 연도별 생산량 △판매 가격 증감, 비용 지표로 △생산 소재 △소모품 △화학제품 △인건비 △공공요금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입력 항목으로 제시했다.
앞서 상무부는 보조금 심사를 위한 회계장부도 요구했다. 여기에는 △주요 생산 제품 △생산량 △상위 10대 고객 △생산 장비 및 원료명 등 자료가 요구 목록에 포함됐다. 여기에 국방부 등 안보상 필요에 따라 반도체 생산시설 공개도 보조금 지급 조건에 담겨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에 제시한 조건도 '영업 기밀'에 해당한다. 이번에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과 같은 민감한 기밀 사항을 추가한 셈이다.
업계는 난감한 분위기다. 경쟁사와 공정 격차가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기밀 공개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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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미국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10년 동안 중국 내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가 제한된다. 시설투자를 완전히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한 조치가 '1년 유예'인 상황까지 생각하면 10년 안에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포기하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보조금 신청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박정호 부회장은 지난 29일 주주총회 이후 취재진과 만나 보조금 신청과 관련해 "엑셀을 요구하는 등 신청서(기준이) 너무 힘들던데 많이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올해 10월 만료되는 반도체 장비 수출금지 유예의 연장을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中, 美 겨냥 "전 세계 적대" 비판…26년 1위 전망도
미국의 이 같은 반도체 패권에 중국도 손 놓고 있지 않다. 미국을 향한 노골적으로 경고했다.
중국의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자오천신 부주임은 지난 29일 보아오 아시아 포럼 연차총회에서 "어떤 나라가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수호하고, 소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제 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전 세계 경제와 무역 관계를 교란하고 있다"고 미국을 직격했다.
29일 중국 하이난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자오천신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이 미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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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이는 세계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해칠 것이며, 이는 전 세계를 적대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런 발언은 중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뚫고 반도체 생산능력 1위에 오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SEMI(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는 최근 발표한 '300mm(12인치) 팹(Fab‧반도체 공장)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이 정부 차원의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생산능력 점유율이 지난해 22%에서 2026년 25%로 확장해 세계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중국은 의존도가 상당한 생산 기지이자 시장이다. 중국에서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의 약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약 40%와 낸드플래시의 약 20%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모양새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과 협상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 이유다.
메리츠증권 김선우 연구원은 "최대 수요처인 중국에서의 추가 투자는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미 중국 내 생산시설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관련 업계의 경우 가동 유지와 출구 전략까지 고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기 속에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최근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다음달 미국을 찾을 예정이다. 미중 갈등 속 '메모리 반도체 투톱'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