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불
박남수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 밑에
행길도 집도 아주 감초였다.
풀 짚는 소리따라 초롱불은 어디로 가는가
산턱 원두막일 상한 곳을 지나
무너진 옛 성터일쯤한 곳을 돌아
흔들리는 초롱불은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
(『문장』 10호, 1939. 11)
[어휘풀이]
-행길 : 한길, 사람이나 차가 많이 다니는 넓은 길
-원두막일 상한 : 원두막일 것같이 보이는
[작품해설]
이 시는 박남수의 두 번째 추천작으로 그의 초기 시가 지향했던 섬세한 서정과 토속적인 시 세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초롱’이란 대나무를 잘게 잘라 만든 살 위에 종이를 씌우고, 그 속에다 촛불을 켜는 기구이다. 그것을 막대기에 매달아 들고 다닐 때면, 촛불이 꺼질 듯 흔들린다. 이 ‘초롱불’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가는 모든 전통적인 것의 대유로 사용된다. 시인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초롱불’ · ‘원두막’ · ‘옛 성터’ 등과 같은 향토적 정서를 드러내는 시어로써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2·3·4연을 모두 산문투의 문장으로 배치시킴으로써 유장한 리듬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일반적 산문시와는 달리 간결한 느낌을 준다.
1연에서는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풍경을 제시하여 초롱불을 잃어버린 화자의 정황을 드러내며, 2연에서는 ‘초롱불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과 ‘풀 짚는 소리 따라’라는 구절을 통해 소멸되어 가는 우리의 향토적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고 있다. 3·4연에서는 초롱불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산턱 원두막’이나 ‘무너진 옛 성터’를 찾아갈 때면, 언제나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던 초롱불이었지만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 화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문명의 이기(利器)에 밀려 사라져 버리는 현실 상황을 드러낸다. 5연에서는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의 아련한 모습을 제시하는 한편,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말없음표 속에 함축하고 있다.
[작가소개]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양 출생
1939년 『문장』에 「마을」,「초롱불」,「밤길」 등이 추언되어 등단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거쳐 일본 츄우오(中央)대학 법학부 졸업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
1957년 조지훈, 유치환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 창립
1957년 제5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
1973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강사 역임 및 도미(渡美)
1994년 사망
시집 :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1958), 『신(神)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 (1970), 『사슴의 관(冠)』(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이후』(1993), 『소로(小路)』(1994), 『박남수전집』(1998)